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 귀인? ]
“어, 어?”
귀를 간지럽히는 리타의 나긋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옆에 앉아 있던 리타뿐만 아니라 테이블에 앉아 열심히 글자를 끄적이고 있던 쿠리리, 쿠로로까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어디 편찮으십니까? ]
“그럴 리가.”
오전에 있었던 일로 머리가 잠깐 복잡해졌을 뿐이지만, 그 사실을 리타에게 알릴 수는 없었기에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정수리를 조금 강하게 쓰다듬었다.
“점심을 너무 배부르게 먹어서 잠깐 졸았던 거 뿐이야.”
[ 그러면 내일부턴 식후 한 시간 정도 낮잠 시간을 가지도록 하죠. ]
“잔다!!”
“자, 자는 거 좋아…… 요….”
여전히 리타의 눈치를 보긴 하지만, 이틀간 리타가 직접 글을 알려준 것도 있고 리타 역시 둘을 향해 괜히 기세를 날리거나 하지 않았기에 쿠리리와 쿠로로는 엉금엉금 다가와 사이좋게 내 양쪽 허벅지를 끌어안았다.
그 모습이 주인을 반기는 대형견 같아서 놀고 있던 나머지 손으로 둘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었다.
[ 지금 잔다는 게 아니니까 떨어져라. ]
“뭐야. 지금 자는 거 아니야?”
“나, 낮잠이라고 했으니까…… 내, 내일… 아닐까?”
[ 그 말대로다. ]
쿠리리의 대답에 리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런데 넌 알아듣고도 달라붙었군. ]
하지만 금방 가늘게 뜬 눈으로 쿠로로를 노려보며 목소리를 한층 더 내리깔았다.
“주, 주인님은 좋아하셨어…….”
어깨를 부르르 떨면서도 제 할 말을 한 쿠로로는 사냥꾼을 피하는 꿩처럼 얼굴만 내 허벅지에 쏘옥 파묻어왔다.
“맞아. 주인님이 좋아하시면 됐잖아.”
거기에 눈치를 보던 쿠리리 역시 내가 쿠로로를 내버려두자 금방 그녀를 따라 내 허벅지에 제 뺨과 입술을 마구 문지르며 체취를 진하게 묻혀왔다.
‘기쁘긴 하지만……돌아가면 세탁부터 해야겠네.’
안 그러면 또 시란의 눈총을 맞아야 할 테니 말이다.
“리리, 로로.”
창문 너머로 엿보이는 다홍빛으로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둘을 애칭으로 불렀다.
“저녁 잘 챙겨 먹고.”
“응!!”
“네, 네에.”
각자의 성격대로 대답하는 둘의 코를 톡톡 두드려주는 걸 마지막으로 나와 리타는 다시 내성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침실로 향하기 위해 계단을 식당이 있는 2층을 지나칠 때였다.
“야!!”
내성이 떠나갈 정도로 우렁찬 제노아의 목소리에 보복을 맞춰 걷고 있던 리타가 나를 보호하듯 몸을 돌렸다.
[ 넘어가 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제노아. ]
“하, 씨…….”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몽글몽글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살얼음판 위를 걸어가고 있는 듯 차게 식었다.
“…위협하려고 소리친 거 아니야.”
짝다리에 골반 위로 한쪽 손을 걸치고 있던 제노아가 나머지 손으로 눈앞을 아른거리던 제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미안하다.”
시선을 마주치기는커녕 목소리에도 진심이 담겨있지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듣고 싶은 말이 많았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을 가로막고 선 리타의 손을 살포시 끌어당겨 옆에 서게끔 했다.
“할 말이 있으면 하라고 해.”
[ 용건을 말하라고 하신다. ]
“…….”
대충 무슨 말을 하려고 나를 불러세웠는지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원하는 대로 말 할 수 있는 기회를 줬음에도 어째선지 제노아는 쉽사리 입술을 떼지 못하고 몇 번이나 입술을 깨물고 놓기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 할 말이 없다면 가도록 하지. ]
“자, 잠깐!!”
리타가 나를 향해 입을 열려고 하자, 제노아가 황급히 소리치며 리타를 말렸고, 나에게 양해를 구한 리타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뱀처럼 가늘게 뜬 눈으로 제노아를 노려봤다.
할 말이 있다면 빨리 말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런 리타의 압박이 통한 걸까.
쓸어올린 제 앞머리를 강하게 움켜쥐며 제노아가 어렵사리 입술을 뗐다.
“아, 아이 만들기…… 하자고 전해.”
그리고 예상대로의 대답을 내놓는 제노아.
오늘 아침 그녀에게서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어 당황한 것도 있지만, 며칠 뜸을 들이면서 그녀가 더욱 안달 나기를 바랐기에 오늘도 손을 대지 않고 나왔다.
정확히는 역으로 나를 덮쳐버릴 것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이를 바드득 가는 그녀의 행동에 도망치듯 나온 거지만.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는 리타가 굉장히 미묘한 시선을 제노아에게 쏘아 보내며 입술만 내 귀에 가까이 가져댔다.
[ 귀인과의 교접을 원한다고 합니다. ]
그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붙잡고 있던 리타의 손을 놓았다.
“싫어하는 상대를 강제로 안을 마음은 없으니 안심하라고 전해줘. 그리고 피곤하니까 먼저 올라가 볼게.”
[ 예. 귀인. ]
제노아를 두려워하긴커녕 오히려 선명한 복근을 가진 그녀의 알몸이 자꾸 떠올라 자지가 벌떡거릴 정도였지만, 나는 일부러 겁먹은 사람처럼 후다닥 도망치듯 계단을 뛰어 그 자리를 피했다.
-으아아악!! 그런 게 아니라니까?!
-소리치지 마라.
그리고 절반쯤 올라왔을 때 아래에서 들려오는 제노아의 절규 아닌 절규에 나는 피식 웃으며 침실로 마저 걸음을 옮겼다.
**
그날 저녁.
“우리 공주님은 하루가 다르게 예뻐지네~”
[ 아부……. ]
케르낙스의 품에 안겨 시론의 새빨간 머리칼을 입에 물고 있던 겨울이가 고개를 훽! 돌려 케르낙스의 가슴에 얼굴을 숨겨버렸다.
[ 요 녀석. 우리가 칭찬할 때는 들은 척도 안 하더니? ]
[ 딸이라서 그런지, 엄마보다는 아빠가 좋다는 거겠지. ]
시론이 웃으며 겨울이의 말랑한 뺨을 살살 눌렀고, 케르낙스 역시 옅은 미소를 지으며 제 가슴에 얼굴을 숨긴 겨울이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늘 묻는 거지만, 별일 없지?”
[ 별일이 뭐 있겠냐? ]
겨울이의 입에 물려 있던 머리칼을 조심조심 빼낸 시론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고.
[ 별일은 모르겠지만, 최근 냐호가 바쁜 것 같았지. ]
[ 아, 확실히 어제부터 엄청 바빠 보이긴 하더라. 누구 뭐 하는 사람? ]
수정구 너머로 시론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 영지 전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중이라 크게 벌어들일 기회라고 하더군요. ]
그리고 화면 너머에서 기에나가 대답했다.
“냐호 지금 없어?”
[ 그러고 보니 없… 아얏?! ]
[ ……너는 정말이지. ]
내 물음으로 냐호가 지금 저 자리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듯한 시론과 그런 시론의 옆구리를 꼬집으며 한숨을 내쉬는 케르낙스.
‘…빨리 돌아가고 싶다.’
나도 저 틈에 끼어서 같이 웃고, 부쩍 자라기 시작한 겨울이를 품에 안고 싶단 생각이 요 며칠 더욱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 냐호라면 내일까지 상회에서 먹고 잘 거라더라. ]
시론의 뒤에서 불쑥 나타난 아멜라 누님이 시론의 머리보다도 큰 젖가슴을 시론의 머리 위에 얹으며 그리 말했다.
[ 무거워……!! ]
[ 아앙? 무겁긴 뭐가 무겁다고. ]
[ 으윽!! 어, 언니! 웃지만 말고 뭐라고 한마디 해줘야 할 거 아냐!! ]
[ 보기 좋은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구나. ]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까워지는 아내들의 친밀감에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면 우리 공주님. 엄마들이랑 좋은 꿈 꾸세요?”
[ 빠우으. ]
[ 스미스 너도 좋은 꿈 꿔라. ]
늘 그랬듯, 겨울이의 손을 잡고 흔드는 케르낙스의 인사를 끝으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이후에는 셋째 누님에게 정액을 빨리고, 비젤린님에게 연구 목적으로 아주 소량을 덜어 드린 다음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에 올랐다.
“무슨 고민 있냐?”
“티 나요?”
“당연한 걸 묻고 있네.”
얇은 잠옷을 걸친 시란이 바로 옆에 누우며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
“무슨 일인데? 그제 왔다는 년이 뭔 짓 했냐?”
“흐흐, 그런 거 아니에요.”
“…앞으로 하게?”
내가 웃으며 허리를 끌어당기자, 시란은 잠깐 고민하다가 결국 앞서 꺼냈던 주제를 모른 척 넘어가 주었다.
그 보답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렇지만, 나는 다른 한 손을 시란의 잠옷 바지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매끈하고 탄탄한 복부를 쓰다듬으며 조금 더 깊숙이 내려가자, 시란은 내가 만지기 쉽도록 다리 한쪽을 내 허벅지 위에 걸치며 은밀한 곳을 손쉽게 허락했다.
“…너무 괴롭히진 마.”
점차 습해지는 손바닥으로 맞닿은 부분을 쓰다듬으며, 조금 전 케르낙스의 가슴에 숨은 겨울이처럼 내 가슴에 얼굴을 묻는 시란의 정수리에 입술을 맞췄다.
“시란.”
“……왜?”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붉은 눈동자가 이쪽을 향했다.
루비보다 더욱 아름다운 붉은색.
나는 내가 입을 열기를 기다려주는 시란의 눈동자를 마주 바라보며 나직이 속삭였다.
“사랑해요.”
“…….”
시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래를 향해 있는 내 손바닥이 더욱 축축하게 젖었다.
그리고.
“우왁?!”
“…우리 남편. 요즘 오냐오냐해줬더니, 자꾸 곤란하게 만드네?”
순식간에 내 위로 올라탄 시란이 잠옷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고,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시란의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제노아의 부족이 경계의 숲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과 지금 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
‘시란에게는 미안하지만 역시 비밀로 하는 게 좋겠지.’
신뢰의 문제가 아니라, 어차피 이번 일이 레이벨 누님과 셋째 누님의 합작품이라면 시란이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그러니 조금 더 정보를…….
“불알이 텅 빌 때까지 쥐어짜 줄 테니까.”
어느새 팬티까지 벗어 던진 시란이 나를 내려다보며 입술을 핥았다.
“흐흐, 하실 수 있으시다면 해 보세요.”
“그래. 지금 실컷 웃어둬라.”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시란은 그대로 나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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