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악(惡)의 회귀 (3)
그 시각.
김현성의 반은 수업이 끝난 것과는 다르게, 박민철 패거리는 아직도 교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다들 명심해. 오늘 수업 내용은 이번 중간고사에…….”
일명 박찬후라고 불리는 국어 선생님이었다.
말을 한번 시작하면 끝이 보이지 않는 그 선생님은, 종이 울렸는데도 불구하고 꿋꿋이 하던 말을 이어 나갔다. 박민철 패거리로서는 속이 타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김현성을 짓밟아 버릴 생각이었는데, 수업이 끝나질 않자 짜증이 치밀었다.
“진짜 국어 새끼. 개짜증 나네.”
“그러니까. 지들도 퇴근 늦게 하라고 하면 짜증 낼 거면서, 왜 수업 시간은 지키질 않는 거야.”
교실 뒤편.
박민철 패거리가 불만을 토로했다.
교실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끗 살핀 정민호는, 김현성의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런데 김현성, 그 새끼는 약이라도 빤 거 아니야? 일이 쉽게 풀릴 줄 알았는데, 거의 뒤가 없는 사람처럼 덤벼들었잖아. 혹시 정보가 새 나가기라도 한 건가.”
“그럴 리가.”
조용택이 고개를 저었다.
박민철과 김현성의 분쟁.
그건 우연이 아니었다.
김현성이 박민철에게 시비를 건 것은 맞지만, 애초에 박민철 패거리는 박민철을 내세워서 김현성을 짓밟아 버릴 의도였다. 그런데 김현성이 예상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머릿수에 짓눌려 순순히 눈을 깔아야 정상인데, 강창석이 다가가는 상황에도 전혀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예상 밖.
계산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정민호는 김현성과 있었던 일을 곱씹으며 사나운 눈빛을 보였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김현성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우리를 무시했어. 만약 그따위 태도를 그냥 방관한다면 애들이 우리를 무시하게 되겠지. 그러니까 부탁을 받았든 뭐든, 그냥 확실하게 짓밟아 버리자. 김현성이 다시는 그따위 건방진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지 못하도록.”
“당연하지. 씨발련이, 아주 죽여 줄게.”
강창석이었다.
한번 부딪칠 뻔했던 그로서는, 김현성을 짓밟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올랐다.
지루했던 수업에도 끝은 있었다.
“그럼 이것으로 수업을 종료하겠다.”
서두르지 않았다.
국어 선생님이 나가는 모습에, 박민철 패거리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의자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가자.”
어차피 도망칠 곳은 없다.
학교는 제한된 공간이다.
학생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김현성은 그 어디에도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박민철 패거리의 반은 8반.
김현성은 1반이었다.
거리가 제법 있기에 천천히 걸어가는데, 정민호의 시선에 1반 주변으로 학생들이 몰려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불길한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머릿속으로 번뜩 박민철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정민호가 표정을 와락 일그러트리며 먼저 뛰어갔다.
“씨발, 개같은 새끼가!”
“뛰어!”
달렸다.
그렇게 1반에 도착한 순간, 박민철 패거리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늦었네.”
눈을 부릅떴다.
피로 범벅이 된 박민철이, 김현성에게 멱살이 붙잡힌 채로 축 늘어져 있었다.
* * *
더는 말할 것도 없었다.
상황을 파악할 시간도 없이, 다혈질의 강창석이 갑작스럽게 달려들었다.
“이런 개새끼가.”
타다닥.
빨랐다.
거구의 강창석이 달려오는 그 모습에, 김현성의 머릿속에 익숙한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지난 십 년.
식물인간 상태로 가상의 복수를 수도 없이 행했다.
항상 박민철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바로 강창석이었다.
박민철을 어떻게 쓰러트린다고 한들, 강창석을 필두로 한 박민철 패거리는 웬만한 방법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김현성이 싸움을 제법 잘한다고 해서 일 대 다수를 극복할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은 아니었다. 만약 그 정도의 강자였다면, 3년 내내 박민철 패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수도 없이 실패하는 과정에서, 김현성은 과거의 자신이라면 하지 못할 방법을 떠올렸다.
방법은 간단했다.
확.
빠악.
“크악!”
강창석이 비명을 질렀다.
그가 달려들어서 김현성을 덮치려는 순간, 김현성은 사물함에서 미리 파악해 두었던 자물쇠를 하나 움켜쥐더니 그대로 쇠 부분을 머리에 후려쳐 버렸다. 정정당당? 그딴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김현성은 복수를 행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고, 강창석이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이자마자 그의 머리칼을 붙잡고는 관자놀이 부분에 자물쇠를 연달아 가격했다.
빠악.
빠악, 빠악.
비틀.
눈이 돌아갔다.
아무리 운동을 해 왔던 강창석이라지만, 단단한 쇠로 급소를 공격하자 버틸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
콰직.
머리를 잡아 끌어와 얼굴에 니킥을 갈겨 버렸다.
피가 튀며 강창석의 거구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고, 강창석을 따라 달려들려던 두 명은 순간적으로 몸이 얼어붙는 기분을 느꼈다. 실제로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강창석을 빠르게 제압해 버린 상황에, 김현성은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 새도 없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기회는 지금뿐이다.’
타겟은 조용택이었다.
왜소한 체격의 그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김현성의 태클이 그의 몸을 들이받아 버렸다.
‘체중을 실어 들이받으면 조용택은 버틸 수 없다. 그리고 그의 뒤로 학교 복도가 있다. 바닥에 처박히면, 절대 후속 공격에 반응하지 못한다.’
퍽.
우당탕!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었다.
머릿속으로 복수하는 상황을 수도 없이 되새기며, 김현성은 박민철 패거리를 상대할 최적의 방법을 찾았다. 예상대로 바닥에 처박힌 조용택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가 해롱거리는 사이에 김현성은 그의 얼굴을 무차별적으로 때렸다. 반항하려고 두 손을 휘저어 댔지만, 마운트 포지션(mount position)을 잡은 채로 그를 죽일 듯이 후려쳤다.
정민호?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뒤를 노리든 말든, 일단 강창석에 이어 조용택을 확실하게 끝내야만 했다.
그래야.
수적으로 불리하지 않다.
붉게 물든 김현성의 눈동자는, 조용택의 저항이 잦아드는데도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퍼억!
퍽, 퍽, 퍽!
피가 튀었다.
손이 피로 물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때리던 김현성은, 상대가 더는 저항하지 못하자 주먹을 거두고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후욱, 후욱.”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머릿속으로는 철저하게 준비한 싸움이나, 고등학교 1학년 김현성의 육체는 격렬한 순간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김현성은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을 억지로 억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보았다.
아직.
한 명이 더 남았다.
뒤를 바라보자, 경악으로 얼룩진 정민호의 표정과 그 뒤로 배경처럼 몰려든 다른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 * *
정민호는 경악했다.
격하게 흔들리는 눈동자처럼, 그는 친구들이 순식간에 나가떨어진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김현성이 이렇게까지 강하다고?’
고등학교.
어른들이 보기에 학생들의 소꿉장난일지 모르겠지만, 처음 입학한 남학생들은 서로 치고받으면서 서열을 정리한다. 그 과정에는 김현성도 포함되었다. 성실하고 착한 이미지의 김현성은 일진들과 몇 번 시비가 붙었고, 그때 자신을 증명하면서 괴롭힘의 대상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절대 이 정도는 아니었다.
강창석 한 명을 제압하는 것도 불가능해야 하는데, 김현성은 마치 악귀와도 같은 모습을 보였다.
“끄윽, 끄윽.”
딸꾹질을 내뱉었다.
놀랐다.
김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바라보자,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도망치고 싶었다.
‘절대 이길 수 없어.’
일련의 상황.
이건 괴물이었다.
김현성은 강창석의 머리에 서슴없이 자물쇠를 가격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바닥에 쓰러진 조용택이 기절할 때까지 폭력을 행했다. 적당히 끝내는 법이 없었다. 자신도 친구들과 같은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싸움을 잘하는 정민호가 전의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끝을 봐야지.”
김현성이 다가왔다.
친구들의 피로 물든 그의 모습에, 정민호는 싸우기 위해 자세는 잡았으나 얼굴은 공포로 가득 물들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때였다.
“야, 거기 뭐 하는 거야?!”
사나운 목소리였다.
인파를 뚫고 나타난 거구의 사내.
소란을 듣고 1반의 담임인 김영철이 들이닥쳤다.
* * *
사실 당연한 결과였다.
교실도 아니고 복도에서 그 소란을 피웠으니, 선생들로서도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난리가 났다.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이건 엄청난 사건이었다.
일반적인 학교 폭력도 아니고, 김현성으로 인해 피떡이 된 학생만 무려 세 명이었다.
일단 피해 학생들을 병원으로 이동시킨 김영철은, 김현성을 마주하는 상황에 험악한 표정을 보였다.
“야, 김현성. 미쳤냐? 사내새끼들이 치고받는 것도 정도가 있지, 애들 얼굴이 피로 범벅이 된 채로 응급차에 실려 갔어. 이건 학교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라고. 내가 교직 생활을 십수 년 동안 했지만, 너처럼 막장으로 들이받는 애는 처음 봤다. 각오해. 곧 너한테 얻어맞은 애들 부모님에게 전화할 거고, 넌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험악한 분위기였다.
김현성이 평소에 어떤 학생이었는지, 싸움의 시발점이 무엇이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피해 학생들 상태를 보라.
잘못하면 담임인 자신이 전부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김영철은 단호하게 선을 그으며 김현성을 잡아먹을 듯한 기세를 보였다. 그로서는 짜증이 치밀었다. 평소에는 얌전하게 굴었던 학생인데, 왜 사고를 제대로 쳐서 본인을 이리도 귀찮게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일단.
최소 학폭위 감이었다.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어, 김현성이 대가를 치르게 만들어야 자신에게 불똥이 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 그렇게까지 호들갑 떨 필요 없잖아요.”
“……뭐?”
귀를 의심했다.
김현성이 잘못을 빌어야 하는 상황이다.
무릎을 꿇고 울어도 모자랄 판에, 김현성은 죄책감은 찾아볼 수 없는 차가운 얼굴로 김영철을 올려다보았다.
“학교 폭력이 어디 한두 번 있었던 일이에요? 선생님 잘하시는 거 있잖아요. 적당히 사건화시키지 않고 묻는 거. 이번에도 그렇게 처리해 주세요. 제게 불똥이 튀지 않도록.”
“이 새끼가.”
짜악-!
고개가 돌아갔다.
경쾌한 소리에, 순간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들은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교무실에서 폭력이 행해지는데도, 마치 당연한 처벌이라는 듯이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시선을 돌렸다.
‘그래, 내가 이래서 죽었지.’
전생.
자신은 괴롭힘만으로 죽은 것이 아니다.
박민철 패거리와 같은 일진들의 괴롭힘.
그리고 어른들의 방관.
그것들이 김현성의 숨통을 조였다.
특히 1반의 담임 선생님인 김영철의 경우에는, 제대로 된 선생님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의 쓰레기였다.
똑똑히 기억했다.
김영철이 선생님이라는 탈을 쓰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연이어 뺨을 후려치려는 그의 모습에, 김현성이 피로 물든 이빨을 드러냈다.
“그만하시죠.”
“너 이 새끼가!”
“선생님, 목소리 낮추세요. 그렇게 계속 지랄해 대면, 저도 선생님이 학부모한테서 돈을 받아 처먹은 걸 말할 수밖에 없잖아요. 특히 정민호 부모님. 그분과 매우 자주 연락하는 거로 알고 있는데, 지금부터 제가 소리를 질러 대면서 그 일에 대해 말해 드릴까요? 정민호 부모님 일이 아니더라도 할 말은 많아요. 예를 들어 영어 선생님과의 불륜 같은 일들.”
웃었다.
순간적으로 굳어 버린 김영철을 바라보며, 김현성은 그에게만 들리도록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러니까, 적당히 하라고 이 씨발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