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소한 오해 (4)
17살.
어린 나이다.
박진우처럼 태생부터 피지컬을 타고난 사람들은, 살면서 공포라는 감정을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다. 신영민과 같은 선배를 두려워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것은 경험해 보지 못한 강함에 대한 경계심일 뿐이지, 신영민을 마주한다고 해서 당장 죽을 것처럼 벌벌 떨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박진우가 미친 듯이 떨었다.
김현성의 악마 같은 얼굴을 마주하며, 그는 난생처음으로 살의(殺意)를 느꼈다.
‘김현성은 미친 새끼야. 수틀리면 날 죽일 게 분명해.’
신영민의 명령을 받았을 때.
박진우는 왜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을까.
소문 때문이었다.
박민철 패거리를 상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모습은, 자신도 모르게 김현성에 대한 두려움을 만들어 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은 상상에 불과했다. 괜히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만 했을 뿐이지, 막상 김현성과 붙으면 언제나처럼 자신이 승리한다는 확신은 있었다.
두려움은 현실이 되었다.
김현성은 진짜였다.
코뼈가 무너져서 피가 흘러내렸고, 머리가 짓밟히는 바람에 현기증이 일었다.
잔인했다.
자신을 죽일 의도가 아니라면, 17살에 불과한 학생이 이토록 잔인한 폭력을 행사할 수는 없었다.
박진우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미안해.”
“제대로 말해.”
“저,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너에게 시비를 건 것도, 네 친구인 김시우를 건드린 것도. 사실은 처음부터 널 공격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어. 신영민 선배가 날 따로 불러서 너를 공격하라고 말했고, 나로서는 선배의 명령을 거절할 수 없었을 뿐이야. 그리고 소문도 전부 거짓말이야. 내가 널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주변의 시선?
신경 쓰지 않았다.
부서진 화장실 문 너머로 친구들이 충격받은 표정을 보였지만, 박진우는 살아남기 위해서 개처럼 빌었다.
“신영민, 그 선배 같지도 않은 개새끼 때문이야. 그 새끼만 아니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
이판사판이었다.
신영민의 이름을 팔았다간 대가를 치르겠지만, 지금의 박진우에게 신영민의 이름값은 김현성으로부터 비롯되는 공포를 억누르지 못했다. 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김현성처럼 죽일 기세로 자신을 몰아붙일 수 있을까? 불가능했다. 종합 격투기 선수를 준비한다면서 최대한 몸을 사리는 놈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빌었다.
빌고 또 빌었다.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구차한지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병신 새끼.”
툭.
멱살을 놓았다.
바닥에 쓰러지는 박진우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김현성은 자신을 바라보는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내가 경고하는데, 앞으로 시우는 건드리지 마. 그건 날 한번 쓰러트린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날 죽이지 못한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끝까지 찾아가서 복수할 테니까. 알겠어? 어떤 새끼든 간에, 선을 넘는 새끼가 있다면 그만한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거야.”
빠악.
“컥!”
숨을 돌리던 박진우의 얼굴을 걷어찼다.
정면으로 맞은 일격에 실이 끊긴 인형처럼 쓰러졌고, 친구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숨을 쉬지 못했다.
김현성이 걸음을 옮겼다.
박진우의 친구들이 길을 비켜 주자, 김시우를 부축하고는 화장실 밖으로 향했다.
밖에는 동급생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소란을 듣고 찾아온 그들의 모습에, 김현성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저리 꺼져. 길 막지 말고.”
* * *
김현성은 보건실로 향했다.
수업도 빠진 채로 김시우를 지켜보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김시우는 정신을 차렸다.
“……여기는?”
“보건실이야.”
“아.”
기억이 떠오른 것 같았다.
차마 말을 이어 가지 못하는 김시우의 모습에, 김현성은 그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다른 애들이랑 똑같이 행동하라고. 앞으로 오늘과 같은 일을 경험하기 싫으면, 더는 내 일에 관여하지 마.”
앞으로의 일.
김시우를 배제했다.
그의 마음은 감사하나, 더는 사건에 휘말리지 않길 바랐다.
김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엉망인 얼굴로 한참을 침묵하던 그가, 김현성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사실 박진우에게 맞을 때 잠깐 후회했었어. 네 말을 듣고 나서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맞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그런데 내가 정신을 잃기 직전에, 네가 화장실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장면을 목격했어. 봐. 너도 똑같잖아. 내가 널 외면하지 않았던 것처럼, 너도 내가 박진우에게 끌려갔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화장실 문을 부숴 버리면서까지 구하려고 한 거잖아.”
아팠다.
처음 경험해 보는 끔찍한 고통이 밀려들었지만, 육체적인 고통은 김시우의 진심을 억누르지 못했다.
“그런 친구를 내가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어? 현성아. 네게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가 친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그러니까 마치 남인 것처럼 선을 긋지 마. 만약에 박진우와 같은 사건이 또다시 벌어져도, 나는 오늘과 똑같이 너를 위해 나설 거니까.”
“……미친 새끼.”
멍청했다.
미련했다.
김시우의 진심에, 김현성은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 삶.
인간적인 감정은 허락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가족들이야 태어난 그 순간부터 맺어진 관계지만, 김시우와 같은 존재들은 최대한 멀어지고자 했다. 하지만 김시우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을 따라 나락으로 떨어졌던 전생처럼, 그는 가시밭길인 것을 알면서도 김현성과 같이하겠다고 말했다.
좋은 친구다.
그러나.
전생과 같은 일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이 앞으로 하려는 일들은, 김시우와 같은 착한 심성을 가진 이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너에게만 말해 줄게. 앞으로의 내 계획을.”
김시우를 위해, 김현성은 자신의 밑바닥을 드러냈다.
* * *
김현성이 말했다.
“박민철 패거리와 박진우와 싸운 일. 너는 이게 우연이라고 생각해? 아니야. 나는 의도적으로 걔들과 시비가 붙었고, 정말 죽일 작정으로 그들을 패 버렸어. 만약 박진우가 화장실 벽에 처박혔을 때 뇌진탕으로 사망했다면, 나는 그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였을 거야. 애초에 전과자로 추락할지라도 감당할 생각이었으니까.”
눈빛이 독기(毒氣)로 물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김현성은 자신의 울분을 토해 냈다.
“지금까지 벌인 일은 시작에 불과해. 소위 일진이라고 불리는 애들, 날 괴롭히라고 사주한 신영민과 같은 녀석들을 찾아가서 모두 짓밟아 버릴 거야. 다시는 똑같은 일을 벌이지 못하도록, 아니 더는 사람답게 살지 못하도록. 그들을 모두 찢어발길 거라고. 그게 바로 앞으로 내가 하려는 일이야. 평범한 아이들처럼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좋은 대학을 나와서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일진들을 척결하는 것에 내 삶을 쏟아부을 거야.”
“……현성아.”
“그러니까 그만하라고. 네 말처럼 내게는 너에게 말할 수 없는 재앙 같은 일이 있었어. 네가 기억하는 모두에게 살갑고 친절한 김현성은 더는 존재하지 않고, 나와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오늘과 같은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거야. 네가 그걸 대체 어떻게 감당할 건데. 겨우 박진우 따위에게도 죽을 것처럼 맞아 놓고, 그 이상의 악마들을 상대로 네가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비난했다.
상대를 깎아내렸다.
전생에 김시우는 무릎을 꿇었다.
좋은 친구임에는 분명하나, 그는 박민철 패거리의 괴롭힘을 이겨 내지 못해 빛을 잃어 갔다.
그게 김시우의 한계였다.
언젠가는 그가 한계를 드러낼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더더욱 그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끼익.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시우를 내려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앞으로도 난 너를 친구라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딱 거기까지야. 학교에서도, 그리고 학교 밖에서도. 내가 하는 그 어떠한 일에도 개입하지 마. 그것들은 네가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일일 테니까.”
걸음을 돌렸다.
더는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김시우를 내치는 현실이, 고마운 친구를 외면하는 현실이 너무나도 화가 났다.
“……그동안 고마웠어.”
마지막.
작은 목소리로 내뱉은 말은 김시우에게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김현성은 김시우를 뒤로하고, 그렇게 보건실을 나섰다.
* * *
그 시각.
신영민은 교실에서 즐거운 상상에 빠져 있었다.
‘곧 성공 보수를 지급한다던데, 그 많은 돈을 어디에다 쓰지?’
박민철 사건 이후.
골든 서클에 연락해 거래 조건을 수정했다.
선수금 오백에 성공 보수 천만 원이었던 것을, 성공 보수 이천만 원으로 수정하는 것에 성공했다.
곧 중간고사다.
의뢰자가 원했던 성과를 목전에 둔 상황에, 신영민은 매일같이 돈을 쓰는 상상에 빠져들었다. 이미 쇼핑몰에는 그가 사려고 찜해 둔 목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자신으로 인해 김현성이 나락으로 떨어지겠지만, 앞으로 받을 돈을 생각하면 죄책감 따위는 느끼지 않았다.
삶이 그렇다.
약하면 당하는 게 당연했다.
‘골든 서클에 앞으로도 의뢰를 계속 달라고 말해야겠어. 이거 완전 꿀이잖아. 그냥 애들 몇 명 괴롭히는 대가로 수천만 원을 벌어들이다니. 듣기로는 천일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의 일도 있다는데, 적당히 다리를 걸치면 앞으로도 짭짤하게 부수입을 벌어들일 수 있겠지.’
웃음이 나왔다.
사실 최근에 진로를 바꿀까도 고민했다.
자신이 종합 격투기를 수련한 이유는 유일하게 자신 있는 분야이기 때문인데, 성인이 돼서도 골든 서클의 브로커(Broker) 역할을 맡는다면 제법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고 들었다.
나쁘지 않았다.
세상은 돈이 전부다.
쉽고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면, 그 길을 외면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훈련이 힘들기도 하고.’
돈을 벌면서부터 훈련을 게을리했다.
체육관 관장은 그따위로 살면 프로 데뷔는 힘들다고 말했지만, 이미 꽃밭에 가 있는 마음은 관장의 쓴소리로도 되돌릴 수 없었다. 뭐 어떻게 되지 않겠는가. 아직 19살에 불과한 나이는, 현실을 외면하고 살아도 문제없을 만큼 어렸다.
의뢰 실패는 의심하지 않았다.
소문이 증명하듯, 김현성은 박진우의 손아귀에 있었다.
그때였다.
웅성웅성.
교실 밖.
복도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것은 점점 신영민이 있는 교실에 가까워졌다.
이윽고.
“무슨 일이지?”
정확히 교실 앞에서 무언가가 걸음을 멈추었다.
* * *
천일 고등학교는 학년마다 층이 나누어져 있다.
1학년은 1층, 2학년은 2층, 3학년은 3층.
너무나도 손쉽게 구분되어 있기에, 해당 학년이 아닌 이상 그 층에서 돌아다닐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웅성웅성.
“뭐지?”
“쟤 1학년 아니야?”
“그런데 몰골이 왜 저렇대.”
3학년 복도.
그곳에 이질적인 존재가 있었다.
3학년 학생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새하얗던 교복 셔츠가 핏물에 물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몇몇 학생들이 그를 제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사나운 표정을 마주하고는 차마 말을 걸 수 없었고, 그렇게 행렬이 이어진 채로 그를 따라가는 모양새가 형성되었다.
그는 바로.
김현성이었다.
김현성은 김시우와 헤어진 후에 곧바로 3층으로 올라갔다.
3학년 선배들이 자신을 지켜보든 말든,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던 김현성이 한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5반]
신영민의 반이었다.
콰앙!
거칠게 문을 열었다.
순간적으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신영민을 비롯해 5반 선배들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김현성은 정확히 신영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냐. 신영민이라는 개새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