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좌가 분명 욕탕에서는 조심해 달라 주의를 줬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야.”
우리의 맞은편으로 자리를 옮긴 셋째 누님이 아저씨처럼 욕탕의 턱에 편히 몸을 기대며 그리 말했다.
“아무것도 안 흘렸는데 뭐가 문제야? 그리고 좀 흘리면 어때. 어차피 마법 한 방이면 다 해결되는 거 가지고.”
그리고 정신을 차린 시란이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잘못은 막둥이 네가 저질렀는데 왜 언니에게 화를 내는 걸까?”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다.”
“흐즈믈르그~”
첫 등장 때부터 무게감 없이 등장하시긴 했지만, 이렇게 시란을 놀릴 때면 더더욱 가벼워 보이는 셋째 누님이시다.
스으윽.
나는 섬뜩하게 이를 바득바득 가는 시란을 달래며 눈알을 옆으로 굴렸다.
탕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젖은 수건으로 몸을 살살 문질러 닦고 있는 레이벨 누님.
‘저게 의미가 있나 모르겠네.’
수건을 물에 흠뻑 적신 것까지는 좋았지만, 레이벨 누님이 힘을 줘 수건을 꼭 쥐어짰더니, 젖은 수건은 거짓말처럼 머금었던 물기의 대부분을 토해냈다.
비유하자면…… 그래.
가습기 앞에 살짝 널어뒀던 수건 정도의 촉촉함? 아니, 꿉꿉함이라고 해야 할까. 여튼, 그런 걸로 지금 몸을 닦는 중이셨다.
애초에 물을 싫어하시면서 욕탕에는 왜 들어오신 건지.
“야!! 놔 봐!!”
“아하하…….”
결국 터져버린 시란이 내 허벅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시작된 셋째 누님과 시란의 물속 추격전.
촤아아악──!!
순식간에 생겨난 파도가 얼굴을 거칠게 때리고 사라졌다.
‘물, 귀한 거 아니었나.’
나는 성난 바다처럼 이래저래 물결치기 시작한 탕 밖으로 몸을 피신했다.
힐끗.
그리고 조금 전 몰아친 파도를 피해 조금 더 거리를 벌린 레이벨 누님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새하얀 꼬리가 혹시나 물에 젖을까, 허리에 두르고 복슬복슬한 귀를 납작하게 접은 모습이란…….
게다가 협곡 도시에서 한 번 보기는 했지만, 그때는 상황이 상황이라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던 레이벨 누님의 탐스러운 가슴은 모서리에 걸친 머그컵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고양이처럼 내 시선을 끌어당기는 엄청난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미인이시구나.’
군살 따윈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미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온 몸매.
또 수증기를 머금어 촉촉해진 피부는 어찌나 뽀얗고 빛이 나는지.
‘이거 다가가도 되는 거 맞나 모르겠네.’
일단 물보라를 피해 나오긴 했는데 생각해보니 지금 내 아랫도리는 아직 만족하지 못해 여전히 화가 잔뜩 나 있는 상태였다.
“……?”
하지만 진즉에 도망친 비젤린님의 뒤를 따라 도망치자고 생각하기 무섭게 레이벨 누님의 접혀 있던 귀가 쫑긋 섰고.
“동생.”
귀엽게 찡그린 얼굴로 몸을 슥슥 닦고 계시던 누님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시선이 너무 그쪽으로 쏠려 계셔서 조금 곤란한 건 덤이다.
“할 말이라도 있나.”
“대단한 건 아니고, 오늘 어디 다녀오셨나 해서요.”
노골적이긴 하지만, 저번보다 자지를 바라보는 누님의 시선이 호의적이지 않아 일단은 걸음을 멈췄다.
“그냥, 가볍게 수도 밖을 조금 돌아다녔다.”
“수도 밖을요?”
“……음.”
내 자지를 바라보던 누님이 슬그머니 고개를 원래대로 되돌리셨다.
여전히 거짓말을 못 하시는 건 똑같았다.
‘분명 뭔가 있단 말이지…….’
문제는 그걸 알아낼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일단 이쪽에서 직접적인 피해를 본 건 없으니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누님의 입을 열 방법을 찾아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의미 없는 질문은 그만두고 순수하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로 했다.
“누나는 왜 그렇게 물을 싫어해?”
“…알면 다친다.”
쫑긋 섰던 귀가 다시 납작하게 접혔다.
‘그냥 싫어하는 건 아니라는 거군.’
처음에는 그냥 종족의 성향상 물을 싫어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방금 누님의 대답을 들어보니 과거에 물을 싫어하게 될 만한 무슨 사건을 겪거나 목격하신 모양이다.
‘이거 참…… 무슨 말을 못 꺼내겠네.’
하나 같이 다 민감하고 비밀스러운 주제뿐이라니.
여전히 탕을 뽈뽈 돌아다니며 술래잡기인 시란과 셋째 누님.
그리고 싫은 표정을 지은 채로 수건으로 몸을 닦는 레이벨 누님.
이대로 그냥 나갈까도 생각했지만…….
“그런데 젖은 수건으로 몸은 왜 닦는 거야? 마법 쓰면 될 텐데.”
레이벨 누님의 벗은 몸을 볼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아 조금 더 붙어 있을 구실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레이벨 누님의 접혔던 귀가 다시 쫑긋 올라왔다.
“언제까지 싫어할 순 없으니까.”
“극…… 아니, 적응하려고 그런다는 거지?”
하여튼 이놈의 주둥이.
자칫 극복이라는 말을 내뱉을 뻔했지만, 다행히 잘 삼키고 수습할 수 있었다.
“뭐, 그렇지.”
“내가 좀 도와줄까?”
“…동생이?”
“엉. 내가.”
무심코 뒤로 다가갔다가 걷어차이기라도 하면 그날로 이승에서 하직하는 날이기에 나는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빙 둘러 레이벨 누님 옆에 섰다.
“오늘따라 뭔가 이상하구나.”
“…그래?”
누구 때문에 조심하고 있는 건지 모르는 누님의 대답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옆으로 좀 다가가도 될까?”
“이상한 걸 묻는군. 동생이 누나 곁으로 오는데 허락을 맡을 이유는 없지.”
평범한 남매는 일단 이렇게 알몸의 교제를 나누지 않습니다만.
나는 속으로 말을 삼키며 슬금슬금 레이벨 누님의 곁으로 다가갔다.
“동생은…… 뭐든 다 크군.”
“뭐. 내가 좀 크긴 하지.”
꾸욱꾸욱.
내가 옆에 앉자, 레이벨 누님은 길고 하얀 손가락으로 내 자랑스러운 팔뚝과 가슴을 콕콕 찔러봤다. 우리 사랑스러운 아내들은 아직도 침대에 함께 누우면 자주 내 근육을 만져대며 냄새를 맡기도 했다.
“그래서.”
우람한 내 근육의 탐미를 벌써 끝낸 걸까.
레이벨 누님이 나를 바라보며 긴 속눈썹을 깜빡였다.
“어떻게 도와준다는 거지.”
“방법이야 많지만, 그 전에 하나 확인할 게 있거든.”
자꾸만 레이벨 누님의 선홍색 돌기 쪽으로 시선이 향하려 하기에 나는 억지로 고개를 바짝 들어 뿌연 수증기가 가득 차 있는 정면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누나. 물이나 술은 평범하게 잘 마시잖아. 그치?”
“그거야…… 그렇지.”
“마시는 거라서 괜찮은 거야? 아니면 피부에 닿는 게 싫은 거야?”
“으음.”
레이벨 누님이 탐스러운 젖가슴 아래로 팔짱을 끼며 고민을 시작했다.
‘…저렇게 큰데도 안 쳐지다니.’
몽마의 여왕인 셋째 누님의 가슴도 대단했지만, 레이벨 누님의 가슴은 뭔가 뭔가였다.
어떻게 내 머리통보다 큰 젖가슴이 중력의 힘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물방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건지.
“…동생.”
“어, 어?”
나도 모르게 누님의 가슴과 절로 군침이 넘어가는 분홍색 유두에 정신이 홀렸던 나는 얼른 고개를 들었다.
“보는 거야 상관은 없다만…… 시선이 조금 부담스럽구나.”
“크흠… 미안.”
며칠 전만 하더라도 내 자지에 흥미를 가지고 몰래 숨어서 지켜봤던 사람에게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지만, 잘못한 건 사실이었기에 순순히 사과했다.
“일단 피부에 닿는 게 문제인 거 같다.”
“그러면 물이 닿아도 되는 건 입 안쪽뿐인 거네?”
“…따지면 그렇게 되는군.”
트라우마를 극복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당장 옆에 앉아 있는 누님을 보라.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세계관의 절대자가 물, 액체 종류의 것이 피부에 닿으면 기겁하고 또 두려워한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몸에 난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치유되지만, 마음에 남은 상처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덧난 그대로 남는다고.
“일단은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게 먼저일 거 같은데.”
내가 그렇게 말하자 누님은 아주 당당하게 손에 쥔 수건을 나에게 내밀었다.
“이게 지금의 내 한계다.”
“……이게?”
“음.”
파닥이는 귀와 함께 당당히 고개를 끄덕이는 우리 레이벨 누님.
나는 그런 누님의 얼굴과 앞에 내밀어진 수건을 번갈아보다가 물기 하나 없는 수건을 넘겨받았다.
‘이게 말이 되나?’
분명 물에 푹 담갔다 뺀 수건일 텐데, 고작 손으로 쥐어짰다 해서 마른 수건이 될 수가 있다고?
탕에서 봤을 땐 그래도 가습기 앞에 놓아둔 정도는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손안에 들어온 수건은 농담이 아니라 수분이라고는 느껴볼 수 없을 만큼 바짝 쥐어 짜인 상태였다.
“누나.”
“듣고 있다. 뭘 하면 되지?”
나를 놀리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이쪽을 바라보는 레이벨 누님의 금빛 눈동자는 무척이나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 몇 개만 더 물어볼게.”
“얼마든지.”
넘겨받은 수건으로 발딱 선 아랫도리를 가리며 물었다.
“비가 내릴 땐 어떻게 해?”
“구름을 없애서 날씨를 맑게 만든다만.”
‘……?’
방금 뭘 없앤다는 말을 들은 거 같은데.
“구름을.”
“그게 비를 내리는 원흉이니까.”
“그렇지. 비가 원흉이긴 해.”
나는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레이벨 누님의 한해서는 상식을 떼어 놓도록 하자.
“질문은 끝이고, 일단은……?”
이제 어떤 식으로 누님을 물과 친하게 만들지 설명하려는데 누님의 옆으로 거대한 물보라가 날아드는 게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내가 저걸 막아준다면’
생각은 짧았고.
누님의 행동은 그런 내 짧은 생각보다도 더 빨랐다.
촤아아악──!!
발딱 선 자지를 가리고 있던 수건이 잔상을 그리며 내 몸을 떠났고, 말도 안 되는 강풍과 함께 우리를 덮쳐오던 물보라는 수건이 만들어낸 강풍에 휩쓸려 사라졌다.
“녀석들……. 물 튀지 않게 놀아야지.”
동생들을 사랑하는 언니의 상냥한 목소리.
“그래서…… 동생?”
뒤통수에 레이벨 누님의 당황한 시선이 느껴졌다.
“왜, 왜 그러는 거냐?”
그리고 당황하는 목소리도.
“…잠깐,”
사포가 긁고 지나가면 이런 느낌일까.
“……잠깐만, 혼자 있게 해줘.”
나는 정말 오랜만에 눈물을 찔끔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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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마른 수건은...위험합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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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G크리티카//감사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