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21화 (21/130)

5. 사소한 오해 (3)

박진우의 표정이 굳었다.

의외였다.

김현성이 자신에게 겁먹은 줄 아는 그로서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설마 쫀 게 아니었어?’

어찌 되었든.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박진우는 김시우를 내팽개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거대한 덩치를 드러냈다.

“왜, 불만 있냐?”

흉흉한 분위기였다.

사납게 내려다보는 그 모습에, 김현성은 주변을 살폈다.

‘김시우.’

참담한 몰골이었다.

고운 얼굴이 피로 물들었고, 끝까지 친구로서 남겠다던 김시우는 초점이 풀린 눈빛을 보였다. 그는 충분히 용감한 친구였다. 애초에 박진우에게 찍힐 것을 알면서도 말을 건 것처럼, 전생에도 박민철 패거리를 정면으로 들이받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 이후.

김시우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번 삶은 그때와 같은 결과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랐다.

‘김시우를 보호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그를 건드리지 못할 만큼의 확실한 명성.’

차라리 잘되었다.

자신과 관련한 소문을 들었을 때부터, 박진우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김현성이 말했다.

“불만이야 많지. 애들이 말하더라. 일주일 전에 내 몰골이 엉망이었던 이유가, 너한테 얻어터져서라고. 사실이 아닌 건 너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동안 왜 입을 다물고 있었냐?”

“그, 그게…….”

당황했다.

설마 대놓고 물을 줄은 몰랐기에, 박진우는 친구들에게 최대한 그럴듯한 변명을 내뱉었다.

“그냥 별생각이 없었을 뿐이야. 김현성. 너 정도는 언제든 짓밟을 수 있는데, 너 따위와 관련한 소문에 입 아프게 변명할 이유가 없잖아. 왜? 지금이라도 밟아 줄까? 난 언제든 준비되었는데.”

화장실 안.

박진우의 패거리들이 들어차 있었다.

위압적이었다.

사방에서 내리꽂히는 시선에 지켜보는 사람들이 움츠러들 정도였지만, 김현성은 오히려 사납게 반응했다.

“좋네. 그렇지 않아도, 내 친구를 건드려서 기분이 개같았거든.”

툭 내뱉은 말.

상대가 반응하기도 전에, 김현성이 박진우의 얼굴을 그대로 날려 버렸다.

* * *

빡!

콰당!

박진우가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순간 그의 친구들이 달려들려고 하자, 박진우가 분노한 얼굴로 소리쳤다.

“씨발, 다 멈춰! 김현성, 이 개새끼는 내가 죽인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진우는 성난 얼굴로 그대로 김현성을 들이받았다.

퍼억!

“……!”

엄청난 충격이었다.

박진우의 몸무게는 100kg.

김현성을 넘어트릴 작정으로 들이받았기에, 김현성은 마치 황소에게 들이받힌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넘어가지는 않았다. 화장실처럼 딱딱한 바닥에 넘어졌다가는 박진우의 공격을 버텨 낼 수 없기에, 절대로 바닥에 끌려가는 일만큼은 막아야만 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박진우의 돌진을 감당하지 못하겠지만, 김현성은 이와 관련한 훈련을 진행했었다.

‘테이크다운(Take-down) 훈련법.’

종합 격투기.

단순히 주먹과 발차기를 주고받는 것뿐만 아니라, 그라운드라고 불리는 영역도 겨루는 종목이니만큼 상대의 태클을 방어하는 기술은 필수였다. 김현성은 훈련의 경험을 살려 박진우의 돌진을 막아 냈다. 하체를 파고들며 넘어트리려는 모습에, 무게 중심을 잡고서는 그의 등을 수차례 내리찍었다.

빡!

빠악, 빠악!

“이 새끼가.”

박진우가 김현성을 놓았다.

아무리 밀어붙여도 넘어지지 않자, 김현성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조잡했다.

단 일주일.

김현성은 오래 훈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두철을 상대로 훈련했던 경험은 이전과는 다른 차이를 만들었고, UFC 챔피언의 주먹을 상대하다 보니 박진우의 주먹이 눈에 보였다. 박진우는 잡고 넘어트리는 것에 특화되었지, 주먹질마저 잘하는 건 아니었다. 그의 주먹이 닿기도 전에, 김현성이 먼저 상대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

퍽!

고개가 홱 돌아갔다.

곧바로 반대편 얼굴도 날려 버리더니, 고통으로 일그러진 머리를 붙잡고는 복부에 니킥을 갈겼다.

빠악!

“우욱.”

박진우가 눈을 부릅떴다.

예상 밖의 전개였다.

원래 고등학교 싸움이라는 게, 피지컬만 믿고 밀어붙여도 어느 정도는 먹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씨름의 잡기로 넘어트리면 제아무리 대단한 실력자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는데, 김현성은 잘 넘어지지도 않을뿐더러 타격에서도 우위를 보였다. 김현성은 스스로 정두철과의 훈련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단순히 훈련의 성과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회귀 이후.

박민철 패거리를 쓰러트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그게 곧바로 가능한 일일까?

불가능하다.

전생과의 차이점은 바로 정신력이었다.

육체는 그대로였으나 정신력은 고통 속에서 단련되었고, 새로운 삶을 사는 지금 전생의 정신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어떤 상황에서든 겁을 먹지 않았다. 박민철 패거리가 주먹을 날려도, 박진우가 들이받으면서 넘어트리려고 해도. 끔찍한 고통이 찾아온다고 한들 상대의 움직임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박진우가 휘두른 주먹을 모두 피하더니, 그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퍽!

빠악!

피가 튀었다.

박진우가 비틀거렸다.

그제야 그도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김현성은 쫄았던 것이 아니고, 그냥 자신에게 관심이 없기에 그동안 무관심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대로 질 수는 없어.’

박진우가 이를 악물었다.

그때부터는 이판사판이었다.

김현성에게 얻어맞든 말든, 체격을 밑바탕으로 밀어붙였다.

고통을 참아 냈다.

얼굴이 금세 피로 물들었지만, 박진우는 김현성을 밀어붙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였다.

박진우가 씰룩였다.

“이제 끝이야.”

김시우 때와 다르지 않았다.

이곳은 좁은 화장실이다.

김현성이 구석에 몰린 상황에, 박진우가 체중을 실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 * *

며칠 전.

정두철이 이런 말을 했었다.

“네가 만약 프로 선수를 희망한다면, 한 달이고 일 년이고 기본기가 확실히 자리잡히기 전까지 똑같은 훈련을 반복했겠지. 하지만 네가 바라는 건 실전 싸움이야. 언제 어디에서 싸움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너는 수많은 변수에 대응하는 방법을 터득할 필요가 있어.”

그가 어렸던 시절.

길거리 싸움은 비일비재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길거리에서 시비가 붙으면 곧바로 주먹이 오갔고, 거리마다 CCTV가 배치된 지금과는 다르게 코피가 나는 정도로는 신고도 하지 않았다. 정두철도 그런 거리에 있었다. 다가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는 성격상, 소위 길거리 파이터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주먹을 주고받았다.

수십 번의 싸움.

수십 번의 승리.

스스로의 재능을 깨달은 정두철은, 싸움을 업으로 삼으면서 UFC 챔피언이라는 업적을 달성했다.

“길거리, 그리고 학교. 싸우는 방법을 제대로 훈련하지 않은 사람들의 유형은 비슷비슷해. 그냥 밀고 들어가면서 주먹을 주고받고, 먼저 쓰러지는 사람이 패배하는 단순한 방식이지. 그런데 그런 개싸움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해? 주먹을 잘 쓰는 사람? 발차기를 잘하는 사람? 아니야. 일반 사람들은, 그냥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상대를 이길 수가 없어.”

유도, 씨름, 주짓수, 레슬링 등등.

그런 종목을 배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단순히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방법은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길거리다.

사람들의 안전을 생각하는 링 위가 아니라, 딱딱한 바닥에 내리꽂히는 순간 제아무리 훈련한 사람일지라도 버텨 낼 방법이 없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만두귀는 피하라는 말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붙잡히는 순간, 길바닥에서 살아남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일 테니까.

정두철이 말했다.

“네가 강해지고자 하는 목적은 순수하지 않아. 스포츠가 아닌 싸움이고,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길바닥과 같은 가혹한 환경에서 싸우는 일이 많겠지. 그때마다 피지컬을 탓한다면 너는 네가 바라는 목적을 이룰 수 없어. 명심해. 길거리에는 룰이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곧바로 본론을 물었다.

궁금했다.

앞으로 싸울 상대들.

자신보다 피지컬이 대단한 사람들이 많을 텐데, 그때마다 피지컬의 차이를 탓할 수는 없었다.

정두철이 웃었다.

“말했잖아. 룰이 없다고. 피지컬에서 밀리면, 너도 주변 지형지물을 이용해.”

* * *

박진우의 노림수는 뻔했다.

상대가 잘 넘어지지 않는다면, 구석으로 몰아세운 다음에 체중을 실어서 들이받으면 그만이었다.

딱딱한 벽.

벼랑 끝이었다.

박진우는 그간의 승리 공식을 답습하듯, 김현성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쿵쾅쿵쾅.

그 모습.

심장이 뛰었다.

이게 바로 일진들의 본질이었다.

이 딱딱한 바닥에 내리꽂히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그들은 미성년자이기에 자신들의 행동으로 인한 결과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17살 소년이 받을 처벌은 감당할 만할 테니까. 박진우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순수한 악의를 마주하며 김현성의 눈빛이 살의로 들끓었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들.

그들을 혐오했다.

이번 삶은 그들이 죽든 말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

확.

몸을 틀었다.

상대가 달려들 것을 예상했기에, 한발 먼저 움직여 빠르게 몸을 뺐다.

박진우의 시야에는 김현성이 마치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바람에 걸음을 멈출 수 없었고, 김현성이 있던 자리에는 딱딱한 벽이 있었다.

찰나의 순간.

김현성은 몸을 피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박진우가 달려드는 속도를 살려서, 그의 머리채를 붙잡더니 그대로 화장실 벽에 처박아 버렸다.

퍽!

콰직!

“크악!”

섬뜩한 소리였다.

코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박진우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피가 진득하게 딸려 왔다.

아무리 대단한 피지컬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딱딱한 벽은 어떻게 할 수 없었고, 자신이 달려드는 속도까지 더해지니 정신이 잃을 것 같은 충격이 일었다. 박진우가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핏물을 흘려 댔다. 그때만 해도 아직은 정신줄을 놓치지 않았지만, 고개를 들기도 전에 무언가가 시야를 가득 메우는 것을 발견했다.

빠악!

“컥.”

얼굴이 걷어차였다.

사커킥(Soccer kick)이었다.

UFC 무대에서도 위험성 때문에 금지된 기술.

김현성은 박진우의 얼굴을 서슴없이 걷어차더니, 그가 머리를 들지 못하도록 수차례 짓밟아 버렸다.

퍼억!

퍽, 퍽, 퍽!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잔인했다.

고등학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의 폭력이었고, 박진우의 친구들조차도 얼어붙은 채로 차마 김현성을 말리지 못했다. 들끓는 살의는 모두의 심장을 압박했다. 김현성은 상대에게 일말의 승산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박진우의 얼굴이 전부 피로 물들 때까지 계속해서 걷어찼다.

“그, 그만해! 잘못했어!”

간절하게 소리쳤다.

박진우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천일 고등학교 1학년에서 왕처럼 군림하던 그가, 정말 절절한 목소리로 김현성의 자비를 구했다.

발차기를 멈추었다.

화장실 바닥은 피로 흥건한 상태였다.

김시우의 피였던 것이, 지금은 박진우의 피로 물들었다.

박진우가 엉망이 된 얼굴로 김현성을 올려다보았다.

아니, 올려다보려는데 김현성이 그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콱.

“야, 말해 봐.”

고개를 억지로 돌렸다.

토할 것만 같았다.

부서진 화장실 문 너머로, 1학년 학생들이 몰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네가 날 발라 버린 게 사실인지. 어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다시 한번 말해 보라고.”

슥.

그 위로.

김현성의 악마 같은 얼굴이, 그에게 대답을 강요하듯 시선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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