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29화 (29/130)

7. 김시우 (2)

김현성이 가볍게 몸을 풀었다.

곧 있을 스파링을 준비하며, 담담하게 글러브를 착용하는 김시우를 바라보았다.

“보건실에 있을 때 분명히 말했지. 이건 네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단순히 내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박진우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거고, 그때마다 매번 내가 구해 줄 수는 없어. 언젠가는 감당하지 못할 상황에 너는 지금의 이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되겠지.”

김시우의 모습.

짜증이 났다.

그는 정말 좋은 친구다.

전생에도 현생에도, 자신과의 우정을 지키겠다고 희생을 감수하는 모습은 그에 대한 감정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전생에 자신을 찾아와 눈물을 흘리던 김시우의 모습을 기억하기에, 김시우는 앞으로 벌어질 험난한 일들을 절대 버텨 낼 수 없으리란 걸 알았다.

경험에 의한 확신.

그래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멋모르고 글러브를 착용하는 용기를, 친구를 구해 보겠다고 물러나지 않는 우정을.

김현성은 미련함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멍청하고 미련하기에, 김시우는 불구덩이에 발을 들이면서도 스스로가 버틸 수 있다고 믿었다.

“너도 잘 알잖아. 내가 하려는 일들이 절대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면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정을 꾸릴 수 있겠지만, 나와의 의리를 지키겠다고 이 진흙탕에 발을 들이면 대체 뭐가 남을까? 나와의 우정? 헛소리하지 마. 매일 치고받고 싸우다가 하루아침에 죽을 수도 있고, 우정의 대가로 나란히 교도소에서 평생 썩을지도 몰라. 그게 현실이야. 겨우 이따위 일에 네 인생을 걸어도, 결국에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꽉.

끈을 힘껏 묶었다.

만약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릴 것이다.

박진우에게 당했을 때보다도 더 처참하게 만들어, 김시우의 의지 자체를 완전히 꺾어 버릴 것이다.

“너, 감당할 수 있겠어?”

“현성아.”

김시우도 준비를 끝냈다.

심각하게 흘러가는 상황에도, 그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보였다.

“나도 알아. 다 아니까 같이하자는 거야. 그래도 하나보다는, 둘이면 상황이 희망적일지도 모르잖아.”

“미친 새끼.”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미리 경고하는데. 지금부터 날 네 친구라고 생각하지 마.”

김시우와의 인연.

그것을 강제로 끊어 버릴 것이다.

* * *

특별한 신호는 필요하지 않았다.

김현성의 마지막 말이 스파링의 시작을 알렸고, 김현성은 곧바로 김시우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탁.

파파팟.

이번 스파링.

압도적인 과정을 바랐다.

김시우가 참담한 현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겨우 본인 따위가 자신을 도와줄 수 없음을 인정하도록. 시작부터 이를 악물었다. 그대로 김시우에게 공격을 퍼부으려는 순간, 김현성은 의외의 상황을 맞이했다.

빠악-!

“큭.”

머리에 발차기가 작렬했다.

황급히 가드를 들어서 망정이지, 그대로 허용했다간 단번에 기절해 버릴지도 모를 강력한 공격이었다.

간과했다.

상대는 태권도 선수 출신.

박진우와의 싸움에서는 공간이 협소해서 매우 불리했지만, 링 위에 존재하는 지금은 달랐다.

“그래. 제대로 해 보자.”

빠악!

발차기가 한 번 더 작렬했다.

복부를 노리는 미들 킥(Middle kick)이었고, 김현성은 몸을 틀어막아 내며 김시우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런데 다가가는 만큼 김시우와의 거리가 벌어졌다. 분명히 빠르게 따라붙었다고 생각했는데, 김시우는 간결한 스텝으로 거리를 벌리더니 재차 발차기를 날려 댔다.

퍽.

퍽퍽!

빠르고.

강력했다.

하단을 노리는 공격에 가드를 내리면, 김시우의 발은 기묘한 움직임을 그리며 머리를 노렸다.

빡-!

‘!!’

몸이 비틀거렸다.

막아도 충격은 머리가 그대로 받아 냈다.

확실히 태권도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라고 불리던 실력이었다.

김시우는 한참 태권도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 국내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금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룩했다. 찬란히 빛나는 재능. 이대로라면 국가대표로 발탁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던 날에 김시우는 김현성을 찾아와서 실없이 웃음을 보였다.

“나, 태권도 그만뒀어.”

며칠 전.

김시우는 한 국내 대회에 출전했는데, 협회 회장 아들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정말 말도 안 되는 편파 판정에 희생되었다. 이 바닥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그것까지는 어떻게 받아들이려고 했지만, 본인을 가르친 감독에게 퉁명스러운 말을 몇 번 내뱉었다가 그대로 뺨을 얻어맞았다. 알고 보니 감독도 알고 있던 일이었다. 그는 멋대로 판단하지 말라면서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 댔지만, 더러운 욕망을 마주하는 순간 김시우는 더는 태권도를 할 수 없었다.

부상은 핑계에 불과했다.

그렇게 일반인이 되었다.

태권도를 그만두며 몸이 느려졌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재능은 사라지지 않았다.

빠악-!

어김없이 작렬하는 발차기.

김현성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태권도 선수의 발차기는 파괴력이 대단했고, 그것은 신영민과 비교해도 우위라고 할 만한 수준이었다.

만약 넓은 공간이었다면.

박진우는 절대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서로의 강점과 약점이 맞물리면서, 그리고 머릿수라는 핸디캡에 김시우로서는 당할 수밖에 없었다.

대단했다.

김시우를 인정했다.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자신이나 김시우나 근본적인 문제는 똑같았다.

‘싸움에 자신이 없었다면 애초에 나서지도 않았겠지. 친구를 포기하지 못한 김시우나, 이정민을 외면하지 못한 나나 다르지 않아. 평소에 싸움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정말 안일하게 앞으로 닥칠 폭력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어. 실제로는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영역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전생의 자신은.

본인의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골든 서클이라는 존재를 몰랐을 때만 해도, 이정민을 도와준 선택이 자신을 나락으로 빠트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김시우도 다르지 않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그의 모습은, 아직 현실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기에.

확-

콰당!

찰나의 순간.

김현성이 김시우의 다리를 붙잡더니, 상대를 그대로 넘어트려 버렸다.

* * *

어느 날.

정두철이 이런 말을 했다.

“가끔 그런 녀석들이 있어. 발을 정말 잘 사용해서, 제대로 다가가지도 못하게 하는 발차기 스페셜리스트. 주먹질보다 발차기의 파괴력이 대단하기에 이런 존재들은 공략하기가 매우 어렵지.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이 종합 격투기 무대에서 이런 부류들은 대부분 정상의 자리에까지는 올라가지 못한다는 거야. 시원시원한 발치기와 화려한 동작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지만, 그건 엄연히 입식의 영역이야. 밑바닥으로 끌고 내려올 수 있는 종합 격투기나 길거리 싸움에서는 오히려 상당한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는 부분이지.”

태권도를 훈련한 김시우는 모를 것이다.

종합 격투기에는 킥 캐치(Kick catch) 훈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대의 발차기를 예상해서, 그 발차기를 잡아냄과 동시에 상대의 균형을 무너트리는 반격 기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잘못 손을 뻗었다가는 역으로 당할 수도 있지만, 김현성은 김시우가 발차기를 시도하려는 찰나의 순간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그것은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예민하게 일어난 감각이 상대의 균형을 완전히 무너트렸고, 김시우가 뭘 어떻게 해 보기도 전에 하늘이 빙글 돌았다.

콰앙!

넘어졌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바닥에서는 발차기를 사용할 수 없기에, 상위 포지션을 확보한 김현성이 무차별적인 파운딩을 퍼부었다.

퍽!

퍽퍽퍽!

김시우도 마냥 맞고만 있지는 않았다.

바닥에 깔린 상태로 주먹을 휘둘렀고, 그것이 여의치 않자 몸을 튕기며 김현성을 떨쳐 내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발악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김현성이 정두철과의 훈련에서 이가 부서지도록 뼈에 새긴 부분은, 조금이라도 우위를 확보했을 때 절대 기세를 내주지 않는 것이었다.

완벽한 우위.

상대를 억눌렀다.

무방비한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얼굴에, 상대의 공격을 피하며 정확하게 주먹을 내리꽂았다.

빠악!

피가 튀었다.

빠악!

빠악, 빠악!

눈동자가 흐릿해져 갔다.

빠악!

빠악, 빠악!

김시우의 반항이 잦아들고, 무력하게 몸을 들썩이며 맞는데도 김현성은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이번 스파링.

스포츠가 아니다.

스파링이라는 명목으로 치장했지만, 이건 김시우의 의지를 완전히 꺾어 버리기 위한 폭력의 무대였다. 이대로 병원에 실려 가도 상관없었다. 차라리 그 정도로 참담한 현실을 직시시켜야만, 김시우가 자신과 같이하겠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접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리고.

때리고 또 때리고.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글러브가 피로 흥건히 물들었지만, 김현성이 원하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끄, 끄, 끄으…….”

김시우가 신음을 삼켰다.

기절하지 않았다.

아직 정신이 있었다.

피를 연신 토해 내면서도, 정신을 잃을 것 같은 눈빛을 하면서도.

끝까지 그만하라는 말을 내뱉지 않았다.

미친 듯이 주먹을 내리꽂던 김현성조차도, 김시우와 눈이 마주치자 몸에서 힘이 탁 풀리고 말았다.

“……진짜 미친 새끼네.”

더는.

김시우의 모습에 더는.

김현성은 친구를 때릴 수 없었다.

* * *

바닥에 주저앉았다.

참담한 심정에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김현성이 물었다.

“대체 왜.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그 정도면 친구로서의 의리는 충분히 지킨 거잖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겨우 고등학생이다.

김시우를 특별하게 생각하지만, 그와의 우정이 본인을 희생할 만큼 대단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정의 정도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 나이대의 우정에 그만한 의지가 배제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김시우는 달랐던 모양이다.

피범벅이 된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며,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사람마다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있어. 내 부모님은 호적에만 존재할 뿐 나를 방치했고, 어린 시절 괴롭힘을 당할 때 나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 주는 어른은 없었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날 지극정성으로 키워 주셨지만, 그분들은 내가 학교에서 얼마나 심하게 괴롭힘을 당하는지는 몰랐거든. 사실 진짜 최악이었어. 매일같이 놀림을 받고,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얻어맞아 바닥을 뒹굴고. 그때, 네가 내 앞을 막아 줬어. 너로서는 아무것도 아닌 한순간일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도 그때의 네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렸다.

힘들었다.

당장 눈을 감고 싶었지만, 억지로 눈꺼풀을 지탱하며 김현성의 모습을 눈에 담으려고 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진짜 좆같잖아. 네가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는데, 친구인 내가 왜 외면하고 있어야 해? 그러니까 그냥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안 되냐? 내 인생이잖아. 태권도를 포기한 것도, 네 친구로서 남는 것도. 모두 내 선택이고 내 인생이라고.”

참.

인간의 감정은 우스웠다.

김시우의 말에, 그의 진심에.

그를 말려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나면서도, 그의 진심이 고맙게 느껴지는 모순적인 감정이 들었다.

정말 멍청했다.

전생도.

그리고 지금도.

김시우는 그냥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전생의 그는 엄청난 괴롭힘에 의지가 꺾였지만, 지금의 그는 아직 그만큼 절망적인 순간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어쩌면 말뿐인 의지일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김시우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겠지만, 적어도 그라는 인간은 경험해 보지 못한 일로 친구를 버리지 않았다.

설득하는 것은 실패했다.

단순히 승패가 아니라 의지를 시험하는 무대라면, 김시우는 적어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증명했다.

그때였다.

“너희 둘. 그냥 싸움박질은 그만두고, 나랑 같이 운동할 생각은 없냐? 너희가 나를 따라 주기만 한다면, 내 인생을 걸고 너희를 UFC 무대에 보내 줄게.”

무대 밖.

한참 전부터 상황을 지켜보던 정두철이, 진지한 표정으로 진심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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