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혼란의 징계위원회 (5)
징계위원회가 진행되던 그 시각.
대산의 한 병실에서, 박민철 패거리는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징계위원회는 잘 진행되고 있으려나.”
“내가 단언하는데 김현성 지금 X됐을걸? 민호네 어머니 성질 잘 알잖아. 완성 극성맞아서 민호 일이라면 학교 전체를 뒤엎는 사람인데, 민호를 그 꼴로 만든 김현성을 가만히 둘 리가 있겠어? 그래서 우리 입학 초기에 치고받고 싸울 때도, 민호만큼은 털끝도 건드리지 않았잖아.”
“크크큭, 그렇긴 하지.”
박민철이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지난 일주일.
참담한 시간이었다.
처음 병실에서 눈을 떴을 때는, 김현성에게 개처럼 맞았다는 사실에 이대로 죽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친구들이 차례로 실려 오면서 기분이 많이 누그러졌다. 혼자만 짓밟혔다면 쪽팔린다고 생각했을 텐데, 패거리 전체가 당했다면 이건 김현성이 강한 것이다.
물론.
학교로 다시 돌아가면 박민철 패거리의 위상이 다소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혼자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지금도 웃을 때마다 얼굴이 아팠다. 뺨을 하도 맞는 바람에 얼굴이 퉁퉁 부었고,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붓기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을 정도로 처참했다.
하지만 김현성이 절망하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밴드가 덕지덕지 붙은 얼굴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박민철이 말했다.
“난 말이야. 김현성 인생을 처참하게 짓밟아 버릴 거야. 학교에서 퇴학당해도 끝까지 쫓아가서 합의금을 요구할 거고, 만약 퇴학당하지 않으면 걔 학교 인생은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어. 정민호 부모님에게 그렇게 밟혔는데 설마 다시 반격할 수 있겠어? 본인 입에서 자퇴하겠다고 말할 때까지, TV에서 나오는 멍청한 새끼들처럼 자살할 때까지 괴롭혀 줄 거야.”
“오, 우리 합의금도 요구할 수 있어?”
“당연한 거 아냐? 인당 최소 수백은 뜯어내야지.”
“와씨, 개쩌네. 그런데 김현성 할머니밖에 없지 않나. 뭐, 그건 김현성네 사정이지. 합의금 받으면 그동안 눈여겨보던 오토바이나 뽑아야지. 그때, 여자애들 데리고 공원에서 노상이나 깔까?”
“씨발, 당연하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3인실 병실에 그들은 엉망인 몰골로 누워 있지만, 앞으로를 생각하면 웃음밖에 나오질 않았다.
사실 하루 전.
의사는 퇴원해도 좋다고 말했다.
심각한 내상은 전무하고 대부분 외상이다 보니, 일주일의 시간이면 충분히 집에서 통원 치료를 해도 된다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정민호의 조언에 그들은 퇴원을 거절했다. 하루라도 더 병실에 있어야 김현성의 죄가 무거워지기에, 그들은 하루 종일 병실 TV를 보면서 끝까지 버텼다.
이 하루하루가.
상대에게는 지옥을 선사할 것이다.
그렇게 왁자지껄 떠들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박민철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띠리리리.
“오오, 민호 전화다. 다들 조용해 봐.”
“얼른 받아!”
“징계위원회가 끝났나 보네.”
시선이 집중되었다.
박민철은 휴대폰을 들어 정민호의 승전보를 듣고자 했다.
그런데.
[……미안하다 얘들아. 우리 퇴학당했어.]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온 내용.
박민철 패거리의 얼굴이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일주일 내내 여유를 부리던 그들의 발등에, 처음으로 뜨거운 불길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 * *
그날 저녁.
박민철, 강창석, 조용택.
세 명은 곧바로 퇴원한 뒤에, 한적한 공원에서 김현성을 만났다.
복수 같은 이유가 아니었다.
박민철은 자신의 연락을 받고 나와 준 김현성의 모습에, 평소와는 다르게 친근한 표정을 보였다.
“와 줬구나! 정말 고마워!”
“서론 생략하고 본론부터 말해.”
“……알겠어.”
박민철 패거리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사실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는 사실에 정말 부끄럽고 쪽팔렸지만, 그들은 정민호와는 다르게 금수저 배경이 버텨 주는 아이들이 아니다. 만약 이대로 퇴학을 당해 버린다면? 바로 인생이 끝나 버린다는 사실을 알기에, 자존심이고 뭐고 김현성의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박민철이 말했다.
“현성아. 그날 애들 괴롭히고 널 때리려고 했던 것 전부 정말 잘못했어. 내가 철이 없어서, 내 행동으로 인해 애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 지난 일주일 동안 병실에서 지내며 학교 폭력이 무섭다는 사실을 알았고, 징계위원회 결과가 어떻든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 그러니까…… 이번 한 번만 봐줄 수 없을까?”
“그래, 현성아. 우리에게도 기회를 줘. 만약 이대로 퇴학당하면, 우리 인생은 사실상 끝이라고.”
“조금 전에 선생님에게 통화해서 물어봤는데, 현성이 네가 선처한다는 서류를 작성해서 보내면 퇴학만큼은 면할 수 있대. 정민호야 부모님까지 대동하고 와서 상황을 되돌릴 수 없겠지만, 우리 세 명만큼은 구제할 수 있다고 했어. 그러니까, 딱 한 번만 봐주라. 앞으로 학교를 계속 다니게 되면 네가 하라는 대로 할게. 심부름이든 뭐든 너를 위해서 뭐든 하겠다고 약속할게.”
다들 간절했다.
그들의 본모습이었다.
겨우 17살이다.
친구들 앞에서는 포식자처럼 행동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인생이 불안정한 고등학생일 뿐이었다. 그들에게 학교를 떠나라는 말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정민호와 같이 배경이라도 있다면 차라리 다른 학교를 알아볼 텐데, 그렇지 않아도 좁은 대산 바닥에서 박민철을 비롯한 세 명은 받아 줄 학교를 찾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인생은 뻔했다.
중졸.
그것도 퇴학으로 인한 강제적인 학력.
어디에서도 받아 주지 않을 것이다.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박민철이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였다.
“……현성아. 어떻게 안 될까?”
힐끗, 김현성의 표정을 살폈다.
담담했다.
분노하지도, 그렇다고 선처를 베풀 것 같지도 않았다.
이대로라면 망할 것 같다는 생각에, 박민철은 친구들과 시선을 마주치며 특단의 대책을 내렸다.
“이걸 말하면 우리도 위험해지는데, 사실 널 괴롭힌 일에는 배후가 있었어. 우리는 정말 너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는데, 그 사람이 우리한테 요구해 와서 어쩔 수가 없었어. 이정민을 괴롭힌 일 또한, 이정민을 건드리면 네가 딸려 올 것이라고 예상했어. 그 배후가 누군지 말해 줄게.”
“알아.”
“응?”
박민철이 눈을 부릅떴다.
배후의 존재.
알 리가 없었다.
그런데, 김현성은 싸늘한 눈빛으로 박민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의 배후. 누구인지 알고 있다고.”
* * *
전생.
김현성이 배후의 진실을 알게 된 것은, 식물인간이 되고 수년의 세월이 지나고 나서였다.
[충격적인 소식입니다. 학교 폭력을 주도하던 세력의 실체가 밝혀졌습니다. 그들은…….]
TV에서 들려온 소식.
정말 충격적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학생들의 악의가 만들어 낸 사건 사고라고 생각했는데, 한 학생이 투신자살까지 하면서 밝힌 유서에는 진실이 담겨 있었다.
단체의 이름은 골든 서클(Golden circle).
강남의 명문 학교들에 뿌리를 내린 단체였는데, 그들은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한 존재로 인해서 탄생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사업 아이템이었다. 학교 폭력이 만연한 세상에 학생들이 고통을 받자, 골든 서클을 처음 만들어 낸 사람은 그것이 오히려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간단한 거래였다.
일진들.
혹은 그와 같은 힘이 있는 아이들을 영입.
그리고 재력과 권력을 갖춘 사람들을 찾아가서, 자식이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지켜 주겠다고 제안했다. 단순히 그것만이었다면 골든 서클은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골든 서클의 창립자는 골든 서클의 관리를 받는 학생들이 우수한 성적을 받도록 시스템을 형성했고, 만약 회원이 어떤 경쟁자로 인해서 2등으로 밀려나는 상황이 생긴다면 1등을 제거하는 모습을 보였다.
간단한 방법이었다.
학교 폭력.
1등을 집요하게 괴롭혀 성적을 떨어트리고, 2등을 1등으로 올리는 단순하지만 정말 확실한 방법.
세월이 빠르게 흘렀다.
십수 년이 지나며 골든 서클은 급속도로 성장했고, 매년 배출되는 졸업생들이 골든 서클의 일원으로서 서로 끌어 주고 밀어주었다. 김현성은 그 순간에 있었다. 김현성의 성적을 시기 질투한 누군가가 골든 서클에 의뢰를 넣었고, 박민철은 의도적으로 김현성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자신이 식물인간 신세가 되어 버린 상황에, 알 수 없는 거대한 세력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미래에 골든 서클의 정체가 밝혀졌지만, 그건 얼마 지나지 않아 묻혀 버렸어. 골든 서클의 일원들이 치부를 숨겨 버린 거지. 나를 지옥으로 밀어 넣은 존재들. 내 복수를 완벽하게 완성하기 위해서는, 골든 서클 자체를 무너트려야만 해.’
캄캄한 어둠 속.
수도 없이 계획을 되새겼다.
박민철을 시작으로, 김현성이 강남에 진출하려는 이유는 바로 그곳이 골든 서클의 본거지이기 때문이었다.
김현성이 말했다.
“골든 서클. 그곳의 소행이겠지. 그런데 이상한 건 골든 서클이 이곳 대산까지는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거야. 골든 서클은 서울, 그리고 경기도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했는데, 대체 누가 너희에게 접근한 거지?”
“……신영민 선배야.”
“신영민?”
박민철이 진실을 털어놓았다.
골든 서클을 안다면, 사실상 더 숨길 것도 없었다.
신영민.
유명한 인물이었다.
천일 고등학교 3학년으로서 학교 전체를 손아귀에 쥐고 있는 인물이고, 종합 격투기를 준비하는 학생이니만큼 싸움 실력이 대단했다. 사실 그가 골든 서클의 일원은 아닐 것이다. 골든 서클은 가끔 지방의 의뢰를 받는데, 그때는 ‘용병’이라고 불리는 이들을 선택해서 일을 진행했다.
신영민은 용병일 뿐.
그를 쓰러트려야만, 자신을 끌어내리길 바란 진짜 범인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불가능한 일이야. 신영민은 내가 아는 미래에 종합 격투기 프로 선수로 데뷔했을 정도로 강한 인물. 어쭙잖은 실력으로 덤볐다가는 완전히 발리겠지.’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은.
박민철 패거리의 처분을 결정할 차례였다.
사실 이들의 처분은 고민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내게 용서받고자 찾아왔다고? 재밌는 새끼들이네.”
김현성이 이죽거렸다.
악의(惡意).
그것은 켜켜이 쌓여 온 감정이다.
김현성이 식물인간으로 살아가던 시절, 할머니는 가해자로 추정되는 학생들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때 그들의 부모는 할머니를 내팽개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자신을 찾아와 참담한 순간들을 하소연하는 동생으로 인해, 김현성은 마음속에서 악마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용서?
참회?
그딴 건 허락되지 않았다.
이미 굳은살처럼 박혀 버린 악의는, 김현성에게 그 어떠한 인간적인 감정도 허락하지 않았다.
콱.
“혀, 현성아?!”
갑자기 박민철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박민철 패거리가 당황하는 모습에, 김현성이 악마 같은 표정을 보였다.
“지금부터 똑똑히 보여 줄게. 앞으로 날 만날 때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빠악!
얼굴에서 피가 튀었다.
무너지려는 박민철의 멱살을 붙잡은 채, 수차례 얼굴을 후려쳤다.
그들은 오늘을 잊지 못할 것이다.
뼛속 깊이 각인되는 공포라는 감정에, 그들은 김현성의 이름만 들어도 오줌을 지리게 될 것이다.
그것이.
김현성이 진심으로 바라는 바였다.
제발 오늘을 잊지 못하기를, 그들의 삶에 트라우마가 영원히 남기를.
피로 물드는 손에도 폭력을 멈추지 않았다.
* * *
다음 날.
삼삼오오 모인 천일 고등학교의 학생들은 아침부터 난리가 났다.
“진짜야? 대박이네.”
“그렇다니까. 김현성의 후견인으로 명진건설 장남이 나타나니까, 교장이고 뭐고 아무 소리도 못 하고 박민철 패거리의 퇴학을 결정했어. 개쩔지 않냐? 이게 바로 주인공이 힘을 숨김이지. 누가 김현성에게 그런 후견인이 있을 줄 알았겠냐고.”
“그럼 김현성이 1학년 짱인 건가. 박민철 패거리를 혼자서 쓰러트렸잖아.”
“그건 아니지. 박민철 패거리가 양아치 기질이 있긴 했어도, 짱이라고 말할 만큼은 아니잖아.”
시끌벅적했다.
학생들의 주제는 모두 김현성이었다.
몇몇은 멋들어지게 무용담을 펼치기도 했다.
“박민철 패거리랑 싸울 때? 완전히 미쳤다니까. 처음에 강창석이 성난 멧돼지처럼 달려들었는데 자물쇠로 머리를 빡 후려치더니, 그대로 강창석을 제압해 버리고 조용택마저 들이받아 버렸어. 정민호? 걔는 쫄아서 뭘 하지도 못했어. 다른 건 모르겠는데 김현성의 깡은 진짜야. 그때 김현성이 싸우는 모습을 보는데, 얘는 건드리면 X되겠다는 게 느껴지더라.”
“그런데 진짜 갑자기 흑화해 버렸네. 현성이 원래 그런 애 아니잖아.”
“원래 그런 애가 아닌 애들이 무서운 거야. 한번 열 받으면, 그런 애들은 적당히라는 게 없어.”
한참 떠들던 그 시각.
1반 문이 열렸다.
김현성이 모습을 드러내자, 방금까지 목소리를 높이던 학생들이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정적이 맴돌았다.
김현성은 분명히 그들에게 친근한 친구였지만, 한바탕 사건이 벌어지자 함부로 말을 걸 수 없었다.
저벅저벅.
탁.
자리에 앉았다.
김현성 또한.
친구들과 말을 섞을 생각이 없었다.
담담하게 창밖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어느 한 학생이 다가가 말을 걸었다.
“……고마워.”
고개를 돌렸다.
이정민이었다.
이정민은 불안한 듯 손톱을 손으로 뜯으면서 말했다.
“네 덕분에 내가 살았어. 앞으로 말만 해. 네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진심을 다해서 도와줄게.”
훈훈한 장면이었다.
친구들은 이정민의 감사로, 그들이 기억하는 김현성이 돌아오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뭐가 고마운데.”
사납게 반응했다.
이정민이 당황했다.
그로서는 김현성의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다.
웃겼다.
이정민의 감사 인사가, 김현성에게는 달갑게 들리지 않았다.
“징계위원회가 끝날 때까지 모른 척하던 새끼가, 지금 와서 뭐가 고마운 거냐고. 어디 설명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