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소한 오해 (2)
일주일 전.
박진우는 뒤늦게 진실을 확인했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신영민이 어째서 자신을 그렇게 예뻐했는지를 말이다.
‘어라. 김현성 얼굴이 왜 저래?’
슬쩍 1반 교실을 염탐했다.
김현성은 자리에 앉아 혼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은 정말 참담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곳곳이 시퍼렇게 멍든 얼굴. 어디 넘어져서 생긴 상처가 아닌, 무자비한 폭력의 흔적이 분명했다.
‘그렇게 설치더니 학교 밖에서 맞고 왔구나. 신영민 선배는 김현성의 상태를 보고, 시기상 내게 명령한 것도 있고 하니 내 소행인 줄 알았던 거고. 이걸 나로서는 좋아해야 하는 거야, 말아야 하는 거야?’
일단 자리로 돌아왔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굳이 김현성을 들쑤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에 김현성이 내게 얻어맞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다면, 그때는 김현성과 싸울 수밖에 없겠지. 그래, 어디 한번 찾아오기만 해 봐. 네가 어떤 새끼든 간에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처참하게 짓밟아 줄 테니까. 그리고 얻어맞은 꼬락서니를 보면, 그리 센 거 같지도 않고.’
기다렸다.
김현성이 찾아오기를.
언제든 싸울 준비를 끝마치고, 김현성의 모습을 예의주시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김현성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상했다.
박민철 패거리를 쓸어버릴 정도의 성질이라면, 자신에게 얻어터졌다는 소문을 듣고 참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생각이란 말인가. 매일 같이 학교에 나와 공부만 반복하는 모습에, 김현성의 생각을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날 점심.
급식실에서 김현성을 마주쳤다.
자신을 만나면 김현성이 먼저 시비를 걸 거라고 예상했는데, 김현성은 마치 박진우라는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않는다는 듯이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러고는 홀로 밥을 먹었다. 박진우는 밥을 먹으면서 계속 김현성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신영민의 명령을 받고서 1학년 전체에게 김현성과 어울리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김현성은 그런 상황에도 자신을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는데, 직접 만나고도 반응이 없는 모습에 확신이 생겼다.
‘이 새끼, 쫄았구나.’
확실했다.
그것 말고는.
이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 * *
쫄았다는 전제.
그것으로 모든 의문이 해소되었다.
김현성은 분명히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서 본인을 따돌리는 분위기에, 분명히 자신과 같은 배후가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 왜 참고 있겠는가?
무서운 것이다.
박민철 패거리는 양아치 같은 부류이지, 자신처럼 한 학년을 통째로 집어삼킬 만큼 강하지는 않았다. 학기 초기에 1학년의 서열은 모두 정리되었다. 박민철도, 박민철 패거리에서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강창석도. 박진우에게 붙잡혀서 땅바닥에 처박혔다. 피를 흘리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에, 1학년 학생들은 박진우야말로 1학년을 대표하는 주먹이라고 인정했다.
그런 자신을 상대로.
김현성은 승리할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소문을 듣고도 모른 척, 왕따를 당하고도 담담하게 받아들인 것이 분명했다.
“새끼, 생각보다 간이 작네.”
씰룩거렸다.
마음에 얹혀 있던 짐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미친개라서 수틀리면 무기라도 사용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꼬리를 말아 버릴 정도로 싱거운 녀석이라면 굳이 경계할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싸움 자체는 이길 자신이 있지 않았던가. 신영민은 김현성을 계속 짓밟으라고 했기에, 그때부터 박진우는 더 본격적으로 김현성을 괴롭혔다.
“1학년 전체에게 전달해. 남녀를 불문하고, 김현성과 노닥거리거나 조금이라도 말을 섞는 사람이 있다면 내 손에 뒈지는 줄 알라고. 알겠어? 내 뒤에는 신영민 선배가 있어. 김현성이 명진건설이고 뭐고 배경을 부르기 전에, 이 천일에서는 무사할 수 없다는 의미야.”
판이 바뀌었다.
대놓고 김현성을 몰아세웠다.
참지 못하고 폭발하면, 날을 잡아서 제대로 짓밟아 버릴 의도였다.
그렇게 일주일.
박진우의 친구들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김현성도 전형적인 강약약강(强弱弱强)이었네. 박민철을 상대로는 뭐라도 되는 사람처럼 행동하더니, 진우 네가 나서니까 아무 말도 못 하잖아.”
“당연한 거 아니냐. 김현성을 어디 진우에게 비벼.”
“뷰웅신. 학교생활 다 끝났네.”
다들 낄낄거리며 웃었다.
신영민의 존재.
그들은 앞으로가 탄탄대로임을 알았다.
천일에 다니는 3년간, 박진우를 필두로 왕처럼 군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한 친구가 박진우에게 다가와 말했다.
“야, 진우야. 김시우가 김현성이랑 말하고 있던데? 내가 몰래 엿들었는데, 네가 뭐라고 하든 말든 김현성이랑 어울리겠다는 그딴 개소리를 지껄였어.”
“뭐?”
박진우가 친구를 보았다.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김시우.
잘 알았다.
얼굴도 잘생기고 싸움도 곧잘 하는 편이어서, 자신도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몇 번 말을 걸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지금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자신이 박진우의 이름을 걸고 분명히 경고했는데, 그걸 어기고 김현성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항명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개새끼가 현실 파악을 못 하네. 수업 끝나자마자 그 새끼 끌고 와. 내 경고가 어떤 의미인지, 확실한 본보기를 보여 줄 테니까.”
친구들에게 증명할 것이다.
자신의 경고가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을.
* * *
원래대로라면 수업이 끝나고 김시우는 김현성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박진우 패거리에게 끌려가는 바람에, 그는 넓지 않은 화장실에서 박진우를 마주하는 상황에 놓였다.
박진우가 말했다.
“야, 김시우. 내 경고 따위는 무시하고 김현성이랑 앞으로 어울리겠다고 말했다던데. 내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냐?”
위압적인 상황이었다.
거대한 체격의 박진우.
그리고 주변에 몰려 있는 그의 친구들.
박진우 하나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매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친구들의 존재는 엄청난 압박감을 선사했다. 김시우도 마찬가지였다. 이 상황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꼬리를 말아 버리기에는, 지난 일주일간 지켜보았던 김현성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그건 내가 아는 현성이가 아니었어.’
무려 십 년.
17살에 불과한 소년이 인생 절반 이상을 같이 보낸 친구다.
김현성은 불우한 환경에도 항상 밝았으며, 친구들과 곧잘 어울릴 정도로 활기찬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박민철 사건 이후로 완전히 변해 버렸다. 어둠이 내려앉은 얼굴로 잘 웃지도 않았고, 복도에서 자신을 마주쳤는데도 아는 척하지를 않았다. 그 모습에 정말 화가 났다. 김현성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그가 학년 전체 왕따로 전락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김시우로서는 전생으로 인한 변화임을 알지 못했다.
확실한 건.
친구가 위험했다.
명백한 사실에 두려움을 삼켜 냈다.
지금부터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박진우가 강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뒤로 뺄 생각이었다면 김현성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을 것이다.
김시우가 이죽거렸다.
“뭘 어떻게 받아들여.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지.”
“다시 한번 말해 봐.”
“박진우. 네가 왜 현성이를 괴롭히는지는 모르겠는데, 네가 뭐라고 지껄이든 간에 난 현성이를 외면할 생각 없어. 그러니까 이 씨발 새끼야. 말 빙빙 돌리지 말고 곧바로 본론부터 말해.”
“하-.”
박진우가 황당하다는 듯이 웃었다.
이 상황.
겁을 먹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강하게 나오는 김시우의 모습에, 박진우는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
신영민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이미 서열이 정리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에게 반발하는 김시우의 존재를 허락할 수 없었다.
박진우가 살벌한 표정으로 말했다.
“차라리 잘됐네. 야, 문 잠가. 오늘 이 새끼 죽여 버릴 거니까.”
* * *
탈칵.
문이 잠기는 소리.
그것이 신호였다.
박진우는 김시우에게 다가가더니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그런데.
빠악-!
먼저 박진우의 복부에 발차기가 작렬했다.
박진우가 눈을 부릅뜨며 뒤로 밀려났고, 박진우의 친구들은 성난 얼굴로 김시우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미친 새끼가!”
“족쳐.”
일 대 다수.
김시우가 자세를 잡았다.
천일에 진학하면서 학생들이 김시우를 건드리지 않았던 이유는, 잘생긴 외모뿐만 아니라 중학교까지 태권도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이었다. 김시우는 가볍게 스텝을 밟았다. 찰나의 순간에 친구들이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고, 가장 선두에 있는 애의 얼굴을 그대로 날려 버렸다.
빡!
비틀.
단 한 방.
선두에 있던 애가 쓰러졌다.
하지만 그사이에 다른 녀석들이 들이닥쳤고, 김시우로서는 더는 자신의 장기인 발차기를 발휘하지 못했다. 이곳은 제한된 공간이다. 스텝을 밟는다고 해서 멀어질 수 없었고,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해 오는 주먹질을 모두 막아 낼 방법도 없었다. 그때부터는 치고받고 싸웠다. 김시우는 얼굴을 얻어맞으며 코피가 터졌지만, 악에 받친 얼굴로 상대의 옷깃을 움켜쥐더니 얼굴을 후려 버렸다.
퍽!
주먹을 날리면.
김시우도 얻어맞았다.
다시 한번 힘껏 주먹을 날리면, 사방에서 일어나는 충격에 김시우가 신음을 삼켰다.
“크윽.”
그 와중에도.
상대를 끝까지 바라보았다.
보통 운동을 배운 사람들은 고통에 익숙하다.
애초에 태권도는 투기 종목(鬪技種目)이기도 하지만, 운동을 배우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맞는 경우가 많았다. 김시우도 마찬가지였다. 엉덩이가 전부 터질 정도로,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 정도로 맞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것 때문에 태권도를 그만두었던 김시우는, 육체적인 고통에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해 봐, 이 개새끼들아!”
퍼억!
퍽퍽퍽!
집요하게 상대를 때렸다.
복잡하게 뒤얽혀 주먹을 주고받았고, 가끔 번뜩이는 발차기 한 방에 상대가 픽픽 쓰러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때였다.
“비켜.”
확.
친구들이 밀려났다.
갑자기 시야가 확 뚫리더니, 박진우의 성난 얼굴이 보였다.
“개새끼가 적당히를 모르네.”
콱.
콰직!
“컥.”
그대로 붙잡혀 벽면에 처박혔다.
김시우의 발차기를 예상하지 못해서 한 대 얻어맞았지만, 살과 근육으로 이루어진 육체에는 별다른 충격이 없었다. 오히려 박진우의 성질만 자극했다. 박진우는 김시우의 옷을 꽉 움켜쥔 채로, 그가 발악하든 말든 연속해서 얼굴을 벽면에 처박았다.
빠악!
빡! 빡! 빡!
압도적이었다.
김시우의 피지컬로는 감당할 수 없는 괴력.
발악하던 움직임이 잦아들었고, 김시우의 얼굴이 어느새 피로 물들었다.
처음부터 불리한 싸움이었다.
넓은 공간에서 싸웠어도 씨름을 전공한 박진우를 이기지 못했을 텐데, 태권도의 장점조차 살릴 수 없는 공간에서 승산은 없었다. 그런데도 김시우는 박진우를 따라 화장실에 들어갔다. 자신의 미래를 예상했지만, 김현성의 문제로 도망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질질질.
박진우가 김시우를 끌고 왔다.
축 늘어져서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는 모습에, 박진우가 그를 내려다보며 살벌한 표정을 보였다.
“꼭 너 같은 새끼들이 있어. 어쭙잖게 운동을 배웠다고 뭐라도 되는 줄 아는 새끼들. 넌 오늘부터 X 된 줄 알아. 김현성이랑 쌍으로 묶어서, 학교에 다니는 일이 지옥처럼 느껴지게 해 줄게.”
짜악!
뺨을 날렸다.
피가 튀는데도, 김시우의 뺨을 수차례 날렸다.
그는 본보기였다.
김시우의 일이 1학년 전체에 알려질 때, 친구들은 김시우처럼 되지 않겠다고 다시는 김현성에게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더는 그 누구도 자신에게 덤비지 않을 것이다. 박진우는 폭발하는 분노를 표출하며, 반항도 못 하는 김시우를 계속 때렸다.
그때였다.
콰앙!
“……뭐야?”
밖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렸다.
박진우가 김시우의 멱살을 움켜쥔 채로 뒤를 돌아보자, 잠겨 있는 화장실 문이 충격에 요동치고 있었다.
콰앙!
쾅! 쾅! 쾅!
무언가로 화장실 문을 가격하고 있었다.
충격이 일어날 때마다 화장실 문이 부서졌고, 마침내 손잡이 부근이 뚫리면서 의자 다리로 추정되는 부분이 툭 튀어나왔다.
슥.
의자 다리가 구멍 안으로 사라졌다.
그러고는.
불쑥.
손이 튀어나왔다.
정체 모를 손이 손잡이를 움켜쥐더니, 그대로 돌려 문을 열었다.
끼익.
천천히 열리는 문.
손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 하냐, 너.”
김현성.
그가 싸늘한 눈빛으로 박진우를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