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으로 정보가 흘러들어온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찝찝하고 오묘했다.
심지어 이마가 절로 찌푸려질 두통까지 동반하니 불쾌감이 배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끄으응…….”
분명 참지 못할 정도의 두통은 아닌데, 그거와는 별개로 자꾸만 끙끙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나저나 신기하긴 신기하네.’
아카이브가 작동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파편화된 정보들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고, 그제야 나는 카테고리가 클수록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거 완전 투렌트잖아.’
보통 여러 개의 자료를 다운받을 땐, 가장 처음 선택한 파일부터 순차적으로 다운받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아카이브는 여러 개의 자료를 아주 잘게 분할 해서 동시에 내려받는…… 뭐, 그런 개념의 방식을 사용했다.
‘아, 근데 이거 엄청 감질나네.’
내가 알지 못했던, 알 수 없었던 지식들이 흘러들어오는 과정은 몹시 기분 나빴지만, 그 자체는 매우 흥미로웠다.
다만, 이게 하나의 카테고리를 집중적으로 다운받는 게 아니라 그 속도가 매우 느렸고, 덕분에 나는 수천 권의 소설이 느릿느릿 집필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이게, 창작의 고통…….”
[ 어디가 고통스러우십니까? ]
“……?!”
이래저래 정신이 없어서 그냥 아무 말이나 내뱉었을 뿐인데, 갑자기 머리 위에서 들려온 리타의 목소리에 나는 꽉 닫고 있던 눈을 번뜩일 수밖에 없었다.
“리, 리타?”
[ 예. 리타입니다. 어디가 편찮으신지요? 그리고 이 잡것들은 또 왜 귀인의……. ]
“내가, 허락한 거니까 괜찮아……. 그보다 리타. 잠깐 여기 앉아 봐.”
[ …예. ]
내 허벅지를 베고 누운 둘을 향해 살기를 날리려던 리타는 짧게 숨을 토해내며 내가 두드린 곳에 공손히 무릎을 꿇었다.
그에 나는 그녀가 앉은 방향의 팔을 쭉 펴며 얼른 말을 이었다.
“일이 다 끝나서 온 거지?”
[ 그렇습니다. ]
“그러면 일단 여기 누워. 한숨 자자.”
[ ……예? ]
쿠리리와 쿠로로를 노려보느라 날카로워졌던 눈매가 거짓말처럼 둥그러졌다.
“얼른. 빨리. 어서.”
[ 그, 귀, 귀인의 요구시라면…… 실례하겠습니다. ]
리타는 살짝 비스듬하게 몸을 눕히고는 내 팔에 머리를 눕혀왔다.
“자, 더 가까이.”
[ 예에……. ]
부드러운 뒤통수를 조심스레 끌어당기자, 리타 역시 꼬물꼬물 몸을 움직여 더욱 가까이 내게 밀착해왔다.
‘싫어하지만, 그래도 배려는 해주는 구나.’
리타가 비스듬히 누운 덕분에 그녀의 다리는 다행히 바로 아래에 있는 쿠로로의 머리에 닿지 않았다.
“고생했으니까 우리 낮잠 좀 자자.”
[ ……. ]
리타는 대답 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는 머리를 받치고 있던 손을 슬쩍 움직여 리타의 풍만한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조물조물.
‘역시 가슴…….’
머리는 두통으로 지옥, 하지만 손안은 말캉한 천국.
나는 천당과 지옥을 동시에 체험하며 얼른 이 혼돈의 시간이 끝나길 바라며 더욱 열심히 손을 조물거렸다.
**
【가속을 종료합니다.】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두통이 사라짐과 동시에 아카이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통, 두렵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누워만 있었을 뿐인데도 스트레스가 급속도로 상승하는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종류의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그럼 이제 일어나야 하는데…….’
두통에서 해방된 나는 고개를 살짝 숙여 리타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편안하게 눈을 감은 채로 얌전히 내 팔을 베고 누워 있는 리타.
겉으로 보기에는 곤히 잠든 것처럼 보였지만, 바로 코앞에서 그녀를 보고 있는 나로서는 조금 소름이 돋았다.
‘숨을 안 쉬니까 뭔가 좀 그렇네.’
물론 팔에 맞닿은 그녀의 뺨이 몹시 뜨거웠기에 섬뜩하다거나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색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리타?”
[ ……? ]
다행히 깊게 잠들었던 건 아닌지, 내가 이름을 부르자 리타는 금방 감고 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려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조금 더 잘래?”
[ ……아. ]
마치 잊고 있던 무언가를 떠올린 듯 작게 탄식을 내뱉은 그녀가 부스스 내 품에서 벗어났다. 아니, 벗어나려 했다.
“미안.”
[ 아닙니다……. ]
나는 무의식적으로 계속 움켜쥐며 주무르고 있던 리타의 젖가슴을 놓아주었고, 그제야 리타는 내 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조금 더 쉬어도 괜찮은데.”
[ …저를 유혹하지 말아주십시오. ]
슬그머니 시선까지 피하는 그 행동은 아무런 생각이 없던 나까지 괜히 가슴을 간지럽게 만들었다.
“크흠.”
리타에 의해 분위기가 몽글몽글하게 변하는 것 같아 나는 얼른 헛기침을 내뱉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 저것…… 저 둘은 어찌할까요. ]
“그러게.”
시간도 많이 흘렀고, 조금 있으면 시란이 돌아올 시간이기도 했으니 오늘은 그만 돌려보내는 편이 좋아 보였다.
그에 나는 리타와 다르게 침까지 흘리며 곤히 잠든 둘을 조심스레 흔들어 깨웠다.
“으음~?”
“쓰으읍…….”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모습을 보이며 잠에서 깬 둘은 느릿하게 눈꺼풀을 깜빡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바로 앉았다.
짝. 짝.
“……?”
“아…….”
잠을 깨워주기 위해 손뼉을 두어 번 치자, 다행히 둘의 흐리멍덩한 눈은 금세 또렷이 초점이 맺혔다.
‘리타가 무섭긴 많이 무섭나 봐.’
정신을 차리자마자 나를 향해 활짝 웃으려던 둘은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리타를 발견하자마자 어깨를 흠칫하며 몸을 굳혔다.
“리타.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돌아가고. 내일이랑 같은 시간에 찾아갈 거라고 알려주고 돌려보내.”
[ 예. ]
“읏차.”
나는 리타에게 둘을 맡긴 후,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를 따라 고개를 치켜든 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자리를 피했다.
‘애초에 저 둘을 끌어들이려던 것부터가 잘 못 됐지.’
조금만 생각해 봤어도 금방 답이 나왔을 문제였다.
말귀를 알아먹지 못하는 나와 이방인이지만 그래도 말귀를 알아먹는 저 둘.
과연 누구의 앞에서 말을 더 조심할까.
‘당연히 저 둘이지.’
내가 주시하고 있어서 처리할 수도 없는 데다가, 미약하게라도 대륙 공용어까지 할 수 있는 둘은 지금 이곳에 있어서 가장 거슬리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후우.”
침실로 돌아온 나는 그대로 아무도 없는 침대에 몸을 눕혔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선배님들께 장갑을 나눠드리는 게 먼저였지만…….
‘마대륙이 마대륙이 아니라니.’
아카이브가 찔끔찔끔 쌓아오는 정보가 너무 감질나 미쳐버릴 것 같았다.
본래 마대륙은 마대륙이라 불리지 않았고, 아스텔라 대륙이라는 이름에 묶여 한 덩이로 취급되었다.
지금 제국이 위치한 서쪽은 신성과 검술이.
마대륙으로 불리고 있는 동쪽은 마법과 격투술이.
심지어 마대륙이라 불리고 있는 과거의 동쪽은 마도 공국이라는 이름 아래에 모여 거대한 발전을 이루었고, 지금의 제국이 자리잡은 서쪽보다 훨씬 풍요로웠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273년 전, 마도 공국에 신벌이라는 이름의 저주가 내려졌다.
‘그래서 그 저주가 뭐냐고…….’
사람의 흥미는 다 끌어 놓고, 역사 부분은 마치 나를 약올리려는 게 목적이라는 듯이 더 이상 내용이 추가되고 있지 않았다.
‘아카이브.’
【네. 서민수님.】
‘가속모드.’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가속을 실행합니다.】
“끄으응…….”
나는 다시 한번 두통과 오붓한 시간을 가져야 했다.
**
똑. 똑. 똑.
문 너머로 들려오는 정중한 노크 소리에 나는 몸을 일으켰다.
【가속을 종료합니다.】
거짓말처럼 사라진 두통.
“…몰래카메란가?”
침대에서 내려와 문으로 향하던 내 입에선 자연스레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 식사를 하고 점심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가속을 활성화했다. 그런데도 역사 부분은 어제 그 자리 그대로 멈춰 있었다.
‘…우선 순위를 설정 할 수 있는 건 처음뿐이라고 알려주면 좀 좋아.’
말 그대로의 의미로, 아카이브의 정보 수집 우선 순위는 수집을 시작하기 전에만 설정할 수 있다고 본인에게 직접 대답을 들었다.
[ 땀을 흘리셨군요. ]
“아, 운동을 잠깐 했는데 그거 때문에 흘렀나보다.”
[ …그러시군요. ]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오는 리타였지만, 그녀는 결코 선을 넘지 않았기에 그 이상 내게 무언가를 묻지 않았다.
나는 두통 때문에 흘렀던 땀방울을 대충 소매로 닦으며 리타의 손을 붙잡았다.
“오늘도 잘 부탁해.”
[ 예. 그러면 가도록 하겠습니다. ]
어제의 약속대로 쿠리리와 쿠로로를 만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리타와 함께 내성을 빠져나와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주거 구역에 들어섰을 때였다.
“또 왔네.”
“8동에 새로 들어온 자매 보러 가는 거래.”
[ 귀인? ]
“왜?”
[ …아뇨. 아닙니다. ]
잠깐 나를 돌아보던 리타가 고개를 저으며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고, 나는 그녀의 보폭에 맞춰 걸으며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로 들리는구나…….’
분명 귀에는 어제처럼 복잡한 마대륙의 언어가 들려왔지만, 그게 귀를 통해 머리에 닿은 순간 거짓말처럼 번역이 되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순간 흠칫 떨었고, 그걸 리타가 감지해냈던 거다. 분명 감각을 느끼지 못할 텐데 어떻게 알아차렸던 걸까.
“그런데 힘으로 다 해결할 것처럼 생긴 거랑은 다르게 엄청 온화하고 다정하다나 봐.”
쫑긋.
리타의 눈치를 보던 나는 갑작스러운 칭찬의 목소리에 그쪽을 향해 귀를 활짝 열었다.
“자세히는 말 안 해줬는데, 샤카샤 엄청 칭찬하더라.”
“샤카샤라면…… 4구역에 식당 운영하는 걔?”
“응. 엄청 귀한 걸 망가뜨렸는데도 용서해줬데.”
“그래도 아직 판단하긴 일러.”
“그건 그래.”
고개를 끄덕인 둘은 나로부터 시선을 돌리며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나 역시 의외의 칭찬에 만족하며 귀를 닫으려는데…….
-제왕이 될 자격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봐야지.
“콜록, 콜록!!”
[ 귀인? 괜찮으십니까? ]
“콜록!! 치, 침을 잘 못 삼켜…… 콜록, 콜록!!”
유감스럽게도 놀란 가슴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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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사실 깡나무는 나무가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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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G크리티카//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