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변화 (2)
체육관은 3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계단으로 올라갔고, 문을 열고 들어서자 체육관 내부의 모습이 보였다.
사람은 없었다.
낡은 기구에 적막한 분위기.
UFC 챔피언의 체육관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초라하네.’
예상대로였다.
UFC 챔피언 정두철.
대한민국 최초로 종합 격투기 무대를 평정한 존재지만, 대단한 업적과는 다르게 그는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3차 타이틀 방어전 직후. 무패 파이터라고 불리던 호세 카를로스를 KO로 쓰러트리고 진행한 도핑 테스트에서, 정두철은 스테로이드(steroid)라고 불리는 약물이 적발되었다.
난리가 났다.
경기는 당연히 몰수패를 당했고, 잠정 챔피언이었던 호세 카를로스가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정두철은 변명하지 않았다.
현실을 받아들였고, 한국으로 귀국한 그는 절망적인 현실을 맞이했다.
[정두철, 금지 약물을 사용하다!]
[대한민국 전체가 정두철에게 속아 넘어갔다. 우리는 그가 대한민국을 대표할 세계 최고의 재능이라고 믿었지만, 알고 보니 그의 재능은 불법으로 금지된 약물로부터 비롯되었다. 스테로이드 같은 약물들은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육체적인 능력을 대폭 상승시키는 치트키. UFC 사무국에서는 정두철이 이와 같은 선택을 했다는 사실에 상당히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두철은 대한민국의 수치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변했다.
대한민국 전체가 그를 비난했다.
대한민국에서 약물은 정말 예민한 문제였고, 대단한 업적을 이룬 존재였던 만큼 더욱 가혹하게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두철은 종합 격투기의 수치가 되었다. 명성만으로 먹고살 수 있었던 사람이, 이렇게 지방에서 작은 체육관을 운영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가 한 일은 변명의 여지가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나는 그의 실력마저 부정하지는 않아.’
아직도 기억이 났다.
김현성이 학교 폭력에 대항하겠다고 한창 운동을 했을 때, 정두철의 자료는 몇몇 사람들에게 약물로 묻어 버리기에는 아까운 재능이라고 평가받았다. 정두철의 약물 사용이 예상되는 시점은 UFC 입성 이후. 그 이전에 국내 단체에서 보여 준 정두철의 기량은 대단했다. 천부적인 재능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에, 김현성은 정두철처럼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정두철을 원한 것은 아니다.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던 어느 날, TV에서 정두철과 관련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정두철 이후 처음으로 UFC 타이틀전을 확보한 김무열 선수가, 사실 자신은 정두철의 제자임을 공개했습니다. 그동안 약물 이슈로 스승의 존재를 숨겼지만, 그는 눈물을 흘리며 정두철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코리안 슈퍼 루키.
그는 정두철에 의해 탄생했다.
김무열은 정두철이 얼마나 훌륭한 스승인지를 미디어 앞에서 말했고, 그것이 김현성의 계획에 정두철이 포함되는 계기가 되었다. 최고의 선수이면서도 최고의 재능을 만들어 낸 존재. 정두철을 회유할 수만 있다면, 앞으로 강해질 충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때였다.
체육관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고, 등록하려고?”
사내가 방긋 웃었다.
수염 때문에 알아보기가 힘들었지만, 그는 UFC 챔피언 정두철이 분명했다.
이때는 김무열 발굴 3년 전.
아직은 폐인으로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김현성이 말했다.
“예, 등록하려고 왔어요.”
* * *
자리를 옮겼다.
허름한 사무실에서 짐을 옆으로 밀어 두더니, 정두철은 전형적인 사업가의 태도로 김현성을 응대했다.
“딱 보니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데 잘 찾아왔어. 우리 체육관으로 말할 것 같으면 프로 데뷔, 간단한 체력 증진, 다이어트 등등 어떤 목적이든 완벽하게 가르칠 수 있는 체육관이야. 관비는 한 달에 15만 원. 절대 비싼 금액이 아니야. 내가 일대일 PT(personal training)로 가르쳐 주는 시스템이거든.”
호의적이었다.
김현성이 기억하기로, 김무열이 UFC에서 성공하기 직전까지 정두철은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지금의 모습.
당연했다.
과거가 어땠든 정두철은 살아야 했고, 그는 오랜만에 만난 고객에게 기꺼이 웃어 줄 수 있었다.
“그래서, 체육관에 다니려는 이유가 뭐야?”
“싸움을 잘하고 싶어요. 일진이라고 불리는 애들 전부를 짓밟아 버릴 만큼.”
순간.
정두철의 표정이 굳었다.
종합 격투기를 수련하면 싸움을 잘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종합 격투기는 스포츠의 일종이기에, 김현성과 같은 목적으로 찾아오는 학생들은 조금 곤란했다.
정두철이 말했다.
“체육관은 말이야. 싸움을 부추기기 위한 장소가 아니야. 네가 단순히 싸움을 잘하고 싶다는 이유로 체육관에 다니려는 생각이라면, 나는 너를 도와줄 수 없어. 어차피 조금만 훈련하면 일진 애들도 널 괴롭히지 않을 텐데, 그냥 자기를 단련하는 목적으로 운동을 해 보는 것은 어때?”
뻔한 대답.
뻔한 전개.
김현성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억지로 웃어 보이려는 정두철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신이 바라는 건 역경을 딛고 일어난 정두철이 아니라, 아직은 모든 것이 간절한 실패한 정두철이었다.
김현성이 말했다.
“왜요. 정두철 관장님도 선수 시절에 강해지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잖아요. 이유가 어찌 되든 간에, 저 또한 강해지려는 목적은 같은데 뭐가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치부를 들쑤셨다.
역린(逆鱗)을 건드렸다.
김현성의 발언에, 정두철은 더는 웃음을 유지할 수 없었다.
* * *
정적이 내려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정두철이, 시선을 피하지 않는 김현성의 모습에 결국 입을 열었다.
“그건 내가 멍청했기에 내린 선택이야.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면, 나는 절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거야.”
UFC 데뷔 전.
사람들의 평가처럼 정두철은 찬란한 재능이었다.
이기지 못할 사람이 없었고,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UFC에서 정두철의 영입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첫 경기를 치르던 날.
정두철은 엉망이 되어 버린 얼굴로 패배를 받아들여야 했다.
분명히 경기는 시종일관 그가 주도했는데, 아무리 유효타를 맞춰도 쓰러지지 않는 상대로 인해서 후반에 말리고 말았다. 엄청난 맷집과 지치지 않는 체력. 상대의 템포를 따라가지 못해 체력이 고갈되었고, 판정은 만장일치로 정두철의 패배를 선언했다.
인정했다.
자신이 패배한 것은 맞으나, 관계자들이 하는 말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쟤 약 빨았나 보네.”
“뻔하지 뭐. 대약물시대에 약을 안 빠는 선수가 어디 있어?”
그때만 해도.
도핑을 검사하는 기술은 뛰어나지 않았다.
약물을 사용하지 않으면 멍청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대약물시대였고, 관계자들의 예상처럼 상대는 승승장구하다가 훗날 약물이 적발되어 추락했다. 정두철은 그런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성과를 거두려고 했지만, UFC에 진출하고 연속으로 3연패를 하는 바람에 벼랑 끝에 몰리고 말았다.
“앞으로 한 번 더 패배하면 퇴출입니다.”
퇴출.
UFC 무대를 떠나야 했다.
모두가 꿈꾸었던, 자신도 꿈으로 여겼던 무대에서 나가라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정두철은 자신의 재능을 믿었지만, 약물을 사용하는 선수들은 상식을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만약에.
혼자였다면 그는 꿈을 포기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에게는 두 아이를 둔 아내가 있었고, 자신이 돈을 벌어 오지 않으면 가정의 생계를 해결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고민했다. 약물 브로커는 이미 UFC 데뷔 전부터 자신에게 접근해 왔지만, 끝끝내 거절했던 그의 연락처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얼마나 나쁜 선택인지는 스스로도 알았다. 선수로서의 자부심이 있기에 자신에게 떳떳해지자고 생각했던 정두철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폭발력을 발휘하는 근육으로 상대 선수들을 때려눕히고 있었다.
코리안 몬스터.
괴물의 탄생이었다.
이후 승승장구하던 정두철은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고, 모두가 아는 것처럼 약물이 적발되어 추락했다.
정두철이 말했다.
“나는 그때의 선택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어. 단순히 강해지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간, 나와 같은 참담한 신세를 피할 수 없어. 정말 멍청했지. 대한민국에서 약물의 인식이 그 정도로 나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파이트머니를 받고 몸을 굴려 대는 것보다 은퇴 후에 방송에 출연하면서 체육관을 운영하는 일이 돈이 더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나는 어떻게든 악마의 유혹을 거절했을 거야. 그러니까 너는 받아 줄 수 없어. 일진들을 때려눕히겠다는 이유로 강해진다면, 너는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름도 모를 교도소에서 생을 마감할 수도 있어.”
끼익.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만난 손님이라 어떻게든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처럼 광기에 사로잡힌 아이를 상대로, 잘못된 일인 것을 알면서도 장사를 할 수는 없었다.
보내려 했다.
김현성이 마지막 말을 하기 전까지는.
“1억.”
“……뭐라고?”
“제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1억을 드릴게요.”
* * *
장난에도 정도가 있다.
1억이라니.
김현성의 발언은 허무맹랑했지만, 이어진 발언은 그런 불신을 찢어발겼다.
“관장님으로서는 밑져야 본전 아니에요? 절 가르치겠다고 약속한다면, 하루 안으로 1억을 입금해 드릴게요. 선입금이니 이 제안에 응한다고 해서 손해를 볼 이유는 없어요.”
심장이 내려앉았다.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거절해야 했다.
뭔 헛소리냐고 말해야 했지만, 1억이라는 액수를 들은 순간부터 정두철은 그럴 수가 없었다.
‘만약 사실이라면……?’
일말의 가능성.
겨우 고등학생 한 명을 가르치는 대가로 1억을 벌어들일 수 있는 일이다.
지금 집에는 두 아들과 아내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고, 아들이 성장할수록 커지는 양육비에 아내도 살림에 보탬이 되겠다고 일을 나갔다. 아무도 없는 싸늘한 집에 있을 때마다 정두철은 자신의 무능력함에 술잔을 기울였다. 도핑을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텐데, 아니 도핑을 할 생각이라면 차라리 절대 들키지 않을 제대로 된 약물 브로커에게 의뢰해야 했는데.
후회로 점철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1억이란다.
이걸 어떻게 거절할 수 있단 말인가.
한낱 학생의 장난이라고 한들, 그만큼 간절하기에 정두철은 김현성의 발언을 외면하지 못했다.
김현성이 말했다.
“관장님도 처음 약물을 사용하실 때, 그로 인해 어떤 대가가 따를지 충분히 생각하셨겠죠. 약물의 부작용, 사회적인 인식, UFC 무대에서의 퇴출. 현실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가혹했지만, 결국 관장님의 선택으로부터 비롯된 결과예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관장님에게 싸움을 배워서 앞으로 일진들과 싸움을 하고 다닌다면, 제가 생각한 것보다 최악의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어요. 어쩌면 잘못 싸워서 불구가 되거나, 평생을 소년원과 교도소를 전전하는 삶을 살아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그러한 부분들까지 감수할 각오로 관장님을 찾아왔어요. 책임을 전가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그때의 관장님이 약물에 손을 댈 만큼 간절했던 것처럼, 제게는 관장님이 필요해요. 그 사실만 보세요.”
정두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상대는 겨우 고등학생이다.
그런데 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저 어린 나이에 저리 독기에 차오른 눈빛을 보인단 말인가.
김현성은 알았다.
정두철은 거절할 수 없다.
이미 약물에 한 번 무릎을 꿇었기에.
정두철은 유혹을 이겨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런 계산을 끝냈기에, 김현성은 고창범에게 1억을 약속받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정두철이 말했다.
“……확실하게 말해 줄 수 있는 건 절대 약물은 사용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나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강해졌지만,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수 없는 어린 학생이 약물을 사용하는 것까지는 절대 용납할 수 없어. 내가 만약 너를 가르쳐 준다면 그건 단순히 ‘가르침의 영역’일 거야.”
“좋아요.”
정두철이 이를 악물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사무실 문을 열더니, 김현성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럼 링으로 올라와. 네가 나를 상대로 단 1라운드라도 버텨 낸다면, 그때는 네 의지를 인정하고 제안을 받아들일 테니까.”
사납게 내뱉은 말.
그건 정두철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