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대산에서는 대산의 법을 (5)
다음 날.
천일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교실 한편을 힐끗거리며 조용한 목소리로 숙덕였다.
“신영민, 얼굴 왜 저래?”
“어제 김현성한테 생각보다 많이 맞은 건가.”
“그건 절대 아니야. 내가 바로 옆에서 싸우는 걸 봤는데, 김현성이 미친 새끼처럼 달려들어서 그렇지 신영민이 완전히 압도했었다고. 그런데 지금 얼굴을 봐. 완전히 퉁퉁 부어서 제대로 얻어맞은 꼴이잖아. 이건 방과 후에, 신영민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해.”
신영민이 누군가.
모두가 인정하는 천일의 짱.
절대 밖에서 맞고 다닐 사람이 아니었기에, 신영민의 얼굴은 친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얼굴에 남은 선명한 멍과 잔뜩 부은 두 눈.
누군가에게 얼굴을 집중적으로 얻어맞은 듯한 모습이었고, 터지고 찢긴 입술은 핏기가 보일 정도였다. 마음 같아서는 신영민에게 진실을 물어보고 싶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하지만 등교 직후부터 살벌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신영민의 모습에, 차마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때였다.
“……혹시 김현성이 방과 후에 신영민을 뒤치기한 거 아니야? 왜, 어제 그렇게 말했잖아.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 뒤통수 조심하라고. 그걸 진짜로 실행에 옮긴 거지.”
“소름.”
“일리가 있네. 김현성 그 미친 새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
어제의 일.
천일 전체에 엄청난 임팩트를 선사했다.
감히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신영민을 상대로, 김현성은 겨우 1학년인데도 불구하고 교실에 찾아와 한바탕 뒤엎어 버렸다. 그건 보통의 멘탈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박민철 패거리의 퇴학부터 시작해서 김현성이 진짜 미친 새끼라는 명확한 예시를 남겼고, 3학년들 사이에서조차 절대 김현성은 건드리지 말라는 소문이 퍼질 정도였다.
김현성의 의도대로였다.
김현성은 김시우와 같은 자신의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를 증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박민철 패거리.
박진우.
그리고 신영민까지.
천일에서는 충분히 먹힐 행보였다.
도저히 사그라지지 않을 뜨거운 이슈에, 3학년 학생들은 그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쳐 나갔다.
일련의 상황.
이슈의 중심에 있는 신영민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감정이 뜨겁게 들끓고 있었다.
* * *
참담한 기억이었다.
머리카락을 우악스럽게 움켜쥐는 손길에, 신영민은 분명히 손을 뿌리치고 대항할 힘이 있었다.
그런데.
“선택해. 앞으로 학교를 정상적으로 다니려면, 대산 바닥에서 그래도 사람처럼 살고 싶으면……. 지금부터 이를 악물고 참아. 네게 괴롭힘을 당했던 다른 애들처럼.”
그 말에.
몸에서 힘이 풀려 버렸다.
부릅뜬 눈으로 김현성을 바라보면서도 대항하지 못했고, 강하게 내리치는 손길에 고개가 홱홱 돌아갔다. 얼마나 맞았는지 모른다. 김현성은 신영민의 얼굴을 내리누르며 뺨을 연속해서 날려 버렸고, 입술이 터져 얼굴이 피범벅이 되었는데도 절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모습이었다.
얼굴에 선명하게 남은 통증에, 신영민은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비겁한 새끼.’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김현성 따위를 제압하는 건 아무 일도 아니건만, 명진건설을 내세운 협박성 발언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퇴학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김현성의 말대로라면 전과 기록이 생길 뿐만 아니라, 명진건설의 압박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덜컥, 겁이 났다.
19살의 나이.
아직 어렸다.
거금을 주겠다는 말에 골든 서클의 의뢰를 받았다지만, 이렇게 인생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강태구의 경고를 무시할 수도 없어. 이대로 김현성을 계속 내버려 둔다면, 골든 서클은 실패의 대가를 받아 내려고 하겠지. 씨발, 진짜 잘못 걸렸네.’
머리를 굴렸다.
평소라면 자신을 중심으로 떠들어 대는 친구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그들의 입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당장 제 코가 석 자였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을 거듭해도 해결책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골든 서클의 명령대로 김현성을 처리하자니 그 미친 눈빛과 명진건설이 마음에 걸렸고, 그렇다고 의뢰를 무시하자니 골든 서클의 명성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결국.
‘내가 살아남을 방법은 단 하나. 최근 이슈들로 김현성의 성적이 떨어지길 비는 것밖에 없어.’
한발 물러났다.
방관.
신영민은 제발, 최악의 상황이 찾아오지 않기를 빌었다.
* * *
신영민과는 달리.
김현성에게는 매우 평온한 하루였다.
3학년 교실부터 타고 내려온 소문에 친구들은 차마 김현성을 건드리지 못했고, 그렇게 관심 밖에서 평안하게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시작되고 끝나는 반복되는 일과. 김현성은 수업이 진행될 때는 그 누구보다도 집중해서 들었으나,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상념(想念)에 빠져들었다.
‘신영민과의 일은 봉합책에 불과해. 지금 당장은 협박이 먹혀들겠지만, 중간고사가 끝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겠지.’
전생의 재앙.
동급생의 의뢰로부터 비롯되었다.
김현성이 중간고사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는 순간, 간신히 봉합해 둔 감정들이 활화산처럼 폭발할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신영민, 반드시 의뢰를 성공시켜야 하는 골든 서클, 김현성을 끌어내리지 못해 악에 받쳐 있을 의문의 의뢰인까지. 복잡한 문제들이 한데 뒤엉켜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는 순간, 김현성은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반드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것이다.
정정당당?
합법적인 복수?
그딴 건 생각지도 않았다.
목적만 이룰 수 있다면 교장을 이용하든, 명진건설을 이용하든.
방식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과정보다는 결과가 우선이며, 그렇기에 김현성은 돌멩이를 들고 신영민의 등을 그대로 찍어 버렸다.
비겁했고.
악랄했으나.
결과를 보라.
천일의 학생들은 더는 자신의 사람들은 건드리지 못할 것이고, 신영민조차도 중간고사까지는 몸을 사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바라는 바였다. 그걸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상황을 계획했다. 전생의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배경’으로 상대를 옭아매며, 공포에 떠는 연약한 존재를 무차별적으로 구타했다.
악의(惡意)가 꿈틀거렸다.
스스로 타락하는 기분이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김현성에게 매우 확실한 안도감을 선사했다.
“이번 수업은…….”
선생님의 목소리.
새로운 수업이 진행되는 상황에, 김현성은 모든 잡념은 잊어버리고 다시 수업 내용에 빠져들었다.
* * *
학교.
체육관.
집.
반복되는 패턴이었다.
학교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모범적으로 수업에 임했다면, 체육관에서는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팡!
팡팡팡-!
“더, 더 멈추지 말고 주먹을 뻗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극한의 상황에 몰렸을지라도, 육체를 넘어서는 강력한 의지만 있다면 절대 패배하지 않아.”
정두철이었다.
체력 훈련만 무려 1시간 30분을 진행해 놓고, 그는 의도적으로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미트 훈련을 이어 나갔다. 턱밑까지 차오른 숨에 몸은 천근만근. 정두철의 요구처럼 미트를 연속해서 때리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었지만, 독기로 번들거리는 눈빛은 절대 멈추지 않았다.
팡팡팡-!
주먹을 뻗었다.
강렬하게 내딛는 주먹마다 땀방울이 튀어 올랐다.
한계에 도달한 상황인데도, 김현성의 주먹질은 약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강한 기세를 뿜어냈다.
“그래, 그거야! 어떻게든 내뻗는 주먹 한 번! 네가 그걸 할 수 있다는 의미는, 머리가 팽팽 돌아가고 입이 바짝바짝 말라 가는 상황에도 생각하고 대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지. 바로 지금처럼!”
훅.
기습적인 공격이었다.
사전에 말하지 않은 전개건만, 정두철은 기습적으로 주먹을 휘둘러 김현성의 틈을 공략했다.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 그대로 얼굴에 적중할 것 같았던 주먹이, 간발의 차이로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팟.
“……!”
눈빛이 번뜩였다.
김현성은 극한의 환경에도 정두철의 모습을 주시했고, 그의 어깨가 반응하며 치고 나오는 순간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이후의 반응에 대해서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번에는 미트가 아니라 그대로 드러난 턱을 노려 원투를 뻗었으나, 정두철은 활짝 웃으면서 미트로 턱을 막았다.
팡팡팡!
“좋아, 아주 좋아!”
매일같이 반복되는 훈련이었다.
찬바람이 불었던 체육관이 뜨겁게 달아올랐고, 정두철은 열과 성을 다해서 30분간의 훈련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털썩.
“하악, 하악.”
김현성은 완전히 녹초가 되어 버렸다.
홀딱 벗은 웃통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예전에는 절대 이 정도가 아니었는데 단시간에 몸이 비약적으로 좋아진 상태였다. 정두철은 미트를 정리하며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가 스테로이드라는 편법을 사용했다지만, 애초에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성실하게 훈련에 임하는 김현성이 나쁘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간의 훈련.
김현성은 단 한 번도 훈련을 빼먹지 않았다.
매일같이 체육관에 모습을 드러냈고,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군말 없이 모든 훈련을 받아들였다.
참 대단했다.
17살의 나이가 감당하지 못할 훈련인데도, 눈에서 줄줄 뿜어져 나오는 독기와 어떻게든 훈련을 끝내겠다는 의지는 이 녀석에게 걸린 녀석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 그래서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만약 ‘금전적인 거래’가 아니라 단순하게 스승과 제자의 사이로 만났다면, 정두철은 김현성을 육성하기 위해 인생을 걸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의지로 모든 단점을 메운다고 생각했는데, 김현성을 경험할수록 재능이 남달라. 방금도 그래. 극한까지 몰아간 상황에도 정확하게 내 공격을 파악하고, 노출되어 있는 턱을 곧바로 공략했어. 그건 내가 가르쳐 준 영역이 아니라 김현성이 날카로운 감각을 타고났음을 의미하는 거겠지.’
재능이었다.
무섭게 부풀어 오르는 재능은, 절대 링 밖에서 싸움박질이나 할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UFC.
옥타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찬란한 무대에서도 충분히 먹힐 재능이었지만, 정두철은 절대 프로로 데뷔하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단순히 1억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찬란한 재능만큼이나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날카로운 눈빛에, 감히 그의 인생을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음을 알았다.
독기의 이유는 몰랐다.
확실한 것은, 그건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원한이라는 것이다.
‘그저 받은 만큼 최선을 다하자.’
감정을 배제했다.
애써 김현성의 상황을 외면하며, 정두철은 체육관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어제저녁.
상담 전화를 받았다.
새로운 관원으로 들어오겠다는 그 말에, 김현성과의 훈련이 끝나는 시간으로 상담 예약을 잡았다.
“대충 정리하고 들어가. 훈련만큼 휴식도 중요하다는 거 잊지 말고.”
“……예.”
김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며칠 전에 훈련이 끝나고 추가 훈련을 진행했다가, 정두철의 불같은 분노를 맞이하고 말았다. 매일같이 2시간의 훈련을 극한으로 몰아넣는 이유는 그것이 정두철이 바라는 최대였다. 그 최대치를 딱 맞춘 이후, 홀로 진행하는 추가 훈련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강도 높은 훈련과 적절한 휴식.
UFC 무대에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정두철의 조언에 김현성은 고집을 부리지 않았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이만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때였다.
딸랑-!
가볍게 열리는 문.
무의식적으로 시선이 갔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김현성은 그대로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저 상담 예약한 김시우라고 합니다.”
“오오, 어서 들어오렴.”
현생에서의 유일한 친구.
김시우가 있어서는 안 될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