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타협이 불가할 때는 (6)
뜨겁게 달아오른 학교와는 달리.
신영민은 텅 빈 교실에 홀로 남았다.
“……미친 새끼. 돌아가는 상황을 뻔히 알고도, 2학년 애들을 따라가다니.”
후배로부터 들었다.
김현성이 시작부터 격렬하게 반항하는 바람에, 배성호를 필두로 지금 당장 김현성을 짓밟으려 한다고. 문득 선봉장을 맡기겠다는 자신의 말에 감격하던 배성호의 얼굴이 떠올랐다.
“선배님!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김현성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천일에서 선배님의 눈 밖에 나면 어떻게 되는지를 반드시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 배성호가, 선배님의 뒤를 이을 ‘다음’이라는 사실 또한 증명해 내겠습니다.”
믿음직스러웠다.
괴물 고릴라라고 불리는 강력한 피지컬에, 2학년 전체를 움직이는 힘이라면 김현성 한 명을 감당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영민은 안도가 되질 않았다. 자신을 상대로도 물러섬이 없었던 김현성의 모습에, 왠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은 그때의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 날 들이받은 것은 놀랄 일이지만, 날 감당하지 못해서 비겁하게 나왔던 것은 사실이니까. 문제는 결과, 그 자체야. 어찌 되었든 간에 내가 김현성의 친구를 건드리자마자, 그는 내가 섣부르게 움직일 수 없는 명확한 결과를 남겼어. 절대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는 독기와 선생님들을 움직여, 내가 천일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어.’
현실이든, 링이든.
강하기만 한 애들이 무서운 게 아니다.
압도적인 폭력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결과를 만들어 내는 지독한 독기는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김현성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천일에서의 행동력을 완전히 억제해 놓고도, 따로 자신을 찾아와서 명진건설을 운운하며 협박까지 내뱉었던 놈이다. 애초에 그의 머릿속은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중간고사 만점이라는 결과에, 안일하게 다가올 위험을 대비하지 않고 있었을까.
절대 아닐 것이다.
배성호와 2학년 전체를 동원한다고 한들, 자신을 상대하려는 놈이 이대로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단 한 번의 격돌.
본능이 주는 확신이었다.
미리 실패를 받아들였기에, 신영민은 갑작스러운 친구의 보고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영민아! 큰일 났어! 배성호와 김현성이 일대일로 붙었는데, 배성호가 완전히 털려 버렸어!”
“그래?”
예상대로였다.
신영민은 창밖을 바라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김현성에게 당한 애들이 몇 명인데?”
“어……. 1학년 세 명에 2학년 여섯 명이니까, 총 아홉 명이 김현성 한 명에게 당했어.”
“그 정도면 충분하겠네.”
친구를 바라보았다.
당혹으로 얼룩진 그의 얼굴에, 신영민은 묘한 안도감을 주는 미소를 보였다.
“계획대로 진행해. 아무리 교장과 김영철이 쓰레기라고 해도, 천일은 엄연히 범법 행위를 방조할 수 없는 학교야. 천일의 학생 아홉 명이나 나가떨어진 사건이면 그들도 어찌할 수 없겠지.”
한발 물러났다.
강력한 폭력이 아닌.
일단 김현성의 배경부터 무너트릴 것이다.
* * *
계획은 단계적이었다.
김현성이 2학년 선배들에게 당했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지만, 배성호의 패배는 다음 단계를 부추겼다.
천일의 교무실.
일단의 학생들이, 다급한 얼굴로 소리쳤다.
“선생님! 선생님! 지금 밖에서 싸움이 났어요!”
“제가 똑똑히 봤다니깐요. 아무도 현성이를 건드리지 않았는데, 갑자기 친구들을 때리더니 2학년 선배들에게도 시비를 걸고 소각장으로 갔어요. 이대로 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굴다리 밑.
그때의 계획이 진행되었다.
신영민이 직접 나서는 것이 아니라, 김현성이 폭력을 사용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물고 늘어졌다.
지난 징계위원회.
박민철 패거리의 퇴학으로 오대환과 김영철이 김현성의 뒤를 봐준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모든 일을 커버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일은 증인만 수백 명이다. 수많은 학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용한 폭력은, 제아무리 배경이 좋을지라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 벌어진 일을 선생들에게 말해. 1학년 애들이 시비를 건 것도, 2학년 애들이 시비를 건 것도 아니고 김현성이 일방적으로 폭력을 사용했다고. 우리가 입을 맞춘다면 ‘정당방위’를 운운하는 건 쉽지 않겠지. 뭐, 김현성의 결백함이 인정된다고 할지라도 상관없어. 오늘 하루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오늘과 같은 일이 쌓여 나간다면 결국에 감당하지 못할 테니까.”
신영민의 명령이었다.
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1학년 후배가 터질 듯이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쳤다.
“진짜 이러다 큰일 난다니까요. 조금 전에 확인하고 왔는데, 김현성이 미친놈처럼 2학년 선배들을 패고 있었어요. 빨리 가지 않으면, 진짜 지난 사건처럼 몇 명이나 응급실에 실려 갈지 몰라요!”
완벽했다.
이 정도로 불을 붙였다면, 오대환의 눈치를 보는 선생들도 무거운 엉덩이를 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강요한다면, 김현성으로서는 언젠가 심판의 무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정당방위라는 변명이 먹히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완벽한 핑계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머릿속으로 기대했던 여러 반응과는 다르게, 1학년 후배는 전혀 다른 상황을 맞닥트렸다.
탁!
1학년 8반 담임.
박인환이 신경질적으로 펜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1학년 후배를 바라보더니 사납게 소리쳤다.
“야 이 새끼들아. 내가 너희의 속셈을 모를 줄 알아? 소각장에 아무 일도 없으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이만 들어가.”
그것으로 끝이었다.
진실의 확인?
최소한의 노력?
그딴 것도 없었다.
박인환은 그렇게 소리치더니,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이 본인의 업무를 이어 나갔다.
* * *
며칠 전.
김영철은 선생들을 불러모았다.
영문을 몰라 하는 선생들의 표정에, 김영철은 다소 굳은 얼굴로 말했다.
“다들 골든 서클이라고 아십니까?”
“……골든 서클이요?”
“그게 이번 자리와 연관이 있습니까?”
그 누구도.
골든 서클에 대해 알지 못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골든 서클이 지방의 교사들이 알 만한 집단이었다면, 김현성이 경험한 미래보다 훨씬 빠르게 정체가 발각되었을 것이다. 김영철의 발언에 선생들로서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학교의 어떤 중대사도 아니고, 처음 들어 보는 특정 집단을 언급하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대한민국에 골든 서클이라는 집단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보수를 받고 학생들을 밑바닥으로 추락시키는 극악무도한 집단이며, 나름대로 알아본 결과 신빙성이 있는 사실임을 확인했습니다. 다들 많이 당황스럽겠지요. 처음 들어 보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무관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박민철 패거리의 사건이 대표적인 골든 서클의 작품입니다.”
“그게 무슨…….”
“의도적으로 김현성 학생을 괴롭혔다는 의미입니까?”
“맞습니다.”
순간.
선생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반복되는 삶이 곧 행복인 선생들로서는, 김영철의 발언이 엄청난 파란을 몰고 오리라는 것을 알았다.
김영철이 말했다.
“다들 머릿속이 복잡할 겁니다. 골든 서클과 연관이 있느냐에 따라, 어쩌면 교사 인생이 단번에 끝날지도 모르니까요.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책임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박민철, 조용택, 정민호, 강창석뿐만 아니라 배성호, 신영민 등등. 이미 골든 서클과 연관되어 있는 학생만 수십 명입니다. 만약 이번 문제가 표면 위로 떠오른다면, 단순히 특정 몇몇 선생이 아니라 천일 전체가 날아갈지도 모릅니다.”
분위기를 몰았다.
천일 전체가.
감당해야 할 문제라고.
진짜 무관한 사람이 존재할지라도, 김영철의 묘한 어조는 모두에게 똑같은 책임감을 부여했다.
“이 자리를 빌려 여러분들에게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앞으로 벌어지는 일에 동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라도 골든 서클의 존재가 드러난다고 할지라도, 여러분들은 끝까지 발뺌하셔도 됩니다. 단, 지금부터 무슨 일이 벌어지든 방관하십시오. 괜히 정의로운 선생님인 척 개입했다가 ‘골든 서클’의 일에 개입했다는 사례를 남기지 마시고, 늘 그랬듯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십시오.”
수많은 시선.
수많은 감정이 느껴졌다.
김영철은 안다.
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제각기 다를지라도, 천일의 교사들은 근본적으로 비슷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것은 바로 회피다.
먼 미래에 김현성의 사건이 묻혀 버렸던 것처럼, 천일을 명문으로 만들려는 오대환의 부정부패에도 묵묵하게 교사직을 지켜 왔던 사람들은 절대 정의롭지 못하다. 모두가 김영철만큼의 쓰레기라는 의미는 아니나, 정도의 차이가 다를 뿐 책임을 온전히 감당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죄책감을 덜어 주었다.
동조하라는 것이 아니라 방관하라고.
죄의 무게를 같이 짊어 달라는 강요가 아니라, 시선을 피해 현실을 방관해 달라는 정도의 부탁.
딱, 그 정도를 말했다.
한 선생이 나섰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그건 교사로서…….”
“예, 예. 압니다. 그런데 이 사실 하나만큼은 명심하십시오. 골든 서클의 목표는 김현성이고, 그를 괴롭히는 모든 행태에 가담하는 순간 진실과는 다르게 어떻게 비추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정의감에 학교 폭력을 지켜보지 못했던 선택들이, 훗날 골든 서클에 가담한 쓰레기처럼 보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은 대산입니다. 오대환 교장 선생님조차 방관하겠다고 말한 이번 일에, 혹 끝까지 반발하는 분이 계신다면 대산에서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적절한 협박을 섞었다.
그나마 정의감이 있어서 나섰던 선생님조차도, 그때는 입을 다물고 애써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판이 만들어졌다.
다들 시선을 피했다.
죄책감을 감당하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에, 김영철은 웃음을 보였다.
“다들 심각하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건 차라리 좋은 일입니다. 애초에 쓰레기 같은 새끼들이 학교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제가 말하는 ‘앞으로의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우리는 피해 사실을 방관하는 것이 아닌, 가해자의 편을 들어 주지 않을 뿐입니다.”
그날의 대화.
그것은 신영민이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 * *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후배들을 아무리 보내도, 선생 중 그 누구도 폭력이 일어나는 소각장으로 가려고 하지 않았다.
‘뭔가 잘못되었어.’
신영민이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한두 명이면 이해했을 것이다.
그런데 박인환을 필두로 모두가 현실을 외면하는 상황에, 신영민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쓰레기 같은 새끼들.”
확실했다.
선생들의 방관.
그들은 방관을 택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가 등이 터지지 않는 방법은, 애초에 고래들의 싸움에 개입하지 않는 것뿐이다.
‘지금 선생들은 김현성의 폭력을 목격했다는 알리바이 자체를 만들려고 하지 않고 있어. 피해자가 늘어나면 분명히 문제가 생기겠지만, 그 책임을 김현성이 아닌 다른 애들에게 떠넘기겠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혐오감이 일었다.
신영민도 본인이 깨끗하게 살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선생이라는 작자들이 이렇게까지 나온다는 사실을 믿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이곳은 학교이지 않은가. 오대환과 김영철은 그렇다 치더라도, 천일 전체가 동조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은 ‘어른들’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겼다.
분명한 사실은.
이대로라면 계획 실패였다.
정말 수십 명을 징계위원회에 내보내면서까지, 이번 계획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배성호 같은 애들이야 충성심에 끝까지 버티겠지만, 한두 명이 정말로 징계를 받는다면 그때부터는 흔들리는 애들이 생겨나겠지. 결국에 그들에게 콩고물 하나 떨어지지 않는 일일 테니까. 나를 위해 본인의 인생을 걸어 줄 애들은, 배성호와 같은 몇몇 선두주자들밖에 없어.’
결국.
방법이 없었다.
선생들이 의도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면, 신영민은 가장 확실한 방법을 동원해야만 했다.
‘감당하지 못할 폭력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
끼익.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현성.
그 개새끼를 찢어발기기 위해, 지금부터는 자신이 직접 나설 차례였다.
* * *
신영민이 교실을 나섰다.
소각장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는데, 갑작스럽게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려 댔다.
받지 않으려고 했다.
액정에 떠오른 이름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꼰대]
멈칫.
걸음을 멈추었다.
왜일까.
꼰대라고 저장된 이름.
그것이 아버지를 의미한다는 사실에, 신영민은 순간 온몸에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