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732화 (732/771)

새근─ 새근─

한동안 허벅지 위에 누워 꼼지락거리던 쿠리리, 쿠로로는 어느새 고른 숨을 내쉬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덕분에 나는 온전히 손가락에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다.

“이상하다.”

그리고 집중해서 갱신 버튼을 누르던 나는 조금 전부터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품목이 갱신되지 않는 상황에 강한 의문을 느껴야만 했다.

400회.

상황에 따라서는 별것 아닌 숫자로 치부될 수 있지만,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그래.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심지어 갱신되는 5개의 품목까지 합하면 2,000개의 품목이다.

“허, 허허.”

너무 오래 켜둬서 잠깐 렉이 걸린 걸지도 모른다.

나는 침착하게 모든 시스템 창을 닫은 다음, 충분한 시간을 둔 후에 다시 켰다. 그리고 이상하게 뻑뻑한 눈을 충분히 손바닥으로 마사지하고 나서 기여도 교환소의 창을 열었다.

【기여도 교환소】 - ( 갱신 )

◎신뢰의 정조대 - (1/1)

설명 : 먼 여정을 떠나는 연인을 위해 스스로에게 채웠던 정조대.

효과 : 정조대를 찬 시간에 비례해서 성적 욕구가 크게 감소한다.

필요 기여도 : 8,000

◎빛의 조각++ - (1/1)

설명 : 빛 조각이다.

특성 : 신성을 품지 못한 존재들로부터 두려움, 경외, 꺼림직. 셋 중 하나의 감정을 품게 만든다.

※더욱 커진 덩어리로 ‘빛의 조각’보다 호의적인 감정을 품게 할 확률이 매우 높다.

필요 기여도 : 1,000

‘아아아아아악──!!’

차마 곤히 자고 있는 둘을 깨우고 싶지 않았던 나는 혼자 입에 주먹을 삼키고 속으로 끔찍한 절규를 내질렀다.

‘이딴 좆망 시스템 같으니라고!!’

자그마치 400회다.

정말 악랄하게도 품목이 갱신될 때마다 늘 새로운 품목이 등장하진 않았다. 물론, 그전에 나왔던 상품이 연달아 등장하진 않았으나, 최소 3번 정도 갱신을 하면 그 안에 이전에 보았던 품목 중 적게는 1개에서 많게는 4개까지 겹쳐 나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최소 400개는 봤다는 소리잖아? 그런데 그중에 통역 관련 품목이 하나도 안 나왔다고?’

주ㅈ…… 아니, 조작이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품목들을 보여준다는 건 의심하지 않는다. 실제로 겨울이와 앞으로 태어날 내 아이들을 위한 육아 용품도 몇 번인가 나왔으니까.

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 통역 관련 품목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조작이 분명하다.

선량하고 착실한 파견 사원들의 등골을 모두 빨아먹으려는 컴퍼니의 농간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더러운 컴퍼니.

빌어먹을 컴퍼니.

내가 잠깐이라도 컴퍼니를 좋게 평가했다는 사실이 치욕스럽다.

·

·

·

“으응~”

“헤, 헤헤.”

“…….”

얼마나 속으로 구시렁거렸을까.

아무리 욕하고 날뛰어봤자 내 기여도가 모두 소멸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달은 건 바로 조금 전의 일이다.

그렇게 0이 되어버린 기여도와 통역 관련 품목을 결국 띄우지 못한 사실에 다시 한번 정신적 타격을 받은 나는 어쩔 수 없이 지금 내 심정도 모른 채 곤히 잠든 쿠리리와 쿠로로의 부드럽고 기분 좋게 말랑한 뺨을 어루만지는 걸로 회복하는 중이다.

‘역시 여자들 피부는 부드럽네.’

내 피부도 그리 거친 건 아니지만, 이성의 것이라 그럴까.

와닿는 느낌이 뭔가 달랐다.

“하아…….”

뺨을 어루만질 때마다 행복하게 웃으며 조금 더 내 품으로 꼬물꼬물 파고드는 둘의 모습에 적당히 마음을 치유 받은 나는 깊은 숨을 토해내며 다시 시스템 창을 켰다.

그리고 곧장 단채방에 접속했다.

《서민수(차장)님께서 입장하셨습니다.》

굵고커다란뿔 : 얼마 필요함?

해골부터키우는하렘 : 우리끼리 합의 봤는데 5천까지는 지원해주도록 하지.

똥구멍헌터 : 빨리. 나 급함.

순수하게 나를 돕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돕는 다는 것 자체는 변함 없었기에 나는 더더욱 선배님들에게 지금 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고민됐다.

‘……내가 기여도 빨아 먹으려고 구라친다고 의심하면 어쩌지?’

솔직히 나 같아도 충분히 의심될 만한 상황이었다.

40회도 아니고 400회를 돌렸는데 원하는 물건을 하나 못 뽑는 게 말이나 되냔 말이다.

똥구멍헌터 : 뭐임? 선 채로 죽었냐?

서민수(차장) : 선배님들. 진짜 지구에 계신 부모님들께 맹세하고 지금부터 진실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해골부터키우는하렘 : 여기 불속성 효자 하나 추가요.

굵고커다란뿔 : 근데 물보단 불이 낫긴 해 ㅋㅋ

큰 결심을 하고 이야기하려는 나와 다르게 우리 선배님들은 분위기를 계속해서 가볍게 이끌어 가셨다.

서민수(차장) ; 아니, 진짜 진지한 이야기거든요?

똥구멍헌터 : 진지해봤자 뭐 얼마나 진지하다고?

굵고커다란뿔 : ㄹㅇㅋㅋ 설마 그렇게나 돌렸는데 원하는 걸 못 띄웠단 개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고야

해골부터키우는하렘 : ㅋㅋㅋㅋ 좀 웃겼다.

이어진 선배님들의 채팅에 나는 얼굴을 크게 쓸어내리며 다시 자판을 두들겼다.

서민수(차장) : 못 뽑았습니다.

서민수(차장) : 농담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못 뽑았습니다.

서민수(차장) : 선배님들?

언제나 시끄럽게 채팅으로 떠들던 선배님들의 채팅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진짜, 내가 손이, 저, 저 인간들이 할 말을 잃게 만들 정도의 똥손이라고? 내가?’

그리고 자연스럽게 정신에 가해지는 묵직한 충격.

이 내가 똥손이라니.

생각해보면 초딩때 짝궁을 정할 때도 맨 뒷자리. 그것도 한자 앉는 끝줄을 골랐고, 나머지 학창 시절이나 흔한 즉석 복권조차 뭐하나 당첨된 기억이 없다.

‘뭐…… 씹질은 잘하니까 괜찮나?’

지금 당장 닥친 내 상황과 과거의 좋지 못했던 뽑기 운에 무척이나 우울해졌던 기분은 놀랍게도 금방 회복되었다.

뽑기 운이 조금 나쁜 거 가지고 비관하기에는 파견 후에 내가 얻은 행복의 가치가 너무나 거대했기 때문이다.

기승전 섹스 같지만, 어쨌든 기운을 빨리 차렸다는 사실이 중요하니 사소한 건 넘어가기로 하자.

그래서 정신을 치라고 다시 선배님들께 죄송하단 채팅을 치려고 고개를 들었다.

똥구멍헌터 : ㅋㅋㅋㅋㅋㅋㅋ 400뽑 무효타 실화?

해골부터키우는하렘 : 내가 지금 발가락으로 돌려도 30뽑 컷 할 듯.

굵고커다란뿔 : 사실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다는 거지~

언제 침묵했냐는 듯이 쉬지 않고 나를 가지고 조리돌림하기 시작한 우리 존경스러운 선배님들.

‘이렇게까지 해주시지 않으셔도 되는데.’

채팅창이 올라갈수록 선배님들을 향한 미안한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다 못해 비쩍 마른 사막처럼 말라갔다.

“앓느니 죽지. 죽어.”

어차피 물건도 얻지 못하게 된 거, 이대로 당분간 시스템을 멀리하고 둘의 언어 교육에나 공들이자고 마음먹었다.

서민수(차장) : 한 반년은 접속 안 합니다 ㅅㄱ

똥구멍헌터 : 에헤에!! 잠깐!! 우리 민수 왜 이리 성격이 급할까?

굵고커다란뿔 : 기운 나라고 살짝 장난친 거야. 진정해 친구.

해골부터키우는하렘 : 그래.

기운 두 번 나게 해줬다가는 기운이 넘쳐서 뒷목 잡고 쓰러지겠다.

서민수(차장) : 아무튼, 이제 끌 거니까 하실 말씀 있으시면 빨리들 말씀하시죠.

똥구멍헌터 : 성격 참 급하긴. 혹시 물욕 센서라도 들어봤나?

서민수(차장) : 처음 들어보는 말입니다.

굵고커다란뿔 : 일단 듣기 전에 심호흡부터 충분히 해둬.

해골부터키우는하렘 : 신경 안정제 같은 거 있다면 먹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네.

도대체 물욕 센서가 뭐길래 저런 말들을 하는 걸까.

하지만 이미 지랄이란 지랄은 조금 전에 혼자 다 했기에 나는 다시 자판을 두드렸다.

서민수(차장) : 들을 준비 됐습니다.

똥구멍헌터 : 자네가 됐다고 했으니 설명하겠네. 물욕 센서란…….

그리고 이어지는 선배님의 설명.

똥구멍헌터 : 그래서 자네가 통역 관련 품목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거지.

선배님의 설명을 모두 읽은 나는 그대로 자판에서 손을 떼고 뒤로 벌러덩 누워버렸다.

물욕 센서.

선배님은 엄청 장황하게 풀어 설명했지만, 요약하면 그거다.

시스템이 내가 가장 강력하게 염원하는 욕망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그러니까 내가 가장 바라는 것과 관련된 품목을 시스템이 고의로 제외한 거니 너무 실망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이유는 가장 처음에 내가 떠들었던 말 중 하나가 이유였다.

나오지 않는 품목을 쫓게 만들어 사원들로 하여 계속해서 기여도를 뽑아내기 위한 아주아주 악랄한 시스템.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듯, 갱신 한 번에 겨우 10 기여도가 소모된다. 나처럼 기부 자체를 하지 않는 놈이라면 그 10조차 아까워 하겠지만, 선배님들처럼 기여도가 넘치시는 분들은 생각 없이 갱신을 연타하셔서 30,000 기여도까지 잃어봤다고 하시더라.

‘무섭다. 무서워.’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긴 했지만, 생각처럼 크게 충격을 받을 일은 또 아니었기에 금방 털어내고 몸을 일으켜 자판을 붙잡았다.

서민수(차장)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똥구멍헌터 : 야야!! 왜 이리 급하냐? 설마 우리가 그냥 놀리자고 이걸 말 안 해줬겠냐?

굵고커다란뿔 : 통역 관련 물품 우리가 가지고 있으니까 마음 풀어.

통역 관련 물품을 가지고 있다고?

서민수(차장) : 진짭니까?

굵고커다란뿔 : 자존심이 있지. 이런 거로 구라 안 쳐. 근데 구석에 박아둬서 좀 찾아봐야 하거든. 잠깐 기다려 봐.

서민수(차장) : 아, 물론이죠. 돌아오실 때까지 대기하겠슴다.

뿔 선배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벌써 내게 주실 물건을 찾기 위해 창고릴 뒤지러 가신 모양이다.

똥구멍헌터 : 민수야.

서민수(차장) : 예?

원하던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어서 그럴까.

마음이 금방 싱글벙글 들떴다.

똥구멍헌터 : 사과의 의미로 기여도로 바꿔 먹을 만한 물건 하나 줄 테니까 그걸로 갱신이나 하면서 뭐뭐 있는지 구경이나 좀 해 봐라.

서민수(차장) : 기여도 아깝게 갱신은 왜 합니까?

똥구멍헌터 : 가끔 특가 상품 같은 거도 뜨거든. 아무튼 알겠냐?

서민수(차장) : 주신다면 그러죠.

【똥구멍헌터(부장)님께서 서민수(차장)에게 교류를 신청하였습니다.】

【 똥구멍헌터(부장) 】 ( 잉그로프 · 성마검 ) 《=====》 ( - ) 【서민수(차장)】

※서민수(차장)이 아무것도 제안하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교류 진행을 원하실 경우 가치 점수를 1,900,000만큼 지불하셔야 합니다.

【 똥구멍헌터(부장)님께서 1,900,000점을 지불하고 교환을 승낙하셨습니다.】

【교환이 완료되었습니다.】

‘미친……?’

잉그로프? 성마검?

도대체 나한테 뭘 준거지?

똥구멍헌터 : 이젠 필요 없는 거니까 부담가지지 말고 그냥 바꿔 먹어라.

서민수(차장) : 선배님...

똥구멍헌터 : 징그러우니까 시답잖은 감상에 젖지 마라.

서민수(차장) : 예. 그럼 지금 바꿔보고 오겠습니다.

나는 곧장 보관함에 들어온 성마검을 재료 보관소로 이동시킨 후, 내 재산을 기여도로 바꿔주는 ★기부★를 눌렀다.

아래로 쭉 나열되는 지금 내가 가진 재산 목록들.

그 중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성마검을 체크하고 기부를 눌렀다.

【잉그로프 · 성마검을 기부하시겠습니까?】

역시나지만 기부할 경우 몇의 기여도를 주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따로 사용처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Yes’를 눌렀다.

【사원님의 자발적인 기부에 감사드리며, 기부해주신 물건의 가치에 맞춰 22,222의 기여도를 지급해 드립니다.】

‘미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감탄하고 구멍 선배님을 찬양하는 게 고작이었다.

‘갱신 눌러보라고 하셨지.’

이런 귀한 걸 선뜻 주셨기에 나는 갱신에 들어가는 10이라는 기여도 조차 아까웠지만, 위대한 구멍 선배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싶지 않았기에 다시 기여도 교환소를 열었다.

【기여도 교환소】 - ( 갱신 )

◎신뢰의 정조대 - (1/1)

설명 : 먼 여정을 떠나는 연인을 위해 스스로에게 채웠던 정조대.

효과 : 정조대를 찬 시간에 비례해서 성적 욕구가 크게 감소한다.

필요 기여도 : 8,000

◎빛의 조각++ - (1/1)

설명 : 빛 조각이다.

특성 : 신성을 품지 못한 존재들로부터 두려움, 경외, 꺼림직. 셋 중 하나의 감정을 품게 만든다.

※더욱 커진 덩어리로 ‘빛의 조각’보다 호의적인 감정을 품게 할 확률이 매우 높다.

필요 기여도 : 1,000

‘시벌, 빛의 조각 저건 뭔데 계속 나오냐.’

심지어 등장할 때마다 등급이 계속 올라갔다.

물론, 그런다고 내가 사줄거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지.

‘통역 물품 띄우기만 해 봐라.’

그땐 진짜 두 번 다신 여길 들어오지 않으리라.

나는 바득바득 이를 갈며,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갱신에 손가락을 가져댔다.

‘구멍선배님께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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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물욕 센서는 실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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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G크리티카//오늘도 칸샤!!

NetFighTer//지갑, 통장은...정답을 알고 있는 겁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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