“아니아니아니.”
결코 농담이 아니었으리라 생각되는 살벌한 발언에 나는 얼른 리타를 끌어안으며 그녀의 이마에 내 이마를 가까이 맞대었다.
“그, 어떤 식으로 소란을 피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최대한 다치지 않게 이쪽으로 데려다줄래? 아니면 내가 성문으로 가도 괜찮고.”
[ ……. ]
뭐지. 왜 대답이 없는 걸까.
설마, 벌써 목을 친 건 아니겠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침묵과 낮게 가라앉은 리타의 눈동자에 괜히 입술이 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리, 리타?”
[ ……깔끔히 포장해서 데려오라 일러두었습니다. ]
그리고 어째선지 조금 날이 선 듯 들려오는 리타의 대답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고마워.”
[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여왕님께서 저희를 귀인께 맡기셨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귀인이 바라시는 대로 움직일 뿐. ]
“……음.”
나에게 맡기다니?
전혀 들은 바가 없던 나는 리타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당황했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고 싶다…….’
조금 전의 살벌했던 리타의 발언도 그렇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셋째 누님으로부터 몽마들을 넘겨받았다는 너무나도 무거운 발언에 기가 잔뜩 빨려 나간 기분이다.
“저기, 마실 것 좀 얻을 수 있을까요?”
“그, 그럼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능숙하게 이쪽의 언어를 이용해 대답한 여주인은 다시 천막 안으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쁜 유리잔을 가져와 나에게 두 손으로 내밀었다.
“기호를 몰라서 일단은 깨끗한 정수를 가져왔는데…….”
“아, 감사합니다. 이거면 충분해요.”
커스텀의 끝은 결국 순정이라는 말이 있듯.
정말 순수하게 갈증을 충족시켜주는 것 또한 시원하고 깨끗한 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후우.”
바짝 마른 입술과 혀를 촉촉하게 적셔주는 이 청량감.
내가 빈 유리컵을 여주인에게 건네며 감사를 표하려던 바로 그때.
[ 귀인. ]
리타의 부름에 나는 고개만 살짝 숙여 감사를 표하며 얼른 몸을 돌렸다.
“데려왔데?”
[ 예. 지금 가게 밖에 있습니다. ]
“잠깐만 기다려줘. 죄송한데 이거 포장 부탁합니다.”
“네, 네에.”
여주인은 먹기 좋게 6조각으로 나누었던 링클 파이를 가지고 천막 안으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쁜 종이 상자를 가져와 나에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얼른 나가줬으면 하고 바라는 그녀의 표정에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가뜩이나 다른 가게에 비하면 손님 수가 적었는데 나로 인해서 기존에 들려주던 손님마저도 발길을 끊을 수 있었기에 얼른 리타의 손을 붙잡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확실히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네.”
커다란 보따리에 얼굴만 빼꼼 내어놓은 쿠리리와 쿠로로.
하지만 그마저도 눈을 회까닥 까뒤집은 채 기절한 상태였다.
[ 잠깐 의식을 잃었을 뿐입니다. ]
“어…… 그, 고마워.”
나는 리타와 보따리를 들고 서 있는 경비대원으로 보이는 마인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
‘……??’
경비대원이라 생각했던 마인은 리타와 똑같이 소리가 아닌, 마력을 이용한 파장으로 제 의사를 전달하고는 보따리를 둔 채로 자리를 떠났다.
[ 주민들을 제외한 모든 인원은 저희 몽마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
“…그렇겠구나.”
리타의 친절한 설명에 나는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실 이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을뿐더러, 조금 전 가게 안에서 리타가 보여준 행동에 이미 답이 다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 차리자 스미스야…….’
나는 티 나지 않게 나 자신을 다독임과 동시에 다그쳤다.
이곳에서 성문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리고 리타는 가게 안에서 통신구나 다른 마도구의 도움 없이 의사를 주고 받았고.
즉, 대화를 주고 받은 대상 역시 그녀와 같은 몽마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리타는 셋째 누님이 아니더라도, 같은 몽마라면 거리와 상관없이 의사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도 새롭게 머리에 주입했다.
“일단 돌아가는 게 좋겠다.”
[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귀인께서 바라신다면 따를 뿐입니다. ]
“고마워.”
[ ……별말씀을. ]
가게 안에서는 그저 당연한 일이라고 대답한 그녀였지만, 역시 감사를 표한다 해서 싫어할 사람은 없다는 걸 조금 전 그녀의 반응으로 다시 한번 확신했다.
**
[ 이것들은 어찌할까요. ]
다시 내성으로 돌아온 나와 리타.
그리고 보따리에 잘 포장된 쿠리리와 쿠로로를 1층 바닥에 내던지듯 내려놓은 리타가 내게 물어왔다.
“언제쯤 깨어날 거 같아?”
[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 깨울 수 있습니다. ]
“…위험한 건 아니지?”
[ 지극히 평화적인 방법입니다. ]
“그러면 깨워줄래?”
[ 예. ]
리타는 내동댕이친 보따리로 걸어가더니.
‘……?’
보따리를 쥐고 조금 더 구석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나를 등지고 서서 까무룩 기절한 쿠리리와 쿠로로 앞에 섰다.
뭘 하려는 걸까.
얌전히 서서 리타의 등을 바라보기를 잠깐.
“#%^#^&@?!”
“#%@^&$%!!”
보따리 안에서 기절해 있던 둘은 갑자기 알 수 없는 마대륙 언어로 소리치며 정신을 차렸다.
[ #%@#$% ]
“……?!”
“……?!”
동시에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리타의 스산하게 가라앉은 음색과 함께 놀라 소리치던 쿠리리와 쿠로로가 거짓말처럼 입을 꽉 다물었다.
[ 귀인. ]
“크흠, 어.”
리타가 둘에게 무슨 말을 했을지 대충 짐작이 갔기에 나는 어색함을 털어내기 위해 작게 기침하며 얼른 그쪽으로 다가갔다.
부들부들.
그리고 눈을 내리깔고 겁에 질린 새끼 짐승처럼 몸을 떨고 있는 둘의 모습에 슬쩍 허리를 숙여 리타의 귀에 속삭였다.
“너무 겁주진 말아줘.”
[ ……예. ]
도대체 성문 밖에서 얼마나 소란을 피웠기에 리타가 이토록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걸까.
스윽스윽.
[ ……. ]
느끼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아침에 꽤 마음에 들어한 것 같아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리타는 슬쩍 나를 올려다보다가 조금 더 내가 머리를 쓰다듬기 편하도록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걸로 조금 누그러졌으면 좋겠는데.’
나중에 감각이 잠깐 돌아오면 그때 또 잔뜩 쓰다듬어주는 걸 잊지 않도록 머리에 단단히 각인한 다음, 벌벌 떨고 있는 둘을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안녕?”
““……!!””
하염없이 바닥만 바라보던 둘은 내가 소리를 크게 내자마자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봤다.
검은 바탕에 황금빛 눈동자에 내 얼굴이 가득 담겼다.
“마, 만남!!”
“기뻐!!”
그리고 내 얼굴을 알아본 둘은 본인들이 알고 있는 공용어를 최대한 쥐어 짜내 나와의 만남을 표현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그 모습이 무척 기특하고 마음에 드는 건 사실이지만…….
‘역시 대화는 무리네.’
나는 이제 막 눈을 뜬 병아리처럼 삐약거리는 둘을 향해 조용히 하란 의미를 담아 입술에 검지를 가져댔다.
“…….”
“…….”
다행히 둘은 내 행동에 담긴 의미를 옳게 파악해주었다.
“리타. 일단 밖으로 좀 꺼내줄래?”
[ 예. ]
촤아악──!!
리타가 대답함과 동시에 둘을 감싸고 있던 보따리가 순식간에 반으로 갈라졌다.
아침에 보여줬던 사슬낫을 이용한 걸까?
어떤 방법으로 보따리를 찢은 건진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리타는 몽마이면서도 쾌락에 약했고, 몽마이면서 무력이 말도 안 되게 뛰어났다.
분명 감각을 느끼지 못할 텐데도 마치 본래 가지고 태어난 진짜 육신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리타와 몽마들.
역시 그녀들은 내가 알고 있는 몽마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존재들이란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그럼 내가 하는 말──”
꼬르륵!!
리타에게 통역을 부탁하려던 나는 바로 코앞에서 들려온 우렁찬 소리에 고개를 돌려 쿠리리와 쿠로로를 바라봤다.
“…….”
“…….”
나와 다시 만난 사실에 기뻐하며 얌전히 나를 올려다보던 둘의 푸른빛이 감도는 얼굴이 조금씩 그 색이 짙어지는 걸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식탐!! 아, 아니다…….”
“응!! 우리, 구, 굶어!! 오해, 안 돼!”
내가 침묵하자, 둘은 누가 봐도 당황한 표정으로 두 팔을 버둥거리며 몇 없는 단어로 열심히 본인들의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
‘귀엽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아마도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걸 테지.
나는 필사적인 둘의 모습에 웃음을 참으며 가게에서 포장해왔던 상자를 열어 둘에게 내밀었다.
“먹어.”
“……!!”
“……!!”
세로로 길게 찢어진 눈을 크게 뜨며 나와 상자 안에 든 파이를 번갈아 보는 쿠리리와 쿠로로.
“괜찮아. 먹어.”
“가, 감사…….”
“고맙다!!”
눈치를 살피던 둘은 내가 재차 허락하고 난 후에야 손을 뻗어 상자 안에 담긴 파이를 엄청난 기세로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진미!!”
“맛있다!!”
겨우 손짓 몇 번으로 파이를 깨끗하게 먹어 치운 둘은 입가에 부스러기를 잔뜩 묻힌 채로 해맑게 웃어 보였다.
꼬르르륵!!
“…….”
“…….”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배는 여전히 고픈 모양이었지만.
“리타. 미안하지만 먹을 것 좀 준비해줄래?”
[ 알겠습니다. ]
머리를 쓰다듬어줬던 게 효과가 있었던 걸까.
리타의 목소리는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 식당으로 모시겠습니다. ]
나에게 먼저 이야기한 후, 리타는 은근슬쩍 내 뒤로 몸을 숨긴 쿠리리와 쿠로로를 향해 마대륙의 언어로 무어라 말했다.
[ 가시죠. ]
“어. 그래.”
그리고 나는 내 옷깃을 붙잡은 둘을 데리고 리타를 따라 식당으로 장소를 옮겼다.
[ 잠시만 기다려 주시길. ]
수십 쌍의 몽마들의 시선에 완전히 기가 죽어버린 쿠리리와 쿠로로를 겨우 진정시켜 자리에 앉히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몽마가 익숙한 색상과 향을 가진 고깃덩이가 올려진 그릇을 식탁 위에 내려두고 물러났다.
꿀걱──!!
위축되어 떨던 것도 잠깐.
고깃덩이가 나타나자마자 둘은 군침을 꿀떡 삼키며 나와 고기를 빠르게 번갈아 봤다.
마치 간식을 앞에 둔 강아지가 주인의 허락을 기다리는 것처럼.
“먹어.”
“머, 먹어!!”
“감사!!”
내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둘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접시 위의 고기를 포크 대신 손으로 쥐고 무작정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힘차게 턱을 움직여 입 안에 들어간 고기를 짓씹었고.
“우웨에엑……!!”
“퉤엣!! 퉷!! 케흑, 켁!!”
약속이라도 한 듯 고기를 뱉어내며 구역질하는 둘.
‘…역시 마인들도 입맛은 비슷하구나.’
나는 그런 둘의 모습에 크나큰 안도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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