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차고 강한 기상.
오늘도 변함없이 같은 시간대에 눈을 뜬 나는 똑같은 루틴대로 움직였다.
“그런데 누나.”
“……??”
얌전히 소파에 앉아 내가 만든 토스트를 오물거리던 레이벨 누님이 고개를 이쪽으로 돌렸다.
“이제 거의 일주일? 그 정도 됐잖아. 그런데 누나랑 비젤린님 정도면 벌써 마대륙 전체를 몇 번이나 돌고도 남을 시간 아니야?”
“…….”
한쪽 뺨에 크게 베어 문 토스트를 볼록 쑤셔 넣더니, 레이벨 누님의 금색 눈동자가 스르륵 반대편으로 향했다.
“스미스야. 원래 탐색이라는 건 신중하게 해야 하는 거란다? 어디 길가에 널린 돌멩이를 찾는 게 아니에요~”
“…음. 비젤의 말대로다.”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끼어든 비젤린님의 대답에 자연스레 묻혀 가는 우리 레이벨 누님.
“젠장, 그래서 나는 왜 데려가는 거냐고 도대체!!”
아침부터 날 쥐어 짜내 얻어낸 밀크로 배를 든든히 채운 시란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물론, 레이벨 누님이 힐끗 노려보자마자 금방 꼬리를 말고 내 등 뒤로 숨었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레이벨 누님은 아직도 내게 호의적이었기에 시란이 내 등 뒤로 숨자 금방 사납게 뜬 눈매를 풀며 다시 토스트를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너는 뭘 그런 당연한 걸 묻니?”
“뭐?”
등 뒤로 숨은 김에 자연스레 내 엉덩이를 더듬거리며 희롱하던 시란이 옆으로 불쑥 얼굴을 내밀며 비젤린님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예전이었다면 진즉에 도망치거나 도발을 했을 비젤린님이었지만, 시란의 강력한 억제기인 레이벨 누님이 옆에 있어서 그런지 비젤린님은 평온하게 시란과 케르낙스의 모유가 뒤섞인 우유를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었다.
“네가 남으면 잘도 여자들이 스미스한테 다가오겠다? 기껏 초대했는데 네 눈치 보느라 다가오지도 못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니?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지.”
“…공사는 구분하거든?”
“네 존재랑 체취 자체가 다른 암컷들에게는 독이야. 독. 그러니까 투정 그만 부리렴.”
“쯧…….”
마법으로 지운다는 선택지도 있을 텐데, 시란은 의외로 쉽게 포기하며 내 등 뒤에서 나왔다.
그렇게 평화로운 아침 식사가 마무리되었고, 시란과 누님들은 오늘도 나를 남겨둔 채 마대륙의 어딘가로 사라지셨다.
“어째 시란이 점점 시론처럼 변하는 것 같단 말이지…….”
이게 환경의 차이라는 걸까?
늘 챙겨줘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강자로서 있어야 했던 시란은 마대륙으로 건너오고 훨씬 강한 레이벨 누님과 함께 지내면서 점차 성격이 둥글어지고 애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뭐, 나는 그런 시란도 좋아하니까 상관없지만.”
나중에 시론이 변한 시란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조금 궁금하긴 했다. 아마 고래고래 소리치다가 꿀밤을 한 대 맞지 않을까?
똑. 똑. 똑.
“네~ 나갑니다.”
환기를 위해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고 대충 뒷정리를 마무리한 나는 침실의 문을 열었다.
“좋은 아침.”
[ 오늘은 안색이 밝아 보이시는군요. ]
“오랜만에 잠을 편하게 자서 그런가 봐.”
정확히는 셋째 누님에게 정력을 빨리는 과정에서 가속을 발동했다가 돌아온 후폭풍에 그만 까무룩 기절한 거지만.
그래서 그런지 나는 세삼 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어중간한 신성을 각성한 후로 어지간한 일로는 지치지도 않아 잠들 일이 별로 없었다. 당연히 자지 않는다 해서 건강이나 컨티션에 이상이 생기는 게 아니라 구태여 자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 시간에 사랑하는 아내들의 얼굴을 감상하거나 말랑하고 폭신한 가슴에 파묻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쪽이 여러모로 내겐 이득이었으니.
그런데 오늘은 시란과의 관계도 깊게 맺지 않고, 이른 시간에 까무룩 잠들고 깨어났더니, 정신과 몸이 아주 날아갈 듯 가볍게 느껴졌다.
아무튼, 리타의 말대로 오늘 컨디션이 평소의 배 이상으로 좋다는 소리다.
“…안녕.”
“아, 안녕하세요!!”
리타와 함께 식당에 들어서자,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한 테이블에 앉은 제노아와 넬라가 사이 좋게 나를 향해 인사해왔다.
“둘 다 좋은 아침.”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이가 좋아서 나쁠 건 없기에 나는 웃으며 지정석처럼 되어버린 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그리고 자연스레 내 뒤에 선 리타가 다른 몽마들에게 음식을 내어올 것을 지시했고, 제노아와 넬라는 각자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미소와 함께 나를 바라봤다.
“야. 여긴 내 구역이니까…… 그만 꺼지지?”
“어디서 짐승이 짓나?”
“이 썅년이…….”
“치려면 치던지.”
그리고 나를 향한 밝은 미소와는 완벽히 반대되는 살벌한 대화를 저들끼리 소곤소곤 주고받았다.
‘좋아진 게 아니었구나.’
당연히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손가락을 살짝 까딱였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리타가 내 어깨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저 둘. 뭐라고 하는 거야? 싸우는 건 아니지?”
[ 가벼운 영역 다툼 중이니 신경 쓰지 마시길. ]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리타의 말을 신뢰하지 못했다.
‘당장 치고받고 싸울 거 같은데…….’
왜냐면 웃고 있는 제노아의 잇새 사이로 아주 섬뜩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넬라가 한 성깔 하는구나.’
첫 만남부터 말을 더듬으며 굉장히 순종적이고 호의적이었던 넬라.
그래서 나는 원래 성격이 소심하고 귀여운 줄 알았는데, 그건 또 나에게만 한정되는 모습이었던 모양이다.
“이빨 다 갈리겠네~ 그리고 싸우면 이길 순 있고? 날지도 못하는 무식한 년이.”
“……너. 조심해라. 진짜 날개 다 찢어버린다.”
추가로 입담이 생각보다 대단했다.
‘생각해보면 오히려 이쪽이 더 자연스러운 거겠지.’
물은 물론이고 먹을 것도 부족한 척박한 환경에서 다른 마인들과 늘 경쟁하고 사냥해야 하는데 성격을 소심하다고 생각하는 쪽이 더 이상하다. 문제는 조금 전까지 내가 그 이상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는 거다.
“입꼬리 파르르 떨리는데, 그만 포기하지?”
“너나 포기해라.”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지는 두 사람의 다툼.
‘…이제 나한테도 관심을 좀 주면 안 될까?’
그러나 식사가 끝날 때까지도 두 사람의 말다툼은 끝나지 않았다.
**
오늘따라 유독 길게 느껴진 식사가 끝난 후.
“저, 저기…….”
“귀인!!”
리타의 도움을 받아 입을 헹궈내던 나를 향해 제노아와 리타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걸어왔다.
“…….”
“…….”
그리고 나를 불렀으면서 또 웃는 낯으로 서로를 곁눈질하며 불똥을 튀겼다.
[ 귀인. ]
“응?”
저 둘의 기 싸움이 언제 끝나나 멍하니 기다리고 있는데, 리타가 얼굴을 내밀며 나직이 속삭여왔다.
[ 지시하셨던 일에 성과를 본 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
“진짜?”
[ 예. 처음 들렸던 가게의 주인이 만족스러워하실 만한 결과물을 보여드린다며 시간 날 때 들려달라더군요. ]
“그러면 리리랑 로로한테 들르기 전에 그쪽부터 가자.”
늘 점심을 얻어먹는 것도 미안했는데, 이참에 맛 좋은 헬카우 고기라도 좀 먹여서 몸보신을 시켜줘야겠다.
아직 회화는 무리더라도 전보다는 훨씬 많은 단어를 알아듣기에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어진 둘. 그리고 전보다 더 강아지처럼 구는 건 덤이다.
‘어제는 리타가 노려보니까 내 손에 숨었었지.’
무슨 머리만 숨기면 다 숨은 줄 아는 꿩도 아니고.
이상하게 오늘 시란이 내 등 뒤에 숨었던 상황과 이어져 웃음이 나왔다.
“응?”
가볍게 웃다가 이상하게 조용해서 고개를 들었더니, 어째선지 제노아와 넬라가 나를 멍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리타?”
[ ……예. ]
심지어 리타까지 한 박자 느리게 대답해왔다.
뭐지?
그 잠깐 사이에 설마 무슨 실수라도 저질렀나?
“혹시, 나 무슨 실수라도 저질렀어?”
벽에 서 있던 몽마들까지 묘하게 시선을 회피하는 반응에 나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 …그럴 리가요. 귀인께선 어떤 짓을 저지르셔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길. ]
그런데 다들 반응이 왜 그런 갑니까?
하나 같이 신경 쓰이는 반응들이었지만, 적어도 부정적인 반응으로는 보이지 않았기에 눈치껏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거야?”
[ 귀인께 누가 먼저 선택받느냐로 다투는 중이니, 귀인께서 직접 선택해주시지요. ]
리타의 솔로몬급 대답에 나는 잠깐 그녀를 돌아보다가 고개를 바로해, 아직까지 멍하니 날 보고 있는 둘을 마주 바라봤다.
‘설마 이런 식으로 책임을 전가 받을 줄이야…….’
어느 한쪽을 선택하더라도 상대를 미워했으면 미워했지, 나를 향해선 크게 반감을 드러내진 않을 거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몹시 긍정적인 내 생각일 뿐.
현실은 또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나는 최대한 모두가 행복하고 납득할 수 있는 구실을 고민했다.
“아.”
그리고 놀랍게도 그 구실은 어제의 내가 마련해 두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순서는 똑같이 제노아부터. 그리고 넬라한테는 오늘은 어제 못다한 거 이어서 할 거니까 그동안 긴장 풀고 준비하고 있으라고 전해줘.”
[ 예. ]
리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씩 정신을 되찾고 있는 둘을 향해 말했다.
[ 귀인께서 제노아. 네게 먼저 들르시겠다고 말씀하셨다. ]
“뭐, 다, 당연한 거지…….”
“…….”
제노아의 입꼬리가 파르르 위를 향했고, 반대로 넬라가 눈에 띄게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 그리고 넬라. 귀인께서 오늘 너와 어제 못다한 교접을 이어 하신다고 하시니, 그동안 긴장을 풀고 준비하라 하셨다. ]
“아……!! 네, 네!!”
“……쯧.”
다시 역전되는 둘의 표정.
“너 한텐 이미 흥미를 잃으신 거 같던데. 뭐, 열심히 해 봐.”
“네년한테 뿌릴 씨앗은 없을 테니까 괜히 실망하지 말고 잠이나 쳐 자라.”
그리고 자연스럽게 시작된 둘의 다툼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리타……. 적당히 하라고 해.”
[ 예. ]
괜스레 훗날이 걱정되는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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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어째서 벌써 주말?
몬가, 몬가 시간의 흐림이 이상한 겁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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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G크리티카//감사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