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혼란의 징계위원회 (1)
김현성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무렵.
천일 고등학교 교장실에서도, 김현성이 저지른 일로 인해 한바탕 난리가 났다.
“정민호 어머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탕!
맞은편에 앉은 중년 여성이 찻잔을 세게 내려놓았다.
표정에서 드러나는 격렬한 분노에, 오대환 교장은 말끝을 흐리며 슬그머니 눈치를 살폈다.
정민호의 어머니.
김순자가 말했다.
“오대환 교장 선생님은 우리 민호가 얼마나 귀한 아들인지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노산(老産)으로 겨우 낳은 가문의 삼대독자고, 우리 민호가 원하는 일이라면 하늘의 별도 따다 줄 만큼 소중하게 키운 아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민호가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미인 제 마음은 어땠을 것 같습니까?”
“그 일은 정말로 죄송…….”
“여보세요! 제가 지금 사과나 들으려고 이 자리를 찾은 것 같아요?!”
분노가 폭발했다.
오대환을 잡아먹을 듯, 김순자가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빛을 보였다.
“어디 까놓고 말해 봅시다. 민호가 천일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제가 얼마나 많은 것을 해 드렸습니까? 애들 운동하는 데 잔디가 필요하다면 잔디를, 문화생활을 위해서 도서관에 책이 필요하다면 책을, 오대환 교장 선생님이 은근슬쩍 필요한 것을 말씀하실 때마다 저는 단 한 번도 외면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왜 그랬겠습니까? 우리 민호가, 내 사랑스러운 아들이! 천일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불편함이 없도록 편의를 봐달라는 의미라는 것을, 우리 서로 모를 만큼 한심한 어른이 아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백번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걸 잘 아는 사람이 일을 이따위로 처리해요!”
빽 소리를 질렀다.
오대환의 순종적인 태도가 오히려 가슴에 불을 질렀다.
저렇게 잘 알면서.
아들이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도록 방관했다는 사실이, 김순자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오대환이 말했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제가 잘 관리했어야 했는데,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대환의 사죄.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처음에는 계속해서 따져 묻던 김순자도, 오대환의 일관적인 태도에 어느 순간부터는 분노가 가라앉은 모습을 보였다. 어차피 물은 엎질러진 상태다. 상황을 되돌릴 수 없다면, 이 들끓는 감정을 완벽하게 해소할 수 있도록 확실한 조치가 필요했다.
“오대환 교장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더 따져 묻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약속해 주세요. 우리 민호를 그렇게 만든 학생. 그 학생만큼은 엄벌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만들어 주겠다고. 만약 이번 일을 제대로 처리해 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저는 천일 고등학교를 위해 그 무엇도 해 줄 수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오대환 또한.
이번 사건으로 발생한 여파에, 김현성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었다.
“이미 징계위원회를 소집한 상태고, 그 구성원들은 모두 제 의견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가해자인 김현성으로 인해 병원에 실려 간 학생만 네 명입니다. 단순히 학교 내부에서의 징계뿐만 아니라, 징계위원회가 마무리되고 법적인 처벌도 받을 수 있도록 제가 모두 조치하겠습니다.”
“뭐 그렇게 처리해 주신다면야…….”
“예, 그런 부분은 제게 맡겨 주십시오. 이번 일을 제외하고, 제가 언제 실망시켜 드린 적이 있었습니까?”
분위기가 변했다.
약속을 받아 내자, 김순자는 조금 누그러진 얼굴로 웃음을 보였다.
“그렇긴 하죠. 그럼 오대환 교장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아차, 그리고 저번에 학교 보수 작업을 위한 자금이 필요하다고 하셨죠?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된다면, 그 부분은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 * *
오대환과의 대화는 잘 마무리되었다.
교장실을 나선 김순자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천일 고등학교의 또 다른 인물을 만났다.
그는 바로.
“김영철 선생님. 어디 해명해 보시죠. 민호가 말하길, 김영철 선생님이 우리 민호가 폭행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그냥 지나쳤다는데. 이번 일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면, 저는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1반 담임.
김영철이 새로운 목표였다.
정민호의 증언을 들었을 때, 김순자는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을 받았다.
김영철이 당황하며 말했다.
“어…… 그, 그게 말이죠. 사실 그, 그때 너무 경황이 없어서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맞습니다! 앞에서 학생들이 응급실에 실려 가지 않았습니까? 피해 학생의 담임으로서 상황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래서 민호의 상황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그뿐…….”
“야 이 새끼야!”
짜악!
김영철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뺨을 맞았다.
붉게 달아오른 뺨을 부여잡지도 못한 채, 김영철은 김순자의 폭언을 들어야만 했다.
“내가 그따위 변명이나 듣자고 너한테 돈을 처먹인 것 같아? 네가 이번 일을 사죄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가해 학생이 다시는 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도록 정계위원회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
“……죄송합니다.”
“이래서 근본도 없는 새끼들을 믿으면 안 된다니까. 죄송하다는 말 말고, 내 말대로 하겠다고 약속을 하라고!”
약속.
김영철로서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제껏 돈을 받아먹은 것이 있으니 당연히 힘을 보태야 하지만, 김순자의 말처럼 징계위원회에서 적극적으로 김현성의 처벌을 주장했다가는 자신의 불륜 사실이 발각될 것이다.
‘진퇴양난(進退兩難)이구나.’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었다.
일단은 이 상황을 넘겨야 했다.
김영철은 복잡한 머릿속을 애써 외면하며, 죄송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날의 일은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제가 정말 실수를 했고, 이번 징계위원회를 통해 꼭 만회하겠습니다.”
“명심하세요. 난 돈 먹인 거 밝히고 민호를 전학시키면 그만이지만, 선생님인 당신은 그런 꼬리표를 달고 앞으로 살아가기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우리 둘의 관계가 결정될 거예요. 아시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되었다.
이만 자리를 떠나는 김순자의 뒷모습에, 김영철은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씨발, 대체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김현성을 배신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 * *
일주일은 금방 지나갔다.
징계위원회 당일.
김영철은 이번 징계위원회에서 담임 교사 자격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그래서 미리 자리를 준비하고 있는데, 김영철의 시야에 자신과 같은 참석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실상 결과는 이미 나왔네.’
징계위원회.
처벌을 위해 마련되는 이 자리는 학교마다 방식이 조금씩은 다른데, 천일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피해 학생과 보호자, 해당 사건과 관련이 있는 교사들과 교장, 마지막으로 천일의 학부모 단체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참관을 맡았다. 그들의 뜻을 모아 처벌의 수위를 결정하는 자리. 문제는 그렇게 자리한 대부분이, 정민호의 어머니인 김순자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교장은 말할 것도 없고.
학부모 단체의 사람들도 김순자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통 징계위원회는 다수의 세력을 확보한 사람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김현성을 만나야 해.’
패배가 확실한 싸움이다.
그렇다면.
미리 조치할 필요가 있었다.
김순자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김현성의 마음을 회유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같이 죽자고 달려들 것을 예상하면서도, 벼랑 끝에 몰린 김영철로서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 결과.
“싫은데요.”
“현성아!”
김현성의 대답은 차가웠다.
선을 긋는 모습에, 김영철은 안달이 나서 말했다.
“이미 정민호의 어머니가 징계위원회 구성원들을 모두 구워삶은 상태야. 이 자리에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차라리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처벌을 최소화할 수 있다니까? 이렇게 고집을 피운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그건 제가 알아서 할 문제예요. 선생님. 정민호 어머니가 선생님을 압박한다는 건 잘 알겠는데, 선택의 갈림길에서 현명하게 판단하세요. 뒷돈을 받아먹은 걸 공개할지, 아니면 불륜 사실을 공개할지. 저는 어중간하게 지금 직면한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아요. 선생님이 어떤 선택을 내리든, 그 선택에 대한 확고한 태도를 보이겠죠.”
단호했다.
타협의 여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간단하잖아요. 죽으려면 같이 죽고, 살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세요. 그게 유일한 방법이에요.”
꽉 막힌 벽이었다.
절망적인 상황에, 김영철은 폭로고 뭐고 상대의 뺨을 시원하게 날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40이 넘어선 나이.
현실적인 문제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번의 분노로 인생이 완전히 망가지는 것을, 그의 나이대에서는 도저히 허락할 수가 없었다.
“모두 자리에 앉아 주세요.”
“이제 징계위원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
먼저 걸음을 옮기는 김현성의 모습에, 김영철은 나라를 잃은 것처럼 절망스러운 표정을 보였다.
* * *
김영철이 자리에 앉았다.
얼굴은 완전히 죽상이었다.
징계위원회 결과로 벌어질 참담한 현실에, 그는 도무지 표정 관리를 할 수 없었다.
‘난 이제 끝이야. 비리 교사가 되든, 불륜남이 되든. 교사로서 설 자리를 잃어버리겠지. 이 나이에 직장을 잃어버리면 난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 그동안 모아 뒀던 돈으로 치킨집이라도 차려야 하나.’
절망적이었다.
그때였다.
바로 옆에 앉은, 자신과 같이 관련 교사로 참석한 8반 담임 박인환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철아. 저기 저 사람, 왠지 고창범 같지 않냐?”
김영철과 박인환.
둘은 절친한 사이였다.
서로의 더러운 면모를 알기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고, 학생들이 없는 자리에서는 편하게 말을 놓았다. 김영철로서는 순간적으로 박인환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가 가리킨 고창범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이다.
“……고창범이 누구야?”
“고창범을 몰라? 명진건설 장남. 왜 우리 유흥업소 들락거리면서 몇 번 얼굴 본 적이 있잖아.”
“어? 그 고창범이라고?”
순간.
김영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개를 돌려 박인환이 말한 곳을 확인했다.
“진짜네. 고창범이네.”
확실했다.
박인환의 말대로 사내의 모습을 샅샅이 살펴보자, 유흥업소의 어두운 조명 밑에서 보았던 얼굴과 완벽하게 똑같았다. 대산에서 고창범은 매우 유명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김영철은 유흥업소를 종종 들르다 보니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문제는.
고창범이 대체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황급히 명단을 확인하자, 고창범의 자리가 김현성의 보호자석임을 알아낼 수 있었다.
‘명진건설의 장남이 김현성의 보호자로 참석했다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김현성은 부모 없이 할머니와 사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철아, 영철아. 침착하자. 일단 확실한 사실부터 가려내자. 저 사람은 명진건설의 장남인 고창범이 맞아. 그리고 그가 착석한 자리는 김현성의 보호자석이고. 자리를 잘못 앉았다기에는, 징계위원회 참석자 명단에도 고창범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어. 워낙 경황이 없어서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설마 이 고창범이 저 고창범이었다니.’
머릿속이 뒤얽혔다.
옆에서 박인환이 뭐라고 떠들든, 김영철은 머릿속을 장악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기는 했어. 김현성은 그런 대담한 일을 벌이고도 어째서 불안한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던 걸까. 만약 고창범과 같은 든든한 배경이 있다면, 김현성의 모든 행동을 이해할 수 있어. 그래.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창범은 정말 김현성의 보호자로 참석한 거야.’
숨이 가빠졌다.
고창범의 존재.
좋은 소식일까?
아니면, 나쁜 소식일까?
‘고창범이 김현성을 보호하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했다면. 그는 정민호의 부모님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배경이야. 정민호의 부모님은 끽해야 돈이 조금 많은 수준이지만, 고창범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명진건설은 대산 최고의 기업이야. 대산에서는 명진을 거스를 수 없다는 의미지.’
곧.
선택의 순간이었다.
김영철이 마른침을 삼켰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이 상황에서, 의외의 변수는 엄청난 가능성을 뜻했다.
그때였다.
“지금부터 징계위원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어떤 사건인지를 정확히 말씀드리기 위해,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의 담임인 김영철 선생이 먼저 상황을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대환의 발언.
시선이 집중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김영철을 바라보았고, 그중에는 기대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김순자와 정민호도 있었다.
선택의 기로였다.
이제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김영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목에 핏대를 세우며 강렬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명확합니다! 정민호를 비롯한 소위 일진이라고 불리는 학생들이 동급생을 괴롭히면서 발생한,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극악무도한 사건입니다!”
배신.
그는 가정을 잃느니, 김현성의 자신감에 모든 것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