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대산에서는 대산의 법을 (2)
조금 전.
김영철은 1학년 화장실에 있었다.
화장실 타일이 다 부서질 정도의 소란이었기에, 선생님인 그가 상황을 모를 수가 없었다.
“여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고?”
“그게…….”
목격자를 붙잡아 물었다.
말을 더듬거리며 장황하게 말했지만, 박진우가 김시우를 끌고 가서 폭행하다가 김현성에게 박살이 났다는 사실 정도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순간 현기증이 일어났다. 그래도 박민철 패거리가 퇴학당하면서 한시름 덜었다고 생각했는데, 김현성이 또다시 사고를 쳐 버렸다.
“하아, 일단 들어가.”
“가, 감사합니다!”
“감사는 개뿔.”
학생은 돌려보냈다.
김영철은 홀로 화장실을 살폈다.
참담했다.
타일이 여기저기 부서졌고, 바닥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일단 박진우는 인근 병원으로 보낸 상태였는데, 지난번 사건도 있고 해서 친구들과 놀다가 다쳤다는 핑계를 댔다. 김현성이 문제였다. 어린애 싸움박질이면 적당히 치고받는 수준에서 끝나야 하는데, 얘는 감옥이라도 갈 생각인지 끝이 없었다. 피범벅이 되어 버릴 정도로 잔인한 폭력. 오죽했으면 산전수전을 다 경험한 김영철조차도, 김현성이 이제는 조금 무섭게 느껴질 정도였다.
일단.
수습해야만 했다.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는, 김현성과 관련한 문제를 어떻게든 틀어막아야만 했다.
‘박진우의 입을 막는 건 어렵지 않아. 박민철 패거리라는 좋은 예시가 있으니, 너도 걔들처럼 퇴학당할 수도 있다고 적당히 협박하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겠지. 김현성 같은 별종이 특이한 거지, 17살의 나이는 의지가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으니까. 문제는 오대환 교장이야. 저번 징계위원회에서 김현성의 편을 들어 주기는 했지만, 명문 고등학교를 희망하는 그가 이번 일도 그냥 넘어가 줄까?’
지난 사건.
뒷감당이 힘든 문제였다.
학생 네 명이 퇴학당하는 상황에 당연히 경찰도 개입했지만, 오대환이 어떻게 수를 써서 문제를 해결했다고 들었다. 그 이후에 선생님들을 불러 신신당부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특별하게 신경을 써 달라고. 본인의 인맥으로도 틀어막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 경찰을 부를 만큼의 사건은 경계하는 것이다.
그런데 겨우 일주일 만에 사건이 터졌다.
이번에도 똑같은 가해자가 학생 한 명을 병원에 보냈으니, 오대환의 반응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씨발, 일단 어떻게든 해 봐야지.”
다른 방법은 없었다.
자신은 목줄이 붙잡힌 개다.
비리 교사와 불륜남이라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김영철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이번 일이 쉽게 해결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 * *
“……예?”
김영철이 당황스럽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오대환 교장은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차분한 얼굴로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덧붙였다.
“다시 한번 말씀드릴까요? 이번 일, 그냥 넘어갑시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김영철 선생. 아마추어처럼 왜 이러실까. 학부모들에게서 돈을 받아먹는 김영철 선생이나, 학부모들의 지원으로 천일 고등학교를 운영하는 나나. 다 똑같은 인간 아닙니까. 간단한 문제입니다. 지난 징계위원회가 마무리되고 나서, 명진건설의 장남인 고창범 씨를 따로 만났습니다.”
김영철은 모르는 사실이었다.
고창범과의 만남.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다.
김순자를 배반한 것이 옳았다는 확신이 생길 정도로, 고창범은 오대환의 욕구를 완벽하게 충족해 주었다.
“앞으로 명진건설은 천일 고등학교의 후원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학교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비용의 상당 부분을 명진건설이 후원하기로 했고, 앞으로 고창범 씨가 명진건설 회장의 자리에 오를 경우 그 규모를 대폭 상승하기로 했습니다. 명진건설의 서열 잘 아시죠? 차남인 고창석이 제법 유능한 인물이라지만, 이 대한민국에서 장남을 이길 서열은 없습니다. 예정대로 고창범 씨가 회장의 자리에 오른다면, 천일은 대산에서 더할 나위 없는 배경이 생기겠죠.”
“정말입니까?”
“제가 왜 김영철 선생을 상대로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그런데 재밌는 건 그뿐만이 아닙니다.”
오대환이 혼자 쿡쿡 웃었다.
즐거웠다.
그래도 그동안은 번듯한 교장의 가면을 쓰려고 노력했지만,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김영철을 상대로도 그럴 필요는 없었다. 서로의 욕망이 비슷하지 않은가. 이 학교에서 자신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낼 사람이 한 명쯤은 필요했다. 김영철은, 지난 징계위원회에서 그럴 만한 사람임을 증명했다.
오대환이 말했다.
“사실 후원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내주는 관계를 형성합니다. 정민호의 부모가 지금껏 천일을 후원한 이유가 아들을 챙겨 달라는 의도라면, 명진건설 정도 되는 기업이 후원하는 목적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기업의 이미지? 대산에서의 평판? 그딴 것들이 아닙니다. 고창범 씨가 후원을 대가로 천일에 바란 것은 단 하나. 바로 김현성이 천일에 다니는 동안 그 어떤 문제가 일어나도, 그것들을 문제가 아닌 것처럼 만들어 달라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김영철에게 진실을 밝힌 이유였다.
오대환은 교장이기에, 일반 선생님의 포지션에서 김현성을 확실하게 케어할 존재가 필요했다.
“그러니까 이번 문제는 없던 일로 그냥 넘어갑시다. 박진우의 부모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이런 일을 김영철 선생에게 대가 없이 맡긴다는 건 아닙니다. 이 학교에서 받아 갈 성과급은 물론이거니와, 각종 특혜에서 김영철 선생은 최우선 순위를 받아 갈 겁니다. 그뿐만이겠습니까. 고창범 씨가 말하길, 곧 있을 명진건설 아파트 청약에서 우리 두 사람의 자리를 몰래 빼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요새 부동산이 슬슬 오르는 추세던데, 김영철 선생도 아내와 별개로 번듯한 아파트 하나 장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대환 또한.
불륜 관계를 알았다.
적당히 구슬리는 발언에, 김영철의 눈빛이 탐욕으로 물들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그에게 보상을 주겠다는 발언은 너무나도 달콤하게 들렸다.
“사실 김현성의 뒤를 봐주는 건 천일에서 비일비재한 일입니다. 그동안 특정 학생들의 뒤를 봐주었던 것을, 우리는 지금부터 김현성 단 한 명만 신경 쓰면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늘 하던 일을, 이제는 대상만 바꾸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 말에.
김영철은 온몸에서 전율이 일었다.
* * *
더는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대환과 김영철.
두 사람은 통했다.
김영철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교장 선생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앞으로 맡겨만 주신다면, 이 김영철이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하하, 든든하네요. 이렇게 된 김에 앞으로 저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건 어떻습니까.”
“형님이요?!”
김영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학교에서 그 누구도.
오대환과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했다.
그런데 유일하게 자신에게만 형님의 칭호를 허락하는 상황에, 김영철은 감정이 북받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형님. 형님이 천일을 명문 고등학교 만들겠다는 꿈을 이 아우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보필하겠습니다. 명문 고등학교 천일! 형님은 대산의 전설로 남으실 겁니다.”
“하하, 아우가 참 낯부끄러운 말을 하는구만.”
“다 사실이지 않습니까?”
“아우는 앞으로 김현성과 관련한 일만 확실하게 처리해 줘. 김현성이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졸업한다면 천일은 명진건설을 등에 업을 것이고, 그 일등 공신인 우리 아우를 내가 가만히 두겠어?”
“감사합니다!”
그야말로 두 쓰레기의 도원결의(桃園結義)였다.
둘은 하나가 되었다.
김현성을 보호하자는 목적 하나로 뭉쳤고, 그들은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였다.
선생 하나가 교장실을 찾아와 말했다.
“교장 선생님! 현성이가 다쳤습니다!”
“뭐라고?”
“어떤 새끼가 감히?!”
눈에 불을 뿜어내는 오대환과 김영철.
둘이 사납게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대체 무슨 일입니까?!”
* * *
사건이 들키게 된 경우는 단순했다.
김현성은 싸움 직후에 수업에 참석했고, 담당 선생님은 김현성의 얼굴을 보고 무슨 사건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미 오대환 교장은 몇몇 선생들에게 김현성과 관련한 특이 사항은 전부 보고하라고 말한 상태. 박진우의 일을 묻어 버리자마자, 신영민의 일이 오대환의 귀에 들어갔다.
곧바로.
신영민을 불러들였다.
오대환과 김영철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영민은 어쩌다가 싸움이 일어났는지를 해명해야만 했다.
“교장 선생님! 저는 진짜 억울해요. 그냥 반에서 다음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김현성이 다짜고짜 저를 찾아오더니 싸움을 걸었어요. 저는 그냥 맞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반격했을 뿐이고, 그걸 증명할 친구들도 있는데, 대체 왜 저만 가해자 취급을 받는 거예요?”
신영민으로서는 억울한 상황이었다.
싸움 자체만 놓고 보면 김현성이 기습적으로 공격했지만, 문제는 눈앞의 상대가 오대환과 김영철이라는 것이다.
둘은 이미.
정답을 정해 놓은 상태였다.
신영민의 말을 들어 놓고도, 그들은 미리 맞춘 것처럼 사납게 말했다.
“신영민 학생은 3학년이야. 김현성 학생은 1학년이고. 게다가 종합 격투기까지 수련한 신영민 학생이, 2살이나 어린 후배를 무차별적으로 때린 이번 사건이 정말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건가.”
“야 이 새끼야. 내가 널 몰라? 평소에도 틈만 나면 애들 때리고 다니는 새끼인데, 모범생인 김현성이 너한테 괜히 시비를 걸었을 리가 없잖아. 분명히 네가 뭔가 잘못했겠지. 맞아, 아니야?”
“김영철 선생! 말조심하세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황당하지 않습니까. 신영민은 남을 때리고도 남을 놈입니다.”
완벽한 티키타카였다.
오대환은 김영철은 다그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은근한 목소리로 더 성질을 내도록 부추겼다.
신영민은 울컥했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이러다가 자신이 전부 뒤집어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아니, 말했잖아요. 증인이 있다고요. 친구들을 불러서 한번 물어봐요. 누가 먼저 시비를 걸었는지. 제가 평소에 어떤 학생이었든 간에, 이번 사건은 김현성이 잘못한 게 맞다니까요?”
“그래, 하지만 네가 맞을 짓을 했겠지. 어디 이런 일이 하루 이틀이야? 3학년 담당 선생님들 사이에서 네 평판은 아주 유명해. 애들을 개처럼 때리고 다닌다고 해서 악마 선배라고 불린다지. 어휴, 새끼가 아주 틀려먹었어. 어디 밖에 나가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라. 1학년 최고의 모범생인 김현성과 너 둘 중에서 누가 잘못했냐고 물으면, 상식적으로 누구 편을 들을지.”
“아니 정말!”
콰앙!
“이 새끼가 어디서 목소리를 높여!”
김영철이 바락 소리를 질렀다.
오대환은 침묵했다.
한발 물러나, 침묵으로 김영철을 지지했다.
“너 이 새끼, 지금부터 말 똑바로 해. 잘못 인정하지 않고 계속 그따위로 나오면, 괘씸죄가 적용될 수 있으니까. 너 그거 알아? 법정에서도 너 같은 새끼들은 형을 더 때린다고.”
“크흐음.”
오대환이 시선을 돌렸다.
김영철의 독무대였다.
살벌한 욕설에, 신영민은 눈물이 핑 도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19살이다.
미성년자에 불과한 그가, 두 어른이 작당해서 몰아붙이는 상황을 감당하기는 힘들었다.
사실.
이 상황은 익숙했다.
그동안 신영민은 정민호와 같은 배경이 있는 친구들과 다니면서, 어떤 사고를 치더라도 학교의 보호를 받아 왔다. 그런데 반대편에 몰리니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에게 당했던 학생들이 눈물을 흘리며 전학하겠다고 말했던 이유를 지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잘못했어, 안 했어?”
재차 다그치는 물음.
신영민은 울분을 삼켰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소귀에 경 읽기였다.
눈앞의 저 어른들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썩을 대로 썩은 부류였다.
그제야 알았다.
‘김현성.’
그를 건드리는 일은, 단순히 미친개를 상대하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신영민은 참담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잘못했습니다.”
지금의 그로서는.
잘못을 인정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