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34화 (34/130)

8. 타협이 불가할 때는 (4)

김현성의 제안.

매우 매력적이었다.

선생들의 존재가 거슬릴 수밖에 없기에, 배성호는 표정을 찌푸리면서도 김현성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문제는.

‘우리를 아주 병신으로 보는구나.’

배성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이었다.

생각해 보라.

자신을 비롯한 2학년 선배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는데,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하기는커녕 자발적으로 따라나서다니. 정말이지, 심기가 제대로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미친개라고 불리는 만큼 김현성은 절대 만만한 존재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모두를 감당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안일했든.

멍청했든.

실수를 저지른 것은 확실했다.

뒤늦게 선생님을 불러들인다고 한들, 김현성은 시건방진 태도의 대가를 처참하게 치를 것이다.

우뚝.

소각장에 도착했다.

몸을 돌렸다.

배성호를 비롯한 2학년 선배들이 김현성을 둘러싸는 형태였고, 뒤따라 도착한 김현성은 담담한 표정으로 배성호를 바라보았다. 위로는 건물 안에서 학생들이 소각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평소라면 들어가라고 소리쳤겠지만, 지금은 그들에게 확실한 본보기를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배성호가 말했다.

“씨발 새끼가 적당히 나댔어야지. 동급생들끼리 치고받는 정도였다면 널 그냥 내버려 두었겠지만, 신영민 선배를 건드린 순간부터 너는 선을 넘은 거야. 이 천일에는 서열이 존재해. 네가 날 건너뛰고 신영민 선배를 들이받은 것은, 나 배성호를 명백하게 무시하는…….”

“지랄.”

“뭐?”

말을 툭 끊었다.

험악해지는 분위기를 마주하면서도, 김현성은 시선을 한순간도 피하지 않았다.

“지랄하지 말라고. 너희가 날 건드리는 이유를 뻔히 아는데, 그딴 같잖은 말장난을 할 이유가 없잖아? 그러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지금 위에 애들이 지켜보고 있는 거 보여?”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학생들이 계속해서 늘어났다.

이번 사건은 천일의 빅이슈였고, 점심을 먹던 학생들도 숟가락을 내려놓고 헐레벌떡 몰려들었다.

“너희도 시선이 있는데 일 대 다수로 붙으면 쪽팔릴 거 아니야. 한 명씩 나와. 배성호 네가 바로 나와도 좋고, 아니면 병신처럼 차례로 박살이 나도 좋고. 몇 명이 되든 전부 상대해 줄 테니까.”

수십 명.

시선 가득 사나운 얼굴들이 보였다.

그들의 명백한 적의에.

“왜, 쫄려?”

김현성은 히죽, 웃음을 보였다.

* * *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겨우 10대 학생들에 불과할지라도, 학교라는 공간에서 ‘싸움의 명분’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예를 들어 다수가 소수를 구타하거나, 아니면 무기를 사용해 상대를 제압한다면 결과론적으로는 승리한 것이겠지만 학생들의 인정을 받을 수는 없다. 왜냐고? 아직 결과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지 않는 학생들의 세상에서, 앞선 방법들은 너무나도 비겁하기 때문이었다.

일대일.

그리고 무기 없이.

정정당당하게 겨룬 싸움에서 승리를 거머쥐었을 때, 비로소 진짜 강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난 아직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어.’

일련의 사건.

김현성은 과격한 행보로 미친개라고 불렸지만, 그렇다고 신영민을 넘어서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홀로 박민철 패거리를 쓰러트렸다고는 하나 그때는 자물쇠를 무기로 사용했고, 박진우는 1학년 짱이지만 신영민과는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물론 신영민과도 싸웠었다.

나름대로 신영민을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그때의 싸움은 오히려 명확한 평가를 남겼다.

‘역시.’

‘신영민을 상대로는 안 되네.’

‘저번에도 느꼈는데, 김현성 진짜 존나 비열하네.’

의자를 던지고.

상대를 창문에 꽂아 버렸다.

일련의 모습들이 김현성의 광기를 증명해 주었지만, 동시에 승리를 위한 비열함이 김현성의 평가를 깎아내렸다. 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생각보다 강하지 않은 존재. 그것이 몇몇 학생들이 바라보는 시선이었고, 김현성은 계획을 위해 그 평판을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 계획은 천일에서 완벽한 기반을 마련해야만 성공할 수 있어. 애매한 평가로 불신을 남긴다면, 훗날 골든 서클을 맞닥트렸을 때 무력하게 무너지고 말겠지. 골든 서클로도 절대 넘볼 수 없는 나만의 세상. 탄탄하게 쌓아 올려 절대 무너지지 않는 천일 고등학교라는 이름의 철옹성(鐵甕城).’

지금, 이 자리.

평가의 자리다.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서라도, 사람들에게 조금의 의구심도 남기지 않을 정말 확실한 승리가 필요했다.

“왜, 쫄려?”

툭 뱉은 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2학년 선배들로서는 예상하지 못했다.

배성호와 모종의 계획을 꾸밀 때만 하더라도, 김현성이 무기를 휘두르며 발악하거나 선생님에게 쪼르르 도망가서 살길을 모색하는 것이 예상 범주였다. 절대 이렇게 대놓고 대적할 줄은 몰랐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김현성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김현성의 승산?

존재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일대일이나, 결국에는 일 대 다수의 승부이지 않던가.

배성호를 비롯한 선배들이 그렇게 약했다면, 이 천일에서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고로.

‘너희는 내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배성호.

그리고 선배들.

그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애초에 알량한 주먹질 하나를 믿고 다니는 10대 소년들은, 그 자존심을 빼 버린다면 시체나 다름없었다. 김현성이 어떤 의도를 지녔든, 무슨 생각으로 이런 상황을 만들었든. 문제의 시발점에 대해 고민할 조금의 시간도 없이, 험악한 표정의 배성호를 뒤로하고 한 선배가 불쑥 튀어나왔다.

“씨발 새끼가 돌았나.”

예상대로였다.

완벽하게 마련된 무대에, 첫 번째 상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이름 김창현.

전형적인 양아치처럼 생겼지만, 호리호리한 체격과는 다르게 싸움을 잘하기로 유명한 선배였다.

특히 다혈질의 성격.

자신보다 약한 상대들을 죽일 듯이 패 버리는 그의 모습에, 신영민의 뒤를 이를 사람은 배성호지만 ‘악마 선배’의 칭호는 김창현의 몫이라는 말이 많았다. 그런 그로서는 김현성의 건방진 태도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따로 이 상황에 대한 논의를 나누지 않았지만, 벌겋게 달아오른 배성호의 뒷목을 확인하는 순간 김창현은 자신이 총대를 메겠다는 듯이 앞으로 나섰다.

“그래, 네 제안을 받아 줄게. 그런데 네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어.”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순식간에 김현성과의 거리가 좁혀지더니, 말을 끝맺음과 동시에 김창현이 거칠게 주먹을 휘둘렀다.

“내가 나선 이상, 이다음은 없다는 거야.”

확.

빠악-!

강력한 충격이 일었다.

김현성이 팔을 들어서 막아 내는 모습에,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이 곧바로 주먹세례를 퍼부었다.

“건방진 새끼.”

훅.

빡빡빡!

후속타는 피했다.

연속해서 들어오는 공격은 몸을 틀어 막아 냈고, 기세를 살리려는 김창현의 모습에 김현성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사실 김창현은 ‘계획’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김현성은 식물인간 상태로 십 년간 계획을 구상했지만, 신영민과 배성호 같은 굵직한 인물들의 이름은 기억해도 1학년 교실을 잘 찾아오지도 않는 김창현이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대략적인 흐름에서, 김현성이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천일에 신영민보다 강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 사실 하나면 계획은 성립될 수 있어.’

이번 계획.

목표는 신영민이다.

그를 무너트리기 위해 계획을 구상했고, 실행에 옮길 수 있다고 판단이 내려진 순간부터 김창현과 같이 기억이 나지 않는 존재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신영민보다는 아닐 테니까. 변수를 일으킬 존재였다면, 적어도 배성호 밑에 있지는 않을 테니까.

확!

주먹이 스쳐 지나갔다.

살벌한 표정의 김창현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빠악!

“커억.”

김창현의 복부에 주먹이 파고들었다.

김창현이 눈을 부릅떴다.

정확히 급소를 노리기도 했지만, 예상 밖의 파괴력에 김창현은 정신이 완전히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제야 알았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그 생각을 제대로 끝맺기도 전에.

빠악-!

김창현의 얼굴이 처참하게 찌그러졌다.

* * *

소각장 위.

소각장을 내려다보는 수많은 시선 중에는, 한때 1학년 짱으로 불리던 박진우도 존재했다.

그는 김현성의 도발에 김창현이 나서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씰룩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지 못했다.

‘넌 이제 X 됐어.’

그날 이후.

박진우는 나락에 빠졌다.

1학년 짱이랍시고 왕처럼 군림하던 그로서는, 퉁퉁 부은 얼굴로 다른 친구들을 괴롭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건 트라우마였다. 김시우를 건드렸을 때처럼 김현성이 나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피멍이 가라앉을 무렵부터 학교에 나온 그는 유령처럼 등교와 하교를 반복했다.

솔직히 화가 많이 났다.

언제까지 이렇게 눈치를 봐야 하는지, 하루에도 수십 번 김현성에 대한 반감이 미친 듯이 치밀었다.

하지만.

절대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김현성이 행했던 잔인한 폭력에, 시선이라도 마주치는 날에는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지금.

복수의 순간이 찾아왔다.

김현성이 아무리 독종이라지만, 2학년 선배들을 상대로 혼자 버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김창현 선배님. 선배님의 힘을…….’

빠악-!

섬뜩한 소리였다.

김창현의 얼굴이 홱 돌아갔다.

처참하게 찌그러지는 얼굴과 허공에 흩날리는 붉은 핏방울.

실이 끊긴 인형처럼 비현실적으로 넘어지는 김창현의 모습에, 박진우는 과거의 트라우마가 살아났다.

“미, 미친 새끼.”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신의 패배?

우연이 아니다.

김현성은 정말로 강했고, 자신을 단번에 제압했던 그때처럼 김창현에게 조금의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 눈앞의 결과에 소름이 돋았다. 김현성은 단순한 객기로 2학년 선배들을 들이받은 것이 아니었다. 조금 전에 내뱉은 말처럼, 정말 2학년 선배들 전부를 상대할 생각이었다.

미친 새끼였다.

정상이 아니었다.

그와의 싸움이 조금이라도 잘못되었다면, 자신은 지금 온전한 상태로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는 김현성과 얽히지 말자. 김현성이 신영민 선배에게 제대로 밟힌다고 해도, 혼자서 2학년 전체를 들이받는 미친 새끼랑 얽히는 건 좋지 않은 일이야. 씨발, 천하의 박진우가 어쩌다가 이런 신세가 됐냐.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부탁을 받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때였다.

툭툭.

누군가가 어깨를 건드렸다.

소각장을 내려다보느라고 무시하자, 그 누군가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듯이 또다시 어깨를 건드렸다.

“아, 씨발.”

고개를 거칠게 돌렸다.

김현성을 상대로는 공포를 느꼈지만, 그래도 왕처럼 군림했던 박진우가 다른 학생들의 시선까지 신경 쓰지는 않았다. 게다가 자신이 존재하는 곳은 1학년 복도. 선배들이 자신의 어깨를 건드릴 리는 만무하기에, 박진우는 본능적으로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짜악-!

고개가 돌아갔다.

화끈한 통증이 일었다.

비현실적인 상황에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박진우는 정말 의외의 인물을 마주했다.

“우리끼리도 지난 문제를 해결해야지?”

김시우.

그가 싸늘한 얼굴로 박진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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