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28화 (28/130)

7. 김시우 (1)

박진우와 한바탕 싸웠던 날.

김시우는 보건실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해가 되질 않았다.

김현성.

자신과 어린 시절을 같이 보냈던 죽마고우는, 분명히 얼마 전만 하더라도 어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밝은 친구였다. 불우한 가정 환경도, 가난한 집안 사정도. 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반드시 성공하겠다며 최상위 성적을 거두는 김현성의 모습에, 김시우는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를 만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이 갑자기 바뀌었다.

독기로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김현성은 분명히 설명할 수 없는 ‘재앙 같은 일’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분명한 사실은 현성이는 진심이라는 거야. 미래를 포기하고 일진들을 척결하는 데 인생을 바쳐야 할 만큼, 착하디착한 현성이가 악의를 분출할 만큼의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해. 그리고 나는, 내가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그만한 변화를 겪는 동안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어.’

“……씨발.”

참담했다.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만약 자신이 상황을 미리 파악했다면, 김현성이 이렇게 변화하기 전에 말릴 기회가 존재했을 것이다. 아니, 재앙이라고 표현했던 그 일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 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악의와 폐쇄적인 공간.

박진우가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를 알기에, 참담한 미래를 예상하면서도 공포를 억누르며 그들에게 대항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몸이 떨렸다. 나름대로 고통에 익숙한 김시우라지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무지막지한 폭력을 당하는 것은 익숙해질 수 없는 문제였다.

박진우의 배후가 신영민이라면.

앞으로 흔하게 일어날 일이다.

평범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자신으로서는, 김현성의 조언처럼 그에게서 한발 떨어질 필요성이 있었다.

“……평범한 아이들처럼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좋은 대학을 나와서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일진들을 척결하는 것에 내 삶을 쏟아부을 거야.”

사납게 내뱉은 말.

들끓는 악의.

김현성은 진심이었다.

절대 허튼 말을 내뱉을 친구가 아니기에, 김시우로서도 감히 섣부르게 그 계획에 동참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 과정에서 사람 하나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혹은 본인에게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때는 단순히 징계위원회가 아니라 인생 자체가 끝날지도 모른다.

하염없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욱신거리는 통증도 현실적인 고민도, 지금은 김현성이라는 큰 존재에게 완전히 매몰되었다.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을 그때.

벌컥!

“시우야, 큰일 났어!”

한 친구가 보건실을 찾아왔다.

* * *

비현실적이었다.

친구가 떠들어 대는 그 말은, 적어도 사람들이 아는 상식에는 부합하지 않았다.

“진짜라니까. 널 보건실에 데려다준 이후에, 현성이가 곧바로 신영민을 찾아갔어. 그러고는 다짜고짜…….”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친구는 마치 액션 영화라도 설명하는 것처럼, 김현성이 신영민을 들이받은 일련의 상황을 잔뜩 격양된 어조로 떠들었다. 그로 인해 천일이 난리가 났다. 천일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꾸는 사건이었고, 김현성이 신영민을 무너트리고 ‘천일의 왕좌’를 차지하려 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대단한 일이다.

대부분 김현성의 과감함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지만, 김시우는 이번 문제를 전혀 다르게 받아들였다.

‘진짜 너는…….’

김현성은 대체 왜.

무모하게 신영민을 들이받았을까.

박진우의 일을 복수하기 위해서?

천일의 왕좌에 오르기 위해서?

아니다.

김현성은 그런 문제에 관심이 있을 친구가 아니다.

신영민을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들이받은 이유는, 분명한 목적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날 보호하기 위해서였겠지. 현성이는 그런 친구니까.’

입술을 깨물었다.

감정이 울컥 치밀었다.

무모하게 신영민을 들이받음으로써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수확은, 김현성의 사람을 함부로 건드리면 문제가 발생한다는 인식이다. 그 범주에는 자신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박민철 패거리 사건 이전에는 다른 친구들과도 두루두루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본격적으로 문제가 발생한 이후부터 친구라고 할 만한 존재는 자신이 유일했다.

고로.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는 자신의 모습에, 김현성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판단하고 행동했다.

미안했다.

참담한 기분이 앞섰다.

박진우와 싸울 때도 그토록 공포스러웠는데, 3학년 교실을 찾아가기 위해 계단을 올랐을 김현성의 모습을 떠올리자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김현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폭력의 수위만 과격할 뿐, 김시우가 처음 김현성과 인연을 맺었을 때도 지금과 같은 면모가 있었다.

아주 어린 시절.

예쁘장하게 생긴 김시우는 친구들의 괴롭힘을 당했는데, 김현성이 나서서 나쁜 친구들을 물리쳐 주었다.

그때의 일로 둘은 친구가 되었다.

김시우는 다시는 괴롭힘을 당하지 않겠다고 태권도를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학교에서 건드리지 말아야 할 존재로 분류되었다. 그렇게 육체는 성장했지만 그렇다고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잊혀지지는 않았다. 그때의 그 따뜻한 감정에, 김시우는 절대 김현성을 포기할 수 없었다.

전생도.

그리고 지금도.

김시우에게 있어, 김현성은 너무나 특별한 존재였다.

한참을 떠들던 친구는 보건실을 떠났다.

혼자 남아 창밖을 바라보던 김시우가, 무언가 결심을 내린 표정을 보였다.

“……넌 진짜 나쁜 녀석이야. 네가 그렇게까지 하는데 내가 너를 포기할 리가 없잖아.”

* * *

그리고 현재.

김시우의 등장에 김현성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관장님. 새로운 관원이라는 사람이 시우였어요?”

“어? 둘이 아는 사이야?”

정두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담 신청만 받았을 뿐, 김시우가 김현성과 관련되어 있는 인물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체육관을 다닌다는 사실.

김현성은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목적은 뻔했다.

전생에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던 김시우라면, 분명히 자신과 끝까지 하겠다고 체육관을 찾아왔을 것이 분명했다. 자신으로서는 바라지 않는 전개였다. 앞으로 절대 희망적이지만은 않을 미래에 김시우를 포함시킬 수는 없었다. 김시우가 자신을 향한 진심을 보이면 보일수록, 아이러니하게도 김현성은 더더욱 악의로 들끓는 삶의 밑바닥으로 그를 끌어내리고 싶지 않았다.

김현성이 말했다.

“정말 죄송한데, 절대 받아 주지 마세요. 시우가 지불하기로 한 체육관비는 차라리 제가 낼 테니까…….”

“싫은데?”

정두철이 웃었다.

일련의 상황.

대충 그림이 보였다.

김현성의 친구로 보이는 녀석이 따라서 찾아온 것 같은데, 그런 문제로 누구는 받고 누구는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대로라면 김현성이 사고를 제대로 칠 것 같아 불안했는데, 친구라도 한 명 붙어 있으면 상황이 호전되지 않겠는가.

1억의 돈?

그건 이미 자신의 주머니에 있었다.

자신은 김현성을 강하게 만들어 줄 의무만 존재할 뿐이지, 그 이상으로 고분고분할 이유는 없었다.

“아무리 우리가 특별한 계약으로 관계를 맺었다지만, 이 체육관에 사람을 받고 말고는 엄연히 내가 결정할 문제야. 너, 그거 월권(越權)이라고. 그러니까 허튼소리 하지 말고 이만 들어가. 오늘 운동은 끝났어.”

그것으로 끝이었다.

뒤이어 들리는 목소리는 가볍게 무시하더니, 멀뚱히 서 있는 김시우를 바라보며 활짝 웃음을 보였다.

“거기 잘생긴 고객님. 상담실은 이쪽입니다.”

* * *

김현성과 같은 예외(?)를 제외하고, 정말 오랜만에 신규 상담이었다.

성심성의껏 상담을 진행할 생각이었던 정두철은, 얼마 지나지 않아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그러니까, 현성이를 도와주기 위해 강해지고 싶다고?”

“예.”

“현성이의 목적이 일진들을 전부 쓸어버리겠다는 것도 알고 있고?”

“예.”

“염병.”

현기증이 일었다.

표정을 와락 일그러트리며, 정두철이 삐딱하게 몸을 기댔다.

“아니, 우리 체육관이 무슨 학교 폭력을 권장하는 곳인 줄 아는 거야?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안 돼. 그런 목적으로 받아 주는 건 김현성 하나로 족하다고.”

“이해합니다. 본래 스스로를 단련하기 위한 이곳에서, 학교 폭력은 목적에 부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시우는 침착했다.

정두철 체육관을 찾아오기까지, 그는 김현성의 뒤를 밟으며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를 확인했다. 집과 체육관을 반복하는 삶. 본인의 목적을 위해서 열심히 훈련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거기까지가 예상 범주였다.

정두철이 김현성의 목적을 어떻게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대화하기 편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제 얼굴에 남은 상처 보이세요? 현성이를 해하려던 녀석들에게 대항하다가 생긴 상처예요. 만약 현성이가 도중에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는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서 불구가 되어 버렸을지도 몰라요. 관장님. 현성이가 왜 ‘복수’에 매몰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수위가 절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만만하지 않다는 거예요. 현성이는 절 구하기 위해서 지금 위험을 자초한 상황이고, 저는 그런 친구를 외면하고 싶지 않아요.”

진심을 말했다.

빙빙 돌려서가 아닌, 팩트 그대로를 어필했다.

“현성이가 이곳을 찾은 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제발 도와주세요. 관장님이 절 도와주지 않더라도 현성이와 같이할 생각이고, 만약 제가 강해지지 못한다면 그 대가를 치르게 되겠죠. 그뿐이에요. 앞으로 어떤 대가를 치르든 그것은 온전히 제 몫이니, 현성이와 마찬가지로 저를 받아 주세요.”

김시우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저금통이었다.

어려운 집안 환경에 한 푼 두 푼 모아 두었던 것을, 망설임 없이 전부 꺼냈다.

“제 전 재산이에요. 얼마 되지는 않지만 전부 드릴게요. 이걸로도 부족하다면, 아르바이트를 다녀서라도 반드시 갚을게요.”

참.

짜증이 나는 상황이었다.

정두철은 욕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문득 김시우의 얼굴에 남은 폭력의 흔적이 눈에 밟혔다.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김현성이 왜 아득바득 발악하는지를.

학교에서 폭력이 만연하게 이루어지는 상황이라면, 제일 친한 친구조차 저렇게 폭력에 휩쓸리는 상황이라면 악의가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김시우를 받아 줄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김현성이야 1억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저금통에는 그만한 금액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내 무덤을 내가 팠구나.’

스테로이드를 반복해서 투약했던 것처럼.

정두철의 양심은 단 한 번의 선례로 무너지고 말았다.

한 번이나 두 번이나 그에게는 그리 다르지 않았고, 김시우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

김현성이나.

김시우나.

그 나이에 맞지 않는 간절함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들의 대응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학교 폭력이라는 생지옥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똑같이 폭력으로 대항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게 옳은 일일까. 격투기는 스스로를 단련하는 스포츠일 뿐, 불순한 목적으로는 절대 가르칠 수 없다고 선을 긋는 것이 정말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두철은 힘을 쥐여 줄 뿐이다.

폭력에 대항할 힘.

만약 학교 폭력을 주도한 존재가 아니라면, 애초에 그 폭력에 희생될 이유도 없었다.

스테로이드가 만연한 UFC 무대처럼.

자신이나 상대나 모두가 약물 사용자였던 것처럼, 이건 폭력의 피해자를 피해자라고 할 수 없었다.

자기합리화였다.

그걸 알면서도, 정두철은 똑같은 선택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가 졌다. 내일부터 체육관에 나와. 단, 훈련 일정을 따라오지 못한다면 그때는 끝이라고 생각해.”

* * *

상담이 끝났다.

목적을 이루고 나온 김시우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김현성을 만났다.

“표정을 보니 관장님이 승낙했나 보네. 미안한데, 난 네가 나와 같은 길에 빠지는 걸 용납할 수 없어.”

툭.

무언가를 바닥에 던졌다.

글러브였다.

이미 글러브를 착용한 김현성은, 링으로 올라서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김시우를 내려보았다.

“그러니까, 직접 증명해 봐. 네게 그만한 의지가 있는지를. 나처럼 지옥 밑바닥에 떨어지더라도 아득바득 싸울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알량한 우정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증명해 보라고.”

전생과는 다른 삶.

김현성으로서는 절대, 김시우의 개입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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