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블랙기업 스미스-761화 (761/771)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제노아와 넬라의 자존심 대결.

그리고 머릿속에 들려온 시스의 깊은 한숨.

분명 잘 못 한 건 없다고 생각되는데 어째선지 시스의 한숨이 들려오자 입속이 바짝 말라왔다.

당황한 기색을 보일 순 없었기에 ‘내가 이렇게 힘을 줘서 지켜보고 있다.’라는 의미를 담아 두 눈에 힘을 줘 제노아와 넬라의 젖가슴에 시선을 고정했다.

‘어디서부터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조금의 오해도 없으니 안심하시길. 그러니 변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

틈날 때마다 나를 매도하기 바빴던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시스의 대답은 너무나도 쌀쌀맞았다.

[ 저는 항상 이랬습니다. 그보다 이쪽의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

어떻게 이 분위기를 풀어나가야 하나 생각하고 있던 나는 이어지는 시스의 목소리에 얼른 헛생각들을 털어냈다.

‘드디어 신전이 알아차렸데?’

[ 신전은 아직까지 조용합니다. 네메아가 징표를 사용해 아가사는 물론이고 다른 교황의 집무실까지 살폈지만. 각 왕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험가들의 습격과 관련된 문서는 찾지 못했다더군요. ]

‘징표까지 써서 털었다면야……. 그런데 라피테라처럼 영향력이 강한 신이라면 계시 같은 걸로 알려줄 수도 있지 않나?’

[ 가능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조용한 걸 보면 그들의 입장으로는 아직은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은 거겠죠. ]

[ 또, 계시를 내리기 위해서는 신성의 일부를 영구적으로 잃게 되기 때문에 정말로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면 계시는 내리지 않을 거로 예상됩니다. ]

‘아니, 신전이 부서지고 있는데 그게 큰 일이 아니면 도대체 뭐가 큰일이라는 거야?’

[ 글쎄요. 수많은 별장 중 몇 개가 부서졌다고 해서 막대한 피해를 입는 건 아니죠. 다소 기분이 나쁠 순 있겠지만, 딱 그 정도일 겁니다. ]

가진자들의 사고방식이란 나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이른 것 같다.

[ 의외로 막상막하군요. ]

‘그러게.’

서로의 가슴을 족쇄로 뭉그러트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마력을 불어넣으며 상대방의 마력을 밀어내고 있는 두 사람.

하지만 대결이 시작되고 약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둘의 족쇄는 거의 처음 크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아니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쪽 상황이 심상치 않다면서? 뭐가 심상치 않다는 건데?’

[ 집중은 하고 있군요. ]

‘……아무리 가슴이 좋아도 때는 가립니다.’

아주 흐릿하게 ‘글쎄요.’라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눈물을 삼키며 못 들은 척했다.

[ 저기 제노아라는 아이로부터 경계의 숲에 저 아이의 부족이 향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었죠. ]

[ 그래서 네메아를 시켜 매일 숲 주변을 살펴보게 시켰습니다. 그리고 어제 새벽 꽤 다양한 종족의 마인들이 숲 초입에 진을 치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죠. ]

“…….”

생각보다 더 좋지 않은 소식에 들이마셨던 숨을 토해내며 턱을 쓸어내렸다.

제노아의 부족이 경계의 숲으로 향하고 있단 소리를 들었던 날부터 ‘설마?’라고 생각하며 구석 어딘가에 처박아 뒀던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직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 안 했지.’

[ 당신의 의견을 먼저 구하고자 연락드린 겁니다. ]

지금도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고 있는 둘에게는 미안하지만, 더 이상 그 둘의 대결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마인들이 경계의 숲 초입에 진을 친 게 결코 이쪽에 좋은 이유는 아닐 거란 직감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내게 그 사실을 숨길 필요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동시에 시스가 이 사실을 아내들에게 먼저 이야기하지 않은 것 역시 냐호와 아멜라 누님의 존재 때문일 터.

‘…아드리안도 배제하는 게 맞겠지.’

[ 그 아이 역시 수인이니까요. ]

리타와 몽마들이 여왕인 셋째 누님께 절대 복종하는 것처럼, 수인들과 레이벨 누님의 관계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아무리 내게 마음을 준 아드리안이라도 레이벨 누님의 지시는 거부하기 힘들겠지.

과거, 황녀님의 침실에서 벌벌 떨며 레이벨 누님에게 배를 쓰다듬 받던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숨기는 게 있을 순 있지만, 그렇다고 누님이랑 냐호가 겨울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에 협력할 거라고는 생각 안 해.’

누군가를 믿으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믿어주라는 말이 떠올랐다.

‘두 사람한테 먼저 이야기 꺼내 봐. 나는 모르는 걸로 하고. 만약 숨기는 게 없다면 모두에게 이야기하고 무슨 일이 생겨도 대처할 수 있게 준비 부탁해.’

[ 황성에 있는 아이들은 어찌할 겁니까? ]

‘일단은 마인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정보만 알려줘. 우리랑 다르게 그쪽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쉽게 자리를 떠날 수 없잖아. 그러니까 아드리안한테 무슨 일이 있어도 마르비우스는 꼭 지켜라고 전해줘.’

[ 그러죠. 제가 할 말은 끝났습니다만,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

시스의 물음에 잠깐 고민하던 나는 어제 오늘 고민하던 것을 그녀에게 물었다.

‘신성력을 좀 더 잘 다루고 싶은데 무슨 방법 없을까? 그리고 신성력이 마력보다 한 차원 높은 힘이잖아. 그런데 엘리스 누님의 마력에 밀리더라.’

[ 서로 연관이 있는 질문이군요. ]

‘뭐, 그렇지?’

[ 사원 서민수. ]

시스의 입을 통해 오랜만에 들어보는 내 본명은 무척이나 어색하게 다가왔다.

시스가 육체를 갖고 우리가 관계를 맺은 이후로 시스는 내 이름을 부르기보다는 ‘당신’이라고 부르는 걸 더 선호했으니까.

[ 당신의 신성을 이용해 그 기묘한 기술들을 사용할 때, 어떤 방법으로 신성을 다루죠? ]

‘어떻게냐고 물어도…… 그냥 의지를 담아서 느낌적인 느낌으로 움직이면 상상한 대로 결과물이 나오거든.’

[ 방금 당신이 당신 질문에 대한 답을 말했군요. ]

‘내가?’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나는 잠깐 턱을 쓰다듬으며 조금 전 내가 내뱉은 대답을 곱씹었다.

‘…의지. 의지구나?’

속 시원하게 답을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과거에도 시스는 답을 알고 있음에도 컴퍼니의 제약으로 한참이나 내게 돌려 이야기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당신의 신성이 비록 어중간한 반쪽짜리일지라도, 당신 말대로 신성은 신성. 마력보다 한 차원 높은 힘인 건 변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이 그 몽마의 마력에 밀린 건 당신이 무의식적으로 그 몽마에게 패배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죠. ]

‘…아니라는 말은 못 하겠네.’

마음만 먹으면 내 생각은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스에게 속내를 숨긴다는 건 오히려 시스를 기만하는 짓이었으니.

[ 온갖 제약이 달라붙는 마력과 다르게 신성은 오로지 그것을 품고 있는 존재의 의지에만 영향을 받습니다. 아무리 한 차원 높은 힘이라지만 그 주인이 패배를 받아들인다면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

‘으음…….’

[ 물론,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당신의 서사는 아무래도 조금 특이한 케이스이니 말이죠. 보통은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겨 위대한 승리를 쟁취하거나 깨달음을 얻은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을 다소의 편법으로 손에 넣었으니. ]

‘그, 그만…….’

더 이상 매도당했다가는 내 생명력이 버티지 못할 거 같다.

[ 아무튼. 정답은 알려드렸으니 나머지는 당신 하기 나름입니다. 그리고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저 하늘 위의 존재들이 오만한 것 역시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문제의 또 다른 정답이라는 것만 알아두세요. ]

‘…넹.’

오만하다는 건 그만큼 타인을 무시하고 깔본다는 소리다.

즉, 자신이 더 대단하고 위대하다고 생각하기에 오만할 수 있는 것이다.

‘고마워. 사실 조금 막막했는데 덕분에 어떤 식으로 나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은 거 같다.’

[ 흥. 감사할 것 없습니다. 본래 제 역할이니까요. ]

‘그렇지. 시스는 내 유일한 도우미니까.’

잠깐의 침묵.

만약 시스템과 연결된 상태였다면 ‘…….’이런 메시지 창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일단 고생 좀 해줘. 나도 더는 뜸 안 들일 테니까.’

둘을 부추겨 무언가를 알아내겠다는 생각은 깔끔하게 접기로 했다.

또한, 저 둘을 완벽히 내 여자로 만든 후에 상황을 설명하겠다는 것 역시.

만약 경계의 숲에 진을 친 게 미노타족 하나였다면 조금 더 신중하게 저 둘의 마음을 얻는 쪽을 택했을 테지만, 네메아의 보고에 의하면 꽤 많은 수의 마인들이 진을 치고 있다 했다.

어디까지나 예상이지만, 넬라는 물론이고 앞으로 도착할 마인 여성들의 부족들 전원이 경계의 숲으로 향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조심하세요. ]

‘걱정마. 어쨌든 내가 필요하다는 건 분명하니까.’

그러니 날 쉽게 헤치진 못할 거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당사자들에게 물어볼 생각은 아니다.

그 전에 눈앞에 있는 둘에게 상황을 조금 물어보는 게 먼저일 테니.

‘시스야. 그러면 나중에 또 연락해.’

[ 당신. ]

‘응?’

고개를 들려던 나는 시스의 부름에 다시 집중했다.

[ 미리 말해두지만, 저는 지금의 조금 멍청한 당신이 좋습니다. ]

“응?”

전혀 생각지도 못한 시스의 고백 아닌 고백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내고 말았다.

동시에 제노아와 넬라의 시선이 느껴졌다.

돌아오지 않는 시스의 대답에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들었고.

여전히 힘겨루기를 유지한 채로 이쪽을 곁눈질 중이던 두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더는 싸움을 붙일 이유도, 강한 사람을 찾을 필요도 없어졌기에 나는 둘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그런데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나는 눈을 크게 떠야만 했다.

“끄으윽?!”

“하으읏!!”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고 있던 둘의 족쇄가 순식간에 줄어들어 서로의 가슴을 옥죄였고,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무릎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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