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악(惡)의 회귀 (5)
5분 전.
홀로 남은 김영철은 불안한 듯 다리를 떨었다.
손톱을 물어뜯으며 생각을 거듭해 봐도, 자신의 능력으로 이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애들 셋이 병원에 실려 간 사건이야. 학교 측에서는 당연히 사건이 커지는 것을 바라지 않겠지만, 김현성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피해자 학부모들이 개지랄을 떨겠지. 특히 정민호의 부모님. 그 사람들은 아들 친구들의 상황을 절대 방관하지 않을 거야.’
문제가 심각했다.
일단 김현성의 요구를 받아들였지만, 일개 교사로서 해결할 수 있는 범위에는 한계가 있었다.
정민호의 부모님이 누구인가.
근방에서 알아주는 부자였다.
건물을 수 채나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민호가 입학하는 시점부터 천일(天日) 고등학교에 금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최근 그들의 돈으로 잔디를 새로 깔지 않았던가. 교장 선생님이 특별히 관리하는 대상이니만큼, 정민호 부모님의 입김은 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 또한 돈을 받아먹었다.
정민호 부모님이 제대로 지랄하기 시작하면, 자신으로서도 어떻게 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생각하자.’
덜덜덜.
다리를 떨었다.
고통스러운 듯 머리를 쥐어뜯으며, 최선의 방법을 생각해 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역시 방법은 없었다.
그나마 유일한 해결책은, 정민호와 이번 사건을 분리하는 것밖에 없었다.
‘김현성은 정민호를 건드리지 않았어. 정민호 부모님도 제 자식을 건드리진 않았으니, 잘만 설득한다면 이번 일을 방관할 수도 있어. 결국에는 자식 친구들일 뿐이니까. 김현성에게 찾아가서 절대 정민호만큼은 건드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면, 아직 최악의 상황까지는 아니야.’
벌떡.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김현성과 정민호를 통제할 필요가 있었다.
걸음을 서둘렀다.
입이 바짝 마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보았다.
짜악!
짜악, 짜악, 짜악!
창문 너머로.
정민호가 뺨을 얻어맞고 있었다.
겁에 질린 학생들은 먼발치에서 구경만 했고, 김현성은 사나운 얼굴로 정민호의 멱살을 붙잡은 채로 수차례 뺨을 날렸다. 소리만으로도 섬뜩할 지경이었다. 교사로서 분명히 제지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정민호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버렸다.
“……씨발.”
어쩔 수 없었다.
정민호 부모님이든 뭐든.
불륜 사실을 폭로한다면 자신은 끝이었다.
김영철은 일단 의아스러워하는 학생들의 눈길을 뒤로하고, 황급히 복도를 빠져나가 버렸다.
* * *
얼마나 때렸을까.
정민호가 의식을 잃었다.
참 나약했다.
몇 대 맞지도 않았는데, 그걸 감당하지 못하고 기절해 버리다니.
‘겨우 이 정도면서 나를 비웃었던 거야?’
화가 났다.
3년 내내 자신을 괴롭혔던 박민철 패거리는, 몸을 웅크리면서 신음을 삼켜 내는 자신을 보면서 낄낄낄 웃어 댔다. 나약해 빠지니까 그런 신세가 되는 거라고. 자신이었다면 끝까지 싸웠을 거라면서 비아냥대는 그들의 목소리에, 김현성은 그냥 이 순간이 빠르게 지나가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들의 현실은 초라했다.
자신을 괴롭힌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건만, 그들은 마치 죽을 것처럼 몸을 벌벌 떨어 댔다.
툭.
정민호를 내려놓았다.
피로 물든 손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자신을 공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친구들이 보였다. 그들로서는 경악스러울 것이다. 그들이 기억하는 김현성은 절대 이런 사람이 아닌데, 악착같이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은 같은 공간에 있는데도 다른 존재인 것 같은 이질감을 주었다.
끼익.
털썩.
의자에 앉았다.
숨을 돌렸다.
뒤늦게 이곳저곳에서 통증이 밀려왔고, 고개를 돌리자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는 정민호가 보였다.
“병신.”
사실 김현성도 알았다.
정민호를 건드리지 않는다면, 그래도 이번 사건을 어떻게든 무마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상대를 가려서 복수를 행할 것이라면, 회귀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박민철의 얼굴에 뺨을 날리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그들을 피해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옥 같았던 식물인간 생활을 경험하며, 완전히 마모되어 버린 정신은 복수만을 강렬하게 바랐다.
그 결과였다.
바닥에 널브러져 피를 흘리는 정민호의 모습에, 김현성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알았다.
‘난리가 나겠지.’
앞서 실려 간 세 명.
그리고 추가로 한 명.
뉴스에 실릴 만한 폭행 사건이었다.
천일 고등학교를 명문으로 만들겠다는 교장의 목표를 짓밟는 사건이기에, 그로서는 이 사건을 강하게 징계하려 할 것이다. 그렇다고 없는 일처럼 만들 수도 없었다. 자신을 지켜보는 수많은 눈동자가 증거였다. 틀어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그들의 증언은, 김현성을 심판대 위에 올리게 할 것이다.
‘어차피 천일 고등학교도 감당하지 못한다면, 내가 이루려는 복수는 불가능해.’
현실을 직시했다.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서 들려오는 소란에, 김현성은 의자에 몸을 기댄 채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 * *
학생 한 명에.
어른 십수 명.
가만히 앉아 있는 김현성을 중심으로, 어른들은 성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사건은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김현성 학생은 친구들을 병원에 실려 갈 만큼 잔인하게 폭행했을 뿐만 아니라, 김영철 교사와의 면담 이후에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정민호 학생을 폭행했습니다. 이건 죄질이 매우 악랄합니다. 다들 피해 학생들의 얼굴을 보셨습니까? 피떡이 되어 버린 그 얼굴은, 조폭 영화에서나 볼 법한 그런 참담한 상태였습니다.”
“맞습니다. 당장 중징계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천일 고등학교의 교장 오대환의 말에, 선생님 중 한 명이 맞장구를 쳤다.
이번 사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선생님들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김현성은 천일고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건을 저질렀다.
영어 선생님 이민영이 말했다.
“저도 교장 선생님 의견에 동의해요. 김현성 학생을 퇴학…… 왜요?!”
툭.
이민영의 말에.
김영철이 옆에서 찔렀다.
이민영이 놀라며 째려보자, 김영철은 그녀에게 진실을 모르면 제발 가만히 있으라는 듯이 강렬한 눈빛을 보였다. 아직 이민영에게는 상황을 말하지 못했다. 자신과의 불륜 관계를 김현성이 알고 있으며, 이대로 퇴학을 당해 버린다면 우리 모두의 인생이 끝장난다는 사실을 말이다.
힐끗, 김현성의 눈치를 살폈다.
선생님들이 모두 몰려와 난리를 피우는데도, 그는 자신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김영철이 말했다.
“김현성 학생이 잘못한 것은 맞습니다만, 1반의 담임으로서 지켜본 결과, 문제의 시발점은 박민철을 비롯한 피해 학생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죠, 김영철 선생.”
“평소에 박민철 패거리가 학생들을 괴롭힌다는 말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언젠가는 날을 제대로 잡아서 처벌할 생각이었는데, 그 괴롭힘에 참지 못한 김현성 학생이 일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 김현성 학생은 가해자이기 전에 피해자입니다. 만약 이대로 김현성 학생을 처벌해 버린다면, 우리는 교사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상황을 비틀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를 바꿔 버렸다.
김영철로서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담임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오대환으로서는 이번 문제를 넘어갈 수 없었다.
“그래도 처벌은 불가피합니다.”
“교장 선생님!”
“김영철 선생!”
오대환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만약 앞선 세 명이었다면.
적당히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민호가 피떡이 된 채로 실려 가는 모습에, 오대환은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정민호의 부모님은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겠지. 그분들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서는, 가해자를 확실하게 짓밟아야 한다.’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오대환은 꿈이 있었다.
천일을 명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권력자들과의 연줄을 꽉 붙들고 있어야만 했다.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뒤. 징계위원회를 소집하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김현성 학생을 어떻게 처벌할지를 결정할 테니, 다들 이와 관련한 소문이 퍼져 나가지 않도록 입단속들을 하고 계세요. 그리고 김현성 학생은 징계위원회가 열릴 때까지 정학(停學)입니다. 학교에 나오지 않는 동안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해 보고, 일주일 뒤에 부모님을 모시고 학교로 나오세요.”
오대환은 김현성의 가정사에 관심이 없었다.
부모가 있는지 없는지.
누구와 사는지.
강압적으로 말하는 그의 모습에, 김현성은 별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 * *
밖으로 나오자.
김영철이 황급히 따라붙었다.
그는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간절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김현성에게 말했다.
“현성아. 나는 분명히 최선을 다했어. 네가 정민호를 건드린 이상, 일개 교사인 내가 아무리 발악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고. 그러니까 씨…… 후우, 아니다. 그 성질을 참을 수는 없었던 거니? 만약 네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면, 적어도 내가 상황을 무마할 기회가 한 번쯤은 있었다고.”
재밌는 인간이었다.
강압적으로 내려다보며 뺨을 때릴 때는 언제고, 그는 벌써 을(乙)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하긴.
이런 인간이어야 그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상황에 따라서 간이고 쓸개를 전부 내줄 사람이기에, 그는 선생님으로서 책임감 따위는 내던지고 쓰레기처럼 살았다. 딱히 분노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김영철이 이런 사람이라는 사실은 진즉에 알고 있었고, 그가 이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도 모르지 않았다.
“그 정도면 충분히 노력했다는 건 알겠어요.”
“그렇지? 그럼 우리의 비밀은…….”
“그런데.”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그를 올려보며, 싸늘한 눈빛을 보였다.
“박민철이 학생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모양이네요? 명심하세요. 제가 이 학교에서 졸업하는 그날까지, 제 입을 틀어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결과가 어떻게 되든. 그만한 태도를 보여 주지 않는다면, 저는 박민철 선생님과 불륜을 저지른 이민영 선생님의 인생까지 갈기갈기 찢어발길 거예요. 약속할게요.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알겠다.”
표정이 창백해졌다.
더는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하는 모습에, 김현성은 그를 뒤로하고 교실로 걸음을 옮겼다.
김영철.
마음 같아서는 당장 파멸로 몰아넣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진짜 목표가 아니었다.
김현성이 살아왔던 인생에서 경험한 수많은 쓰레기 중 한 명일 뿐이고, 그를 몰락시켜 버리겠다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버릴 수는 없었다. 김영철은 적어도 천일 고등학교에서 기반을 닦을 때까지는 필요한 존재였다. 겨우 일개 교사에 불과하지만, 그의 쓰레기 같은 삶은 본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교실에 들어갔다.
자신을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김현성은 가방만 챙기고 곧바로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앞으로 일주일.’
충분했다.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복수를 위한 초석을 쌓기 위해.
일주일이 지나고 나면, 오대환은 본인이 기대하는 징계위원회와는 다른 상황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