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1화 (1/130)

1. 악(惡)의 회귀 (1)

바람이 불었다.

몸을 감싸는 바람을 느끼며, 김현성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위를 바라보았다.

‘……대체 왜.’

옥상 위.

벽에 달라붙어 자신을 내려다보는 친구들의 얼굴이 보였다.

친구라기에는 그를 그동안 괴롭혀 왔던, 소위 이 학교에서 일진이라고 불리는 쓰레기 같은 녀석들이었다. 김현성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3학년이 되는 순간까지 그들의 괴롭힘에 시달려 왔다. 매일 지옥 같은 나날이 펼쳐졌지만, 악착같이 버텨 내며 학업을 끝까지 이어 나갔다.

곧.

졸업이었다.

그런데 대체 왜.

자신이 옥상에서 떨어지고 있는 걸까.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김현성은 크게 모난 사람도 아니었고, 학업과 친구들과의 관계에도 충실했으며, 운동도 곧잘 잘하고 싸움도 다른 친구들에게 얕보일 만큼 못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이해가 되질 않았다. 정말 열심히 살아온 자신이, 어째서 건물 옥상에서 떨어지는 이런 참담한 신세가 되었는지를.

확실한 건.

콰득.

퍽.

자신은 죽었다는 것이다.

* * *

정확히는 죽지 않았다.

간신히 의식을 차렸을 때, 김현성의 귓속으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절망적인 현실을 말해 주었다.

“할머니. 벌써 석 달째예요. 같이 간병하는 입장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조금 그렇지만, 식물인간 판정을 받은 환자가 깨어나는 경우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마음을 내려놓으세요. 아직 할머님에게는, 멀쩡히 살아 있는 다른 손자도 있잖아요.”

“그게 무슨 소리야! 멀쩡히 살아 있는 손자라니! 그럼 이 아이가 이미 죽은 아이라는 소리야 뭐야?!”

“아니, 그런 소리가 아니잖아요.”

시끄러웠다.

옆자리 간병인으로 추측되는 사람과 설전을 벌이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김현성은 자신이 식물인간이라고 말하는 상태임을 알았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옥상에서 떨어진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잔병치레도 하지 않던 자신이 식물인간이 되었다니.

처음에는 현실을 부정했다.

자신은 의식이 멀쩡하지 않은가.

금방 몸의 통제권을 얻어서 눈을 뜰 수 있다고 믿었건만,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칠흑같이 어두운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분명히 뇌사(腦死)는 아니었다. 자신을 만지는 감각, 귓속으로 들려오는 목소리, 그리고 머릿속으로는 생각도 할 수 있었지만, 그 외에 아무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참담했다.

절망적이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에 귓속으로는 다양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우리 예쁜 현성아. 이만 일어나야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어.”

“흑흑흑, 현성아. 빌어먹을 연놈들이 너를 이만 포기하란다.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니. 부모를 잃고 버려진 너를 내가 거두어 키운 세월이 얼만데, 이 할미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단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살아 있다는 신호를 보내다오.”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일찍이 사고로 부모를 잃었던 김현성에게, 할머니는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 그런데 할머니가 매일같이 병실을 찾아와 울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평소에는 잘 울지도 않던 강인한 사람이었건만, 엉엉 울어대는 그 목소리에 김현성은 미칠 것만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할머니가 없을 때면, 앳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 나 더는 버티기가 힘들어. 형을 괴롭히던 애들이 나까지 괴롭히고 있고, 할머니는 형의 병원비를 내겠다고 식당 일을 다니시다가 허리를 다쳤어. 진짜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이런 꼴이 될 거면 차라리 죽어 버리지. 그냥 속 편하게 죽었으면 우리가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 거 아냐.”

“제발 일어나. 나 계속 이렇게 살아도 좋으니까, 일어나기라도 하라고.”

하나뿐인 동생.

김현진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래도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들이 김현진은 해하지 않도록, 같은 학교에 다니는 와중에도 절대 현진이를 아는 척하지 않았다. 그런데 동생마저 괴롭히고 있다니. 정신이 완전히 붕괴되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조차도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서, 매일같이 가족들이 괴로워하는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머릿속으로는 수도 없이 죽음을 택했다.

하지만.

죽을 수 없었다.

식물인간이란 그랬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식물인간이었고, 김현성의 정신은 그렇게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시간이 흘렀다.

하루, 이틀.

일주일, 이주일.

그리고…… 일 년.

기나긴 하루와는 다르게, 시간은 꾸역꾸역 지나가고 있었다.

* * *

부정하고.

분노하고.

타협했다.

시간이 흐른 만큼 이제는 현실을 받아들일 시기가 찾아왔지만, 타협의 단계에 이르렀던 김현성의 정신은 다시 분노로 되돌아갔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정신이 마모되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대체 뭘 잘못했단 말인가.

고등학교 1학년.

누구보다도 학교생활을 잘했다고 생각했던 김현성은, 단 한 번의 시비로 인해 일진 무리에게 찍히는 신세가 되었다. 사실 별일도 아니었다. 그날의 일로 일진 무리는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김현성을 집요하게 괴롭혔고, 그것이 무려 고등학교 3학년까지 이어졌다.

전학은 택할 수 없었다.

김현성이 살던 지역에는 학교를 옮길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형편에 이사는 상당히 부담되는 선택이었다. 그래서 고통스러운 현실을 참아 냈다. 딱 고등학교 3년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으로, 매일 멍이 든 몸을 옷으로 애써 숨기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 결과가.

이 신세였다.

고등학교의 마지막 관문을 앞둔 상황에서, 일진들의 부름을 받은 김현성은 옥상에서 추락하고 말았다.

화가 났다.

분노가 일었다.

분노의 대상은 명백했다.

자신을 괴롭힌 모두.

그들을 방관한 어른들.

그들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다.

정신이 마모되었다.

어른들을 공경하고 착하다는 말을 종종 들어 왔던 김현성의 정신이, 점점 악에 받쳐서 부정적인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시간을 되돌릴 기회가 생긴다면 자신은 어떻게 살아갈까. 이렇게 당할 줄 알았다면 도망쳤을 것이다. 도망칠 수 없다면, 차라리 그들을 먼저 죽여 버릴 것이다.

일 년.

이 년.

삼 년.

시간은 빛처럼 지나갔다.

동생은 발길을 끊었고, 할머니가 쓰러지면서 간병인이 웃고 떠들어 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와중에 환자들의 상태는 신경 쓰지 않듯 크게 틀어 놓은 TV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톱스타 A씨가 스캔들로…….]

[국회의원 김판호가…….]

[충격적인 소식입니다. 학교 폭력을 주도하던 세력의 실체가 밝혀졌습니다. 그들은…….]

유일한 삶의 낙이었다.

세상의 소식을 듣는 것.

그중 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김현성은 생각했다.

‘내게 만약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반드시 나를 이렇게 만든 녀석들을 모조리 파멸시켜 버릴 거야.’

악에 받쳤다.

사람 좋은 소년은 그곳에 없었다.

하지만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김현성은 머릿속으로 수도 없이 과거를 되새겼다.

그때의 일을 너무나도 후회하기에, 만약 그날로 돌아가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하게 계획했다. 그것은 망상에 불과했다.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헛된 꿈. 그 사실을 알면서도, 식물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자신으로서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할머니는 대단한 분이셨다.

그분이 돌아가시는 10년 뒤까지, 식물인간 상태인 김현성을 끝까지 붙들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김현성의 정신은 완전히 무너졌다.

정확히는, 간신히 붙잡고 있던 정신을 놓아 버렸다.

이제는.

미치지 않고서는 살 수 없었다.

* *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제는 시간의 개념조차 잊어버렸다.

의식이라는 것이 깨어났을 때부터 다시 어둠으로 물들 때까지, 김현성은 머릿속으로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미친 듯이 패 버렸다. 얼굴에 피가 튀고, 살려 달라고 말하는 목소리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그들이 아무리 아프다고 한들 식물인간이 되어 버린 자신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니까. 10년간 고통받다가 돌아가신 할머니에 비하면, 그들은 정말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일 테니까.

미쳐서 살았다.

차라리 이제는 누군가, 자신이 더는 생명을 연장하지 못하도록 이 삶을 끊어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현성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곳에서 누군가를 만났고, 무언가 대화를 나누었다.

만족스러웠다.

꿈에 불과하다고는 하나,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김현성은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김현성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을 마주했다.

* * *

짹짹짹.

새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자 나무 한 그루가 보였고,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돌리자 분필을 사용하는 칠판이 있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기본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 광경을 살면서 수도 없이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으하하하하.”

“거기 서, 미친 새끼야.”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옆을 바라보자,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남학생 둘이 소리를 질러 대며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로 인해 교실이 엉망이었다. 의자가 넘어지고 책상이 뒤엎어지는 상황에, 자리에 앉아 있던 여학생들이 제발 그만하라며 소리를 질렀지만 남학생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쿵쾅쿵쾅쿵쾅.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마치 자신의 귀에 심장 소리가 들릴 것처럼, 김현성은 자신의 감각이 주는 정보들을 믿을 수 없었다.

‘……정말 과거로 돌아왔다고?’

어제.

김현성은 꿈을 꾸었다.

그것은 망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꿈에서 떠들어 대던 말들은 전혀 이룰 수 없는 것이었고, 사실 이와 같은 망상을 이루는 꿈들을 수도 없이 꾸었었다. 김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볼을 꼬집었다. 살짝 통증이 있었지만, 이 정도로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눈에 보이는 샤프를 그대로 허벅지에 찔러 넣었다.

푹.

아팠다.

샤프를 들어 올리자, 끝에서 흘러내리는 핏방울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도, 현실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핏방울에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내가 정말 돌아왔다는 거지.’

회귀(回歸).

확실했다.

허벅지를 자극하는 고통.

주변의 풍경.

다른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간절히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평화로운 현실을 깨부수는 소리가 들렸다.

콰앙!

“이런 씨발 새끼가!”

격한 목소리였다.

무언가가 땅바닥을 구르고.

그것을 향해 내뱉는 욕.

교실에 있던 학생들이 갑자기 침묵에 물들었다.

여학생들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추격전을 멈추지 않았던 남학생들도, 교실 뒤편의 상황을 살피더니 은근슬쩍 복도로 피신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멀어지지는 않았다. 소란을 듣고 몰려드는 학생들처럼, 그들은 복도에서 어떤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 어린 눈길을 보였다.

“개같은 새끼가 뭐? 이제는 알아서 하라고? 씨발련이, 알아서 할 거면 내가 너한테 시켰겠냐.”

퍽퍽퍽.

폭력의 소리였다.

익숙했다.

고통에 찬 신음, 교실이 떠나갈 듯한 욕설.

쿵쾅쿵쾅쿵쾅.

김현성은 심장이 폭발할 것처럼 뛰었다.

이 상황.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폭력에 시달리기 시작했던 시발점.

그랬다.

자신이 간절하게 바라 왔던 그 순간에, 자신은 고등학교 1학년의 김현성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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