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대산에서는 대산의 법을 (1)
김시우의 일.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신영민을 건드리지 않으면 자신이 강해질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김시우가 다치는 모습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신영민은 골든 서클의 의뢰를 받은 것이 분명하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가족을 건드릴 수도 있다.
역린(逆鱗)이었다.
선을 넘었다.
하나의 가능성은, 김현성을 3층으로 이끌었다.
‘지금의 나는 신영민을 이길 수 없어. 하지만 그런데도 나로서는 해야만 하는 일이겠지.’
모두가 보는 앞.
박진우가 말했다.
신영민이 배후라고.
신영민이 지시했다는 발언을 내뱉은 순간부터, 사람들은 김현성과 신영민의 관계를 주시할 수밖에 없다. 김현성은 박민철 패거리를 확실하게 보복해서 미친개라고 불렸다. 그러한 평판은 김현성의 사람들을 보호할 방패막이 되어 줄 텐데, 만약 진실을 알고도 침묵한다면 다른 사람들로서는 의심할 것이다.
혹시.
겁을 먹은 게 아닐까 하는.
박민철 패거리를 상대로는 앞뒤가 없던 미친개가, 신영민의 명성에는 꼬리를 말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앞으로 내가 하려는 일에 타협은 존재하지 않아. 나를 적대한 놈들이 어쭙잖게 내 사람들을 건드리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본인들의 선택에 얼마나 처절한 대가가 따르는지를 확실하게 보여 줄 필요성이 있어. 단순히 서로의 강함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보복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지금 필요한 것은 미친개의 평판을 공고히 할 예시야.’
신영민.
강한 존재다.
종합 격투기를 수련한 만큼, 김현성이 한참 괴롭힘을 당하던 시절에도 그는 독보적인 존재로서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프로 선수로서 성공했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의 김현성으로서는, 신영민은 절대 쓰러트릴 수 없는 상대임은 분명했다.
그래서 의미가 있었다.
강해도 들이받는다는 예시.
그것이 필요한 것이니까.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신영민이 있는 5반.
김현성은 거칠게 문을 열었다.
쾅!
교실 안.
선배들이 당황한 눈빛을 보였다.
김현성은 그들을 살폈고, 자신이 찾는 신영민을 발견했다.
“너냐. 신영민이라는 개새끼가.”
“설마 날 개새끼라고 부른 거야?”
갑작스러운 상황.
신영민이 황당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내자, 김현성은 망설임 없이 그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고는.
“어, 이 씨발 새끼야.”
빠르게 달려가, 상대에게 그대로 날아차기를 선사했다.
* * *
빠악!
달려가는 속도를 살린 날아차기는 허무하게 막혔다.
신영민은 빠르게 팔을 들어서 막았지만, 그렇다고 김현성의 기습 공격이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비틀.
자세가 무너졌다.
신영민이 균형을 잃은 모습을 보이자, 김현성은 곧바로 주먹을 휘둘렀다.
훅.
퍼억!
얼굴을 날렸다.
이번에도 가드에 막힌 모습에, 연타를 퍼붓다가 상대적으로 비어 있는 복부를 공략했다.
퍽!
신영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보통 일반적인 고등학생 싸움에는 복부를 공략하는 패턴이 없다.
일단 무식하게 밀고 들어가면서 얼굴만 노리는 경우가 태반인데, 견고한 가드에 복부를 공략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미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종합 격투기를 훈련한 사람들은 단순히 때리는 것만을 훈련하지 않았다. 복부와 같은 취약 부분을 맞는 경우도 훈련하기에, 신영민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김현성에게 반격을 시도하려고 했다.
그 순간.
빠악!
의자가 내리꽂혔다.
바로 옆에 있는 의자의 등받이 부분을 잡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머리를 향해 내리꽂았다.
“이런 미친 새끼가.”
신영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무기를 사용한 공격이다.
만약 제대로 맞았다면 정말 위험할 수도 있었는데, 김현성은 공격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전적으로 내게 불리한 싸움이야. 조금이라도 기세를 빼앗긴다면 끝이다.’
김현성은 전략적이었다.
5반을 찾아가자마자 기습 공격을 시도한 것도, 상대가 반응하기 전에 몰아붙여서 기세를 확보하려는 의도였다. 정말 미친 듯이 몰아붙였다. 머리를 막으면 복부를, 복부를 막으면 다리를, 그래도 통하지 않으면 의자와 같은 무기를 사용해서 상대의 가드를 뚫으려고 했다. 지켜보는 사람들로서는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신영민은 이 천일 고등학교에서 왕좌에 군림하는 존재인데, 새파랗게 어린 1학년 후배가 찾아와서 이렇게 몰아붙이는 모습은 상상하지 못했다.
빠악-!
얼굴이 돌아갔다.
기회였다.
의지를 피하려다가 다시 한번 균형을 잃은 모습에, 품을 파고들면서 얼굴을 날려 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신영민과 눈이 마주쳤다.
그 섬뜩한 눈빛에, 김현성은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빠악!
머리에 작렬하는 발차기.
신영민이 무너진 자세로 시도한 하이킥에, 김현성은 팔을 들어서 막았는데도 바닥에 그대로 처박히고 말았다.
팍!
콰당!
* * *
“아. 개같네, 진짜.”
신영민이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닦았다.
의자를 막는 과정에서 이마가 찢겨 나간 모양인지, 붉은 핏물이 시야를 물들이고 있었다.
“넌 진짜 죽었다고 생각해라.”
고등학교 3학년.
웬만해서는 몸을 사릴 나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종합 격투기 선수로서 살아갈 생각에, 신영민은 의뢰를 받아들이고도 직접 나설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아니었다. 김현성은 자신을 죽일 작정으로 의자를 휘둘렀다. 얼굴이 피로 물들고 있는 지금, 김현성과 같은 존재에게 자비를 베풀 만큼 신영민은 성격이 좋지 않았다.
단 일격.
분위기를 바꾸기에 충분했다.
김현성은 벌떡 일어나 자세를 잡았지만, 그가 뭘 해 보기도 전에 발차기가 다시 한번 복부에 작렬했다.
빠악!
엄청난 충격이었다.
김현성은 뒤로 물러나면서도 상대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고, 어느새 다가온 신영민이 주먹을 휘둘렀다. 빠르게 팔을 들어서 막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대미지는 복부에 꽂혔다.
“너만 할 줄 아는 거 같냐?”
빡!
눈을 부릅떴다.
그렇지 않아도 복부를 얻어맞은 상황에서, 재차 복부를 가격당하자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만약 정두철을 상대한 경험이 없었다면. 방금의 일격에 무릎을 꿇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신영민의 공격은 정두철에 비할 바가 아니었기에, 신음을 삼켜 내면서도 악착같이 버텼다.
그사이.
신영민의 연계 공격이 작렬했다.
퍼억!
빠악, 빡! 빡!
얼굴을 맞았다.
피가 튀자 다시 가드를 올렸고, 신영민은 가드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그 위로 주먹을 퍼부었다.
묵직했다.
가드를 했는데도 몸이 뒤흔들릴 정도였고, 김현성이 반격을 시도할 때면 카운터(Counter)로 얼굴을 날려 버렸다. 실력에서 월등히 차이가 났다. 기껏해야 일주일을 훈련한 김현성으로서는, 종합 격투기를 수년간 훈련한 신영민을 상대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기습 공격으로 분위기를 가져오는 것 같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신영민이 일방적으로 김현성을 몰아붙이는 상황이 펼쳐졌다.
정두철?
그를 상대하는 것과는 달랐다.
그는 손속에 사정을 두었다면, 신영민은 김현성을 죽일 작정으로 정말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빠악!
“커억.”
복부에 주먹이 꽂혔다.
이제는 쓰러질 법도 했다.
신영민이 상대했던 프로 지망생들도 무너트린 공격이건만, 김현성은 독기가 차오른 눈빛으로 끝까지 버텨 냈다.
‘이것 봐라.’
솔직히 놀랐다.
미친개라는 명성이 후배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수준이라고 생각했건만, 악착같이 버텨 내는 모습은 정말 미친개 같았다. 김현성은 계속해서 밀고 들어왔다. 얼굴이 돌아가며 피가 튀어도, 복부에 주먹이 꽂혀서 신음을 흘리면서도, 그는 신영민을 끝까지 바라보며 싸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독종이었다.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정말 끝낼 생각으로 상대의 틈을 공략하는 순간, 갑작스럽게 김현성이 고개를 처박고 달려들었다.
‘……?!’
신영민은 그제야 알았다.
자신이 구석에 몰렸다는 사실을.
김현성은 신영민을 양손으로 끌어안더니, 그대로 들어 올려 창문이 있는 부분에 꽂아 버렸다.
콰직.
쨍그랑!
* * *
창문이 부서졌다.
신영민은 가까스로 창문 밖으로 떨어지는 것은 막았지만, 등에 유리 조각이 박히는 바람에 피가 흘렀다.
“진짜 미친 새끼네.”
소름이 돋았다.
방금.
김현성은 같이 떨어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같이 죽을 생각으로 신영민을 끌어안고 창문으로 꽂아 버렸다.
김현성이 비틀거리며 자세를 잡았다.
얼굴이 피로 흥건했지만, 그의 눈빛에 두려움은 없었다.
“이제 알았냐. 내가 미친 새낀 거.”
이번 싸움.
자신을 증명하는 자리다.
자신이 싸움에서는 신영민의 상대가 아닐지라도, 자신을 상대하는 일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처음부터 멀쩡하게 돌아갈 생각 따위는 없었다. 어차피 신영민 정도 되는 산조차 넘지 못한다면, 자신은 이대로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전생에 내가 겪은 고통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식물인간으로 살아온 삶.
김현성은 지옥에 있었다.
이 순간.
얼마나 고대했던가.
복수만 할 수 있다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복수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부르짖었다.
피를 뚝뚝 흘리고 육체가 비명을 지르는 이 상황은, 김현성의 정신을 조금도 위협하지 못했다.
오히려 웃었다.
피로 번들거리는 웃음을 보이며 신영민을 향해 다가갔다.
“네가 죽든, 내가 죽든. 끝을 보자고.”
상황이 심각해짐을 느꼈기 때문일까.
3학년 선배들은 더는 상황을 지켜보지 않았다.
만약 정말 죽기라도 한다면, 이 교실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관련자로 붙잡혀 갈 가능성이 컸다.
“그만, 그만해!”
한 선배가 신호탄이었다.
그를 시작으로 신영민과 김현성을 양쪽에서 말렸다.
선배들이 가로막는 상황에도, 김현성은 악에 받친 얼굴로 소리쳤다.
“비켜! 비키라고! 신영민, 이 씨발새끼야. 도망친다고 끝날 거 같냐? 내 친구를 건드린 그 순간부터, 내가 죽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기대해. 틈이 날 때마다 네 뒤통수에 의자를 꽂아 줄 테니까. 못 할 것 같지? 내가 못 할 것 같지?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해 봐. 내가 어떤 새끼인지 반드시 보여 줄 테니까.”
선배들이 김현성을 끌고 갔다.
곧 수업이라며 애써 김현성을 달랬다.
김현성도 무고한 선배들을 때리지는 않았고, 다수에게 끌려가는 와중에도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 댔다.
밖으로 끌려갔다.
점점 목소리가 멀어졌다.
그렇게 마무리된 상황.
신영민은 웃지 못했다.
이건,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었다.
* * *
신영민은 교실에 남았다.
그는 분명히 이겼다.
일방적인 승부였고, 김현성은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영민아, 괜찮아?”
“일단 보건실부터 가자. 너 이마랑 등에서 피 나.”
친구들이 모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짜증이 치밀었다.
고등학생 싸움은 보통 피를 흘리면 마무리되는 것이 정상인데, 김현성은 정말 뒤가 없는 사람처럼 살벌한 모습을 보였다. 그를 죽이지 않는다면. 이 싸움이 마무리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분명히 자신보다 약한 상대인데, 김현성이 무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야. 씨발, 내가 왜 쫄아?’
고개를 흔들었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신영민의 인생에, 겨우 고등학교 1학년짜리에게 겁먹는 일 따위는 허락할 수 없었다.
다만.
이번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있었다.
처음에는 김현성을 괴롭히면 끝나는 간단한 의뢰라고 생각했는데, 이만한 독종이라면 간단하게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조금 더 확실하게. 김현성이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짓밟을 것이다. 김현성이 독종이기는 해도, 신영민 또한 이대로 물러날 만큼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었다.
신경질적으로 피를 닦았다.
일단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보건실을 다녀온 그는, 교실로 돌아오자마자 갑작스러운 소리를 들었다.
“영민아. 교장 선생님이 너보고 오라는데?”
교장의 호출.
그 순간.
신영민은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