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소한 오해 (1)
김현성이 처음 체육관을 찾아간 날.
천일 고등학교 1학년 짱으로 인정받는 박진우는, 상당히 곤란한 상황을 마주했다.
신영민.
천일에서 악마 선배로 유명한 그가 박진우를 불러들였다.
“진우라고 했나. 앞으로 내가 네 뒤를 봐줄 테니까, 민철이네를 그렇게 만든 김현성을 확실하게 짓밟아. 1학년에서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할 정도로 만들라고. 알아듣겠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신영민의 뜻에 동조했다기보다는, 뺨을 툭툭 치는 신영민의 기세에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박진우는 머리가 아팠다.
만약 얼마 전이었다면 거리낌 없이 김현성을 짓밟았겠지만, 박민철 패거리 사건으로 김현성은 천일 고등학교 1학년들 사이에서 주의할 인물로 통했다. 박진우가 존재하기에 그를 짱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명진건설 장남이라는 든든한 배경에 혼자서 박민철 패거리를 쓸어버린 모습은, 잘못 건드렸다간 오히려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애들 말로는 김현성 완전히 미친 새끼라던데. 싸움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김현성과 같은 부류를 건드렸다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 일 대 다수를 이겨 보겠다고 자물쇠로 머리를 후려치는 녀석인데, 그냥 순순히 당해 줄 리가 없잖아.’
싸움은 자신이 있었다.
박진우는 초등학교 시절 씨름을 전공했었다.
중학교로 올라가면서 그만두기는 했지만, 살과 근육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덩치는 상대를 압도했다.
고등학교 싸움은 피지컬의 영역이다.
신영민과 같이 전문적으로 싸움을 연마한 사람이면 몰라도, 김현성과 같이 막 싸우는 녀석들은 장담하는데 1분 안에 때려눕힐 수 있었다. 박진우가 걱정하는 것은 그 이후의 문제. 김현성이 보복하겠다고 무기를 들고 찾아오거나, 혹은 명진건설 장남을 데려와 깽판을 칠지도 몰랐다.
짜증이 치밀었다.
마음 같아서는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신영민에게 찍혔다간, 앞으로 천일을 다니면서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악마 선배라고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 눈을 마주쳤다고 코뼈가 부러질 정도로 때리는 사람인데, 신영민의 명령을 어겼다간 나도 무사할 수 없겠지. 게다가 천일은 모두 신영민의 명령을 따르잖아. 당장 2학년 선배들부터가 날 밟아 버리겠다고 매일같이 찾아올 게 분명해.’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고민은 계속되었다.
해야만 했다.
뒷일을 감당할 수 없을지라도, 신영민과 같은 악질을 적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날이 밝았다.
김현성을 짓밟겠다고 각오한 박진우는, 뭘 해 보기도 전에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맞이했다.
* * *
“잘했어.”
“……예?”
신영민이 방긋 웃었다.
박진우의 원래 계획은 점심시간에 김현성을 짓밟는 것.
그런데 1교시가 끝나자마자, 신영민은 자신을 불러들이더니 따사로운 눈빛을 보였다.
“진우, 이 새끼. 화끈하네. 내가 김현성을 처리하라 했다고, 그날 바로 찾아가서 짓밟아 버린 거야?”
“그게 무슨…….”
“1학년 애들한테 다 들었어. 김현성이 오늘 학교에 나왔는데, 얼굴이 아주 엉망이었다고. 그래도 한바탕 사건을 일으킨 놈이라서 어려울 줄 알았는데, 아무런 반발도 하지 못할 만큼 확실하게 짓밟아 버렸나 보네. 너 진짜 마음에 든다. 앞으로 어디 가서 신영민이 아끼는 동생이라 말하고, 누가 널 괴롭히면 나한테 말해. 뭐, 네 나이대에서 널 괴롭힐 애는 없을 것 같지만 말이야.”
신영민은 신이 나서 떠들어 댔다.
김현성.
그로서는 골칫거리였다.
의뢰를 해결하지 못해서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아침에 의뢰자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김현성의 몰골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제대로 당한 것 같다고. 신영민으로서는 시기상 당연히 박진우의 소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진실은 그와 전혀 달랐다.
전날.
김현성은 정두철을 만났다.
그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옥타곤에 올랐고, 의지를 증명하겠답시고 코피가 터지면서도 끝까지 버텼다. 그 결과가 엉망으로 변한 몰골이었다. 본인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고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를 등교했는데, 다른 친구들로서는 그 몰골에 특별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이유로 박진우가 지목되었다.
박민철 패거리를 쓸어버린 김현성을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존재는 박진우가 유일했다.
게다가 명분도 있지 않은가.
신영민이 말했다.
“학교 끝나고 나와. 같이 노상이나 까자고.”
“……가, 감사합니다.”
박진우는 일단 웃었다.
영문은 알 수 없었다.
김현성의 일을 알지 못하는 그로서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단순한 결론에 도달했다.
문제가 알아서 해결된 것이지 않은가.
그때부터는 진심으로 웃음이 나왔다.
“선배님. 앞으로도 이런 문제들이 있으면 언제든 제게 말씀해 주세요. 제가 바로 박진우입니다. 천일 고등학교 1학년을 꽉 잡고 있는 제가, 선배님의 고민거리를 확실하게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새끼, 멋지네.”
“그렇습니까, 하하하하.”
천일 고등학교 옥상.
그렇게 그들은 사소한 오해(?)로 웃음꽃이 피었다.
* * *
사소한 오해는 김현성으로서는 오히려 이득이었다.
박민철 패거리의 일로 신영민이 곧바로 움직이리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특별한 움직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박진우가 김현성을 확실하게 짓밟았다고 믿었다. 만약 김현성에게 다가오는 친구들이 있었다면 소문을 알려 주기라도 했겠지만, 그때 이후로 친구들은 김현성을 어려워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얼굴의 부기가 많이 가라앉았다.
매일같이 학교와 체육관을 오가던 김현성은, 갑작스럽게 자신의 앞자리에 앉는 한 친구를 발견했다.
털썩.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기생오라비 같은 얼굴이었다.
고운 얼굴과는 다르게 체격이 다부졌는데, 김현성은 그를 보자마자 이름이 바로 떠올랐다.
김시우.
잘생겨서 인기도 많았던 친구다.
그가 김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좀 그렇잖아. 네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대놓고 따돌리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나도 내가 기억하는 김현성과는 다른 모습이라서 그동안 말을 걸지 못했는데, 그게 다른 애들처럼 널 따돌릴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 그러니까 이제 나랑 같이 다니자.”
“따돌리다니?”
“……응?”
김시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상 밖의 반응이었다.
김현성이 당연히 따돌림에 힘들어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모르는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너 따돌림 당하는 거 모르고 있었어?”
“어.”
“이런 미친.”
황당했다.
이번 따돌림.
한두 명이 작당한 수준이 아니다.
1학년 전체가 동의한 일인데, 김현성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박민철 패거리 사건 이후에, 박진우가 반마다 돌아다니면서 애들을 협박했어. 만약 김현성과 조금이라도 말을 섞는 애가 있으면 고등학교 내내 괴롭혀 주겠다고. 너, 학교 다니면서 이상한 점 느끼지 못했어? 아무도 너한테 접근하지 않았잖아. 평소에는 애들이랑 잘만 어울리던 애가, 왜 갑자기 이렇게 무심해졌냐.”
그의 말처럼.
전생의 김현성이라면 당연히 알아차렸어야 할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김시우가 기억하는 살가운 친구는 사라진 지 오래였고, 식물인간으로서 오랜 시간을 보낸 김현성은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이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의 따돌림? 그런 건 개의치도 않았다. 따돌림을 당하든 말든, 김현성에게는 당장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었다.
김시우가 말했다.
“그래, 네가 몰랐다고 치자. 확실한 건 박진우가 뭐라고 떠들든 간에 나는 그 새끼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거야. 알겠냐? 너랑 나 초등학교 때부터 십 년이나 된 사이잖아. 박진우 패거리한테 맞아 뒈지는 한이 있더라도, 친구가 학년 전체에게 따돌림당하는 꼴은 볼 수 없어.”
머릿속이 선명해졌다.
잠시 잊었다.
김시우가 어떤 친구였는지.
그는 유일하게 자신의 편을 들어주었던, 그리고 식물인간이 된 자신을 찾아왔던 친구였다.
* * *
전생.
박민철에게 한참 괴롭힘을 당할 때.
그들의 만행을 참지 못하고 나섰던 친구가 있었다.
“씨발 새끼들아, 적당히 좀 하자.”
김시우였다.
김현성이 얻어맞는 모습에 김시우가 나섰고, 잠깐이지만 김현성은 괴롭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문제는 이후였다.
김시우도 괴롭힘에 시달렸다.
박민철 패거리는 김현성을 무너트렸던 것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김시우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김시우는 나름대로 오래 버텼다. 어떻게든 김현성의 편을 들려던 그는, 오른쪽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심하게 맞은 뒤부터는 김현성을 아는 체하지 않았다. 박민철 패거리의 목표는 애초에 김현성이다. 그와 멀어진다면, 김시우는 본인만큼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게 김시우는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지옥 같은 나날에 과거의 기억은 남아나질 않았고, 김현성은 식물인간으로 살아가는 신세가 되었다.
어느 날.
김시우가 찾아왔다.
김현성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정말 미안하다. 그때 내가 끝까지 곁을 지켜 줬으면 네가 이런 신세가 되지는 않았을 텐데. 그런데, 그때는 정말 무서웠어. 쉬는 시간마다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감당할 수 없었고, 난 내가 정말 용감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런 대항조차 할 수 없었어. 하아, 인생 진짜 개같네. 넌, 넌 이런 몰골로 살 친구가 아니었는데.”
김시우는 한참을 울었다.
김현성은 정말 빛나는 친구였다.
김현성을 아는 사람들, 그를 기억하는 어른들, 그들 모두가 김현성만큼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장담할 정도로 떡잎부터가 남달랐다. 그런 친구가 식물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김시우는 속에 담긴 울분을 모두 토해 냈고, 그날 이후로 다시는 김현성을 찾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죄책감 때문이었으리라.
선명했던 김시우라는 이름은, 십 년이라는 절망적인 시간을 보내면서 기억 저편에 묻히고 말았다.
그래야만 했다.
행복한 기억?
소중했던 추억?
그딴 것들을 기억하고는 버틸 수 없었다.
오로지 복수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김시우를 마주하고서야, 자신에게도 이런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하지 마.”
“뭐?”
“친한 척하지 말라고. 박진우가 말했잖아. 나와 관련된 애들을 괴롭히겠다고. 괜히 험한 꼴 당하지 말고 그냥 다른 애들이랑 똑같이 행동해. 내 일은 내가 해결할 수 있으니까.”
“너 진짜…….”
김시우가 표정을 찌푸렸다.
뭐라 말하려던 그는, 종이 울리자 말을 이어 가지 못했다.
“에휴, 씨발. 일단 이 문제는 나중에 얘기하자. 그런데 난 네 말을 들을 이유가 없어. 널 친구로 생각하니까, 내 문제도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 그러니까 수업 끝나고 어디 갈 생각하지 마.”
* * *
김시우가 떠나고.
다음 수업이 진행되었다.
수업이 진행되는 내내, 김현성은 김시우에 관한 생각을 떨쳐 낼 수 없었다.
‘이번 삶은 처절함의 연속일 거야. 골든 서클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내가 피를 흘리지 않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 김시우를 받아들이면 그의 미래는 뻔해. 내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고통받았던 것처럼, 앞으로 살아갈 날은 김시우에게 엄청난 고통을 선사하겠지.’
현실을 직시했다.
가족을 제외한 모든 인연.
좋았던 인연들을 끊어 버릴 것이다.
가족은 그 자체만으로도 연결 고리가 맺어지지만, 다른 이들은 자신과 별개의 삶을 살 수 있다.
김시우는.
의리를 지키던 그 친구는.
자신과 같이 흙탕물에 발을 담그지 않길 바랐다.
그를 정말 친구라고 생각했기에, 이번 삶에서 김시우와는 인연을 맺지 않을 것이다.
“이것으로 수업을 종료한다. 다들 숙제 잊지 마라.”
“예!”
1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곧 김시우가 찾아올 터.
김현성은 그에게 할 말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김시우가 찾아오지 않았다.
포기한 걸까.
차라리 다행이었다.
설득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담담하게 다음 수업을 준비하던 김현성은, 교실로 들어오는 친구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시우 X 됐네.”
“그러게. 김현성이랑 말 조금 섞었다고 바로 끌려가 버렸잖아.”
순간.
김현성의 표정이 굳었다.
방금 들은 말.
그것이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그림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