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대산에서는 대산의 법을 (3)
탁.
교장실 문을 닫았다.
밖으로 나온 신영민은, 김영철의 마지막 경고를 떠올렸다.
“영민아. 앞으로 사회생활 하려면 고등학교는 졸업해야지. 괜히 말썽 피우다가 퇴학당해서 되지도 않는 머리로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지랄하지 말고, 이렇게 선생님이 학생 입장을 고려해 줄 때 알아서 학교 잘 다녀. 알겠어? 야 너 요새 학폭 딱지 달고 사회에 나가면, 네가 무슨 일을 하든 꼬리표가 따라붙는다고. 종합 격투기 선수도 어쨌든 사람들 시선을 신경 써야 하는 직업이잖아. 만약 나를 이런 이유로 다시 만나는 날이 찾아온다면, 그때는 국물도 없을 줄 알아.”
“김영철, 이 개같은 새끼.”
빠득.
이를 악물었다.
명백한 협박이었다.
소문으로는 들었지만, 설마 이렇게 대놓고 김현성의 편을 들을 줄은 몰랐다.
‘박민철 패거리 사건으로 김현성 편에 붙어먹은 것이 확실해. 아마 명진건설 장남이 뭐라도 해 준다고 약속한 거겠지. 쓰레기 같은 선생 새끼들. 내가 그럴듯한 집안 애들을 등에 업고 다닐 때는 무슨 짓을 해도 모른 척하더니, 김현성을 건드리자마자 날 잡아먹을 것처럼 개지랄을 떠는구나.’
짜증이 치밀었다.
문제가 심각했다.
자신은 골든 서클의 의뢰를 받았고, 김현성을 추락시키기 위해서 어떻게든 그를 괴롭혀야만 했다.
그런데.
방법이 없었다.
처음에는 박민철 패거리를 내세워서 의뢰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정민호 부모님이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존재하는데도 패거리 네 명이 퇴학당하고 말았다. 이후에 선택한 장기 말도 다르지 않았다. 박진우는 힘에서 완전히 발려 버렸고, 김현성은 역으로 자신을 찾아와 협박성 발언까지 내뱉었다.
사실 힘으로는 자신이 있었다.
김현성이 생각 이상의 독종이었지만, 그와의 싸움에서 신영민은 자신이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지를 증명했다. 하지만 오늘과 같은 폭력은 퇴학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아무리 골든 서클 브로커로서의 미래를 고려하고 있다지만, 1년도 남지 않은 학업을 포기할 만큼 막장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3학년.
곧 졸업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박민철 패거리처럼 퇴학의 위험성을 감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방법이 없는 건가.”
문득.
브로커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만약 도움이 필요하다면, 수수료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신영민으로서는 외부의 도움이 간절했다.
“씨발.”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골든 서클의 브로커.
자신에게 의뢰를 주었던 존재였다.
* * *
브로커 강태구.
그는 골든 서클에서 지방 용병들을 담당하는 존재였다.
지방은 서울과는 다르게 의뢰 빈도가 떨어지는데, 이례적으로 대산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연락을 받았다.
“……참 골때리는 상황이네.”
팔락.
자료를 확인했다.
의뢰자는 천일 고등학교 1학년생.
골든 서클의 회원인 그는, 자신보다 성적이 좋은 동급생을 괴롭혀서 성적을 떨어트려 달라는 요청을 해 왔다. 강태구도 기억이 났다. 천일 고등학교는 난이도가 높은 곳이 아니기에, 자잘한 일을 맡아 줄 용병을 고용하는 과정에서 의뢰비를 싸게 후려쳤었다. 그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던 의뢰에서 설마 문제가 생길 줄은 몰랐다.
“목표인 김현성을 괴롭히던 학생들이 모조리 퇴학당한 것도 모자라, 학교 교장과 선생이 대놓고 편을 들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니.”
황당했다.
말이 되지 않았다.
보통 회원들의 앞길을 방해하는 존재를 처리할 때는,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서 목표의 신상을 탈탈 털었다.
이번 목표인 김현성은 그렇게 강하지도 않고 배경도 할머니밖에 존재하지 않기에, 강태구로서는 신영민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보통 이런걸 꿀의뢰라고 불렀다. 지방은 1학년 초기에만 잘 정리하면 졸업까지 별문제가 발생하지 않기에, 자신도 신영민에게 일을 맡긴 이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 결과.
상황이 엉망이 되었다.
신영민은 수수료를 감수하면서까지, 제발 김현성의 배경 좀 어떻게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참 신기하단 말이야. 배경을 이렇게 악질적으로 사용하는 건 보통 우리 방식인데, 오히려 우리 쪽 애들이 배경에서 밀리다니. 그리고 명진건설은 대체 어디에서 튀어나온 거야? 분명히 내가 조사한 대로라면 명진건설과 같은 배경과는 조금의 접점도 존재하지 않는데, 징계위원회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낼 만큼의 친분을 보여 주었잖아. 이런 상황이라면, 용병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겠지.”
골든 서클.
그들이 쌓은 금자탑(金字塔)은 그간의 업적이 증명했다.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기에, 의뢰자들은 돈다발을 들이밀며 모두 골든 서클에 들어오려 했다.
고로.
실패는 용납할 수 없었다.
애초에 용병의 실패조차도, 신영민에게 의뢰한 강태구의 책임이었다.
“결국, 내가 해결하는 수밖에.”
끼익.
자리에서 일어났다.
25살의 강태구.
그 또한 신영민처럼 학교 짱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고, 현재는 골든 서클의 브로커로서 수많은 의뢰를 성공시켰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흔하지 않더라도 문제는 매번 발생했고, 그동안 강태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성과급으로 외제 차를 몰고 다닐 만큼 벌어들였다.
고로.
대산의 문제는 곧 해결될 것이다.
강태구는 그렇게 믿었다.
* * *
강태구는 곧바로 오대환 교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저 영민이 삼촌입니다. 영민이에게 듣기로 교장 선생님이 부당한 대우를 했다는데, 이에 대해 해명 좀 해 주시겠습니까?”
“부당한 대우라니요. 저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오대환의 발뺌.
강태구가 웃었다.
교사라는 족속들을 다루는 건 매우 쉬웠다.
일부 교사들은 직업적인 사명감을 위해서 불길에도 뛰어들지만, 김현성의 뒤를 봐줄 만큼 썩은 오대환과 같은 부류들은 절대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다. 간단한 문제였다. 본인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상황을 들쑤신다면, 오대환은 금방 고개를 조아리며 자신의 잘못을 고할 것이다.
강태구가 다리를 꼬며 말했다.
“영민이의 얘기를 듣고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체 김현성이라는 학생과 무슨 관계기에 그렇게 대놓고 편을 들어주는 걸까. 그래서 간단하게 알아보았는데, 최근에 진행되었던 징계위원회에서 재밌는 일이 있었더군요. 박민철 패거리. 김현성으로 인해 무려 네 명의 학생이 응급실에 실려 가는 사건이 있었는데, 피해자는 모두 퇴학당한 것에 반해 김현성은 멀쩡히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뭐, 교장 선생님으로서는 변명할 거리가 있겠죠. 김현성은 학교 폭력에 대항한 피해자일 뿐이며, 폭력의 대가로 봉사활동을 지시했다고. 그런데 말입니다. 이 정도 폭력 사건에서 형사적인 처벌을 아예 받지 않는 건 말이 안 되는 일 아닙니까?”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박민철 패거리 사건.
경찰이 개입할 여지가 분명히 있었다.
학생들이 응급실에 실려 간 일은 분명히 처벌받아 마땅한데, 천일 고등학교는 그것을 학교 내부의 문제로 묻어 버렸다. 문제의 여지가 충분했다. 만약 김현성 개인을 돌봐 주기 위해서 천일의 교장이 의도적으로 힘을 썼다는 정황이 드러난다면, 오대환은 큰 책임을 떠안아야 할 것이다.
“설마 김현성을 특별하게 대우해 주는 겁니까? 만약 그런 거라면 저는 이번 문제를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체크메이트(Checkmate).
강태구가 사납게 웃었다.
끝났다.
자신이 경찰에 고발이라도 한다면, 오대환은 문제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자, 어떻게 할래?’
그간의 경험상 상대의 반응은 뻔했다.
은근슬쩍 발을 빼며 자신의 비위를 맞출 것이다.
더는 김현성의 뒤를 봐주지 못할 것이고, 그때부터 신영민은 손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오대환의 반응은 담담했다.
조금의 당황도.
조금이라도 놀라는 기색조차 없었다.
강태구의 말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오대환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산에는 말입니다. 대산만의 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학생들의 미래를 생각해서 형사적인 문제로 끌고 가지 않았을 뿐이고, 그것은 경찰과도 이미 얘기가 된 부분입니다. 사적인 감정으로 처리한 일이 아니라 통상 그렇게 처리하는 문제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걸 문제 삼든 공론화시키든, 저는 제가 한 일에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당당한 태도.
강태구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이건 곤란했다.
오대환을 노려보며 재차 물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저 한다면 하는 사람입니다.”
“예.”
오대환이 피식,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무슨 의도인지는 알겠는데, 그런 협박은 먹히지 않습니다.”
* * *
오대환의 반응.
분노가 치밀었다.
자신을 우습게 보았다는 생각에, 강태구는 곧바로 경찰서로 향했다.
‘사람 잘못 건드렸어. 보통은 그냥 물러나겠지만,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오대환의 비리.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었다.
징계위원회 사건만 문제 삼더라도, 교장인 오대환의 입장은 곤란해질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강태구는 의도한 것과 다른 상황을 맞이했다.
해당 사건을 담당한 경찰이 심드렁한 표정을 보였다.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는 겁니까?”
“……예?”
“여보세요, 선생님. 그때 그 사건은 명백히 가해자들의 폭력으로부터 비롯된 정당방위였습니다. 경찰인 우리도 뻔히 사건의 전개가 보이는데, 학생 인생 하나를 망치겠다고 악질적으로 처벌해야겠습니까? 저희도 적법한 선에서 그 문제를 해결했고, 김현성 학생은 매주 주말마다 봉사활동을 열심히 다니면서 죄를 뉘우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괜히 다 끝난 사건에 고춧가루를 뿌리지 말고, 조카인 신영민이나 잘 단속하십시오. 대산에서 신영민 유명합니다. 김현성 학생을 처벌할 거면, 신영민부터 유치장에 처넣어야 합니다.”
당황스러웠다.
이게 무슨 반응이란 말인가.
적당히 협박을 섞었는데도, 경찰관은 마치 눈뜬장님인 것처럼 사건에 조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날 수는 없었다.
강태구가 따져 물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촉법소년(觸法少年)을 비난하는 겁니다. 학생이라고 해서, 어리다고 해서 처벌하지 않으면 김현성과 같은 학생이 반성하겠습니까? 저, 이번 일 제대로 처리해 주지 않으면 공론화하겠습니다. 요새 인터넷 무서운 거 아시죠?”
공론화.
간단하고 위협적인 협박이었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공무원들로서는 문제에 휘말리는 것을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분명히 상식적인 범주이건만.
경찰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여기 대산입니다. 서울이 아니고, 대산. 이런 지방에서 그런 일로 징계를 받으면, 그렇지 않아도 바쁜 지역 사회의 일을 우리가 어떻게 처리합니까? 공론화를 하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어차피 서울 사람들은 여기 일에 관심도 없고, 휴가 며칠 다녀오면 다 조용해질 일 아닙니까?”
그 순간.
확신이 들었다.
경찰 또한 오대환과 관련한 사람이었다.
더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강태구는 경찰서를 박차고 나왔다.
‘대체 어떻게 돼먹은 동네야?’
그는 대산 출신이 아니다.
지방 의뢰를 맡았지만, 대산에 대해 아는 바는 딱히 없었다.
사실 누누이 제기되던 골든 서클의 문제였다.
서울에 90% 이상의 전력이 집중되어 있기에, 지방을 담당하는 전력은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었다.
강태구는 전화를 돌렸다.
상황을 확실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1시간 뒤.
강태구는 황당한 진실을 들었다.
[그 동네 경찰서장이 오대환 교장과 형, 동생 하는 사이이랍니다. 왜 좁은 동네는 흔하게 있는 일이지 않습니까. 옆집이고 앞집이고 다 아는 사람이라서, 그런 문제들은 쉬쉬하고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랬다.
오대환이 자신만만했던 이유.
대산에서 태어나 대산에서 학교를 다니고, 대산에서 무수한 인맥을 형성하며 만들어 낸 관계.
바로 지역 카르텔(Cartel)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