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743화 (743/771)

새벽까지 이어진 시스와의 대화.

그 끝은 평소처럼 시스의 일방적인 단절로 마무리되었고, 나는 남는 시간 동안 시란의 체온을 즐기며 오늘도 빼먹지 않고 아침까지 아카이브를 가속 시켰다.

그리고 날이 밝아 아침이 됐고.

“…다녀올게.”

“흐흐, 조심해서 다녀와요.”

어제 호기롭게 나를 덮쳤다가, 역으로 내 아래에 깔려 허덕였던 게 부끄러웠던 걸까.

나는 소녀처럼 수줍어하는 시란에게 입술을 맞춰주며 손 인사로 배웅했다.

‘시란은 몰라도 레이벨 누님이랑 비젤린님은 충분히 의심스럽지.’

솔직히 정말로 장인어른의 흔적을 찾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건지조차 의심스러웠다.

똑. 똑. 똑.

잠깐 찾아온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던 나는 리타의 노크 소리에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열었다.

[ 좋은 아침입니다. ]

평소처럼 덤덤한 얼굴로 인사하는 리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그녀의 손을 붙잡고 식당으로 향했다.

‘슬슬 누구 한 명은 성과를 내줬으면 좋겠는데…….’

몸에 좋은 것과는 별개로 정말 입에 대기 싫은 끔찍한 맛을 매일 아침, 저녁으로 경험해야 하는 건 나에게 있어서도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아, 안녕.”

리타와 함께 식당으로 들어서자, 이제는 지정석처럼 되어버린 자리에 앉아 있던 제노아가 어색하게 나를 향해 인사를 건네왔다.

잠깐 고민하던 나는 새벽에 시스와 주고받은 대화를 상기하며, 그녀를 향해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

“안녕하세요?”

“…하, 하하.”

그러자 제노아는 갑자기 나를 따라 하듯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어 보였다.

‘방법을 바꾼 모양이네.’

나는 그녀의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를 슬쩍 바라보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평소와 똑같이 접시 위에 올려진 스테이크로 배를 채웠다.

“야……!! 아, 아니… 저기….”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평소보다 빠르게 식사를 끝마치고도 자리에 앉아 있던 제노아가 나를 따라 벌떡 일어났다.

“오, 오늘…… 따라 와?”

뭐랄까.

내면의 본인과 싸우고 있는 듯한 제노아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괜히 놀려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생각만 들었을 뿐이다.

당장 오늘 새벽에 서둘러달라고 시스가 부탁해 왔는데, 나 혼자 즐기자고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네. 따라갈게요.”

그래서 인사를 받아줄 때와 마찬가지로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굳어 있던 제노아의 얼굴이 그제야 조금 힘이 빠지는 게 보였다.

[ 귀인. ]

“응?”

이제 별궁으로 향하면 되는데 옆에 서 있던 리타가 나를 부르자, 반쯤 다가왔던 제노아까지 걸음을 멈추며 나와 함께 리타를 바라봤다.

[ 두 번째 암…… 여자가 도착했습니다. ]

암컷 대신 여자라고 지칭을 바꿔준 건 기특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두 번째 마인이 도착했다는 소식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여왕님이랑 면담이 먼저지?”

[ 예. 다만, 면담 자체는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별궁에 계시면 자연스레 얼굴이 마주치실 겁니다. 귀인께서 괜찮으시다면 상관은 없지만…… 불편하시다면 정오까지 이곳에 잠깐 머물도록 지시해 두겠습니다. ]

만나는 것 자체는 상관없지만…….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제노아를 바라봤다.

인상을 쓰며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궁금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

‘괜찮겠지.’

첫 만남에서부터 날 병신이라 부르고 아니꼽단 시선을 보내왔던 제노아도 내게 폭력은 쓰지 않았다. 무엇보다 어제부터 갑자기 섹스를 적극적으로 바라오기 시작했음에도 그녀는 나를 덮치거나, 직접적으로 손을 대지 않았다.

이 두 가지 경우만 보더라도 셋째 누님의 존재가 말 그대로 절대적이라는 걸 알기에는 충분했다.

‘리타도 그걸 아니까 침실까지 따라 들어오지 않고 1층에서 기다리는 거겠지.’

최우선인 안전에 어느 정도 확신이 생겼기에 나는 입을 열었다.

“아냐. 면담 끝나면 침실로 올려보내 줘.”

[ 알겠습니다. ]

“그리고 제노아한테도 알려주고.”

내 입에서 제 이름이 거론됐기 때문일까.

리타를 노려보던 제노아의 금색 눈동자가 이쪽을 향했다.

[ 두 번째 객식구가 조금 있다가 올라갈 테니, 괜한 소란 만들지 마라. ]

“쯧…… 어떤 년인진 몰라도 그쪽에서 시비 안 걸면 나도 건들 생각 없다고.”

[ 신뢰가 안 가는 대답이지만, 설령 소란을 벌인다더라도 귀인께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좋을 거다. ]

“하, 그 정도 사리 분별은 있거든?”

제노아는 리타를 향해 시원하게 손가락 욕을 날리고는 성큼성큼 우리 쪽으로 다가왔고.

“…따라와.”

조금 전 리타에게 성질을 냈던 것과는 다르게 나를 향해선 아주 나긋나긋하게 속삭이며 스쳐 지나갔다.

그 모습을 빤히 노려보던 리타가 똑같이 나를 향해 속삭였다.

[ 뒤를 쑤셔주면 금방 보짓물을 흘릴 겁니다. ]

“하, 하하…….”

나는 차마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는 말을 할 수 없었기에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제노아의 뒤를 쫓았다.

**

제노아의 침실.

“…….”

“…….”

나와 제노아는 그제, 어제와 마찬가지로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들어오자마자 알몸이 되었던 그녀가 무작정 옷을 벗지 않고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는 점이다.

“저, 저기……!!”

한참이나 나와 눈싸움을 벌이던 제노아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그, 나, 나!! 너, 사, 사죄……!!”

두 손까지 열심히 사용해 가면서 어떻게든 제 뜻을 전하려고 노력하던 제노아가 침대 위에 공손히 무릎 꿇고 나를 향해 머리를 조아려왔다.

‘머리를 조아려야 할 정도로 다급하다 이건가.’

발정으로 몸이 달아오르긴커녕, 제노아는 얼굴조차 붉히지 않고 나를 대하고 있다. 그런 그녀가 머리를 숙이면서까지 나와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건, 경계의 숲으로 향하고 있는 그녀의 일족과 연관이 있는 일일 터.

‘첫날 반응을 보면 당장 죽는다거나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놓이긴 하는데…….’

나는 머리를 들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녀의 정수리를 빤히 바라보다가 침대로 다가가 엉덩이를 걸쳤다.

“제노아.”

“……어?”

이름을 부르자, 제노아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이쪽을 바라봤다.

살짝 커진 두 눈과 벌어진 입술은 사나워 보이던 그녀의 얼굴을 조금 귀엽게 보이게끔 했다.

“괜찮아요. 사죄.”

“어, 어어…….”

내가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그녀는 다시 한번 입술을 어버버 거리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나를 똑바로 마주 보고 앉았다.

“그러니까…… 아씨….”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답답해하던 그녀가 머리를 벅벅 긁었고, 나는 일부러 놀라는 척,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손을 떼어냈다.

“아, 아니……!! 그, 젠장……!!”

그러자 나를 따라 덩달아 당황한 제노아는 두 손을 허우적거리다가 떼어낸 내 손을 덥석 붙잡아 다시 제 머리 위에 가져다 놨다.

“……해!!”

짧고 강렬하게 대답한 그녀는 머리까지 친히 숙여왔다.

그에 나는 올라가려는 입꼬리에 힘을 주어 버티며 조심스레 그녀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었다.

“…젠장. 답답해 뒤지겠네.”

목욕은 하기 싫지만, 그렇다고 주인의 손길은 받고 싶어 하는 강아지처럼 끙끙거리며 내 손길을 받아들이는 제노아는 몇 번이고 마대륙의 언어로 구시렁거렸다.

“제노아.”

“……?”

그래도 마냥 내 손길이 싫진 않았던 걸까.

고개를 든 그녀의 얼굴은 처음보다 굉장히 힘이 빠져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웃으며 내 양쪽 허벅지를 가볍게 두드렸다.

“…뭐. 앉으라고?”

말 보다는 그냥 손짓이 더 편하다고 느낀 그녀는 본인의 검지로 내 허벅지를 한 번, 그리고 저를 가리키기를 반복했다.

당연히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던 나는 눈치껏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하아……. 떡 한번 치기 존나 힘드네.”

작게 투덜거린 그녀는 무릎으로 슬금슬금 다가와 아무렇지 않게 양반다리 하고 있는 내 다리 사이에 엉덩이를 쏙 넣으며 안겨 왔다.

자연스레 내 골반 사이로 두 다리를 걸친 자세가 된 제노아.

나는 그녀의 등허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새하얀 목덜미에 입술을 가져댔다.

“읏…….”

내 골반 사이에 걸쳐져 있던 제노아의 다리가 순간적으로 나를 끌어안아 왔다.

그 반응을 시작으로 나는 제노아의 귓불을 깨물고, 뺨에 입술을 맞추기를 반복하며 허리를 쓸어내리던 손으로 탐스러운 엉덩이를 주물렀다.

“하아, 젠장…… 이, 이게, 도대…… 흐읏…… 무슨, 의미가 있냐고오…….”

입술을 맞추고 달뜬 숨결을 불어 넣을 때마다 제노아의 두 다리가 조금씩 내 허리를 조여오기 시작했다.

본인은 그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쉬지 않고 이 행위에 대해 불만을 투덜거렸다.

“제노아.”

“……흐응?”

이름을 부르자 내 가슴팍에 이마를 가져대고 숨을 허덕이던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봤다

살짝 흘러내린 앞머리 사이로 드러난 금빛 눈동자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녀의 눈동자를 조금 더 가까이 보기 위해 고개를 숙였고.

“비, 비겁한 자식…….”

갑자기 나를 욕한 제노아는 두 눈을 질끈 감더니, 그대로 내게 입술을 맞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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