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742화 (742/771)

조금은 어중간한 새벽 시간.

나는 방금 막 잠에 든 시란의 땀에 젖은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며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역시 시란은 관계가 없는 것 같았지.’

오랜만에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사랑을 속삭였고, 거기에 불이 붙은 시란이 위에 올라타 날 덮쳤다. 그리고 지금 보는 것처럼 시란이 먼저 패배 선언을 하고 지쳐 잠들었고.

다른 때였다면 시란에게 맞춰 순순히 불알을 텅텅 비워냈을 테지만, 아카이브와 제노아의 등장으로 시간이 조금 촉박해져 오늘은 평소엔 쓰지 않았던 초-진동과 거대화를 동원해서 시란에게 항복 선언을 받아냈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다 보니, 시작과 반대로 마지막은 시란이 내 아래에 깔려 숨을 껄떡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흐응……♥”

겨우 가라앉았던 자지가 다시 발딱 고개를 들어 시란의 아랫배를 꾸욱 누르자, 기절하듯 잠든 시란의 입 사이로 기분 좋은 교성이 흘러나왔다.

나는 시란이 깨지 않도록 조심해서 허리를 끌어안고 매끄러운 등을 토닥였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 전혀 가능성 없는 추측은 아니군요. ]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면 연락하겠다던 시스였지만, 결국 이쪽에서 먼저 시스를 찾게 됐다. 그리고 찾게 된 이유는 거리에서 들었던 ‘제왕’과 제노아의 입에서 튀어나왔던 ‘경계의 숲’에 대한 것을 논의하기 위함이었다.

[ 당신을 왕으로 삼으려 한다는 건, 굳이 이유를 찾지 않아도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고, 이쪽을 공격하려 한다는 것 역시 지금 아래에서 신전들이 습격당하고 있는 것과 연관 지으면……. ]

시스가 내 추측에 동의하면서 말끝을 잠깐 흐렸다.

[ 그렇군요. 휴전을 위한 맹약을 만약 레이벨과 엘리스. 그 둘이 맺은 거라면 모든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군요. ]

‘아, 그런 게 있었지.’

그 당시에는 내 앞가림하기도 바빠서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는데, 확실히 비젤린님께서 그 관련으로 한동안 몰링타를 떠났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자리를 비운 본체를 대신해 남겨둔 인형인 시오린으로 내게 마력을 깨우쳐주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시오린의 마력을 내가 흡수하는 바람에 작은 헤프닝도 있었다.

‘시스 네 말대로 레이벨 누님이랑 셋째 누님이 맹약을 나눈 거라면…… 그냥 보여주기 그 이상 이하도 아니구나.’

오로지 세계수만 믿고 따르는 엘프와 신앙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마대륙과 달리, 대륙의 인간들은 하나도 아닌 여러 신을 동시에 섬길 정도로 신앙심이 깊다.

그녀들의 신앙심이 깊은 이유 중 하나는 저 위에 있는 얼굴도 모를 작자들이 신벌이라는 걸 떨어트려 본인들의 존재를 뚜렷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벌은 물론이고 대륙 전체를 뒤덮은 어떤 신의 저주에서조차 예외 되는 존재들이 바로 장인어른의 딸들이었다.

즉, 레이벨 누님과 셋째 누님이 신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맹약을 맺더라도 실상 아무런 효력이 없고, 효력이 없기 때문에 맹약 자체가 그저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 아카이브가 확실히 제값을 하는군요. 당신이 이토록 영민하게 느껴지다니. ]

‘…내가 겉은 우람해도 속은 여린 남자거든?’

[ 퍽이나. ]

속담에서는 무심코 던진 돌이라던데…… 우리 시스는 아플 것 처럼 생긴 돌을 직접 골라다가 던지는 타고난 사냥꾼이었다.

[ 하지만 잘 됐군요. 안 그래도 이걸 말씀드려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당신이 먼저 의심을 시작했으니 저도 조금 편하게 말하도록 하죠. ]

‘뭔데? 마음의 준비라도 해야 하는 거야?’

[ 심각한 건 아니지만, 저에게 화를 낼 수도 있는 내용이군요. ]

‘내가? 시스 너한테?’

순간 나도 모르게 미간을 구겼다.

다름이 아니라 내가 시스에게 그만큼 믿음을 주지 못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약속할게. 절대로 화 안 낸다고.’

[ 이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지만…… 믿어 보도록 하죠. ]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런 소리까지 하는 걸까.

내가 사랑하는 아내들에게 화를 내는 경우라면, 서로에게 위해를 가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리고.

[ 냐호와 아멜라가 당신에게 비밀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가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시스가 내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유를 묻기 전에 말하겠는데.’

나는 품에 안긴 시란의 체온으로 속을 달래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다른 아내들을 믿고 의지하는 것처럼, 시스 너도 믿고 의지하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거든? 뭐,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뭐냐. 내 유일한 도우미이자 여신님으로서 자신감을 가져라고.’

말하고 나니 굉장히 낯간지럽단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괜히 목구멍과 가슴이 간질거리는 것 같았다.

[ 당신. ]

‘……넹?’

생각했던 것과 다른 시스의 경직된 목소리에 순간 입술이 바짝 말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 …돌아오면 그간 보급받지 못한 신성을 한 번에 받아 갈 테니 단단히 각오하세요. ]

우리 여신님이 이렇게 귀엽습니다.

무시무시한 시스의 충고 덕에 입꼬리가 느슨하게 풀어졌다.

‘그래서 그 둘을 의심하는 이유는 뭐야?’

[ 모험가 길드 혼자 일을 벌였다고 치기에는 정보의 통제가 너무 심합니다. ]

우리가 몰링타로부터 소식을 접한 게 대략 닷새 전 일이다.

그때도 한번 이야기했지만, 우리가 소식을 접한 게 닷새 전일뿐이지, 사건이 벌어진 근 그보다 훨씬 전일 터.

그럼에도 제도는 여전히 조용했고, 별다른 소문 하나 없이 평화로운 일상을 이어 나가고 있다고 한다.

[ 중소도시 규모만 되더라도 두어 세력 정도의 신전 지부가 있습니다. 그리고 신전 지부가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경제가 활성화 된 곳이기도 하니, 필연적으로 돈을 좇는 상인이나 상단들도 지부를 두고 있겠죠. ]

그리고 상인과 상단들은 소문에 무척 민감하다.

남들이 듣기에는 어처구니없어할 소문이라도 사람을 풀어 알아보는 게 그치들이기도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경쟁자들을 상대로 잡아 먹힐 테니 말이다.

[ 목격자가 한둘이라면 몰라도, 숨길 생각도 없이 일을 벌였는데도 지금까지 뜬 소문 하나 들려오지 않는 건 역시 이상합니다. ]

‘상인…… 상단들도 협력했다?’

[ 그게 아니라면 지금 제도의 평온함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

시스의 의심은 타당했다.

[ 그리고 둘 모두 수인의 피가 흐르고, 아멜라는 모험가 길드 소속이죠. ]

그 말대로였다.

셋째 누님이 마인들의 절대자라면, 레이벨 누님은 수인들의 절대자임과 동시에 모험가 길드의 마스터였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냐호는 자세한 사정을 밝히지 않고, 바쁘다는 이유로 오늘 자리를 비우기까지 했다. 그리고 냐호가 자리를 비운 것을 알려 준 이 역시 아멜라 누님이었고.

[ 흑선 상단과 밤비노의 직원들은 모두 수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인들은 인간보다 신체 능력이 월등히 뛰어나죠. 그러니, 흑선 상단이 주도해서 상인과 상단들을 통제하고 있는 거라면 지금의 평온함도 설명이 됩니다. ]

‘만약…… 냐호가 나 몰래 협력하고 있는 거라면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 글쎄요……. ]

시스가 고민하듯 말꼬리를 늘어트렸다.

[ 다만, 그 아이 나름대로 당신을 위하는 일이라 생각했겠죠. ]

의심을 이야기했던 게 바로 조금 전인데 시스는 마치 냐호를…… 아니, 아내들을 변론하듯 말을 이었다.

[ 제가 조금 전에 ‘절대’라는 건 없다고 말씀드렸지만,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 아내들에게 있어선 바로 서민수. 당신이 그 예외겠죠. 그녀들은 제 목숨을 위협당하더라도 결코 당신을 배신하지 않을 아이들입니다. ]

‘…아이들이라고 하니까 너 되게 나이 들어 보여.’

[ 나가 죽으세요. ]

우리 여신님. 입담도 참 거치시지.

그리고 위로를 참 어렵게 하신다.

[ ……굉장히 기분이 더러워졌습니다. ]

‘일단은 제가 남편입니다만.’

[ 시끄럽습니다. ]

마치 매도하듯 날이 서 있는 대답이었지만, 나는 그조차도 기뻤다.

‘이젠 부정은 안 하는구나?’

[ …헛소리 그만하고, 제노아라고 했던가요. 그 아이로부터 최대한 빠르게 정보를 뽑아내도록 하세요. 신전의 습격은 아무래도 좋지만, 마인들이 들이닥치는 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

‘그럴게. 나도 겨울이가 있는 곳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건 바라지 않으니까.’

그 여파가 저택까지 미치진 못할 테지만, 제도에서 싸움이 벌어진다면 이리나를 비롯한 다른 연인들이 다치는 것까진 신경 써 줄 수가 없다.

[ 그리고……. ]

슬슬 대화를 마무리하려던 그때.

[ …정을 주지 않기로 했으면서, 도대체 얼마나 더 곁을 내어줄 생각인 겁니까? ]

내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잘 못 들려온 게 아니라면 분명 시스가 지금 부끄──

[ 닥치세요. 생각하지 마세요. 헛짓거리하지 말고 최대한 빨리 돌아올 궁리만 하세요. 아시겠습니까? ]

천둥처럼 머리를 강타한 노호를 마지막으로 시스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츤츤...

다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욧!!

==========

카인G크리티카//감사함다!!

NetFighTer//앗...깡사장을 위해 알몸 댄스를 추시겠다니...기대하겠습니닷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