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혼란의 징계위원회 (2)
김영철의 발언.
사람들이 신음을 삼켰다.
오대환은 분명히 교사들을 포섭했다고 말했는데, 김영철은 뜬금없이 정민호를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했다. 방금까지 평온했던 오대환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눈에 띄게 당황하는 기색으로 황급히 말했다.
“김영철 선생.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정확하게 말하세요.”
“알겠습니다.”
대답은 시원했다.
하지만 일을 저지른 이상, 김영철은 오대환이 바라는 대로 행동할 생각이 없었다.
“이번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박민철 패거리라고 불리는 박민철, 정민호, 조용택, 강창석. 이 네 학생은 학기 초부터 친구들을 괴롭힌다는 제보가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말로 어르고 달래며 최대한 분란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박민철 패거리의 행태는 매우 악랄해졌습니다.”
오대환이 발을 동동 굴렀다.
김순자도 잡아먹을 것 같은 눈빛으로 김영철을 노려보았지만, 슬쩍 시선을 돌리며 다른 사람들을 보았다.
“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박민철은 평소에 이정민을 괴롭혀 왔는데, 본인의 게임 캐릭터를 제대로 육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했습니다. 사건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김현성은 처음부터 박민철 패거리를 폭행하려는 의도가 아니었고, 이정민이 폭행당하는 장면을 지켜보다 못해 용감하게 나섰습니다. 그러지 마라! 우리는 학생이지 않냐. 진심 어린 마음으로 그들의 행동을 제지하려 했지만, 박민철은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김현성을 공격했습니다.”
진실과는 달랐다.
적당한 각색.
오히려 진실과 거짓을 섞은 각색은 파괴력이 대단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누군가 여러분을 때리는데 가만히 맞고만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김현성은 그래서 박민철을 때렸고, 그것은 엄연히 정당방위였습니다. 그렇다면 정민호가 왜 이 자리에 있느냐. 앞에서 박민철 패거리라고 표현한 것처럼, 박민철이 맞는 상황에 그들은 다 같이 김현성을 공격했습니다. 김현성으로서는 이번에도 맞지 않기 위해 반격할 수밖에 없었고, 머릿수가 부족한 만큼 발악하다 보니 네 학생 모두 병원에 실려 가는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절절한 목소리였다.
영웅의 일대기를 말하는 것처럼, 김영철은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김영철 저 새끼는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사기꾼이었을 것이라고.
징계위원회를 참관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김영철의 말에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폭력이 정당하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단순히 눈에 보이는 상황을 두고 김현성을 가해자로, 정민호를 피해자로 구분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습니다. 김현성은 폭력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하지만 그 수위가 강하고 정민호에게 아무런 처벌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학교 폭력의 본질을 무시한 쓰레기 같은 어른이 되는 겁니다.”
“말조심하세요, 김영철 선생!”
“이상입니다.”
자리에 앉는 김영철.
오대환의 분노는 대놓고 무시했다.
이판사판이었다.
판을 깔았으니, 지금부터는 자신으로서는 알 수 없는 김현성의 계획을 믿어야 했다.
* * *
웅성웅성.
사람들이 동요했다.
특히 진실을 모르는 학부모 단체의 사람들은, 김영철의 폭로에 김현성을 처벌할 일이 아니라고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오대환과 김순자로서도 징계위원회에 참석하는 전부를 포섭한 것은 아니었다. 몇몇 주요 인물들만 확보한 상태였는데, 일반 자격으로 참석한 학부모들로서는 박민철 패거리가 알고 보니 극악무도한 무리였다는 사실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분위기가 변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오대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김영철, 이 빌어먹을 새끼. 돈을 받아먹는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는데도 그냥 넘어갔는데, 감히 내 뒤통수를 쳐? 두고 보자. 이번 사건만 잘 마무리되면, 천일에 김영철 네놈의 자리는 없을 거야.’
일단.
상황을 수습해야만 했다.
대놓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오대환은 애써 아닌 것처럼 침착하게 말했다.
“김영철 선생의 발언은 학교 측과 무관한 개인의 입장일 뿐입니다. 박민철, 강창석, 조용택, 정민호가 학교 폭력을 주도했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며, 지금 이 자리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얘기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러니 더는 논점을 흐리지 마십시오. 우리는 지금 천일 고등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학생 네 명이 응급실에 실려 간 극악무도한 사건에 대해 논하고자 합니다. 어떤 이유가 있건, 학생이 이토록 잔인한 폭력을 행했다는 건 어디에서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분위기를 틀었다.
똑같이 극악무도와 같은 단어를 언급하며, 중립이어야 할 교장인 오대환이 본질적인 문제를 덮었다.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천일의 학생인데,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는 사실이요. 하지만 이와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확실하게 처벌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천일을 믿고 학생을 맡긴 우리 학부모님들께서 안심하고 집에 돌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김순자와 시선을 마주쳤다.
계획대로 하겠다는 듯이, 무언의 신호를 주었다.
“그러니 일단 정민호의 입장을 먼저 들어 보겠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당사자를 통해 듣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겠습니까? 김현성 학생의 입장은 차례로 들어 보겠습니다. 정민호 학생. 발언하세요.”
발언권을 넘겼다.
분위기가 어수선한 때.
정민호의 발언은 분위기를 단번에 앗아 올 것이다.
* * *
시선이 집중되었다.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정민호는 이번 발언을 위해, 병실에 있는 동안에도 사전에 이미 대본을 보고 연습했다는 사실을.
정민호가 말했다.
“……제가 경험한 상황은 김영철 선생님의 발언과 완전히 다릅니다. 제가 1반에 찾아갔을 때 목격한 장면은 박민철을 일방적으로 구타하는 김현성의 모습이었고, 친구들에게 듣기로 김현성이 갑작스럽게 박민철에게 시비를 걸었다고 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증인을 부르셔도 좋습니다. 누구에게 물어도, 김현성이 먼저 폭력을 행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까요.”
진실이었다.
박민철은 이정민을 때렸으나, 박민철을 먼저 때린 사람 또한 김현성이었다.
진실을 섞었다.
김영철이 했던 것과 똑같이, 정민호도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각색했다.
“친구가 맞고 있는 모습에 저는 친구로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달려들었던 건데, 김현성은 저희를 이겨 보겠다고 자물쇠를 무기로 사용했습니다. 물론 다수가 한 명을 공격한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김현성의 폭력이 있었고, 저희는 그것을 막아 내기 위해 똑같은 폭력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솔직히 김영철 선생님이 왜 저희의 탓으로 몰아가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처음 사건이 벌어진 직후. 김현성은 분명히 김영철 선생님에게 불려 가 훈계를 받았고, 상황은 그 자리에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런데 김현성은 훈계가 끝나자마자 저를 찾아와 보복했습니다. 저는 분명히 사건이 마무리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김현성은 보란 듯이 저를 때렸습니다. 그런데도 이게 정말 제 잘못인가요?”
책임이 명백했다.
싸우면서 무기를 사용한 점.
훈계가 끝나고 행한 보복.
책임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명백한 사실을 두고 보았을 때, 설령 정당방위라 할지라도 이건 과도하다고 볼 수 있는 문제였다.
단번에 가져온 흐름에 김순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분! 우리 아이 얼굴을 보세요. 조금이라도 다칠까 봐 귀하게, 정말 귀하게 키운 우리 아들의 얼굴이 이렇게 엉망이 되었습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신성한 학교에서 이토록 잔인무도한 폭력이 행해졌다는 것을 우리 학부모들은 절대 방관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우리 민호로 끝난 문제지만, 언제 다른 아이들이 이런 꼴을 당할지 모릅니다. 확실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확실하게!”
“제 생각도 같아요.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저렇게 때리는 건 아니죠.”
“처벌합시다.”
김순자의 사람들.
그들이 말을 덧붙였다.
이미 다수의 인원을 확보했기에, 여론에 불을 붙이자 마치 기름을 부은 것처럼 활활 타올랐다.
김영철의 발언?
잊은 지 오래였다.
그는 박민철 패거리의 행실이라는 본질을 논했지만, 상황이 어떻든 눈에 보이는 폭력의 흔적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명백한 진실은 김현성의 폭력으로 네 명의 학생이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것. 그것을 전제로 징계를 논한다면, 폭력의 주범인 김현성의 처벌은 피할 수 없었다.
애초에 불리한 싸움이었다.
폭력을 행한 순간부터, 김현성은 가해자일 수밖에 없었다.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모두가 한마디씩 거들며 김현성을 비난하는 그때, 갑작스럽게 소란을 뚫고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진짜 개염병들을 하네.”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에게 집중되었다.
* * *
목소리의 주인.
고창범이었다.
김영철과 박인환은 곧바로 알아보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가 명진건설의 장남인 것을 알지 못했다.
고창범이 말했다.
“다들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겁니까, 아니면 정말 모르는 겁니까? 우리 현성이는 천일 고등학교 제일의 수재입니다. 학생기록부를 뒤져 봐도 초중 모두 최상위 성적으로, 그것도 문제 하나 일으키지 않고 성실하게 다닌 학생인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습니까? 저 인간의 탈을 쓴 악마 새끼들이 먼저 수작질을 부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망발입니까! 악마라니요!”
“그럼 저딴 새끼가 악마가 아니면 뭡니까!”
콰앙!
책상을 내리쳤다.
학부모들이 화들짝 놀라든 말든, 고창범은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 댔다.
“이번 징계위원회에 참석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박민철 패거리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참 악질적이더군요. 폭행은 기본이고 삥도 뜯고, 박민철 패거리라는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학생들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제 말이 거짓 같으면 어디 진실을 확인해 봅시다. 지금 아득바득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들은, 가해자 부모한테서 돈을 처먹은 새끼들이라고 똑똑히 기억할 테니까.”
점점.
발언이 선을 넘었다.
과할 정도로 강한 발언에, 학부모들은 놀라서 뭐라고 반박하지 못했다.
“막말로 우리 모두 솔직해집시다. 학창 시절에 양아치 새끼들이 괴롭히면 가만히 맞고 있어야 합니까? 당연히 치고받고 반격해야죠. 정민호가 떼거리로 애들을 몰고 와서 응급실에 실려 가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이번 사건은 우리 현성이가 자신의 몸을 지키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담임인 김영철 선생님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번 사건의 본질을 봐야 한다고요!”
“야 이 새끼야! 양아치라니! 우리 아들이 왜 양아치야?!”
김순자가 반발했다.
듣고만 있던 그녀로서는, 정민호를 향한 날 선 발언에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너, 너 누구야. 김현성은 애미애비도 없는 거로 알고 있는데, 넌 대체 누군데 그따위 말을 하냐고!”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사납게 변했다.
고창범의 태도.
잘못되었다.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타당하나, 욕설을 섞은 순간부터 비난은 피할 수 없었다.
고창범이 웃었다.
‘판이 제대로 깔렸네.’
이 자리.
상식이 통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결과를 정해 놓고 나온 사람들을 엎어 버리기 위해서는, 자신 또한 상식적일 이유가 없었다.
“내가 누구냐고? 나 현성이의 후견인이다. 그리고…….”
김순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와 더불어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똑똑히 들을 수 있도록, 고창범은 목소리를 높여 또박또박 말했다.
“명진건설. 내가 거기 장남이야.”
설명은 필요 없었다.
명진건설.
그 말 한마디에, 사람들의 표정이 충격으로 얼룩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