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4화 (4/130)

1. 악(惡)의 회귀 (4)

박민철 사건.

전생의 김현성은 그 사건 이후로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다.

매일 박민철 패거리에게 끌려가 엉망이 되도록 맞았고, 하교 이후에도 게임 심부름과 같은 괴롭힘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게 만들었다. 지옥이라는 단어 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든 꾸역꾸역 버텨 내던 김현성은, 이렇게는 학업을 이어 나갈 수 없다는 판단에 결단을 내렸다.

선생님을 찾아갔다.

그게 그리 좋은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지금은 어른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고?”

김영철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김현성의 상황을 세세하게 묻지 않았고,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태도로 말을 흘려들었다. 차라리 거기에서 끝났다면 김현성은 담임을 원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절망적인 목소리로 자신의 상황을 말하는 김현성의 모습에, 김영철은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다.

“야, 박민철. 현성이 말이 사실이야?”

“에이, 쌤. 제가 같은 친구를 그렇게까지 괴롭힐 이유가 없잖아요. 나름대로 저는 장난을 친 건데, 아무래도 제가 체격이 조금 있다 보니까 현성이가 그걸 괴롭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새끼. 뭐가 됐든 간에 친구끼리 괴롭히지 마라. 같은 친구들끼리 서로 얼굴 붉힐 이유 없잖아. 나머지 너희들도 알겠어?”

“예.”

“충성, 명심하겠습니다!”

김영철과 박민철 패거리.

김현성은 인생이 걸린 심각한 이야기건만, 그들은 장난스럽게 웃고 떠들면서 피해자를 제외하고 문제를 매듭지어 버렸다. 교무실을 나서는 김현성은 떨리는 손을 참지 못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았고, 예상대로 교무실을 나오자마자 박민철은 험악하게 일그러진 표정을 보였다.

“따라와.”

“븅신. 선생한테 이른다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냐?”

그대로 끌려갔다.

일진들의 공간으로 통용되는 소각장으로 끌려간 김현성은, 그날 담임에게 고자질한 대가로 정말 미친 듯이 맞았다. 평소라면 피가 흐르는 순간 폭력을 멈추었겠지만, 코피가 터지고 얼굴이 퉁퉁 붓는데도 그들은 뺨을 때리고 다리를 걸어 넘어트렸다.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하는지 얼굴을 짓밟는 발길질에, 김현성은 이를 악물고 몸을 웅크리며 악착같이 버텼다.

억울했다.

화가 났다.

어쩌다 자신이 이런 신세가 되었단 말인가.

그리고 선생님이라는 존재라면, 학생의 어려움을 진심으로 해결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지 않은가.

퍽퍽퍽.

“뒈져!”

“오늘 진짜 죽여 줄게.”

그때였다.

얼굴을 가리며 아등바등 버텨 내던 김현성은, 우연히 학교 건물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에.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그 사람은 분명히 김영철이었고, 자신이 이렇게 얻어맞는 모습을 담임이 목격했다는 사실에 김현성은 기뻐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이제는 친구들의 장난으로 넘어가지 못할 것이다. 명백한 증거를 목격했으니, 평소에 불도저라고 불리는 김영철은 분명히 강력한 처벌을 가할 것이다.

그 순간.

스윽.

고개를 돌렸다.

분명히 목격했는데도,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믿을 수 없었다.

현실을 부정하고만 싶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김영철은 학부모에게서 돈을 받아먹는 쓰레기이며, 박민철 패거리 중 하나인 정민호의 부모님은 바로 김영철의 돈줄이라는 사실을. 그는 처음부터 김현성의 문제를 해결해 줄 생각이 없었다.

* * *

김영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김현성이 폭로한 사실을 다른 선생님들이 들었을까 봐, 그는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도 이곳을 지켜보는 선생님은 없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김영철은, 험악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김현성을 죽일 듯 바라보았다.

“이 새끼가 어디서 헛소리를…….”

“선생님.”

말을 툭 끊었다.

김영철의 반응을 예상한 김현성이, 차분하게 정돈된 음성으로 말했다.

“지금부터 저를 상대로 말할 때는 충분히 생각하고 내뱉으세요. 정민호 부모님과는 대학교 선배였던 선생님을 통해서 소개받으셨죠? 그래서 입학하기 전부터 정민호의 편의를 봐주었고, 매달 보상으로 뒷돈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리고 자식만 셋 딸린 선생님이 유부녀인 영어 선생님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으며, 그 장소로 종종 이용하는 곳이 M모텔인 것으로 알고 있고요. 더 말해 드릴까요? 선생님은 참 더럽게 사셨어요. 이 정도로는 치부를 전부 드러낸 것이 아닐 정도로, 문제를 전부 들쑤시면 앞으로 학교생활이 힘들어지시겠죠.”

끼익.

의자에 몸을 기댔다.

입에 고인 핏물을 뱉으며, 놀란 얼굴의 김영철을 올려보았다.

“헛소리로 치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선생님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이 학교를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선생님 인생을 짓밟아 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

말을 잃었다.

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

전생.

김현성이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갈 즈음에 김영철의 치부는 모두 공개되었고, 그는 학교로 찾아온 와이프에게 시원하게 뺨을 맞으며 이혼 도장을 찍었다. 알고 보니 김영철의 와이프는 집안이 제법 좋았다. 재산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전부 와이프의 것이었기에, 전생의 김영철은 불륜 사실이 밝혀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고로.

협박은 먹힐 수밖에 없었다.

흔들리는 눈동자가 그를 증명했고,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서 김영철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다.

김현성을 잘못 건드렸다간 정말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도저 김영철이 한발 물러났다.

김현성이 웃었다.

“방법은 간단해요. 제 입을 막으려면, 지금껏 살아왔던 그 태도를 유지하세요.”

“그게 무슨……?”

“앞으로도 쓰레기처럼 사시라고요. 학생들의 일을 방관하고, 잘못된 일임을 알면서도 그것들을 묻어 주고. 다만, 그 대상이 바뀔 뿐이죠. 지금부터는 저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하시면 돼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번 일이 사건화되지 않도록 막으신다면, 저는 졸업하는 그날까지 절대 선생님의 비밀을 들쑤시지 않을게요.”

몸을 숙였다.

다른 선생님들이 들을까 봐 불안해하는 김영철에게, 조금은 크고 확실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요?”

* * *

교무실을 나왔다.

복도를 걸으며, 김영철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일단 노력해 보마.”

절망적인 얼굴.

억지로 내뱉는 목소리.

김영철은 현실에 무릎을 꿇었다.

겨우 학생 따위에게 협박을 당하는 상황인데도, 그로서는 어떻게 저항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박민철 패거리를 병원으로 보내며 김현성은 자신의 의지를 증명했다. 독종인 그를 괜히 건드렸다가는 같이 파멸할 것을 알기에, 이미 안정된 현실을 갖춘 김영철은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전생의 일.

김영철의 사건이 있고, 김현성은 혼자서라도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노력했다.

박민철 패거리를 정면에서 들이받았다.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주먹을 휘두르며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특히 그날은 격렬했다.

박민철을 때려눕히고 정민호의 코뼈도 부러트렸지만, 강창석에게 업어치기를 당하면서 김현성은 병원에 실려 가고 말았다. 명확히 쌍방이었다. 정확히는 박민철 패거리의 괴롭힘을 문제 삼아야 할 사건이건만, 그날의 일이 있고서 김현성을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매우 가혹했다.

“현성이가 먼저 시작했어요.”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내 소중한 자식의 코뼈가 부러졌다고요.”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피해자를 자처하는 박민철 패거리.

그리고 어른들의 개입.

상황이 뒤바뀌었다.

부모가 없는 김현성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었고, 기초 수급자인 할머니는 휘황찬란한 명품으로 휘감은 아주머니들의 우렁찬 목소리를 감당할 수 없었다. 고개를 조아리셨다. 김현성의 인생을 짓밟아 버리겠다는 경고에, 드센 성질을 가진 할머니는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학폭위가 소집되었다.

결과는 김현성의 징계.

박민철 패거리는 문제없이 학교생활을 이어 나가는 상황에, 식물인간이 되어 버린 김현성은 뒤늦게 생각했다.

만약.

시간을 되돌린다면.

박민철 패거리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어른들의 개입마저 완벽하게 해결해야만, 진정한 의미의 복수를 행할 수 있다.

김영철.

그는 미리 생각한 첫 번째 카드에 불과했다.

어느새 다가온 목적지에, 김현성은 일단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들을 한편에 미루어 두었다.

지금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끼익.

탁.

문을 열었다.

8반의 문이 힘껏 열리자, 교실 안의 학생들이 놀란 눈으로 김현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중에는.

“정민호. 하던 건 마저 끝내야지.”

박민철 패거리인 정민호가, 창백한 얼굴로 그대로 굳어 버렸다.

* * *

김현성이 교무실로 불려 가고.

정민호는 언제 겁을 먹었냐는 듯이 화를 냈다.

“씨발련이, 진짜 돌았네. 돌아오는 대로 찢어 죽인다.”

콰앙!

반에 들어오자마자 책상을 걷어찼다.

그와 같은 반인 친구들은, 분노를 토해 내는 정민호의 모습에 감히 뭐라고 말할 수 없었다.

정민호는 돌아가는 상황을 알았다.

자신의 어머니와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는 김영철이라면, 친구들 셋을 피떡으로 만든 김현성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최소 퇴학이었다. 김현성이 이 학교에서 제명되어 버린다면 더는 만날 일이 없을 테고, 그렇다면 그와 싸우는 문제로 걱정할 이유도 없었다.

솔직히 겁을 먹었었다.

문제는 그 모습을 다른 친구들이 지켜보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정민호는 과하게 성질을 부렸다.

“아오, 씨발!”

콰앙!

우당탕!

주변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책상을 걷어차고 의자를 뒤엎어 버리는 행동에, 방금까지만 해도 시끌벅적하던 교실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정민호가 바라는 상황이었다. 자신은 이 학교에서 포식자여야만 한다. 겨우 김현성 따위로 인해서, 자신의 위상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탁.

의자에 앉았다.

분노를 삭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정말 김현성을 다시 만난다면 그를 박살을 내 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퍽!

“커억.”

고개가 돌아갔다.

곧바로 달려드는 김현성의 모습에, 정민호는 어떻게 반항해 보지도 못하고 주먹질을 허용하고 말았다. 김현성을 확인하는 순간 몸이 굳어 버렸다. 싸움을 잘하는 편이다 보니 이 정도는 분명히 반응했어야 했는데, 교무실에 끌려가고도 돌아온 김현성의 모습은 마치 귀신과도 같았다.

천적.

고양이 앞의 생쥐가 되었다.

그대로 넘어진 정민호는, 고개를 들자마자 자신의 시야를 가득 메우는 무릎을 발견했다.

빠악!

“컥.”

눈이 핑 돌았다.

그때부터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얼굴이 무력하게 딸려 가더니,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김현성에게 뺨을 수차례 맞았다.

짜악!

짜악, 짜악, 짜악!

피가 튀었다.

얼굴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방금까지 성질을 부리던 정민호는 그 자리에 없었고, 정민호는 개처럼 맞는 상황에 살려 달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김현성은 진짜 미친 새끼였다.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아등바등 발악하던 정민호는, 문득 교실 창문 너머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불도저!’

김영철이었다.

순간 희망이 차올랐다.

어머니에게 뒷돈을 받는 김영철이라면, 자신이 이렇게 맞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씨발.”

김영철이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분명히 눈을 마주쳤는데도, 그는 마치 자신을 보지 못한 것처럼 시선을 피하더니 걸음을 돌렸다.

동시에 절망적인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혹시라도 도움 따위는 기대하지 마. 이 학교에 있는 그 누구도, 절대 너를 도와주지 않을 테니까.”

그제야 알았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시야를 가득 메우는 김현성의 손바닥에, 정민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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