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32화 (32/130)

8. 타협이 불가할 때는 (2)

전 과목 백 점.

이례적인 성적이었다.

김현성의 갑작스러운 반등에, 그와 관련한 소문이 천일 전체로 들불처럼 빠르게 번져 나갔다.

그리고 당연히.

소문의 종착지는 바로 천일 고등학교의 교장실이었다.

[교장 선생님! 그게 정말 사실이에요? 전교 10등 밖에서 놀던 애가 갑자기 전교 1등을 했다면서요.]

[이번 시험은 어렵게 냈다고 하지 않았어요?]

[선생님…….]

전화기 너머.

학부모들의 연락이 빗발쳤다.

천일 고등학교는 대산의 명문이다.

대산에서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대부분 천일에 입학했고, 그의 부모들은 당연히 중간고사 시험 성적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김현성의 갑작스러운 반등은 절대 달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그 한 명으로 인해 순위가 한 단계씩 밀리다 보니, 소식을 접한 부모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오대환이 난색을 표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원래부터 공부를 곧잘 하던 학생이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치고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혹시 특별히 특혜를 준 건 아니에요? 천일의 선생님들이 그 애를 감싸고 돈다면서요.]

“그게 대체 무슨 큰일 날 소리입니까? 천일은 대산을 대표하는 명문입니다. 저희는 성심성의껏 학생들을 가르칠 뿐, 성적에 그 어떠한 특혜도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건 저희의 얼굴에 먹칠하는 일 아닙니까?”

[그럼 따로 학원을 다니나요? 그 학원이 어디인지 알고 싶은데요.]

왜일까.

오대환은 이 상황이 곤란하면서도 뿌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제가 알기로 현성이는 그 어떠한 학원도 다니지 않고 있습니다. 전교 1등의 성적은 천일 고등학교의 ‘훌륭한 교육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다들 수업에 집중하라고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아무리 요새 학원이 대세라지만, 시험 성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수업을 열심히 듣는 겁니다.”

뚝.

통화를 끊었다.

속이 다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천일에서 공부를 좀 한다는 학생들은, 김현성처럼 그렇게 열성적으로 학교 수업을 받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에도 여러 개의 학원을 다녔다. 밤새 이루어지는 학원 수업에 그들은 피곤에 찌들었고, 학교 수업을 받을 때는 꾸벅꾸벅 존다는 선생님들의 하소연이 많았다.

이 얼마나 한탄스러운 일이란 말인가.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학원 하나 다니지 않는 김현성이, 전교 1등의 성적으로 모두에게 학교의 가치를 증명했다.

“흐음~♪”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이번 성적.

예사롭지 않았다.

단순히 전교 1등으로 치부하기에는, 학교 내부에서 만점이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로 난이도가 제법 있었다. 그런데 이 정도로 완벽하게 만점을 맞았다는 의미는. 김현성의 다음 성적을 기대하게 만드는 포인트였다. 예를 들어서 전국에서 평가하는 모의고사에서 1등을 한다든지, 이렇게 성적이 치고 올라가다가 당당하게 대한민국 제일의 한국대에 수석으로 입학한다든지.

충분히 기대할 만했다.

오랜만에 나타난 전국적인 유망주에, 오대환은 인생이 정말 달게 느껴졌다.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더니. 김현성이 사고를 칠 때만 하더라도 정민호 부모님을 잃는다는 생각에 상당히 암담했는데, 김현성 덕분에 명진건설과 인연을 맺을 뿐만 아니라 천일을 대표하는 엄청난 성적도 거두었잖아. 만약 정민호 그 녀석들이 계속해서 괴롭힘을 이어 나갔다면, 지금의 전교 1등은 존재하지 않았겠지.’

씰룩 웃었다.

김현성은 그야말로 복덩이였다.

명진건설이라는 배경에 본인의 성적마저 더하니, 교장으로서 그를 이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민호?

그딴 녀석은 이제 필요 없었다.

오대환의 꿈은 천일을 명문 학교로 만드는 것.

김현성이 모든 조건을 충족해 주는 학생이라면, 이건 오히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김현성이 계속해서 사건 사고를 친다는 거야. 만약 그가 문제아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이번 중간고사로 드높인 천일의 명성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 인생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예상할 수 없는 범주이나, 미리 대비한다면 문제를 문제가 아닌 것처럼 만들 수는 있겠지. 지금부터는 고창범의 제안을 떠나 내 꿈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김현성을 흠집 하나 나지 않은 완벽한 상태로 졸업시킬 필요성이 있어.’

생각이 더욱 공고해졌다.

어차피 잘해 줘야 할 학생이었는데, 지금은 명분과 의지를 모두 갖추었다.

오대환은 곧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래, 영철아.”

김영철.

그를 만나야 했다.

* * *

인생사 새옹지마.

사실 오대환보다는 김영철에게 어울리는 말이었다.

김현성에게 목줄이 잡힐 때만 해도 상당히 암담했는데, 방금 오대환을 만나고는 세상이 바뀌었다.

“우리 동생. 지난번에 김현성을 잘 봐 달라고 부탁했던 것 기억나지? 지금까지 충분히 잘해 주고 있는 것은 알지만, 김현성이 전교 1등을 한 이상 우리는 그 녀석에게 ‘조금의 흠집’도 허락할 수 없어. 무슨 의미인지 알지? 김현성은 단순히 명진건설을 끌고 온 동아줄일 뿐만 아니라, 천일이 만들어 낸 가장 훌륭한 상품이라고. 만약 이대로 전교 1등 행진을 이어 나가다가 한국대에 입학한다면, 우리는 명문으로서의 정말 좋은 예시를 남기겠지.”

거기까지는 예상 범주였다.

그리고 이어진 발언은, 김영철에게 확신을 부여했다.

“알다시피 김현성은 1학년 1반이야. 우리 동생이 담당하는 학생이니만큼, 만약 학교 차원에서 보상을 부여한다면 그만한 명분은 충분하다는 의미지. 당장 다음 달부터 성과급이 지급될 테니까, 지금부터 이런 자잘한 보상들은 충분히 즐겨. 김현성이 졸업할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의 미래에도. 나는 우리 동생을 요긴하게, 정말 천일의 동반자로서 확실하게 끌어 줄 테니까.”

쓰레기들의 도원결의.

그때는 단순히 말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한 보상이 동반되었기에, 김영철은 교장실을 나오면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

김현성이라는 이름의 동아줄.

황금 동아줄이었다.

처음에는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붙잡았던 것인데, 상황이 이상적으로 흘러가자 지금은 들뜨는 기분이 들었다. 진짜 신기한 녀석이었다. 명진건설을 끌고 온 것도 비상식적인데, 전교 1등의 성적이라니. 어차피 김현성에게 목줄이 붙잡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김현성을 확실하게 챙겨서 배를 불리는 지금의 행보는 매우 이상적이었다.

‘그래, 이거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이 김영철이 이대로 무너질 리가 없지.’

신이 났다.

김현성을 찾아갔다.

좋은 덕담이라도 나누며, 그에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자 했다.

특히 오대환이 ‘흠집’에 대해 신신당부했으니, 혹시 모를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필요도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 자리 옮기시죠.”

지금은 기뻐할 때다.

전교 1등의 성적에 날뛰어야 할 때다.

그런 예상과는 달리 차가운 얼굴의 김현성을 마주하는 순간.

‘……씨발, 상황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김영철은 본능적으로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꼈다.

* * *

자리를 옮겼다.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한적한 공간에, 김현성은 곧바로 본론을 말했다.

“골든 서클이라고 아세요?”

“……골든 서클?”

김영철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럴 만도 했다.

골든 서클은 서울을 거점으로 음지(陰地)에서 활동하는 집단이고, 그 정체가 알려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수년이 흐른 뒤였다. 지방의 교사 따위가 골든 서클에 대해서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김영철이 알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앞으로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대략적으로 알아들으세요. 골든 서클이라는 집단이 존재하고, 그들은 제가 우수한 성적을 거둔 지금의 상황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어요. 그래서 곧 학교에서 대규모 움직임이 있을 거예요. 골든 서클의 의뢰를 받은 신영민이, 본인이 살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저를 나락으로 빠트리려고 하겠죠.”

“그, 그게 무슨…….”

당황스러운 말이었다.

골든 서클이라느니.

의뢰라느니.

김영철은 사고가 정지되는 기분이 들었지만, 김현성은 그에게 자세하게 설명해 줄 생각이 없었다.

“사실 선생님도 이미 골든 서클에 가담하셨어요. 박민철 패거리가 절 괴롭혔던 이유가, 애초에 골든 서클의 의뢰로 파생된 일이니까요.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어요? 이 거대한 집단 범죄에 선생님도 자유롭지 않기에, 만약 제가 잘못된다면 선생님도 같이 끝이라는 의미에요.”

“……어, 어차피 나는 너를 공동운명체라고 생각한단다.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되는 거냐? 신영민이를 막아 주면 되는 거냐?”

불륜.

명진건설.

오대환과의 관계.

약점 때문에라도, 본인의 실익을 위해서라도.

김영철은 김현성을 배신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골든 서클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김현성이 이번 사건에서 본인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것은 알았다. 그리고 웬만해서는 본인의 선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오대환의 부탁대로라면 이번 일은 김현성에게 엄청난 흠집이 생길 사건이기에, 김영철은 매우 초조하고 불안한 눈빛을 보였다.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김현성은 사납게 웃으며, 자신의 악의를 드러냈다.

“아니요. 예나 지금이나 제가 바라는 건 단 하나예요. 방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만들어 주는 어른들의 외면. 그것이면 충분해요. 그러니까…….”

감정이 차갑게 식었다.

만점의 성적을 확인하는 순간.

남들이 경악하고 환호하는 일련의 상황에, 김현성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치열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세요.”

그 순간.

김영철은 알았다.

‘무슨 일’이라는 단어를,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 * *

짜악-!

피가 튀었다.

신영민의 얼굴이 거칠게 돌아가며, 그대로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영민아. 내가 분명히 말했지. 돈을 받아먹은 만큼 확실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절대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그런데 전교 1등? 성적을 떨어트리기는커녕 전교 1등? 참 재밌어, 그치?”

철크럭.

사내가 손목에 찬 고급 시계를 풀었다.

강태구였다.

천일의 소식을 들은 그는, 곧바로 신영민을 불러들였다.

천일에서 악마 선배라고 불리는 신영민이지만, 강태구 앞에서는 공포에 잔뜩 질려 벌벌 떨었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 그래, 죄송해야지. 그런데…….”

1차 경고.

골든 서클의 메시지에, 강태구는 사나운 표정을 보였다.

“일단 좀 맞자.”

“악!”

빠악-!

퍽퍽퍽퍽.

잔인한 폭력이었다.

무릎을 꿇은 신영민의 얼굴을 그대로 차 버리더니, 쥐며느리처럼 웅크려 있는 신영민을 사정없이 짓밟아 버렸다. 얼굴이든, 몸이든, 그딴 것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고 얼굴에서 피가 터지는데도, 강태구는 정말 신영민을 죽여 버리겠다는 듯이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골든 서클의 1차 경고.

위험 신호였다.

1차 경고인데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2차 경고와 더불어 관련자의 처벌이 이루어진다.

그때는 강태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강태구는 신영민을 피떡으로 만들어 버리더니, 숨을 거칠게 내쉬며 뻐근하게 올라온 손목을 어루만졌다.

“영민아. 마지막 경고야. 만약 이번에도 우리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네 팔다리 하나는 다시는 쓰지 못할 정도로 만들어 줄 줄 알아. 명심해.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걸.”

“……끄, 끄으. 아, 알겠습니다.”

“그래.”

그것으로 끝이었다.

강태구는 재킷을 걸치더니, 먼저 골목길을 나서 버렸다.

신영민은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아팠다.

전신에서 고통이 밀려들었지만,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 상황에 대한 분노였다.

“……김현성, 이 개새끼.”

강태구?

의뢰인?

골든 서클?

분노는 그들을 빗겨 나갔다.

감히 분노를 표출할 수 없는 상대임을 알기에, 신영민은 이 모든 상황의 문제를 김현성에게 떠넘겼다.

그만 아니었다면.

김현성이 순순히 당해 주었다면.

자신이 이런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부터는 벼랑 끝이다.

타협 따위는 없었다.

김현성을 건드리면 명진건설과 천일의 교장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강태구의 분노는 애초에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자신이 퇴학을 당하든 말든, 인생이 끝나든 말든 간에 일단 당장 살아남기 위해서는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어야만 했다.

빠득.

이를 악물었다.

핏물을 삼켜 내며, 신영민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탈칵.

“야. 내 말 듣는 애들 전부 불러 모아.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사납게 번들거리는 눈빛.

그것은 현실적인 문제를 초월한, 너무나도 명확한 악의(惡意)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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