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김시우 (3)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김현성과 김시우의 대치 상황에, 정두철은 일단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시작된 스파링.
말없이 지켜보던 정두철은, 어느 순간부터 흔들리는 눈동자를 감추지 못했다.
‘이것 봐라?’
빠악-!
강렬한 발차기였다.
김현성이 달려드는 타이밍을 정확하게 노리는 공격이었고, 상대가 주춤하는 사이에 김시우는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이제 보니 운동을 제대로 배운 녀석이었다. 곱상한 외모에 그리 기대하지 않았는데, 탄탄한 육체와 폭발적으로 뻗어 나가는 발차기는 단시간에 만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대가 탄탄하게 방어해 내자, 상대의 하단 공격을 유도하더니 기습적으로 머리를 노렸다.
빡-!
비틀거리는 김현성.
제대로 먹혔다.
직전까지 김현성의 움직임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으니, 이건 순전히 김시우의 개인 능력으로 만들어 낸 타격이었다.
‘김현성이나, 김시우나. 대체 왜 이런 애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거지? 내게 특별히 가르침을 받지 않더라도, 웬만한 동급생들은 씹어 먹을 실력일 텐데. 게다가 이제 겨우 17살. 김시우와 같은 타격 능력이라면, 종합 격투가로서 기본기만 조금 갖춰 줘도 프로로 데뷔하는 건 시간문제야.’
마음에 들었다.
타격.
노력으로만 만들어지는 기술이 아니다.
김시우는 폭발적인 발차기 능력뿐만 아니라, 발차기를 위해 거리를 벌리고 순간적으로 파고드는 감각마저 타고났다. 이건 분명한 재능이었다. UFC 선수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재능을 만나 보았지만, 17살의 나이에 김시우와 같은 폭발력을 보여 주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물론 완벽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김시우에게는 분명한 약점이 존재했고, 김현성은 자신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곧바로 약점을 파고들었다.
확!
콰당!
“역시.”
감탄사를 내뱉었다.
킥 캐치 후에 그라운드.
상위 포지션을 점령한 뒤에 무차별 파운딩.
타격가를 정석적인 방법으로 공략하는 상황에, 정두철은 속으로 생각해 두었던 것에 확신이 들었다.
‘김시우가 육체적인 재능이라면 김현성은 정신적인 것을 타고났어. 아무런 프로 경험이 없는 사람이 타격가를 상대로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힘든 일인데도, 굳이 불리한 타격 싸움으로 끌고 가지 않고 상대의 하체를 노렸어. 폭발적인 발차기를 무너트리는 예리한 감각. 김시우가 무조건 프로에서 성공할 재능이라면, 김현성과 같은 부류는 정상의 자리도 노릴 수 있어.’
둘 다.
지도자로서의 욕구를 자극했다.
사실 그는 가끔 지도자의 길을 상상했다.
만약 현실의 벽에 부딪힌 자신과는 다르게, 넘쳐나는 재능을 타고난 존재를 직접 육성해 보면 어떨까. 그렇다면 스테로이드 따위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굳이 편법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았던 자신과는 다르게 UFC 무대를 평정할 수 있을 것이다.
전생 또한.
김무열을 만나 자신의 욕망을 마주했다.
그런데 김무열을 만났던 전생보다 조금 일찍, 정두철은 자신의 새로운 꿈을 떠올리고 말았다.
마침내 스파링이 끝났다.
바닥에 널브러져 대화를 나누는 두 소년의 모습에, 그는 가슴속에 타오르는 열망을 그대로 입 밖으로 내뱉었다.
“너희 둘. 그냥 싸움박질은 그만두고, 나랑 같이 운동할 생각은 없냐? 너희가 나를 따라 주기만 한다면, 내 인생을 걸고 너희를 UFC 무대에 보내 줄게.”
김현성과 김시우.
정두철은 그들이 자신의 제자가 되기를 바랐다.
* * *
시선이 집중되었다.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정두철은 솔직한 생각을 말했다.
“현성이와의 거래도 있고 해서 웬만해서는 이런 제안을 하지 않으려고 했어. 그런데 지금 너희를 보라고. 너희는 종합 격투기를 위한 찬란한 재능을 타고났어. 만약 마음을 다잡고 운동에 전념한다면, 둘 다 UFC 무대에 진출해서 성공할 수 있도록 내가 전력을 다해 도와줄게.”
말을 할수록.
열망이 명확해졌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만큼이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현성아. 조금 전에 네가 말했잖아. 일진들이랑 싸움박질이나 하는 건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차라리 자퇴하자. 그럼 일진들이랑 얽힐 일도 없고, 운동에 전념할 시간도 많아질 거야. 의식주는 내가 다 해결해 줄게. 내가 비록 국내 업계에서는 매장되었지만, 아직도 나랑 연락하는 인맥들이 많아. 말뿐인 약속이 아니라 너희를 반드시 정상의 자리에 올려 줄 수 있어.”
혹할 만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그뿐.
김시우는 김현성의 눈치를 보았고, 김현성은 조금도 동요되지 않는 표정으로 담담하게 물었다.
“관장님은 어떤 이유로 운동을 시작하셨어요?”
“그건 재능이 있어서겠지. 너희처럼 나를 가르쳐 주었던 스승님의 눈에 띄었고, 실제로 흥미에도 맞아서 이 길을 걷게 되었어. 내가 한 일이라면 너희도 충분히 할 수 있…….”
“아니요. 그래서 안 된다는 거예요.”
차가운 음성이었다.
김현성은 피 묻은 글러브를 벗어 던지며, 정두철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쳤다.
“전 싸우는 일이 조금도 흥미롭지 않아요. 매 순간 당장에라도 포기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데도, 제가 살기 위해서 감당할 뿐이에요. 제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면 죽어 버릴 것만 같아서 아득바득 발악하는 거라고요. 관장님이 말씀하셨죠. 관원의 관리는 엄연히 관장님의 몫이고 제 말은 월권이라고. 우리 사이에도 명백히 거래가 존재하는데, 그딴 말을 하시면 더는 체육관에 나올 수 없어요.”
“현성아…….”
“그러니까 신중하게 생각하세요. 이건 설득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저와 생각이 다르다면, 거래를 철회하고 그냥 관장님이 가시는 길을 가면 돼요. 절 방해하지 말고요.”
링에서 내려왔다.
시선도 마주치지 않았다.
신경질적으로 체육관을 나서는 그 모습에, 정두철은 차마 김현성을 붙잡을 수 없었다.
* * *
밖으로 나왔을 때.
김현성은 황급히 자신을 따라붙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그 주인이 김시우라는 사실을 알기에, 김현성은 걸음을 멈추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지금부터 잘 생각하고 대답해. 나랑 같이하겠다는 선택,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어, 후회 안 해.”
피로 얼룩진 얼굴.
퉁퉁 부은 눈.
얼굴이 완전 엉망이었다.
하지만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겨우 이 정도의 폭력에 굴복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김시우를 받아 주지 않았을 것이다.
김현성이 말했다.
“알겠어. 너를 말리지는 않을게. 단, 조건이 있어.”
“뭔데?”
“첫 번째는 나랑 제대로 된 훈련을 하는 것. 만약 정두철 관장이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한다면 체육관을 바꾸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나랑 매일 체육관에 다녀. 그와 관련한 비용은 전부 내가 지불할 거고, 만약 네가 조금이라도 훈련에 따라오지 못한다면 그때는 끝이야.”
“좋아. 첫 번째가 있다면 두 번째도 말해 봐.”
“두 번째는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일에만 개입해. 누가 봐도 불가능한 싸움이거나, 범법(犯法) 행위와 관련이 있다면 절대 개입하지 마. 만약 그랬다간 어떻게든 널 내 곁에서 떼어 내고 말 거야.”
“그건…….”
김시우가 말끝을 흐렸다.
감당할 수 있는 일.
애매한 경계였다.
애초에 물불 가릴 생각이라면 김현성을 따르지도 않았겠지만, 김현성의 확고한 눈빛을 보니 부정적인 대답은 전혀 먹혀들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두 번째 제안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생각도 없었다. 만약 선을 넘어야 할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때의 일은 그때 해결해도 늦지 않았다.
‘일단 말뿐인 거니까.’
“받아들일게. 이제 끝이야?”
“아니, 마지막 세 번째가 있어.”
김시우.
마음에 무겁게 내려앉은 이름이다.
식물인간으로 살아온 세월에 많은 이름이 복수에 잠식되었지만, 그 이름만큼은 선명한 감정을 남겼다.
고마웠다.
그런 존재가.
그런 친구가.
이번 삶을 허비하길 바라지 않았다.
김시우의 강력한 의지에 받아들였기는 하나, 김현성은 오히려 이 상황을 이용해 김시우의 미래를 바꾸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명진건설에서 매달 네게 생활비를 입금해 줄 거야. 받아. 무슨 돈인지,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는 묻지 말고 그냥 받아. 만약 이 제안을 거절한다면 나는 절대 널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그리고 공부해. 언젠가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는 날이 찾아온다면…….”
웃었다.
현생의 삶에서, 친구에게 처음으로 허락하는 웃음이었다.
“나는 네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남들보다 훨씬 잘살기를 바라거든.”
* * *
집으로 돌아왔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보금자리에는, 하나뿐인 동생인 현진이가 TV로 게임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뭘 보고 있어?”
“어, 형!”
시선은 TV에 고정되었다.
잔뜩 흥분한 얼굴은, 그가 얼마나 좋아하는 프로그램인지를 증명했다.
“이거 오늘 진짜 중요한 경기야. 이번 경기만 이기면 내가 응원하는 팀이 결승전에 진출할 수도 있어. 형도 알지. 내가 가끔 하는 게임. 나중에 결승전에 오르면……. 아, 아악! 베이커의 솔로 킬!”
난리가 났다.
혼자 오두방정을 떨며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에, 김현성은 씁쓸한 웃음을 감추었다.
‘결승전. 그래, 결승전에 정말 가고 싶어 했지.’
전생.
김현진이 응원하는 팀은 극적으로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분명히 직관하고 싶었을 텐데도, 현진이는 그 사실을 절대 김현성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도 아는 것이다. 자신의 진심을 말한다면 김현성이 허리를 졸라매서라도 무리를 하리라는 사실을.
씁쓸한 현실이었다.
동생이 좋아하는 대회 직관은커녕, 집에 컴퓨터도 사 줄 수 없어서 김현진은 게임을 ‘가끔’밖에 즐길 수 없었다. 가끔은 선택이 아닌 현실이었다. 그래도 티 한 번 내지 않았던 착한 동생이었기에, 병실을 찾아와 펑펑 울던 동생의 모습이 투영되어 갑작스럽게 감정이 들끓었다.
빠득.
이를 악물었다.
애써 시선을 돌렸다.
“보고 있어. 밥해 줄게.”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이라고 해 봤자 작은 거실에 걸친 공간이었지만, 김현성은 표정을 숨기며 저녁을 준비했다.
할머니.
현진이.
김시우.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자신 때문에 고통받지 않도록, 나아가 전생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절대 나약해져서는 안 된다. 신영민과 골든 서클. 자신을 가로막는 존재들을 찢어발겨 버릴 것이다. 자신의 사람들에게 생채기가 하나라도 생길 바에, 자신의 손이 피로 물드는 것이 나았다.
박민철 패거리.
박진우.
겨우 시작일 뿐이다.
김현성의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졌고, 잔뜩 충혈된 눈은 당장에라도 피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형. 나 소시지도!”
“그래.”
순간.
김현성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현진이와 시선을 마주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착한 형의 가면을 써서 자상한 웃음을 보였다. 굳이 동생에게 현실을 말해 줄 필요는 없다. 전생에는 천일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김현성의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괴롭힘을 당했지만, 이번 생에는 다른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때마침 정두철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현성아, 미안하다. 네 말처럼 우리 사이에는 명확한 계약이 존재하는데, 순간적으로 욕심이 나서 선을 넘었던 것 같다. 다시 계약대로 훈련을 진행하자. 다시는 너에게 프로로 데뷔하자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기억해 줘. 내가 한 말은 언제까지나 유효할 거야. 만약 프로 선수로 데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게 언제든 솔직하게 말해 줬으면 좋겠어.]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정두철이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댄 말보다, 자신과의 계약을 이행하겠다는 그 한 문장이면 충분했다.
분노를 삼켰다.
들끓는 감정을 억눌렀다.
차분하게.
단계적으로.
10년 동안 머릿속으로 반복해 왔던 계획을 현실로 만들어 낼 것이다.
‘반드시 성공한다.’
그로부터 몇 주.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최근에 크고 굵직한 사건들이 많았지만, 신영민 사건 이후로 천일은 조용한 나날을 보냈다.
그야말로 폭풍전야(暴風前夜)였다.
그리고 마침내.
고등학교 2학기, 중간고사의 날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