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26화 (26/130)

6. 대산에서는 대산의 법을 (4)

지역 카르텔.

복잡한 문제였다.

지난번 고창범 사건 때는 ‘명진건설 장남’이라는 대단한 배경에도 경찰들이 물어뜯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것은 대산 내부에서 해결해야 할 집안싸움에 불과했다. 장남인 고창범도, 차남인 고창석도. 그리고 그들의 배경인 명진건설조차도 대산에 뿌리를 내린 카르텔의 일원이었다.

서로의 이해관계.

누가 더 대산에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그야말로 대산만의 이슈였다.

그에 반해 강태구는 어떠한가.

그는 외부인이었다.

대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고, 그가 대산의 일을 들쑤시고 다닌다는 사실에 경찰은 적대적인 모습을 보였다. 물론 서장과 교장의 관계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서장의 언질대로 강태구에게 협조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애초에 외부인의 의도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칙칙.

“공직자라는 새끼들이 대놓고 편을 드네.”

강태구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짜증이 치밀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문제인데, 자칫 잘못했다간 의뢰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절대 안 돼. 골든 서클이 지금의 명성을 쌓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 번도 의뢰에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내가 실패한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을 보내서라도 어떻게든 의뢰를 성공시키겠지만, 그동안 골든 서클로 부를 쌓아 왔던 내 인생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겠지. 빌어먹을. 공돈일 줄 알고 넙죽 받아먹었는데, 이렇게 탈이 날 줄이야.’

그제야 알았다.

골든 서클의 브로커들이 왜 아득바득 서울에 남으려고 하는지를.

지방 의뢰는 경쟁이 적고 의뢰 난이도가 매우 낮았지만, 가끔 이렇게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곤 했다.

확실한 건.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찰이 이렇게까지 비협조적이라면 교장을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단순무식하게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어. 애초에 이번 의뢰는 김현성을 학교에서 내보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위치로 성적을 끌어내리는 거니까.’

다 타들어 간 꽁초를 바닥에 버렸다.

그러고는 다시 하나를 물더니, 연기를 깊게 빨아들이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 * *

신영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태구의 개입으로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던 그는, 전화기 너머로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다.

“아니, 형. 그게 대체 무슨 소리예요?!”

[이 새끼가 말을 못 알아듣네. 야. 김현성을 처리하라는 의뢰는 내가 아니라, 네가 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야. 그 대가로 추가금까지 받아 놓고 지금 와서 뭐라고? 네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힘드니까 도와달라고? 야, 이 씨발 새끼야. 너는 골든 서클의 일이 장난 같냐? 적당히 간을 보는 새끼한테 돈을 퍼 줄 만큼, 우리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냐고.]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면 지금부터 말 똑바로 들어. 이번 의뢰에서 네가 해야 할 일은 김현성의 성적을 떨어트리는 거야. 후배를 동원하든, 직접 움직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어떻게든 그 목적을 이루어 내라고. 아무리 대산의 선생들이 김현성의 편을 든다지만, 학생의 영역을 완벽하게 해결하지는 못할 거 아니야.]

순간.

억울함이 치밀었다.

신영민은 이번 의뢰를 받으면서, 강태구로부터 확실히 뒤를 봐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믿었다.

골든 서클은 전국적으로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이고, 그때만 하더라도 김현성이 이렇게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발을 빼 버리다니. 강태구는 전적으로 신영민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비겁한 방법을 택했다. 강태구가 말하는 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이룬다고 한들, 골든 서클과 강태구는 절대 신영민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을 것이다.

단 한 번의 통화.

불신을 의미했다.

뭐라도 따지고 싶었지만, 이어지는 살벌한 음성에 그럴 수가 없었다.

[영민아. 내가 너에게 확실하게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골든 서클은 절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야. 신중하게 생각해. 의뢰를 중도 포기하거나 실패한다면, 우리는 김현성의 존재를 떠나 반드시 ‘너’에게도 대가를 받아 내고 말 테니까. 그러니까…….]

마른침을 삼켰다.

신영민의 눈동자가 크게 요동쳤다.

[어떻게든 해 보라고.]

탈칵.

차갑게 끊기는 통화.

허망하게 내려다보는 핸드폰 화면에, 신영민은 인생이 뒤엉키는 기분이 들었다.

* * *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고 했던가.

며칠 전만 해도 의뢰비로 떵떵거리던 신영민은, 창백한 얼굴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씨발, 진짜 어떻게 하지?”

막막했다.

김현성을 괴롭히는 일?

첩첩산중(疊疊山中)이었다.

김현성만 해도 순순히 당해 줄 애가 아니었고, 가장 큰 문제는 그를 건드린 대가로 김영철-오대환이라는 쓰레기 라인에 의해 퇴학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신영민은 고등학교 3학년이다. 졸업이 몇 달 남지 않은 상황에서, 퇴학 딱지가 붙는다면 인생이 얼마나 고달파지는지를 잘 알았다.

격투기 프로.

골든 서클의 브로커.

본인의 미래에 졸업장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나, 결과론적으로 돈 몇 푼 받자고 졸업장을 걸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막말로 강태구와의 대화로 신뢰가 완전히 떨어졌다. 예전에는 브로커로서의 미래가 마냥 장밋빛 같다고 생각했지만, 강태구가 보여 준 그의 밑바닥에 그리 희망적이지 않음을 알았다.

한숨이 나왔다.

그렇다고 의뢰를 거절할 수도 없었다.

‘소문으로 들었어. 골든 서클의 의뢰를 받아 놓고 중간에 발을 뺀 용병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당했는지를. 강태구의 말은 단순한 위협용이 아니겠지. 앞으로 이와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를 확실한 본보기로 삼을 것이 분명해. 그건 퇴학, 그 이상의 고통일 거야.’

암담했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단 말인가.

박진우을 보낼 때만 하더라도, 아니 박민철 패거리에게 명령을 내릴 때만 하더라도 성공을 확신했다.

김현성.

연약하디연약한 미성년자를 보호해 줄 부모가 존재하지 않는 그에게, 눈앞의 강력한 폭력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 감당하지 못할 문제였다. 너무나도 손쉬운 의뢰. 박민철 패거리가 쓸려 나갈 때도, 그들이 퇴학당할 때도, 그리고 박진우마저 쓰러트려 자신을 직접 찾아올 때까지도.

예상하지 못했다.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진짜 모르겠다.”

머리를 헝클었다.

퇴학은 죽어도 싫었다.

어느 것 하나 선택할 수 없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그래, 생각해 보면 강태구도 내게 이렇게 말했잖아. 내가 해야 할 역할은 직접적으로 김현성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 그의 성적을 떨어트리는 거라고. 내가 전면에 나서지 않고 1학년들을 활용해 김현성을 궁지로 몰아넣는다면, 적당히 성적을 떨어트릴 만큼의 괴롭힘을 이어 나간다면 굳이 그를 직접 건드리지 않고도 의뢰에 성공할지도 몰라.’

행복 회로를 돌렸다.

나름대로 그럴듯했다.

박민철 패거리와 박진우가 쓸려 나간 마당에 1학년들은 김현성을 감히 괴롭히지 못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압력을 넣는다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악마 선배라는 악명(惡名)이라면 가능한 일. 게다가 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몇 주만 바짝 몰아붙이면 책임을 회피할 수 있을 것이다.

판단이 섰다.

머리가 맑아졌다.

그렇게 집으로 가는 지름길에 들어서는 순간.

빠악!

“악!”

등판에서 끔찍한 통증이 일었다.

무언가에 찍혀 바닥을 나뒹군 신영민은, 당황한 얼굴로 위를 올려보았다.

“내가 말했지. 뒤를 조심하라고.”

김현성.

그가 눈앞에 나타났다.

* * *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얽혔다.

아직 사태가 파악되지 않았다.

김현성의 사나운 얼굴과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돌멩이.

돌멩이가 바닥에 툭 떨어지는 모습에, 그제야 그가 돌멩이로 자신의 등을 찍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이 씨발 새끼가.”

눈이 돌았다.

감히 학교 밖에서 자신을 건드리다니.

방금까지 두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했던 그로서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이성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이판사판이었다. 일단 김현성을 피떡으로 만들어 주고 뒷일을 생각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박차고 일어나는 순간.

“그깟 의뢰가 네 인생보다 중요한가 봐?”

흠칫 놀랐다.

김현성의 말.

명백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코앞에서 멈춘 신영민의 모습에, 김현성은 그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멍청한 새끼. 교장한테 끌려간 일이 우연이라고 생각해? 엉망이 되어 버린 내 얼굴을 충분히 숨길 수도 있었지만, 난 일부러 선생에게 ‘네 이름’을 언급했어. 다 너 때문에 이런 얼굴이 되어 버렸다고. 그렇게 말한다면, 내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교장이 나설 것을 알고 있었거든.”

“처, 처음부터 계획했다고?”

“그래. 너를 찾아간 그 순간부터, 애초에 이번 일을 우리만의 문제로 끝낼 생각은 없었어.”

안색이 창백해졌다.

미친개처럼 달려들던 모습부터 오대환의 호통이, 모두 김현성의 계획이라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김현성이 말했다.

“브로커가 교장을 찾아갔었다니까 네 상황도 뻔하겠지. 그런데 말이야.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어쭙잖게 날 건드리는 일이 단순히 퇴학으로 끝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마. 나는 너를 천일에서 쫓아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어떻게든 형사 처벌로 끌고 가서 네게 전과도 하나 달아 줄 생각이야. 그리고 죗값을 치르고 밖에 나오면, 명진건설의 사람들이 널 기다리고 있겠지.”

웃었다.

정말로 재밌어하는, 순수한 감정이 담긴 웃음이었다.

“너도 잘 알지? 명진건설의 장남이 내 후견인이라는 사실을. 그 사람들은 네가 대산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야. 결국에 네가 사람처럼 살기 위해서는 고향인 대산 바닥을 떠나는 방법밖에 없겠지. 그렇게 떠난다고 한들, 내가 널 포기할 것 같아?”

얼굴을 들이밀었다.

체격 자체는 신영민이 컸지만, 그를 압도하는 분위기에 신영민은 자신이 작아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이 상황.

공포스러운 협박.

현실적이지 않았다.

신영민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거, 거짓말. 너, 너는 정정당당하게 날 쓰러트리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 애들이 보는 앞에서 날 쓰러트리고 천일의 짱이 되려던 거 아니었냐고!”

황당한 소리였다.

정정당당, 천일의 짱.

19살의 머릿속에서 충분히 나올 말이었다.

만약 김현성에게 식물인간으로 살아온 세월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똑같이 유치하게 반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김현성은 달랐다.

“착각이 지나치네. 내가 바라는 건 단 하나. 날 건드린 새끼들을 파멸시키는 거야. 다시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도록, 본인들이 저지른 실수의 대가를 처절하게 치르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대가를 받아 내는 것이 내 목적이야.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

“미친 새…….”

콰악!

머리를 붙잡았다.

신영민이 당황해서 바둥거리자, 김현성은 그를 강하게 찍어 누르며 오른손을 들었다.

“선택해. 앞으로 학교를 정상적으로 다니려면, 대산 바닥에서 그래도 사람처럼 살고 싶으면…….”

환하게 웃었다.

악마 같은 그 웃음이, 신영민의 눈동자에 투영되었다.

“지금부터 이를 악물고 참아. 네게 괴롭힘을 당했던 다른 애들처럼.”

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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