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7화 (7/130)

2. 명진건설 (2)

인근 카페.

자리를 옮긴 고창범은, 김현성이 건넨 핸드폰 영상을 확인하고 당혹스러운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블랙박스 원본이에요. 경찰서에서 고창범 씨의 정당방위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후반부 영상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에, 지금 확인하는 앞부분을 삭제해 버렸어요. 그리고 그게 제가 말씀드렸던 ‘우연’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고요.”

여유로운 음성이었다.

김현성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차갑게 고창범을 바라보았다.

“……크흠.”

고창범이 마른침을 삼켰다.

김현성의 말대로였다.

영상 속.

고의를 입증할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다시 한번 앞으로 돌려 확인하자, 마치 같이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김현성이 영상에 맞춰 설명을 덧붙였다.

“사건 발생 30분 전. 세 명의 남자가 편의점 앞에 모였어요. 언뜻 보기에 그들은 편의점을 이용하는 고객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30분이 지나도록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아요.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바닥에 쌓여 가는 꽁초가 그들의 기다림을 증명하고, 그들은 고창범 씨가 나타나자마자 노골적으로 시비를 걸어요. 한 대 때려 달라는 듯이 얼굴을 들이밀고 욕설을 내뱉던 그들은, 경찰에게 진술한 내용과는 달리 먼저 주먹을 휘두르며 고창범 씨를 공격하죠.”

탁.

찻잔을 내려놓았다.

복잡한 표정의 고창범에게, 진실을 욱여넣듯 말을 멈추지 않았다.

“사실 고창범 씨 스스로도 의심하고 있었잖아요.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동생인 고창석과의 후계자 경쟁이 시작되자마자, 마치 누가 의도라도 한 것처럼 고창범 씨에게 좋지 않은 일들이 연달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간단한 문제예요. 모든 사건의 전제를 ‘고창석’이 고창범 씨를 깎아내리기 위해 의도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일련의 사건들을 모두 이해할 수 있어요. 30분 내내 담배를 피워 대면서도 자리를 떠나지 않는 남성들의 행동 같은 것들을요.”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사고와 고의.

뉘앙스가 완전히 달랐다.

게다가 고의의 배후에 하나뿐인 동생이 개입되어 있다면, 고창범으로서는 이번 문제를 절대 간과할 수 없다. 사실 김현성의 말처럼 의심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명문대를 졸업하고 번듯하게 자란 동생이, 설마 양아치들을 고용하는 추잡한 일을 벌였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최소한의 경계.

눈썹이 꿈틀거렸다.

부글부글 끓는 속에, 고창범은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은 표정을 보였다.

“그래서, 내게 이런 것들을 말해 주는 이유가 뭐야?”

지금의 그로서는.

진실을 말하는 김현성조차도 곱게 보이지 않았다.

* * *

명진건설.

전생의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대기업이었다.

지금이야 지방에서 인정받는 수준이지만, 훗날 그들은 탄탄한 자본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본인들만의 아파트 브랜드를 성공시켰다. 사실 그들의 성공은 모두 명진건설의 회장 고명진의 장인 정신 덕분이었다. 그는 사람이 사는 집만큼은 절대 장난질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고, 마진을 줄이면서까지 완성도를 높였던 것이 명진건설을 대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미래에 찾아올 부동산 호황기.

더불어 안전 이슈.

명진건설의 아파트는 믿어도 된다는 인식이 생겨나며, 그들은 그야말로 날개를 달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

두 아들은 없었다.

재밌는 사건이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김현성이 알고 있을 정도로, 두 아들은 대산 바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문제의 시발점은 고창석이었지. 후계자 자리를 노리고 온갖 수작질을 벌이던 그의 만행이 고창범에게 발각되었고, 고창범은 그 사실을 영리하게 활용하지 못하고 고창석을 찾아가 그대로 턱을 날려 버렸어. 그 한 번의 반격에 고창석은 영구적인 장애를 얻었고, 그에 분노한 고명진은 두 아들 모두 똑같다면서 후계자 자리에서 제외. 그날의 사건으로 명진건설은 전문 경영인을 고용했고, 그것에 자본과 기술력이 더해지며 황당하게도 대기업으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지.’

그때 당시.

모두가 명진건설에 대해 떠들어 댔다.

멍청한 두 아들로 인해 명진건설이 망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사건에 진실이 낱낱이 파헤쳐졌다. 고창범이 어쩌다가 주먹을 휘두르게 되었는지. 고창석의 수작질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그때는 좋지 않은 형제의 예로 고씨 집안의 두 아들을 말할 정도였다.

덕분에 김현성도 기억했다.

고씨 집안의 미래.

고창범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이번 사건도 그중 하나였기에, 기억을 더듬어 폭행이 벌어진 장소를 먼저 찾아갈 수 있었다.

‘사실 명진건설을 위해서는 미래가 바뀌지 않는 것이 좋겠지. 장남인 고창범은 경쟁자를 깎아내릴 만큼 악하지는 않으나 전형적인 양아치에 한량 기질이 있는 무능력한 사람이라면, 차남인 고창석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질. 훗날 대한민국의 아파트를 대표하는 명진건설은 두 아들을 배제해야만 완성되겠지. 하지만 그건 내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 그들의 미래보다도, 그들이 내게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가 중요해.’

무엇이 올바른지, 올바르지 않은지.

미래를 바꾸었다가 어떤 나비효과가 일어날 것인지.

그딴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 선택으로 미래가 나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한들, 김현성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이번 삶.

복수가 우선이었다.

가족만을 챙길 것이다.

명진건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한 발판에 불과했다.

고로.

“도와드릴게요. 고창석에게 복수하도록, 그리고 장남인 고창범 씨가 명진건설의 회장이 될 수 있도록.”

김현성은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 * *

황당한 상황이었다.

상대는 17살 고등학생.

앳된 얼굴로 회장 자리를 운운하는 모습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평소의 고창범이라면 시원하게 욕을 내뱉었겠지만, 이상하게도 고창범은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상대는 예사 인물이 아니야.’

생각해 보라.

상대를 단순히 고등학생으로 치부하기에는, 폭력 사건에 휘말린 자신을 완벽하게 구해 주었다. CCTV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한 준비성. 그리고 영상에 나온 내용을 토대로 고창석의 음모임을 지적하는 모습까지. 사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겨우 17살의 고등학생이 또박또박 내뱉을 수 있는 영역의 발언은 아니었다.

입이 메말랐다.

명진건설.

대산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그런 기업의 후계자 경쟁을, 저런 핏덩이에게 맡긴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고창범 씨에게도 이번 후계 경쟁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겠죠.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요? 겨우 고등학생인 저조차도 고창석의 음모를 말하는데, 고창범 씨를 보좌한다는 그 존재들은 옆에서 달콤한 말만 속삭인다는 사실이. 그러니, 뻔하잖아요. 그들이 고창석의 끄나풀인 것은. 저도 처음부터 저를 믿어 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우리는 그 정도의 관계고, 명진건설은 대산에서 인정받는 기업이니까. 그러니까 제게 기회를 줘요. 우리의 신뢰 관계를 형성할 기회를.”

고창범이 움찔거렸다.

김현성의 말처럼.

그를 보좌하는 사람들은 항상 달콤한 말만 속삭였다.

생각해 보면, 정말 자신을 회장 자리에 올려놓을 생각이면 김현성과 같은 태도를 보여야만 했다.

“제게는 고창범 씨가 승리할 명확한 계획이 있어요. 일단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첫 단추를 들어 보는 것은 그리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계속 말할까요?”

“……진짜 정신 나간 녀석이네.”

끼익.

고창범이 의자에 몸을 기댔다.

암묵적인 동의였다.

애써 이 현실을 부정하는 듯했으나, 그는 이미 대화를 듣겠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김현성이 웃었다.

“후계자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어요. 고창범 씨와 고창석. 명진건설의 회장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건 명백히 고창석이에요. 고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한 고창범 씨와는 다르게, 고창석은 외국의 명문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어요. 사실 그때부터 노골적으로 회장 자리를 노린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죠. 그리고 한국에 귀국하자마자 대산의 명문 가문과 결혼, 그때 이후로 고창석에게 포섭된 명진건설의 사람들이 고창석을 후계자로 선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공식적인 후계 구도가 형성되었어요. 처음부터 우연은 없었어요. 고창석은 단계적으로 장남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고, 결과적으로 누가 봐도 명백하게 유리한 판을 만들어 냈죠. 개인의 능력, 배경. 장남이라는 사실을 배제하고는 어떤 부분에서도 고창범 씨가 승리할 방법은 없어요. 게다가 이번 폭력 사건처럼 사건 사고마저도 많은 고창범 씨를, 대체 명진건설의 누가 지지하려 할까요?”

“……크흐음.”

고창범이 고개를 돌리며 불편한 심기를 보였다.

사실이었다.

어느 것 하나 반박할 부분이 없을 정도로, 김현성은 명진건설의 현실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전생.

식물인간으로 살아가며 김현성은 많은 생각을 거듭했다.

만약이라는 전제로 복수를 꿈꾸었고,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명진건설과 같은 퍼즐들을 맞추어 가며 계획을 완성해 나갔다. 이건 하루 이틀의 고민으로 만들어진 상황이 아니다. 과거로 돌아오자마자 박민철의 뺨을 날렸던 것처럼, 상상의 나래 속에서 고창범을 수도 없이 설득했다.

처음 경험하는 현실.

하지만 수도 없이 반복했던 상황.

김현성은 차갑게 식어 가는 심장에, 자신의 말에 집중하라는 듯이 상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저는요. 그런 차이를 고려할지라도, 고창범 씨가 이 승부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무슨 의미지?”

고창범이 관심을 보였다.

현실을 완벽하게 파악하고도.

대체 무슨 생각으로 승리를 말한단 말인가.

“고창범 씨와 고창석. 명백하게 고창석이 후계 구도에서 유리한데도, 고명진 회장이 이러한 상황을 방관하는 이유는 딱 하나. 그래도 장남이 후계자가 되기를 바라는 고지식한 사상 때문이겠죠. 그러니까 둘은 경쟁이라도 할 수 있는 거예요. 사실은 경쟁 자체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벌어졌는데도, 고명진 회장은 후계자를 명확히 선정하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하나만 물어볼게요. 만약에, 정말 만약에.”

웃었다.

마침 고창범과 시선이 마주쳤다.

“모든 면에서 월등한 고창석이, 고창범 씨가 있는 밑바닥으로 떨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으세요? 능력을 배제했을 때, 두 아들 중에 과연 고명진 회장은 누구를 선택할까요?”

순간.

고창범은 소름이 돋았다.

김현성의 말이, 단어 하나하나가 심장에 박히는 기분이 들었다.

“경쟁은 그때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상대와 동일한 선상에 서는 것. 그때는 장남이라는 유일한 강점이, 절대 뒤집을 수 없는 차이를 만들어 내겠죠.”

* * *

그날 오후.

명진건설의 차남.

고창석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런 멍청한 새끼들!”

확.

콰직.

순간적인 분노에 핸드폰을 내던졌다.

처참하게 박살이 난 핸드폰을 보고도, 고창석은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지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실패를 해!”

폭행 사건.

고창석의 사주가 맞았다.

그는 고창범의 평판을 깎아내리기 위해 많은 음모를 진행했고, 그중 하나로 일부러 폭행 사건에 휘말리게 했다. 사실 실패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번 일은 성공이 확정적일 만큼 매우 손쉬운 음모였기에, 사건이 무르익는다 싶으면 공식적으로 폭행 문제를 지적하려고 했다.

그런데.

실패했단다.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하면서 쌍방으로 넘어갔다는 말에, 고창석은 짜증이 치밀 수밖에 없었다.

“이게 다 그 노친네의 장남 선호 사상이 문제야. 요새 시대가 어느 땐데, 아직도 장남이 후계자 자리를 물려받아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고 있어? 만약 내가 능력이 조금이라도 부족했다면, 그 노친네는 고민할 것도 없이 고창범 같은 얼간이에게 자리를 물려주었겠지.”

명문대 졸업.

명문가와의 혼인.

모두 장남과의 차이를 메우기 위한 노력이었다.

특히 결혼은 정말 싫었지만, 목표를 위해서라면 그렇게라도 해야만 했다.

욕심이 대단한 고창석으로서는 고창범과 같은 무능력자에게 후계자 자리를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침착하자. 현재 후계 구도는 명백히 내가 유리한 상황이야. 사실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후계자 자리를 물려받게 되겠지. 문제는 그 과정에서 티끌도 양보할 수 없다는 거야. 나는 완벽하게 승리하고, 명진건설을 통째로 내가 차지하길 원해.’

어렵진 않을 것이다.

사실상 구부능선을 넘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고창석의 사람들은 그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띠리리.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분노를 진정시키며 전화를 받은 고창석은, 순간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부릅떴다.

[크, 큰일 났습니다.]

그것은 변수였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

[사모님께서 한성 오피스텔에 들이닥쳤습니다!]

“……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안색이 창백해졌다.

한성 오피스텔.

그곳은 바로 그의 스폰녀가 생활하는 공간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