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6화 (6/130)

2. 명진건설 (1)

익숙한 하굣길이었다.

허름한 빌라들이 즐비한 골목을 걸었고, 김현성은 기억을 되새기며 오랜 보금자리로 향했다.

[태양 빌라]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오래된 건축물.

현재 시세로 겨우 5,000만 원밖에 하지 않는 건물의 지층(地層)이 김현성의 보금자리였다. 사실 부모님의 보험금이 아니었다면 이곳마저도 월세로 살아야 했을 것이다. 빌라를 확인하자 괜히 쓴웃음이 나왔다. 어렸을 때는 정말 초라하다고 생각했던 공간인데, 할머니가 자신의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빌라를 팔았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었다.

지금은.

돌아갈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김현성은 안으로 걸음을 옮겼고, 어두컴컴한 지하로 내려가 문을 열었다.

끼익.

“할머니……?”

안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할머니는 없었다.

오랜만에 만날 생각에 들끓었던 감정이, 손자들을 위해 차려 놓은 소박한 저녁상을 보고는 슬픔으로 물들었다. 이 무렵 할머니는 매일 일을 다니셨다. 손자들의 학업을 위해서 악착같이 일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르자, 자신이 이렇게 넋을 놓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천금(千金) 같은 기회를 얻었어. 복수뿐만 아니라, 내 가족들의 어려움도 외면하지 않을 거야.’

이를 악물었다.

앞으로 할 일이 많았다.

징계위원회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김현성은 책상에 자리하더니, 공책 하나를 펴고는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슥슥.

‘앞으로의 계획은 명확해. 2년 안에 주변 지역을 집어삼키며 기반을 마련하고, 마지막 1년에 그 녀석들의 본거지를 정리할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조건이 필요하겠지. 첫 번째로는 내 개인의 무력.’

필수였다.

학교 폭력을 주도하는 존재들.

그들에게 우선되는 가치는 힘이었다.

그들을 무너트리기 위해서는, 그들과 맞닥트리는 상황에서 밀리지 않을 만큼의 힘이 필요했다.

‘이건 지금부터 스스로를 단련시키면 돼. 특히 미리 생각해 두었던 그 사람을 포섭할 수만 있다면, 앞으로의 싸움에서 상당한 우위를 점할 수 있겠지. 두 번째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야. 내가 상대할 녀석들은 세력을 형성하고 있어. 그 많은 사람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나 또한 같은 목적을 지닌 세력을 형성해야만 해.’

결국.

사람의 문제였다.

현재의 김현성은 아무것도 없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에 불과했다.

머릿속으로 완벽한 계획을 구상한다고 한들,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 복수를 이룰 수 없었다.

물론 남에게 의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주도적으로 진행하되, 필요한 사람들을 확보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중요했다.

전생과는 다른 차이점.

과거를 경험했기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쓰레기 같은 김영철을 포섭한 것도 세 번째 문제의 연장선이었다.

“배경. 모든 문제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만들어 줄 배경이 있어야만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있어.”

슥슥.

밑줄을 그었다.

당장 징계위원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김현성이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은 바로 이 배경이었다.

* * *

대산광역시.

그곳의 한 경찰서.

평소에도 시끌벅적한 그곳에, 거대한 체구의 한 사내가 소음에 힘을 보탰다.

“야 이 개새끼들아. 내가 누군지 알아? 나 명진건설의 장남이야. 이 대산 바닥에서 날 모르면 간첩인데, 일개 경찰 따위가 날 이렇게 대하고도 무사할 것 같아? 야! 무사할 것 같냐고.”

“아저씨, 조용히 좀 있으세요.”

“아저씨이? 아저씨이이이? 이 씨발련아. 내 얼굴이 이래도 아직 창창한 35살 미혼남이야.”

확.

우당탕!

아주 난리가 났다.

명진건설의 장남 고창범.

그의 만행에도 경찰들은 쉽사리 나설 수가 없었다.

그의 말대로였다.

대산 바닥에서 명진건설은 알아주는 기업이었고, 고창범을 잘못 건드렸다가 일개 경찰의 목이 날아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고창범을 풀어 주지 않았다. 평소라면 금방 해결될 문제가 지지부진하게 흘러가는 상황에, 고창범으로서는 속이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오, 씨발.”

고창범이 분을 삭이며 자리에 앉았다.

이번 문제.

그로서는 억울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행인들과 시비가 붙었는데, 상대가 먼저 주먹을 휘둘렀기에 고창범도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고창범이 체격만큼이나 괴력을 자랑한다는 것. 그를 상대한 세 명이 곧바로 응급실로 실려 가면서 고창범은 경찰서에 끌려오게 되었다.

곤란한 상황이었다.

이번 문제를 잘 매듭짓지 못한다면, 자신을 적대하는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할 것이 분명했다.

‘진짜 개같은 상황이네.’

최근 몇 년.

명진건설의 회장인 고창범의 아버지는 공개적으로 두 아들의 후계자 경쟁을 선언했다.

명진건설을 이어받을 자질을 보여 준다면, 두 아들 중 한 명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겠다고 말이다.

청천벽력이었다.

장남이기에 당연히 후계자임을 확신했던 고창범은, 자신의 동생인 고창석을 상대로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 자신은 고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했지만 고창석은 외국 명문 대학교의 졸업생. 게다가 3년 전에 대산에서 알아주는 명문가와 결혼하면서, 사실상 고창석이 명진건설을 물려받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벼랑 끝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폭력 사건까지 터진다면, 고창범은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없을 것이다.

경찰이 말했다.

“고창범 씨. 화가 나는 건 잘 알겠는데, 이번 사건은 명백하게 잘못하셨어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행인들을 피떡이 되도록 패 버렸는데, 이걸 그냥 해결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아요.”

“내가 말했잖아요. 상대가 먼저 폭력을…….”

“예, 예. 고창범 씨는 그렇게 주장하지만, 결과물을 보세요. 피떡이 되어 버린 피해자들은 고창범 씨가 갑작스럽게 폭력을 행했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불리했다.

3 대 1.

경찰은 다수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상대는 합의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으니, 이 사건이 커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후계자 자리고 뭐고 자리를 엎어 버릴까 고민하는 그때, 고창범의 시야에 웬 소년 한 명이 보였다.

이질적이었다.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

소년은 정확히 고창범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아저씨의 일을 증언하기 위해서 찾아왔는데, 누구와 말하면 될까요?”

* * *

경찰이 모니터를 한 번.

소년을 한 번 보았다.

다시 모니터를 보더니, 조금은 당황스럽다는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걸 어떻게 구했다고?”

모니터 안.

폭행 상황이 담겨 있었다.

고창범의 주장대로였다.

고창범은 시비를 걸지 않았고, 행인들이 먼저 주먹을 휘두르면서 고창범도 반격하게 되었다. 문제는 행인들의 태도였다. 자신들의 무고함을 주장하던 그들은 악의적으로 보일 만큼, 어떻게든 그냥 지나가려던 고창범을 끈질기게 붙잡으며 상황이 커지게 만들었다.

소년.

김현성이 말했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상황을 목격했어요. CCTV가 없는 거리라서 많이 곤란한 상황인 것 같아서, 주변에 정차된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부탁해서 받아 왔어요. 미성년자인 제 증언은 설득력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블랙박스 영상에 나와 있는 것처럼, 저 아저씨는 어떻게든 상황을 피하려고 했는데 상대가 먼저 달려드는 바람에 반격할 수밖에 없었어요. 아저씨의 잘못이라면 상대를 응급실로 보내 버릴 만큼 힘이 있었을 뿐, 이건 명백히 정당방위라고 생각해요.”

“그래, 그래! 얼굴도 잘생긴 게 어쩜 말도 이렇게 예쁘게 하지? 거봐요. 내 잘못이 아니라니까?”

고창범이 기다렸다는 듯이 끼어들었다.

환한 얼굴의 그는, 사람들만 없었다면 당장 김현성의 얼굴에 뽀뽀를 날리고 싶을 만큼 기뻤다.

블랙박스 영상.

완벽한 증거였다.

증거와 증인이 나타났으니, 상대가 아무리 문제를 제기한다고 할지라도 이번 문제로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 이유는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는 매우 호전적인 사람이다. 맞을 일을 했으면 맞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에게, 정당방위를 행한 자신을 벌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경찰이 신음성을 삼켰다.

곤란했다.

무고한 사람, 그것도 명진건설의 장남을 건드렸으니 앞으로 후폭풍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증거가 명백한데.

일단은 호의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조사는 간략하게 마무리하는 것으로 하고, 추후에 피해자, 아니 가해자들이 치료되는 대로 다시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고창범 씨 말에 조금 더 귀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피떡이 된 얼굴을 보니 공정하게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벌떡.

고창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경찰을 노려보며, 사나운 이빨을 보였다.

“그쪽 사정은 모르겠고. 그쪽 얼굴은 기억해 두겠습니다. 아마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이 고단해질 겁니다.”

* * *

경찰서를 나선 고창범이 호탕하게 웃어 댔다.

“크하하하하. 꼬마야, 정말 고맙다. 네 도움이 아니었다면 내가 X될 뻔했어. 아니, 애가 가정 교육을 어떻게 받았기에 이렇게 똘똘할 수가 있지? 난 말이야. 절대 은혜를 잊는 사람이 아니야.”

그가 주섬주섬 지갑을 꺼냈다.

한눈에 보아도 두툼한 지갑에서, 백만 원이 훌쩍 넘을 것 같은 지폐 다발을 집었다.

“받아. 내 마음이다.”

“감사합니다.”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빼지 않고 돈을 받아 드는 모습에, 고창범이 재밌다는 눈빛을 보였다.

보통 이 나이의 학생들은 큰돈에 망설이는 반응을 보이기 마련인데, 침착하게 블랙박스 영상을 찾아온 것도 그렇고 확실히 범상치 않아 보였다. 그 생각은 머지않아 확신으로 변했다. 김현성은 주머니에 돈을 챙기면서, 고창범이 반응할 수밖에 없는 주제를 툭 내뱉었다.

“그런데 아저씨. 궁금해서 묻는 건데, 혹시 이번 일이 우연히 벌어졌다고 생각하세요?”

“……그게 무슨?”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저는 아저씨가 누군지 알아요. 명진건설의 장남. 동생인 고창석과 후계자 경쟁 중이시죠?”

순간.

고창범의 눈빛이 변했다.

더는 상대를 사랑스러운 소년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 일부러 접근했다면, 상대에게 특별한 목적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너 뭐야?”

“복잡하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저는 이번 일이 절대 우연히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것을 증명할 증거도 가지고 있고요. 아저씨는 제 말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눈빛이 마주쳤다.

호랑이 같은 눈빛이었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어린애고 뭐고 짓밟아 버리겠다는 사나운 눈빛에 김현성은 속으로 웃었다.

고창범.

유명한 인간이었다.

적어도 이 대산 바닥에서는.

덕분에 그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데도 고씨 집안의 일을 어느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김현성이 말했다.

“제게 정말 감사하다면 딱 1시간만 시간을 내주세요. 단언컨대 아저씨. 아니, 고창범 씨 인생에 그리 손해 되는 일은 아닐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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