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똑. 똑. 똑.
막 나갈 준비를 끝낸 나는 침실의 문을 두드려오는 노크 소리에 입을 열었다.
“들어와.”
[ 편히 주무셨는지요. ]
어제보다 한층 더 정중해진 태도로 문을 열고 들어온 리타가 내게 고개 숙여왔다.
“잘 잤지. 리타 너는?”
[ 귀인 덕에 근 이틀은 편안한 숙면을 취하고 있습니다. ]
참고로 몽마들의 편안한 숙면이라고 해서 우리와 크게 다를 건 없다. 그녀들 역시 꿈을 꾸지 않고 깨어났을 때 정신이 맑으면 그게 곧 편안한 숙면이었다.
“다행이네. 앞으로는 내가 없더라도 편히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가능하다면 귀인을 옆에서 모시고 싶습니다. ]
“하하, 나도 리타 같은 미인이 옆에서 보조해주면 좋지.”
[ ……. ]
웃으며 대답한 나와 다르게 리타는 잠깐 눈을 크게 뜨더니.
[ ……감사, 합니다. ]
살짝 말을 더듬으며 한 박자 늦게 고개 숙였다.
‘거짓말은 아니니까.’
지금은 기에나와 베네오가 자처해서 내 시중을 들고 있지만, 언제까지고 둘의 시중을 받을 수는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그야 둘 다 언젠가는 케르낙스처럼 아이의 엄마가 될 거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둘의 시중을 받는 건 내가 사양하고 싶었으니.
“내려가자.”
[ 예. ]
시란과 누님들은 진즉에 떠났기에 나는 텅 빈 침실의 문을 닫으며 리타와 함께 익숙해진 계단을 밟고 아래로 향했다.
“근데 여왕님은 좀 괜찮으시데?”
[ 내일 아침까지는 정양에 집중하기 위해 중요한 안건이 아니면 연락을 하지 말란 지시가 있으셨습니다. ]
“그렇구나.”
리타의 대답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어젯밤의 악몽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입술이 바짝 마르는 기분이다.
징표로 존재감을 완벽하게 지우고서 우리를 훔쳐보러 왔던 레이벨 누님과 그런 레이벨 누님의 존재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당사자의 바로 뒤에서 뒷담 아닌 뒷담을 해버린 꼴이 된 셋째 누님.
사실 거기까진 괜찮았다.
레이벨 누님이 당장 끔찍한 일을 벌일 사람처럼 서늘한 눈초리로 셋째 누님을 쏘아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쏘아보기만 할 뿐. 그래도 인내하는데 성공했다.
진짜는 그 바로 다음에 이어진 말이었다.
-손윗누이가 그대 앞에서 엄청 무게를 잡고 있지만, 어릴 적에는…….
딱 거기까지였다.
레이벨 누님의 꼬리가 셋째 누님의 목을 졸랐고, 셋째 누님이 낼 수 있는 소리는 그저 켁켁 거리는 것 뿐이었다.
그 이후의 일은 나도 모른다.
나를 의식한 레이벨 누님이 셋째 누님의 목을 조른 채로 모습을 순식간에 감춰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
하루만 정양을 한다는 걸 보니 크게 다치진 않은 거 같아 마음이 놓였다.
엄밀히 따지면 셋째 누님의 잘못이 맞았지만, 그런 상황이 되도록 만든 거에 어느 정도 나 역시 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없었으면 셋째 누님이 거기서 괜히 레이벨 누님을 이길 수 있다느니 하는 소리는 안 했을 테니 말이다. 레이벨 누님이 몰래 엿보러 오지도 않았을 거고.
‘뭐, 크게 안 다치셨으면 됐지.’
지분이 있을 뿐이지, 셋째 누님이 잘 못 한 건 사실이니까.
그리고 레이벨 누님의 성격이면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동생들에게 진심을 담아 손찌검은 못 하지 않을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거고.’
그야 맞을 만한 짓을 했으면 맞는 게 순리 아니겠는가.
아무튼, 어젯밤의 소란은 전적으로 셋째 누님이 잘못한 것으로 정리했다.
**
“어으…… 제발 오늘 성과가 있어야 할 텐데.”
코를 막고 먹어도 더럽게 맛이 없는 헬카우의 고깃덩이로 오늘도 배를 채운 나는 리타가 가져다 준 물로 입을 헹구며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러면 한 명씩 불러줄래?”
[ 예. ]
리타가 눈짓하자 벽에 서 있던 몽마 중 한 명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몇 명이야?”
[ 20명입니다. ]
그녀는 내게 자루를 내밀며 그리 대답했다.
참고로 자루 또한 내가 미리 가져오라 리타를 통해 전해둔 물건이다.
그야 옮기는 도중에 손바닥이나 피부에 닿으면 대참사가 벌어질 테니 말이다.
“다음 차례는 미리 준비하고 있어.”
나는 미리 도안에다가 끄적여 둔 손동작을 따라한 다음, 자루 안에 한 손을 집어넣고 ‘섬세한 손길’을 한 번 스무 짝을 소환해 냈다.
소환 개수를 지정하는 건 일반 사원 시절부터 있던 기능이었기에 이 점은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만약 그러지 못했으면 아르델과 냐호의 주문에 맞추기 위해 몇천 번이나 시스템창을 들락날락거려야 했을 테니.
“사용법은 다들 숙지했지?”
[ 예. 귀인께서 말씀해주신 주의점도 모두 숙지시켰습니다. ]
“다행이다. 혹시라도 사용하다가 몸이 이상하다거나 물건에 문제가 있는 거 같으면 눈치 보지 말고 리타를 통해서 알려주고.”
[ 감사드립니다. ]
이름 모를 몽마는 고개 숙여 인사한 다음 자루를 가지고 식당을 떠났다.
“다음.”
그렇게 나는 한동안 식당에서 몽마들에게 성물을 나눠주는 시간을 가졌다.
**
“오셨습니까!!”
4구역의 가게에 들어서자 내 얼굴을 알아본 여주인이 헐레벌떡 카운터에서 뛰쳐나왔다.
“어떻게 됐습니까?”
“그, 성과로 말씀드리자면 실패입니다만…… 그래도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어쩐지 눈치를 보더라니.
하지만 헬카우의 고기가 지독할 정도로 맛이 없었기에 나 또한 겨우 한 번으로 성과를 볼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니, 기대를 하긴 했지만 말 그대로 그냥 기대했을 뿐.
“일단 맛을 좀 봤으면 하는데.”
“지금 당장 대령하겠습니다!!”
마력을 몸에 품고 있어서 그런가.
그녀의 움직임은 몰링타에서 언제나 농땡이를 부릴 생각으로 가득했던 케르낙스의 부관인 리나씨보다 날쌘 것처럼 보였다.
“여, 여기.”
딱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잘 구워진 고기가 올려진 접시를 포크와 함께 내미는 여주인.
나는 접시 위에 준비된 포크로 불향이 그윽하게 올라오는 고기를 포크로 찍었다.
‘…진짜 이게 왜 맛이 없는 거냐고.’
고기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부드럽게 파고들어가는 포크의 감촉과 포크가 파고 들어가자 흘러나오는 육즙까지.
거기까지만 봤을 때는 눈앞의 마인이 나를 놀리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겉이 멀쩡하다고 해서 맛있지 않다는 건 이미 사흘간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학습한 상태였기에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입 안으로 고기를 가져갔다.
‘…냄새는, 합격.’
그래. 냄새만 합격이다.
처음 맡았던 불향이 그윽하게 올라왔지만, 조금 전 흘러나온 육즙이 혀에 닿는 순간 향이고 뭐고 그냥 다 잊혀졌다.
“마실 거 좀…….”
“여기.”
미리 가져왔던 걸까.
나는 유리잔에 담긴 보랏빛 액체를 냅다 입에 털어 넣었다.
“크으~!!”
알싸한 알코올의 향과 그윽한 포도향이 순식간에 입 안을 헹구고 이어서 목구멍까지 깔끔하게 적시고 내려갔다.
“와인입니까?”
“링클이라는 과일로 담근 술입니다.”
링클이라면 분명 처음 들렸던 디저트 가게에서 샀던 파이의 이름이었다.
“헬카우의 고기는 나중에 따로 보내드릴 테니, 방금 마신 것 좀 얻을 수 있겠습니까?”
“다 드리겠습니다.”
“잠깐!!”
카운터로 뛰어가려던 그녀를 말로 붙잡아 세웠다.
“나중에 고기 가져다주는 사람을 통해서 보내주세요.”
“아, 예. 그러겠습니다.”
“그러면 일주일 후에 사람을 보낼 테니까 그때 성과를 보고해 주세요.”
나는 묵묵히 뒤에 서 있던 리타와 함께 가게를 나왔다.
“리타.”
[ 예. 귀인. ]
“요리 좀 한다고 소문 난 마인들한테 헬카우 고기 좀 나눠줘.”
[ 최대한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그렇다고 위협하지는 말고. 최대한 평화롭게.”
[ ……예. ]
살짝 늦어진 대답에 나는 역시 말을 덧붙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 안녕!!”
“우리, 자, 잠 많아…… 미안….”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쿠리리, 쿠로로가 뛰어왔다.
그리고 보는 것처럼 앙칼졌던 쿠리리는 펄쩍 뛰며 마냥 기뻐했고, 요염하게 유혹했던 쿠로로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나와 내 뒤에 있는 리타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을 보였다.
“일단 들어가서 조금 앉을까?”
“앉아!!”
“이, 이쪽…….”
리타의 통역을 거치지 않았음에도 대답하는 걸 보면 역시 간단한 단어 정도는 이해하고 있는 듯 보였다.
‘……?’
어제 리타와 함께 앉았던 소파에 앉는 것까진 좋았다.
그런데 나를 안내한 둘은 소파가 아니라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는 게 아닌가.
“소파를 싫어하나?”
[ 귀인을 저들보다 높은 존재로 인정해서 그런 겁니다. ]
“그런 거야?”
[ 예. 그러니 소파에 앉으시라는 말씀은 하지 마시길. 버릇에 좋지 않습니다. ]
리타의 귓속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밥은?”
나는 두 손을 이용해 밥을 먹었냐는 듯 시늉을 보이며 물었다.
“응! 배불러!! 여기 먹을 거 가득!!”
“은혜. 가, 감사, 하다…….”
다행히 내가 오기 전에 배불리 식사를 한 모양이다.
“그럼…….”
눈치 볼 거 없이 본론으로 넘어가기 위해 리타에게 통역을 부탁하려던 바로 그때였다.
[ 귀인……. ]
“응?”
뒤에 서 있던 리타가 다시 내 귀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댔다.
[ 장소를 전각으로 옮겨도 괜찮을지요. ]
“상관은 없는데. 무슨 일 있어?”
[ 그게……. ]
잠깐 고민하던 리타는 한층 더 목소리를 낮춰 내게 속삭였다.
[ 내성의 아이들이 모두 행동 불능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워터파크
===========
카인G크리티카//감사함둥!!
NetFighTer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