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타협이 불가할 때는 (3)
굴다리 밑.
평소에는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그 한적한 공간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모여 뿌연 연기를 뿜어댔다.
사람은 한 50명 정도?
대부분은 각 잡힌 상태로 도열해 있었고, 그들 중심에는 신영민이 쪼그려 앉은 채로 담배 연기를 연신 빨아들였다.
“영민아. 그냥 조져 버리자. 아무리 교장이랑 김영철이 뒤를 봐준다고 해도, 방과 후의 일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거 아냐. 그냥 팔다리 하나 부러트리면 김현성 그 새끼도 버티지 못할 거야.”
“아니.”
신영민이 고개를 저었다.
친구가 말한 방법.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겠지만, 그 방법에는 아주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김현성은 무모하기는 해도 멍청한 새끼는 아니야. 그러니까 날 따로 찾아와서 협박질을 해 댄 거겠지. 한 번 정도는 김현성을 끌고 가서 개처럼 팰 수는 있지만, 만약 다음부터 명진건설을 끌고 와서 방과 후에 스스로를 보호한다면 그때부터는 방법이 없어. 학교에서는 선생들이, 밖에서는 명진건설이. 희생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똑같은 문제를 반복하게 되겠지.”
담배가 전부 타들어 갔다.
자신의 신세인 것만 같아, 신영민은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바닥에 버리며 친구를 올려다보았다.
“결국에 우리는 우리가 학생의 신분인 것을 최대한 활용해야 해. 외부의 개입이 허락되지 않는 학교에서, 김현성이 학생으로서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껴야만 우리의 임무에 성공할 수 있겠지. 선생들이 하는 일에는 결국 한계가 있잖아. 걔들이 아무리 김현성을 감싸고 돈다고 해도, 우리가 작정하고 김현성을 노리면 그걸 어떻게 막겠어? 24시간 보호해 주는 보디가드도 아닌데.”
“……그랬다간 징계를 피하기 힘들 텐데. 박민철 패거리로 이미 증명됐잖아.”
“그래, 그게 문제지.”
짜증이 치밀었다.
박민철 패거리.
그들이 나쁜 선례를 남겼다.
김현성을 잘못 건드렸다간 고등학교 생활이 전부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기에, 신영민으로서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딜레마였다.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 어떻게든 임무를 완수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건드리는 방법이 해결책이 아님을 알았다.
담배를 하나 물었다.
불을 붙이고 깊게 빨아들이려는데, 도열해 있던 후배 중 한 명이 목소리를 높였다.
“선배님.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
이름은 배성호.
2학년 짱으로 괴물 고릴라라 불리는 녀석이었다.
신영민 다음이라고 평가받는 만큼, 신영민이 아끼는 몇 안 되는 후배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교장이 천일을 명문으로 만들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대놓고 저희 전부가 김현성과 트러블을 일으키는 겁니다. 처음 한두 명이야 박민철 패거리처럼 강하게 징계할 수 있지만, 그게 10명이 된다면. 20명, 30명이 된다고 해도 교장이 똑같이 처벌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그 많은 학생을 전부 퇴학시킨다면 천일은 학교로서의 의미를 상실할 텐데, 천일에 미쳐 있는 교장이라면 절대 ‘선’을 넘지 못할 겁니다.”
순간.
신영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직 제대로 빨아들이지 못한 담배를 바닥에 버리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히죽 웃음을 보였다.
“그거 좋은 방법이네.”
* * *
며칠 뒤.
김현성은 묘한 분위기를 느꼈다.
소곤소곤.
1학년 동급생들.
그중 양아치로 분류되는 녀석들이, 김현성이 지나갈 때마다 목소리를 낮추며 무언가 대화를 나누었다. 자신을 힐끗 바라보는 경계 어린 시선.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그들의 적의(敵意)에, 김현성은 신영민이 움직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금부터 시작인 건가.’
전 과목 백 점.
그야말로 선전포고였다.
신영민으로서는 골든 서클의 압박을 버텨 낼 수 없을 테니, 분명히 중간고사를 기점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골든 서클은 절대 예외를 허락하지 않는다. 100프로의 성공률이 의뢰인과의 신뢰 관계를 형성해 주기에, 이번 일이 대충 마무리될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멍청한 판단이다.
예상했던 바다.
그리고 원하는 바이기도 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그래야 너희의 인생을 갈기갈기 찢어발길 가치가 있겠지.’
왜일까.
지금, 이 순간.
너무나 흥분되었다.
머릿속의 계획들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상황에, 김현성은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면서부터 몸이 떨렸다.
주먹을 자꾸만 쥐었다 폈다.
손이 땀으로 흥건했다.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묘한 긴장감이 김현성의 몸을 휘감았다.
‘식물인간으로 살아가며 수도 없이 계획을 되새기는 동안, 항상 강창석 이후의 시나리오는 모두 망상에 불과했어. 계획은 그럴듯하나 실제로 이루어 낼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 상상과 실제는 다르니까. 상상 속에서는 상대가 그 누구든 쓸어버릴 수 있지만, 현실에서의 나는 그런 일이 가능했다면 애초에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겠지. 내가 앞으로 복수를 할 수 있느냐, 불가능하냐는. 신영민과의 싸움으로 결정될 거야. 그조차도 감당하지 못한다면 나는 악의의 대가를 치르겠지만, 내 계획대로 상황을 정리해 버린다면 내가 꿈꾸었던 망상은 현실이 될 거야.’
현실과 상상의 괴리.
달랐다.
상상에서는 박민철을 죽일 것처럼 때렸지만, 막상 현실에서 그를 때릴 때는 주먹질 한 번 한 번에 통증이 일었다. 사람의 뼈는 생각보다 단단했다. 만약 박민철 패거리를 상대할 때 주먹에 금이라도 갔다면,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조금이라도 상황이 틀어졌다면. 골든 서클을 비롯해서 모두를 찢어발기겠다는 복수심은, 생각보다 정말 허무하게 끝나 버렸을지도 모른다.
흥분을 삼켰다.
이럴 때일수록.
감정을 통제해야만 한다.
확실하게, 완벽하게.
머릿속의 계획을 이행해야만, 천일을 정리하고 ‘골든 서클’이라는 거대한 세력에게 도전할 수 있다.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친구들은 모를 것이다.
김현성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그렇게.
딩동댕동~!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상황에, 김현성은 걸음을 옮겨 급식실로 향했다.
그때였다.
복도를 걷는데, 갑자기 뒤에서 충격이 일었다.
빡-!
“아, 씨발.”
어깨가 부딪혔다.
김현성이 앞으로 밀려날 정도의 충격이었고, 뒤를 돌아보자 오늘 아침부터 자신을 적의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양아치 하나가 신경질적인 표정을 보였다. 인원은 그를 포함해 3명. 뒤에서 부딪힌 사람의 잘못이 명백한데도, 그를 포함한 일행은 기다렸다는 듯이 살벌한 음성을 내뱉었다.
“눈 좀 똑바로 뜨고 다녀.”
“야, 사과 안 하냐? 어깨를 부딪치면 사과부터 나와야지, 그 X 같은 눈빛은 뭐냐?”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시작되었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악의를 마주하는 순간.
“그래, 이거구나.”
“뭔 개소리……. 컥!”
빠악-!
그대로 상대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
* * *
양아치 셋.
그중 선두에 있던 양아치가 나가떨어지자, 바로 옆에 있던 두 명의 얼굴이 당혹스러움으로 얼룩졌다.
예상과는 달랐다.
조금은 설전을 벌이다가 싸움으로 이어질 줄 알았는데, 김현성은 곧바로 둘에게도 달려들었다.
확.
빠악-!
한 명 더.
얼굴을 날렸다.
뒤늦게 반응해 보려고 했지만, 김현성은 가드를 들어 올린 두 팔 사이를 날렵하게 파고들며 콧잔등을 그대로 갈겨 버렸다. 피가 튀었다. 초점을 잃은 눈빛이 천장을 향하며 뒤로 넘어갔고, 마지막으로 남은 양아치 하나가 무방비 상태로 드러난 김현성의 얼굴을 노렸다.
홱.
피했다.
간발의 차이였다.
일련의 상황은 모두 머릿속에 있었다.
어깨가 부딪히는 순간부터 김현성의 머릿속에서는 싸움이 시작되었고, 뒤를 돌아 한 명의 얼굴을 날려 버리면서도 나머지 두 명을 끝내 버릴 계획을 구상했다. 상대의 반격은 너무나도 뻔했다. 이미 예상한 공격을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공격을 흘려 보냄과 동시에 상대의 복부를 때렸다.
빡!
“커억.”
눈이 뒤집혔다.
생소한 고통에 현실을 잊어버렸고, 뭘 어떻게 해 보기도 전에 곧바로 얼굴에 끔찍한 통증이 작렬했다.
빠악-!
겨우 네 번의 공격.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되었다.
급식실로 달려가던 친구들이 주변에 모여들었고, 그들은 어쩌다가 싸움이 시작되었는지 모르기에 흥분한 얼굴로 숙덕거렸다. 확실한 것은 이미 상황은 끝났다는 것이다. 과거의 김현성은 이 정도로 강하지 않았는데, 겨우 10초도 되지 않아 3명을 정리해 버릴 정도로 다른 세계에 진입했다.
그러고는.
“야.”
꽉.
김현성이 가장 먼저 나가떨어진 녀석의 멱살을 잡아서 들었다.
살짝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전의를 상실했지만, 김현성은 그의 얼굴에 수차례 주먹을 날렸다.
“널 포함해서.”
퍽!
“다른 새끼들 모두.”
퍽!
“명심하라고 해.”
퍽!
몸이 들썩였다.
얼굴이 피로 물들고 힘을 잃었는데도, 상대를 죽여 버리겠다는 듯이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내 눈에 띄는 순간 그냥 끝나지는 않을 거라고.”
빠악-!
그 순간.
주변의 소음이 사라졌다.
무차별적인 폭력에, 친구들은 더는 소리를 낼 수 없었다.
* * *
김현성의 일.
곧바로 패거리에게 알려졌다.
계획과는 다른 전개에, 배성호가 밥을 먹다가 말고 성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김현성, 이 개새끼가.”
빠득.
이를 악물었다.
이번 일.
신영민이 선봉장으로 배성호를 내세웠다.
배성호를 가장 신뢰하기 때문이었고, 만약 이번 일을 잘 처리한다면 골든 서클의 브로커를 소개해 주겠다고도 약속했다. 그건 배성호가 항상 바라던 일이었다. 배성호는 신영민처럼 돈을 받고 폭력을 행사하는 일에 낭만이 있기에, 이번 일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다.
‘상황이 꼬였어.’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1학년 후배들로 조금 건드리다가, 자신이 직접 나서서 김현성을 제대로 들이받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틀어졌다.
가볍게 선전포고 정도에서 끝낼 작정이었는데, 김현성이 후배 세 명을 그대로 날려 버리면서 공포 분위기가 전염되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김현성이 1학년 짱인 박진우를 짓밟아 버린 괴물이라는 사실을. 그를 건드렸다간 단순히 피를 흘리는 정도로 끝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배성호에게 상황을 보고하는 1학년 후배는 공포에 질린 듯한 눈빛을 보였다.
사실상 끝났다.
1학년들로는 재미를 보지 못할 것을 알았다.
그래서 배성호는 곧바로 패거리를 이끌고 걸음을 옮겼고, 이윽고 김현성이 있는 1학년 1반에 도착했다.
쾅-!
문을 열었다.
살벌한 눈빛으로 주변을 훑자, 사진으로 확인한 얼굴이 보였다.
“너냐, 김현성이?”
슥.
김현성이 고개를 돌렸다.
담담한 얼굴로 시선을 마주쳤다.
그 모습에.
배성호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김현성이 아무리 대단한 배경을 등에 업었다지만, 신영민을 필두로 천일 전체가 그를 적대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대체 무슨 깡으로 저런 여유를 부린단 말인가. 어차피 천일의 교장이 어쩌지 못할 정도로 사고를 칠 생각이라면, 배성호는 자신이 확실하게 일을 마무리해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안으로 들어섰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런데 그때.
“여기서 싸우면 너희도 곤란할 텐데. 차라리 자리를 옮기는 건 어때?”
툭 내뱉은 음성.
그리고 흔들림이 없는 그 눈빛에.
“선생님이 잘 다니지 않는 소각장으로.”
배성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