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17화 (17/130)

4. 변화 (3)

옥타곤(Octagon)에 올라갔다.

정두철은 자신을 따라 들어오는 김현성의 모습에, 글러브를 착용하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잘 생각해. 난 장난으로 하지 않을 거야.”

이 상황.

사람들이 보면 비웃을 것이다.

약물을 사용해서 종합 격투기의 평판을 떨어트린 사람이, 이번에는 학교 폭력을 위해서 강해지겠다는 어린 소년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니 말이다. 스스로도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합 격투기를 스포츠로 생각한다면, 이건 고민할 여지도 없이 당연히 거절해야만 했다.

하지만.

1억이란다.

먹여 살릴 가족이 있는 가장으로서, 1억이라는 액수는 가족들이 수년은 편하게 먹고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은 상관없었다. 이 바닥에서 무시를 당하고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족들이 원하는 음식을 포장해 갈 수 있는 여유면 충분했다.

역겨움을 삼켜 냈다.

스스로를 비난하면서도, 정두철은 눈앞의 현실을 피하지 않았다.

“난 말이야. 운동을 시작하면서 정말 다양한 인간들을 만났어. 양아치 같은 새끼들이 운동 좀 한답시고 체육관에 나오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너처럼 학교에서 얻어맞기 싫다고 운동을 시작하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지. 목적이 어찌 되었든 간에 그딴 것들은 신경 쓰지 않았어. 말뿐인 목적, 말뿐인 독기. 그건 이 옥타곤 위에 서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리거든. 나름대로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있던 녀석들도, 몇 번 얼굴을 맞고 나면 침을 질질 흘리면서 그만하겠다고 사정했었지.”

짜증이 치밀었다.

저 소년은.

자신을 얼마나 만만히 본 걸까.

1억이면 회유할 수 있다는 확신이, 그리고 종합 격투기를 배워서 일진을 때려눕히겠다는 같잖은 의지가.

열이 받았다.

너무나도 매력적인 제안이기에 벌써 마음은 넘어간 상태였지만, 그래도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가라앉힐 근거를 발견하고 싶었다. 자신에게 가르침을 받을 최소한의 자격. 김현성이 말뿐인 독기(毒氣)가 아니라, 정말 목숨을 걸고서라도 강해지고자 하는 열망을 보여 주기를 바랐다.

정두철이 말했다.

“3분 1라운드. 그라운드는 생략.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라운드만 버텨 봐. 네가 네 의지를 증명해 낸다면, 1억을 받은 만큼 너를 무조건 강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탕탕.

양쪽 글러브를 마주쳤다.

꽉 잡히는 감각에, 정두철이 거침없이 걸어갔다.

“그럼 시작하지.”

* * *

성큼성큼 다가갔다.

김현성은 빠르게 자세를 잡았고, 그 모습에 정두철은 의외라는 눈빛을 보였다.

‘자세가 안정적이야. 따로 배운 적이 있는 건가?’

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

전생.

김현성이 한참 괴롭힘을 당하던 시절, 힘으로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종합 격투기를 훈련했었다. 물론 정식으로 배운 것은 아니었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고, 방구석에서 주먹을 뻗으며 훈련한 것이 김현성의 전부였다.

그 정도라 할지라도.

훈련한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컸다.

김현성은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지만, 문제는 상대가 UFC 챔피언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훅.

가볍게 뻗은 주먹.

분명히 가벼웠다.

앞으로 툭 뻗었다고 생각했는데, 강력한 충격에 김현성의 가드가 그대로 풀리고 말았다.

빡.

퍼억!

머리가 핑 돌았다.

가드가 풀리자마자 라이트가 꽂혔고, 아무리 충격이 덜한 글러브라지만 김현성이 감당할 수 있는 충격을 넘어섰다. 겨우 단 한 방이었다. 뒤로 주저앉는 김현성의 모습에, 정두철이 싸늘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일어나.”

이제 10초가 지났다.

그런데 벌써 다운이라니.

말뿐인 독기라는 생각에, 정두철로서는 사나워질 수밖에 없었다.

김현성이 일어났다.

담담한 얼굴로 다시 자세를 잡자, 정두철은 따로 신호를 보내지 않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퍽퍽.

잽을 날렸다.

둘의 체중 차이는 10kg 이상.

강력한 파괴력에 잽만으로도 김현성의 몸이 크게 흔들렸고, 김현성이 거북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자 그대로 다리를 걷어차 버렸다. 로우킥(low kick). 김현성의 몸이 붕 뜨더니 다시 한번 땅바닥에 처박혔다. 고통에 신음할 새도 없이 곧바로 일어서기는 했지만, 30초도 지나지 않아 2번의 다운을 당했다는 것은 현실을 증명했다.

김현성은.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정두철은 그런 확신을 지닌 채 몰아붙였고, 계속해서 작렬하는 타격에 김현성의 얼굴이 엉망으로 변해 갔다.

반격?

꿈도 꿀 수 없었다.

반격하겠다고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는 순간, 가드를 꿇고 작렬하는 주먹에 얼굴이 홱홱 돌아갔다. 사람들은 말한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그런데 일반적인 프로도 아니고 UFC 챔피언인 정두철을 상대로, 겨우 17살 소년에 불과한 김현성이 버티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니,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조차 말이 되지 않을 정도로 차이는 컸다.

빠악!

살벌한 소리.

코피가 튀었다.

김현성이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정두철도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김현성은 아무렇지도 않게 코피를 쓱쓱 닦으며 일어났다.

“계속하죠.”

‘이 새끼가.’

의외였다.

너무나도 무력한 모습에 실망했건만, 김현성은 아무리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계속 일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전신에 가해지는 고통? 코에서 흘러내리는 피? 그런 것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악에 받쳐 자신을 노려보는 모습에, 김현성의 독기가 말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뿐.

김현성에게 지옥 같은 이 순간도 정두철로서는 손속에 사정을 둔 것이었다.

제대로 한다면 주먹으로 상대를 죽일 수도 있기에, 정두철은 말처럼 전력을 다할 수는 없었다.

지금부터는 달랐다.

저 눈빛이 진실이라면.

확실하게 짓밟을 필요가 있었다.

1억을 받아 내기 위해서, 어중간하게 김현성을 대할 생각은 없었다.

“오냐, 얼마나 버티나 보자.”

훅.

퍽퍽.

폭력이 반복되었다.

다시 가드를 두드리며 김현성을 구석에 몰아넣었고, 김현성은 가드를 높게 올리며 얼굴을 막았다. 나름대로 급소를 막으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방구석에서 배운 기술은 프로를 상대로 전혀 먹히지 않았다. 상대를 몰아붙이던 정두철이, 순간적인 틈에 힘을 폭발시켰다.

‘급소를 맞고서는 버틸 수 없겠지.’

빠악!

엄청난 소리였다.

일명 간장 치기.

급소에 작렬한 일격에.

“크악!”

김현성이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 * *

“우웩.”

허연 액체를 뱉어 냈다.

당장에라도 토를 할 것처럼, 김현성은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헛구역질을 해 댔다.

“1분 30초 남았다. 10초 내로 일어나지 않으면 끝났다고 생각할 거야.”

차가운 음성이 들렸다.

몸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로 얻어맞았건만, 아직도 시간은 겨우 절반밖에 흐르지 않았다.

김현성은 이를 악물며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연거푸 넘어지는 모습에, 정두철은 이제는 정말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씨이이이이이발. 일어나, 일어나라고!”

김현성이 소리를 질러 댔다.

독기가 차오른 눈빛이 빨갛게 물들었다.

숨이 막혔다.

당장 죽을 것 같은 고통에 있으면서도, 김현성은 이대로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야 이 병신 같은 새끼야. 이 순간을 바라 왔잖아. 식물인간 상태로 병신처럼 십 년간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제발 한 번만 시간을 되돌려 달라고 빌고 또 빌었잖아. 매일 스스로를 죽여 달라고 말하던 새끼가 이런 것도 버티지 못해? 일어나. 과거를 반복하기 싫으면, 제발 일어나라고.’

악에 받쳤다.

한때.

김현성에게도 희망이 있었다.

언젠가는 다시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는 업보(業報)처럼 자신을 괴롭힌 녀석들이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참담했다. 10년이 지나도록 자신은 식물인간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가끔 동생이 가해자의 근황을 말해 줄 때면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박민철.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했고, 주변에서 딸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가정적인 남자가 되었다.

정민호.

그는 의사가 되었다.

한국대 병원에 다닌다는 그는, 천일 고등학교의 자랑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나머지도 마찬가지였다.

각자의 삶에서 나름대로 잘 살아가는 가해자들의 모습에, 그때부터 김현성은 업보를 믿지 않았다. 자신이 피해자고, 저들이 가해자인데. 왜 가해자들이 잘 먹고 잘산단 말인가. 신을 저주했다. 매일같이 가해자들을 찢어발기는 상상을 하며, 부디 단 한 번만이라도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랐다.

정말 어쩌면.

이것은 업보의 청산일지도 모른다.

가해자들이 살아온 삶을 처벌하기 위해, 자신은 과거의 한순간에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복수 또한.

업보에 포함될 것이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이것이 업보의 일종이라면, 김현성은 가해자들을 찢어발기고 기꺼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빠드드득.

이를 악물었다.

이빨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입 안의 살을 베어 물어,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고 발악했다.

‘난 지옥으로 떨어질 거야. 그러니까, 그 개새끼들을 모두 찢어발기기 전까지는 쓰러질 수 없어.’

탁.

걸음을 내디뎠다.

가드를 올리며, 힘겨운 얼굴로 정두철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10초.

끝난 줄 알고 글러브를 벗으려던 정두철은, 그런 김현성의 모습에 순간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 * *

진심으로 놀랐다.

방금의 공격.

프로 선수들도 버티기 힘든 공격이었다.

부들부들 떨면서도 가까스로 서 있는 김현성의 모습에, 정두철은 말로 형용하기 힘든 감정이 들었다.

‘넌 대체 어떤 삶을 사는 거야?’

일진을 때려눕히겠다는 말.

악에 받친 얼굴.

김현성은 그만의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학교 폭력이라고 생각했건만, 김현성의 눈빛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겨우 17살 소년이 목숨을 걸 정도로 간절한 의지를 보였다. 말뿐인 독기라기에는, 그는 스스로를 증명해 냈다.

그렇기에.

‘위험하다.’

더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물을 사용한 이후.

정두철은 그날을 수도 없이 후회했다.

분명히 더 나은 선택지가 있었는데, 순간의 유혹을 참아 내지 못했기에 인생 전체를 망쳐 버리고 말았다. 지금의 김현성은 그때의 자신을 떠올리게 했다. 그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하려는 일들은 인생 전체를 무너트릴 만큼 매우 위험해 보였다.

그런 그에게 힘을 준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김현성의 간절함을 알기에, 그가 자신처럼 후회로 점철된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래, 어디 끝까지 버텨 봐.”

타닥.

시간을 끌지 않았다.

빠르게 다가갔고, 체중을 실어 무차별적으로 구타했다.

퍼퍽.

빠악!

피가 튀었다.

고개가 돌아가고, 주먹이 작렬할 때마다 바닥에 허연 액체를 흘려 댔다.

다운의 제한은 없었다.

김현성은 계속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났고, 정두철은 김현성의 상태가 어떻든 몰아붙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5초마다 쓰러졌다. 처음 1분 30초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는 나름대로 버티는 모습을 보였는데, 지금은 너무 많이 쓰러져서 바닥이 피로 흥건히 물들 정도였다.

더는 위험했다.

김현성의 건강이 걱정되는 상태인데도, 김현성은 빨갛게 물든 눈빛을 번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퍽.

“커억.”

눈을 부릅떴다.

또다시 복부를 맞았다.

김현성은 배를 웅크리면서도 무릎을 꿇지 않았고, 정두철은 그대로 얼굴을 후려치려 했다.

그때였다.

삑.

삐비빅.

타이머가 울렸다.

벽면에 붙은 타이머가, 3분의 시간이 모두 지났음을 의미했다.

“……빌어먹을.”

정두철이 주먹을 거두었다.

끝까지 가드를 올리고 있는 김현성의 모습.

화가 났다.

이렇게까지 버텨야 할 정도로 간절하다는 사실이, 정두철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정두철은 글러브를 신경질적으로 내던지며 말했다.

“내일부터 체육관으로 나와. 약속대로 널 가르쳐 줄 테니까.”

옥타곤을 나섰다.

완전히 나가기 직전, 뒤를 돌아보더니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김현성을 향해 툭 내뱉었다.

“물론 1억은 계좌로 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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