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13화 (13/130)

3. 혼란의 징계위원회 (4)

일련의 상황.

김순자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분명히 순탄하게 진행되리라고 예상했던 징계위원회가, 김영철을 시작으로 엉망이 되어 버렸다.

‘나쁜 새끼들. 돈을 그렇게 받아먹고 배신을 하다니.’

김영철은 그렇다 치자.

그는 처음부터 싹수가 노래 보여서 그리 신뢰하지 않았지만, 천일 고등학교 교장 오대환은 다른 문제였다. 오대환은 학부모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그가 부임하고서부터 천일을 후원하는 학부모의 자식들은 오대환의 세심한 관리를 받았고, 단 한 번의 문제도 없이 졸업시키면서 선례를 쌓았다.

처음 김순자를 만났을 때.

오대환은 그 선례를 말했다.

그것은 확실한 거래 관계를 증명하기에, 김순자는 망설임 없이 천일에 거액의 후원금을 내뱉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배신했다.

김영철은 몰라도 끝까지 정민호의 편을 들었어야 할 오대환이, 그간의 선례를 무너트리는 일임을 알면서도 김현성의 편을 들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명진건설의 장남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들의 문제를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김순자가 말했다.

“내 아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절대 용납 못 해! 개자식들. 잠깐 기다려. 남편이랑 통화하고 올 테니까.”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가 중단되든 말든, 그녀가 창가로 다가가더니 휴대폰을 들었다.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모두가 그녀의 행동을 주시하는 상황에, 통화 연결음이 들릴 정도로 교실이 적막으로 물들었다.

탈칵.

[무슨 일이야?]

“여보! 내 얘기 좀 들어 봐. 우리 민호 문제로 이번에 징계위원회를 한다고 내가 말했지?”

[그랬지.]

“그런데 이 사람들이 지금 우리 민호 잘못으로 몰아가고 있어. 김영철 선생이랑 오대환 교장 모두! 어떻게 좀 해 봐 봐. 명진건설의 장남이 민호를 때린 녀석의 후견인이라는 이유로, 이 배은망덕한 자식들이 그간의 관계를 싹 무시하고 있다니까? 어디야? 몇 분이면 여기로 올 수 있어?”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의 남편.

태어났을 때부터 금수저로 자란 정만철은 자존심이 상당히 강하며, 이런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해결할 사람이었다. 정만철을 믿었다. 그가 분노하며 나타나 정민호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리라 믿었지만, 이상하게도 휴대폰 너머로 묘한 적막이 맴돌았다.

[……그래서 고창범 씨가 가해자의 후견인이라고?]

“뭐야? 아는 사람이었어? 잘됐네. 어서 와서 이 빌어먹을 놈들을…….”

[야 이 여편네야! 우리 집안 망하는 꼴 보고 싶어? 감히 명진건설의 장남을 상대로 그따위로 행동해! 이런 미친년이. 당장 들어와. 징계고 뭐고 민호가 다 처벌받는 것으로 하고, 당장 들어오라고!]

순간.

김순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상치도 못한 반응에, 그녀는 충격을 받은 듯 그대로 굳어 버렸다.

휴대폰 너머에서 욕설이 빗발쳤다.

그 소리는 고스란히 다른 사람들에게 들렸고, 사람들은 정만철의 반응에 확신을 얻었다.

이번 징계위원회.

사실상 그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 * *

김순자가 자리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의기양양하던 그녀가,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 넋을 잃은 반응을 보였다.

오대환이 말했다.

“이제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이번 사건. 김현성 학생이 동급생들을 폭행한 것은 엄벌 받아 마땅한 일이나, 이 일이 벌어지기 전에 소위 박민철 패거리라고 불리는 네 학생의 학교 폭력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묻겠습니다. 그동안 학교 폭력을 행해 오던 학생들이 잘못되었습니까, 아니면 학교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주먹을 든 학생이 잘못되었습니까. 천일 고등학교의 교장으로서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제 잘못을 인정하며, 이번 사건의 본질적인 문제를 확실히 뿌리 뽑도록 하겠습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김영철을 비롯한 선생들.

학부모들.

누구도 반발하지 않았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서론에도, 그들은 오대환의 뜻을 지지했다.

마지막으로 고창범과 시선을 마주쳤을 때, 고창범은 삐딱한 자세로 어서 말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의 거래였다.

김순자를 잃는 대신, 오대환은 명진건설을 얻을 것이다.

“김현성 학생에게는 봉사 활동 100시간을 부여하겠습니다. 비록 폭력에 대항하는 방법이었다고는 하나, 네 학생이 응급실에 실려 간 만큼 그 책임은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민호를 비롯한 박민철, 강창석, 조용택. 네 학생은 동급생들을 괴롭히는 극악무도한 학교 폭력을 저지른 죄로 퇴학을 결정하겠습니다.”

퇴학.

그 단어를 내뱉는 순간, 정민호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 * *

징계위원회가 마무리되었다.

밖으로 나온 정민호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퇴학이라니.’

퇴학.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징계위원회가 시작되기 전만 하더라도, 김순자를 비롯해서 오대환 교장은 아무런 일이 없을 거라면서 그를 달래 주었다. 그런데 고창범이 나타나면서 전부 엉망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고창범의 눈치를 보기 바빴고, 결국에는 박민철 패거리의 퇴학이라는 최악의 결말을 맞이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겨우 17살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캠퍼스 생활을 꿈꾸던 그에게, 고등학교 퇴학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때였다.

“정민호.”

“이런 개새끼가.”

김현성이었다.

울컥하며 달려들려던 정민호는, 갑작스럽게 자신을 붙잡는 김순자를 발견했다.

“엄마?”

김순자의 표정은 참담했다.

조금 전.

정만철에게 쌍욕을 들었던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절대 명진건설 장남의 심기를 건드리지 마. 이 대산 바닥에서 명진건설에 찍혔다간, 세무 조사든 뭐든 우리 재산을 지킬 수 없을 정도로 사방에서 물어뜯을 거라고. 그러니까 상대를 봐 가면서 일을 벌였어야지.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하고, 민호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알겠지?]

참담한 현실이었다.

재력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았다.

명진건설은 대산에서 뿌리를 내려 재력뿐만 아니라 권력을 갖추었고, 정만철 정도 되는 사람들은 명진건설을 적대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알았다. 건물을 수 채 가지고 있을 정도의 재력? 명진건설이 대놓고 정만철을 물어뜯는다면, 그 재산은 뼈대만 남을 정도로 앙상해질 것이다.

세무 조사.

건축법 위반 신고.

임대 방해 등등.

방법은 많았다.

현실을 마주한 김순자로서는, 더는 정민호를 위해 극성으로 행동할 수 없었다.

김현성이 웃었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김순자의 모습에, 정민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릎 꿇고 빌어.”

“뭐?”

“무릎 꿇고 빌라고.”

“내가 왜 빌어? 이미 징계위원회에서 퇴학 결정까지 받았는데, 대체 내가 왜 무릎을 꿇고 비냐고!”

“그건 네 어머니한테 물어봐야지. 네가 꿇는 게 옳은지, 아닌 게 옳은지.”

정민호가 김순자를 보았다.

김순자는 시선을 피했다.

차마 무릎을 꿇으라고 말할 수 없기에, 정민호의 시선을 마주칠 수 없었다.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충격으로 얼룩진 정민호의 귓속으로 김현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앞으로 너희 집에 아주 재밌는 일이 벌어질 거야. 그러니까, 내 마음을 누그러트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보라고. 혹시 모르잖아. 내가 퇴학으로 끝내 줄지.”

김현성의 말.

정민호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김순자는 아니었다.

“민호야. 무릎 꿇고 빌어.”

“엄마까지 왜 그래!”

“어서!”

김순자가 빽 소리를 질렀다.

정민호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천일 고등학교에서 포식자로 군림하며 살았던 그가, 금수저로서 조금도 부족함 없이 살았던 그가. 이런 치욕을 경험하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정민호는 마음 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김순자의 간절한 눈빛에, 그는 절망한 표정으로 결국 무릎을 꿇었다.

툭.

“미안해. 정말 미안해.”

고개를 숙였다.

울먹거렸다.

너무 쪽팔려서, 너무 화가 나서.

도저히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김현성은 정민호를 향해 쪼그려 앉더니, 김순자에게 들리지 않도록 그의 귓속에 속삭였다.

“미안한데, 그 정도로는 내 마음이 풀리지 않네. 그러니까 기대해도 좋아. 앞으로 네 앞날에 불행한 일이 가득할 테니까.”

순간.

고개를 홱 들었다.

악에 받쳐 뭐라고 하려는 순간, 김현성의 얼굴을 확인하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김현성.

그는 마치 악귀(惡鬼)와도 같은 얼굴로 정민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고창범이 차에 탔다.

평소에 즐겨 타는 스포츠카였다.

안전벨트를 매며 이만 학교를 떠나려던 그는, 문득 징계위원회가 끝나고 김현성이 한 말을 떠올렸다.

“정민호, 박민철, 조용택, 강창석. 네 사람의 인생을 짓밟아 주세요. 단순히 그들이 앞으로 편안하게 학교에 다니지 못하도록, 성인이 돼서 그럴듯한 직장에 다니지 못하도록 만들어 달라는 게 아니에요. 자식을 그렇게 키운 부모들조차 절망적인 현실을 마주할 수 있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의 인생 자체를 망가트려 주세요.”

악의적이었다.

어쩌면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 악독한 부탁에, 고창범은 김현성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영리하다고 생각했다.

똑똑하고 머리가 잘 굴러가는 사람들은 보통 적을 만들지 않는데, 김현성은 악마 같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상대를 짓밟으려고 했다. 생각해 보면 김현성은 자신을 후견인으로 내세워 많은 사고를 치겠다고 말했다. 자신으로서는 알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심각해질 만한 문제에 고창범은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그런 새끼들이 어찌 되든 내 알 바냐. 내가 이득을 보면 끝이지.”

그 또한.

양아치였다.

사람들의 인생을 짓밟는 대가로 명진건설 회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그것이 고창범이라는 인간의 근본이었다.

부왕!

부아아아아아!

그대로 액셀을 밟는 고창범.

들뜬 기분에, 아무래도 오늘은 강남에 놀러 가야 할 것 같았다.

* * *

징계위원회가 끝나고.

김현성은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는 내일부터 나오라고 했기에, 그는 아무도 없는 집에 덩그러니 누워 조금 전의 일을 떠올렸다.

김영철과 오대환.

그들이 김현성을 붙잡고 말했다.

“……현성아. 내가 널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잘 알지? 그러니까 우리 사이의 비밀은 꼭 지켜 줘야 해.”

“김현성 학생. 명진건설의 장남 같은 후견인이 있다는 사실을 진즉에 말했다면, 나는 절대 이번 징계위원회를 추진하지 않았을 거야. 물론 지금 한 말이 참 속물적으로 보이겠지. 하지만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앞으로 김현성 학생이 천일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내 이런 속물적인 면모가 학교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 테니까. 그러니 고창범 씨에게 나에 대해서 잘 말해 주었으면 좋겠어. 혹시 둘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 준다면 더욱 좋은 일이고.”

전생과는 달랐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두 인물.

그들이 자신을 향해 애써 웃음을 보이면서, 간과 쓸개를 전부 내줄 것처럼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역겨웠다.

하지만 받아들였다.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서, 자신 또한 그들과 같은 부류가 되어야만 했다.

그때였다.

띠링.

문자가 울렸다.

수차례 더 울리고서야 핸드폰을 확인했고, 액정에는 익숙한 이름이 있었다.

-현성아. 나 박민철인데 잠깐 시간 좀 낼 수 있을까? 제발, 제발 한 번만 만나 주라.

간절한 내용.

박민철 또한,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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