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755화 (755/771)

익숙한 천장이다.

“쓰읍……?”

입가에 흐른 침을 닦으며 몸을 일으킨 나는 일단 습관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지금 내가 몸을 일으킨 곳이 평소 시란과 꽁냥대며 잠을 청했던 침대 위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째서 복도가 아닌 침대에서 눈을 떴는가.

묘하게 기운이 하나도 없는 신체에 잠깐 멍하니 앉아 있기를 잠깐.

“아.”

마치 오래된 컴퓨터처럼 한참이 지난 후에야 어젯밤의 일을 떠올린 나는 자연스레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점혈을 믿고 셋째 누님에게 한 번 덤벼보려다가, 입도 아닌 손가락 하나에 응기잇~! 같은 소리를 내며 그대로 뷰르릇 정액을 싸지르며 혼절한 기억이 떠오른 탓이다.

뭐, 진짜로 그런 소릴 낸 건 아니고…… 그만큼 꼴사나웠을 거란 표현이다.

“진짜 제대로 뽑혔나 보네. 몸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다니.”

물을 가득 머금은 솜을 가득 짊어진 듯 오랜만에 느껴보는 탄력감에 나는 다시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두통이 없는 게 어디냐.’

나는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시란의 자리에 몸을 뒤집어 누웠다.

스으읍, 하아.

온기는 사라졌지만, 이불 보에 남은 시란의 체취를 가득 마시는 것으로 일단 마음을 달랬다.

그렇게 한참이나 시란의 체취를 들이킨 후에야 기분이 다시 보통 수준으로 돌아왔고, 나는 몸을 뒤집어 다시 천장을 올려다봤다.

“하긴, 점혈도 무공 뭐 그쪽 계통일 텐데, 천마한테 그쪽으로 덤빈 것 자체가 자살 행위지.”

어제의 실패는 크게 마음에 담아두지 않기로 했다.

그보다는 어제 셋째 누님이 내게 했던 말들을 천천히 곱씹어봤다.

-설마 닷새 만에 미노타족의 아이를 제 것으로 삼을 줄이야.

-언제쯤 단서를 줘야 하나 고민했는데.

생각이 없는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눈치를 챌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내 요구 때문에 여자들을 불러 모은 게 아니었단 말이지…….’

셋째 누님은 내 요구가 없더라도 여자들을 수도로 불러들였을 거다.

바로 매일 밤 행하고 있는 내 자제력 향상이라는 이상한 명목의 훈련에 성과를 보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카이브가 진짜 여러 의미로 복덩이긴 하구나.’

셋째 누님은 내가 점혈을 제노아로부터 배웠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셋째 누님은 그걸 위해 제노아를 내게 붙인 거고.

어제 단서를 운운한 걸 보면 틀림없다.

‘그러면…… 넬라나 앞으로 도착하는 다른 여자들한테도 배워야 하는 게 있다는 건가?’

잠깐 고민해본 결과, 그건 아닐 거란 답을 내렸다.

왜냐면 기절하기 직전에 셋째 누님이 단서 없이 길을 찾았다고 말하며 내게 상이라는 이름의 조언 때문이다.

-힘을 다루는 법을 깨우쳤으니, 이제는 통제력을 길러야겠지?

나는 충분히 지금 내 반쪽짜리 신성을 잘 다루고 있다 생각했지만, 어제의 경험을 통해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그조차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단순히 힘의 차이가 아니라 셋째 누님의 마력 컨트롤이 나보다 월등히 뛰어날 뿐일 테지만.

“읏차.”

대충 생각이 정리되었기에 나는 몸을 일으켜 바로 앉았다.

‘그 더럽게 맛없는 걸 왜 계속 먹으라고 한 건지 이제 좀 알 것 같네.’

나는 단지 끔찍한 맛을 이겨내는 걸로 정신을 수양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는데, 역시나 내가 알지 못했던 훨씬 깊은 뜻이 있었다.

똑. 똑. 똑.

오늘의 일정을 어찌하면 좋을지 생각하려던 그때, 익숙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 귀인. 기침하셨는지요? ]

“어. 일어났어. 들어와도 괜찮아.”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리타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건 뭐야?”

[ 여왕님께서 보내셨습니다. ]

리타는 하늘색 액체가 담겨 있는 작은 병을 나에게 내밀었다.

“지금 마시면 돼?”

[ 마시는 용도로 내어주신 건 맞지만, 딱히 언제 드셔야 한다고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

“뭐, 그냥 지금 마시지 뭐.”

몸에 해가 되는 걸 줬을 리는 없을 테고.

나는 별다른 의심 없이 유리병의 마개를 열었다.

스아아아──

유리병을 열자마자 굉장히 상쾌하면서도 은은하게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그리고.

‘……?’

은은한 달콤한 향기 속에서 익숙한 냄새를 맡은 듯한 느낌에 나는 내용물을 마시려다 말고 다시 코를 병의 주둥이에 가져댔다.

[ 무슨 문제라도……? ]

“아니, 그냥. 향이 좋아서.”

리타에게 웃어준 다음, 나는 병의 내용물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역시 이거…….’

입 안에 굴리면 굴릴수록 확연하게 느껴지는 셋째 누님의 체취에 나는 병 속의 내용물이 무엇인지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진짜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전혀 모르겠단 말이지.’’

나는 빈 병을 리타에게 넘기며 천천히 몸을 상태를 살폈다.

그렇게 몸을 살펴본 결과.

‘…달라진 게 없는데?’

일단 내가 살펴보기로는 그랬다.

몸이 무거운 것도 그대로였고, 특별히 머리가 맑아졌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다.

물론, 어제의 일을 생각해 보면 그냥 내가 너무 허접해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확률이 가장 높았기에 무언가 긍정적인 변화가 있으려니 생각하기로 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 여왕님은 괜찮으시데?”

[ 타박상을 입으시긴 하셨지만, 운신에 큰 지장은 없으십니다. ]

혹시나 해서 물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내가 정신을 잃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레이벨 누님에게 혼이 난 모양이다.

‘…확실히. 레이벨 누님 앞에서는 다들 그냥 평범한 여동생이 되는구나.’

어쩐지 레이벨 누님에게 혼나는 모습이 눈에 그려져 괜히 웃음이 나왔다.

**

헬카우로 만든 스테이크는 더 이상 끔찍한 맛이 아니었고, 덕분에 제노아와 넬라는 평소보다 3접시나 더 뱃속에 스테이크를 욱여넣는 모습을 보여줬다.

대충 둘의 식사가 마무리되는 것 같아 나는 들고 있던 물병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제노아가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있는데.”

내 말은 리타를 거쳐서 제노아에게 전달됐다.

“뭐, 뭐든 도와주겠다고 해…….”

그리고 어제보다 한층 더 수줍은 듯 뺨을 붉히며 매우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는 제노아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조용히 웃었다.

“저는요? 저도 뭐든 도와드릴 수 있어요!!”

입을 열려는데 얌전히 앉아 있던 넬라가 손을 번쩍 들며 리타에게 그리 말했고, 리타는 별다른 변형 없이 있는 그대로 넬라의 말을 내게 번역해 줬다.

‘경쟁의식을 느껴주는 건 좋지만, 지금은 잠깐 떨어트려 놓는 편이 좋겠지.’

일단 아카이브에 의하면 점혈은 미노타족에게만 전해져 오는 기술인 것으로 적혀 있으니.

이 부분은 일단 제노아에게 허락을 받은 후, 넬라에게 이야기하면서 그녀에게도 무언가 배울 게 없는지 자연스레 물어보면 좋을 것 같다.

“나중에 방에서 따로 이야기한다고 전해줘.”

[ 예. ]

리타가 내 말을 전했고, 넬라는 아쉬움을 숨기지 못하고 날개를 축 늘어뜨렸다. 그런 넬라의 모습을 곁눈질하며 제노아가 입꼬리를 씰룩인 건 덤이다.

“그러면 일단 자리를 옮길까?”

**

오늘도 방문한 제노아의 침실.

처음에는 2층에 있는 단련실을 이용할 생각이었지만, 육체를 크게 쓸 일도 없을뿐더러 익숙한 장소가 집중하기 더 좋을 것 같아 침실로 장소를 정했다.

그리고.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네.’

나는 별다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음에도 벌써 바닥에 무릎 꿇고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제노아의 모습에 머리를 긁적였다.

‘오기전에 리타한테 먼저 설명을 부탁했어야 했는데…….’

나는 어쩔까 고민하다가 침대에 걸터앉으며 가랑이를 일단 벌렸다.

그러자 제노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군침을 꿀떡 삼키며 조심스레 기어와 내 가랑이 사이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제노아.”

“으, 응?”

처음도 아닌데 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하는 그녀를 위해 나는 나와 같은 검은 머리칼을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그러자 제노아는 곧 기분 좋은 듯이 눈을 반쯤 감은 채로 은근히 정수리를 이쪽으로 내밀었다.

그렇게 적당히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금은 긴장이 완화된 것을 확인했을 때 다시 입을 열었다.

“손.”

“…손.”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내 말을 따라 하며 그녀는 제 오른손을 펼쳐 나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손바닥을 붙잡고 그 위에다가 천천히 마대륙의 문자를 써 내려갔다.

우선은 놀라지 않도록 소리 내고 듣는 건 어려워 잘 못 하지만, 그래도 기억력은 좋아 이렇게 글로는 가볍게 소통할 수 있다고.

“……뭐야. 우릴 위해서 글까지 배운 거야?”

다행히 손바닥에 적어낸 문장을 제대로 이해한 제노아는 약간의 착각과 함께 조금 감동받은 얼굴로 반대쪽 손을 머뭇거렸다.

그 귀여운 행동에 나는 얼른 그녀처럼 내 손을 펼쳐 내밀었고, 제노아는 잠깐 내 눈치를 살피다가 내 손바닥에다가 슥슥 글을 적어 나갔다.

-나도 열심히 글 배우고 있으니까. 내가 더 노력할게.

“…….”

정확히 전달된 게 맞는지 내 눈치를 살피면서도 수줍은 듯 뺨을 붉히는 제노아.

그에 나는 제노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여 줬다.

“…내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빨리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말을 트던지 해야지 젠장.”

조금 더 그녀의 귀여운 반응을 즐기고 싶었지만, 시간은 유한하기에 나는 다시 그녀의 손바닥을 붙잡고 오늘 그녀에게 부탁할 것을 끄적였다.

“…혈도를, 뭐?! 아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

점혈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잠깐 발끈했지만, 셋째 누님께 배웠다는 말을 덧붙이자 진실의 미간을 한 채 고민하다가 결국 납득해버리는 그녀.

다행히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기에 나는 마저 할 말을 끄적였다.

혈도를 막아 감각을 차단했지만, 셋째 누님의 마력이 흘러들어와 내 힘을 잠식하고 막힌 혈을 뚫었다…… 정도로 이야기를 적당히 각색해서 전달했다.

거기에 통제력을 기르는데 도움을 받고 싶다는 말까지 덧붙여서.

-좋아.

다행히 제노아는 식당에서 했던 대답을 지키려는 건지, 내 부탁을 쉽게 받아들였다.

문제는.

“제노아?”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하는 그녀를 불렀다.

그러자 달랑 속옷 한 장씩만 남겨둔 그녀가 잔뜩 붉어진 얼굴로 내 손을 낚아채며 손바닥에 글을 끄적였다.

-네가 통제해야 하는 부위가 생식기라면서? 네 생식기는 너무 커. 손으로는 다 못 감싸. 그러니까 다 감쌀 수 있는 신체 부위를 쓰려는 것 뿐이야. 절대로. 절대로 다른 의미는 없다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나는 강렬하게 쏘아보는 그녀의 시선에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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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G크리티카//오늘도 감사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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