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악(惡)의 회귀 (2)
그때의 일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점심시간이었다.
밥을 배부르게 먹고 온 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고, 김현성도 그러한 풍경에 녹아들어 있는 한 명의 학생에 불과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 채 친구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게임에서 등급은 어디인지, 다음 과목 숙제는 끝마쳤는지 등에 대해서 떠들어 대던 그때, 김현성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콰앙!
“이런 씨발 새끼가!”
격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현성은 선 채로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폭력적인 광경이 두 눈에 빨려 들어왔다.
욕설을 내뱉은 주인공은 박민철이라는 녀석이었는데, 뒷자리에서 수업을 건성건성 들으며 매일 친구들을 괴롭히는 전형적인 일진에 부합하는 존재였다. 그의 발밑에는 조금 살집이 있는 친구가 널브러져 있었다. 바닥에 넘어지며 안경이 삐딱하게 간신히 코에 걸쳤고, 이정민이라는 이름의 친구가 어떻게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위로 무차별적인 발길질이 가해졌다.
“개같은 새끼가 뭐? 이제는 알아서 하라고? 씨발련이, 알아서 할 거면 내가 너한테 시켰겠냐.”
퍽퍽퍽.
참담한 광경이었다.
박민철은 이정민이 소리를 지르든 말든, 그의 얼굴과 몸 곳곳을 사정없이 밟아 버렸다.
대충 둘의 상황은 알았다.
박민철은 레전드 온라인이라는 게임을 즐겨 했는데, 캐릭터를 육성하는 과정을 이정민에게 모두 떠안겼다. 문제는 이정민이 학교에서 소위 수재라고 불리는 친구라는 것이었다. 게임을 시작하면서 이정민의 성적은 떨어졌고, 이제는 돈을 들여 아이템까지 구매하라는 요구에 이정민은 처음으로 반항했다. 나름대로 용기를 내고 박민철의 얼굴을 올려다보았으나, 그가 상상했던 그림과는 다르게 곧바로 뺨을 얻어맞고 땅바닥을 구르고 말았다.
퍽퍽퍽.
“그, 그만! 다, 다시는 안 그럴게.”
비명이 울려 펴졌다.
사실 김현성으로서는 대놓고 행해지는 폭력을 처음 보았다.
웬만해서는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지만, 폭력의 대상이 이정민이라는 사실을 넘어갈 수 없었다.
최근 며칠.
이정민과 같이 공부를 해 왔다.
자신에게 이것저것을 알려 주던 이정민의 모습에 그냥 방관할 수만은 없었다.
김현성이 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갑자기 대화를 나누던 친구가 손목을 붙잡았다.
탁.
“야, 하지 마.”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지랄. 쟤 박민철이야. 쟤 괜히 건드렸다가 피곤해질 거라고.”
무슨 말인지 알았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김현성은 그런 아이였다.
평소에 체육도 곧잘 잘하고 신체적인 스펙도 뛰어났던 그는, 박민철 정도에 굳이 겁을 먹지 않았다. 학기 초반에 싸움을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남학생들 특유의 서열 싸움에서 자신을 증명했던 김현성에게, 박민철의 이름값이 주는 공포는 그리 크지 않았다.
손을 뿌리쳤다.
정확히는 친구가 손에 힘을 풀자, 김현성은 교실 뒤편으로 걸어가더니 박민철 옆에 섰다.
“그만해.”
우뚝.
“……뭐?”
박민철의 시선이 김현성을 향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뭔가 묘했다.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듯한, 사나운 시선이 김현성을 훑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재밌네. 너, 이 상황 감당할 수 있겠냐?”
그때는 몰랐다.
그 웃음의 의미를.
선생님이 오는 바람에 자리는 대충 마무리되었지만, 그날 이후로 박민철을 필두로 한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싸움을 잘하는 김현성조차도 감당하지 못할. 무리를 형성한 집요한 괴롭힘을.
* * *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회상을 모두 끝냈을 때, 김현성의 눈앞에는 그때와 똑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만하지.”
“……뭐?”
박민철의 시선이 김현성을 향했다.
그가 웃었다.
김현성의 기억에 있는 그 모습처럼, 그는 김현성을 사납게 훑으며 비릿하게 말했다.
“재밌네. 너, 이 상황 감당할 수 있겠냐?”
박민철이 몸을 돌렸다.
이정민을 때린다고 굽었던 등을 펴자, 180cm 후반대의 거대한 피지컬이 김현성을 내려다보는 모습을 보였다. 거칠게 자란 머리와 까무잡잡한 피부. 박민철은 외관만으로 사람을 압도할 만한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현성아. 우리가 널 괴롭히지 않는다고 해서 이정민이랑 네가 다르다고 생각하지? 착각하지 마. 너 따위는…….”
짜악!
“헉.”
“헐.”
고개가 홱 돌아갔다.
지켜보던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듯 신음을 삼켰다.
김현성이 박민철의 뺨을 날렸다.
순간 당황한 박민철이, 얼굴이 붉어진 채로 고개를 다시 돌렸다.
“이런 씨발 새…….”
콱.
빠악!
박민철의 머리채를 잡아 그대로 책상에 찍어 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는데도, 김현성은 어떠한 말을 덧붙이지도 않고 폭력을 행사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박민철의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책상과 박은 얼굴이 떨어지면서 진득한 핏물이 딸려 왔고, 그것만으로도 모자란 모양인지 김현성은 곧바로 박민철의 뺨을 수차례 날렸다.
짜악!
짜악, 짜악, 짜악!
모두가 입을 떡 벌렸다.
머릿속으로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김현성.
친구들에게 그는 절대 이런 이미지가 아니었다.
학교를 성실하게 다니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은, 그러면서도 운동도 잘하는 그야말로 만능이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인싸. 현재 이 반의 반장을 맡을 정도로 성실하고 바른 이미지를 대표하는 존재가 김현성이었는데, 박민철에게 폭행을 가하는 그의 모습은 그와 달랐다.
이 순간.
이 상황.
김현성은 얼마나 되새겼는지 모른다.
친구들은 박민철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겼지만, 사실 그는 그렇게 강한 인물이 아니었다.
‘피지컬만 믿고 싸우는 전형적인 스타일. 맞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선공을 내주면 그대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녀석이지.’
말을 걸었던 그때부터.
머릿속으로 지금과 같은 상황을 그렸다.
바로 옆에 책상이 있다는 사실을, 뺨을 얻어맞은 박민철이 반응하려는 순간 머리채를 잡아채서 책상에 찍어 버리겠다는 계산을. 절대 우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박민철의 얼굴에서 딸려 나오는 피를 보면 웬만해서는 폭력을 멈출 만도 하지만, 김현성은 구타를 멈추지 않았다.
탁.
콰당!
다리를 걸었다.
그대로 넘어지는 박민철의 모습에, 김현성은 곧바로 머리를 밟아 버렸다.
퍽.
머리가 사물함에 처박혔다.
박민철조차도 마치 이정민처럼, 몸을 웅크린 채 막는 것밖에 하질 못했다.
박민철은 알까?
자신이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하루 이틀이 아니다.
식물인간으로 살면서 무려 십수 년간 켜켜이 쌓여 오는 삶에, 김현성은 미친 사람처럼 박민철을 구타하는 순간을 머릿속으로 되새겼다. 그는 이미 김현성의 세계에서는 수도 없이 죽었던 존재였다. 이 구타로 인해 그가 죽든 말든. 그딴 사실은 개의치 않았다. 얼굴을 들면 얼굴을 걷어차 버렸고, 막으려고 손을 들면 손을 부러트릴 작정으로 짓밟았다.
그때였다.
콰앙!
“멈춰, 이 씨발 새끼야!”
“민철아!”
의자 하나가 사물함에 처박혔다.
김현성은 그 공격을 피하지 않았고, 간발의 차이로 스쳐 지나간 공격에 소리가 들린 방향을 보았다.
교실 입구.
학생들로 득실거리는 복도를 뚫고 세 명의 남학생이 분노한 얼굴을 보였다.
각각 정민호, 강창석, 조용택이라는 녀석이었다.
박민철과 같은 무리의 녀석들이었는데, 그들은 박민철이 구타당하는 장면을 확인하자마자 의자를 던지면서 중간에 개입했다. 변수였다. 일 대 다수가 형성되는 상황에 당황할 법도 하건만, 김현성의 표정은 담담했다.
예상했다.
이들이 나타날 것을.
애초에 괴롭힘도 집단으로 이루어졌기에, 박민철을 건드린 이후의 상황은 예상 범주에 있었다.
그렇기에.
“안 멈추면?”
김현성은 싸늘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 * *
패거리 중 하나.
정민호가 당황한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
“……이 새끼가 진짜 미쳤나.”
당혹스러웠다.
박민철 패거리.
그들이 1학년을 먹은 짱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 다닐 만큼 나름대로 세력을 형성했다. 그렇기에 이 상황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박민철을 건드린다면 그 패거리가 나서게 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 김현성은 조금도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생각이 많은 정민호와는 다르게 의자를 던졌던 강창석은, 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당장에라도 튀어 나갈 것 같은 기세를 보였다.
“돌았네. 그래, 오늘 죽여 줄게.”
그의 체구도 상당했다.
한때 유도를 했던 강창석이 성큼성큼 다가가자, 김현성도 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헛웃음이 나왔다.
일 대 다수인데도 물러나지 않는 모습에, 강창석은 정학을 맞더라도 사고를 제대로 치겠다고 마음먹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때였다.
“선생님이다!”
“해산! 해산!”
복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학생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에, 강창석은 박민철의 모습을 힐끗 살피더니 김현성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야. 너 X된 줄 알아. 수업 끝나자마자 찾아올 거니까, 어디 도망칠 생각하지 마.”
“기대해도 좋아.”
더는 싸울 수 없었다.
선생님의 존재도 존재지만, 김현성을 제대로 조지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했다.
박민철 패거리는 그렇게 물러났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박민철은 자리로 돌아갔고, 그는 수업 내내 선생님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 * *
일련의 상황.
박민철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선공은 생각지도 못했기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닥에 웅크린 채로 무차별적인 구타를 당하고 있었다. 수업 내내. 박민철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김현성에게 맞았다고 생각하니, 이 수모를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진짜 죽여 버린다.’
빠드득.
이를 악물었다.
사실 박민철 패거리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그가 아니었다.
양아치끼가 다분해서 남들을 많이 괴롭히기 때문에 박민철 패거리라고 불릴 뿐, 실질적으로 싸움 순위를 매기자면 강창석이 더 강했다. 수업이 끝나면 자신의 패거리가 전부 교실로 몰려들 터. 김현성으로서는 절대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사실 자신도 방심하지 않았다면 김현성과 같은 범생이에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가장 앞자리.
김현성이 있었다.
수업을 집중해서 듣는 것 같은 그의 뒷모습은, 지켜보는 박민철의 속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진짜 저 새끼가 돌았나.’
이해가 되질 않았다.
평소에 알던 김현성과는 달랐다.
반장이랍시고 이 일 저 일 개입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신과의 선을 지켜서 굳이 괴롭힐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보니 그 선이라는 것은 본인만의 생각이었다. 김현성은 언제든 선을 넘을 그런 존재였지만, 그동안 박민철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에 둘은 충돌할 일이 없었다.
확실한 건.
선을 넘었다.
자신이 김현성에게 짓밟힌 상황을 뒤엎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처절한 복수를 행해야만 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반 죽여 주마.’
때를 기다렸다.
통증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선생님이 말하는 설명도, 얼굴에서 밀려오는 통증도, 김현성에 대한 복수 외에는 중요하지 않았다.
길었던 수업이 끝났다.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나갔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 순간, 박민철은 당혹스럽게도 시야를 가득 메우는 운동화를 발견했다.
빡.
콰당!
얼굴이 걷어차였다.
바닥을 나뒹군 박민철은, 강한 충격에 머릿속이 완전히 뒤엉켜 버렸다.
그때였다.
우악스럽게 딸려 가는 머리채에, 박민철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김현성의 눈을 마주쳤다.
“하던 건 계속해야지, 안 그래?”
소름이 돋았다.
확실했다.
이 녀석은 다른 녀석들과는 다르게, 집단을 상대한다는 사실에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