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40화 (40/130)

9. 수확의 계절 (2)

며칠 전.

김현성은 3학년 교실을 찾아갔다.

보통은 1학년이 3학년 교실을 올라왔다고 한소리를 했겠지만, 그 누구도 김현성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신영민과의 싸움은 천일 전체가 지켜본 공개적인 사건이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신영민을 쓰러트린 괴물인데, 그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선배들이 의문스러운 눈빛을 보였다.

시선이 집중되는 상황에, 김현성은 교탁 앞에 서더니 용건을 말했다.

“선배님들도 아시다시피 며칠 전에 소각장에서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신영민이 절 괴롭히려고 일으킨 사건이었고, 그 대가로 신영민은 지금 병실에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신영민을 싫어합니다. 아니, 혐오합니다. 저는 신영민에게 그 어떠한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그의 악의로 인해 숱한 싸움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만약 제가 조금이라도 나약했다면, 이 자리에 이렇게 멀쩡한 얼굴로 존재하지 못했을 겁니다.”

점잖은 모습이었다.

신영민을 상대할 때는 악귀와도 같은 모습을 보였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다.

다만.

김현성의 발언에는 묘한 힘이 있었다.

이것은 예의일 뿐, 반드시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 눈빛에서 드러났다.

“저는 지금부터 신영민에게 충분한 벌을 주고자 합니다. 단순히 이번 사건만이 아니라, 그동안 그가 저지른 악행에는 그만한 대가가 필요합니다. 물론 제 말에 동조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건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고, 제가 교실을 나선 순간부터 잊어버리셔도 무방합니다.”

분위기가 술렁였다.

선배들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앞으로 한 달간. 신영민을 마음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뒤통수를 때리고, 그의 물건을 찢고, 얼굴에 침을 뱉고. 뭘 하더라도 신영민은 절대 반항하지 않을 겁니다. 혹시라도 그가 반항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제가 이 교실을 찾아와서 반드시 대가를 받아 내겠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선택이라고 말씀드린 것처럼, 아무도 제 제안에 동조해 주지 않는다면 신영민은 졸업하는 그날까지 무사히 학교에 다니게 될 겁니다. 아주 조용히, 천일에 없는 사람인 것처럼요.”

순간.

한명훈과 시선이 마주쳤다.

당혹스러움과 열망이 뒤섞인 그 눈빛에, 김현성은 그를 향해 명확하게 말했다.

“신영민에 대한 감정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평생을 그의 존재를 되새기며 고통스러워할 것 같다면. 명심하십시오. 세상에 그 누구도 절대로 선배님들을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 * *

주르륵.

우유가 흘러내렸다.

신영민의 머리를 적시는 새하얀 물줄기에, 한명훈의 눈동자에 두려움과 묘한 흥분이 뒤섞였다.

“영민아. 현성이 말로는 이래도 된다고 하던데. 네 생각은 어때?”

지난 3년.

한명훈의 이야기는 참으로 진부했다.

골든 서클과 같은 특별한 계기가 아니라, 신영민과 눈을 잘못 마주쳤다는 이유만으로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사실 매일 같은 괴롭힘은 아니었다. 평소에는 일상적인 학교생활을 보내다가, 신영민과 같은 공간에 있을 때면 어김없이 다가와서는 자신의 인격을 툭툭 건드렸다.

뺨을 때리고.

부모님을 욕하고.

어떨 때는 천일 종합 격투기 시합이랍시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친구와 싸움을 붙이기도 했다.

일상적인 괴롭힘이었다.

학교에 나와 따분함을 느낀 신영민의 선택이었고, 그렇게 차곡차곡 한명훈의 가슴속에는 신영민에 대한 악의가 쌓여 갔다. 어쩌면 신영민은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자신과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보니, 졸업하고 얼마 뒤에 ‘한명훈’이라는 존재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억울했다.

처음 김현성의 제안을 들었을 때, 한명훈은 아무리 신영민을 못마땅하게 생각해도 절대 실행으로 옮길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생각을 거듭할수록 속에서 뜨거운 감정이 치밀었다. 평생을 되새기며 고통스러워할 것이라는 말, 그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는다는 말. 그것이 머릿속에 낙인처럼 남았다.

삶은 흐른다.

1학년이었던 자신이 3학년이 되었고, 이제 곧 졸업하면 더는 괴롭힘에 시달릴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해야 했다.

고통의 끝을 앞두고도, 시커멓게 멍든 가슴을 달래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

뚝.

뚝, 뚝.

바닥에 우유 방울이 떨어졌다.

신영민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은 심상치 않아 보였지만, 그는 숟가락을 움켜쥘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한명훈은 확신이 들었다.

‘현성이의 말이 맞았어. 신영민과 무슨 대화를 주고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신영민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해.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반항하지 못할 거라고. 내가 당했던 그 모습처럼.’

“야.”

“……왜?”

신영민이 고개를 들었다.

붉게 충혈된 눈빛에, 한명훈이 피식 웃었다.

“왜, X 같냐?”

짜악-!

뺨을 날렸다.

지켜보던 친구들이 입을 틀어막았다.

한명훈은 평소에 이런 친구가 아니었고, 천일에서 신영민을 이렇게 건드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비상식적인 일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친구들은 이 상황에 대한 의문보다, 한명훈과 비슷한 생각이 머릿속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김현성의 말이.

정말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명훈이 말했다.

“네가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내가 된장국을 참 좋아하거든? 그때도 오늘처럼 된장국이 나왔었어. 내 옆자리에 갑자기 앉은 네가, 된장국을 먹는 내 모습을 보고 어떻게 했는지 알아?”

몸을 숙였다.

얼굴을 고스란히 노출한 모습은, 신영민에게 언제 맞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카악, 퉤.”

된장국에 누런 침을 뱉었다.

된장국과 뒤섞이지 못하는 이물질에, 신영민은 정말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은 얼굴을 보였다.

전율이 일었다.

짜릿했다.

신영민의 무력함에, 한명훈이 신영민의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

“맛있게 먹어, 돼지 새끼야. 라고 네가 했어, 이 씨발련아.”

싱긋 웃었다.

왜일까.

한명훈은 이 상황에, 너무나도 기쁜 이 순간에 진심으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 * *

한명훈의 일.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김현성의 말이 정말 사실임이 증명되면서, 한명훈처럼 용기를 내는 친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빠악!

“똑바로 걸어, 이 새끼야.”

신영민이 복도를 걷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보자, 겨우 160cm밖에 되지 않는 왜소한 친구가 자신을 비웃고 있었다.

황당했다.

마음 같아서는 실실 웃는 얼굴을 찢어발기고 싶었지만, 이미 한명훈의 일을 참아 내지 않았던가.

“조심해.”

그렇게 말하고는.

걸음을 돌렸다.

평소 신영민답지 않은 모습이었고, 발 없는 말은 날개를 달고 순식간에 천일 전체로 퍼져 나갔다. 신영민을 건드려도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확신. 복도를 걷다가도 얻어맞는 일이 많아졌고, 짜증이 나서 책상에 엎드리고 있으면 누군가가 물건을 던져 자신을 맞혔다.

그리고 물건이 계속 없어졌다.

교과서나 체육복이 사라져 선생님에게 혼이 났고, 책가방에서 쓰레기들이 잔뜩 발견되기도 했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은 등교하자마자, 책상 위에 적힌 낙서를 발견했다.

-신영민 X밥새끼.

-이제까지 센 척하더니 잘됐네.

-병신아 그냥 뒈져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꼴좋네.

일련의 상황.

익숙했다.

본인이 했던 행동들이었다.

친구들을 상대로 장난이랍시고 뒤통수를 때리고, 엎드려 있는 친구들에게 물건을 던지고, 책가방에 쓰레기를 채워 넣고. 왕따인 친구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 주자면서 책상에 롤링 페이퍼를 남겨 두기도 했었다.

업보였다.

본인도 알았다.

자신이 한 잘못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건 그거고, 신영민은 자신에게 똑같이 복수한다는 사실 자체에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

‘비겁한 새끼들. 차라리 그때 대놓고 말을 하든가, 김현성이 판을 깔아 줬다고 이딴 유치한 짓을 하다니. 씨발, 그냥 엎어 버릴까? 경매고 뭐고 다 뒤엎어 버리고 전부 다 죽여 버릴까?’

악의가 들끓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현실의 세계를 경험한 순간부터, 신영민은 ‘선’을 넘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고 선생님에게 이를 수도 없었다.

그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방법인지를 가해자였던 시절의 자신이 수도 없이 경험했고, 게다가 천일 고등학교는 그야말로 김현성의 세상이지 않은가. 오대환과 김영철이 노골적으로 김현성의 편을 들어 주는 상황에, 자신이 이 문제를 아무리 말한다고 한들 달라질 것은 없었다.

오히려 비웃음을 살 것이다.

김현성은 직접 괴롭히지 않았고, 다양한 친구들이 자신에게 복수하는 상황이지 않은가.

참았다.

역겨움을 삼켜 냈다.

“……그래, 버티자. 딱 한 달만 버티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정말 한순간이라는 생각이.

* * *

신영민과는 달리.

김현성은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

본인을 대하는 친구들의 태도가 완전히 변했지만, 그건 김현성에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의뢰인은 대체 누굴까?’

신영민을 쓰러트리면.

실마리라도 얻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의뢰인에 대한 단서는 찾을 수 없었고, 브로커로 추정되는 사람은 연락이 완전히 끊겼다고 했다. 김현성으로서는 망망대해(茫茫大海)를 떠도는 기분이 들었다. 식물인간으로 살던 시절의 정보는 전부 굵직한 것들이다 보니, 세세한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내가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은 나와 비견할 만큼의 성적이라는 것과 골든 서클에 의뢰를 넣을 만한 배경을 갖추었다는 것. 그렇다면 몇 명이 남지 않지만, 그중 누구인지는 확신할 수 없어.’

교실을 훑었다.

전교 2등, 3등.

혹은 금수저들.

몇몇 후보군이 있지만, 순한 얼굴로 웃고 떠드는 그들의 모습에 누구라고 정확히 특정하지 못했다.

고창범에게 도움을 구하기는 했다.

문제는 시간이 필요한 일이고, 그동안 자신의 악의는 해소되지 못해 속을 완전히 헤집고 있었다.

‘차분하게 생각하자. 하루 이틀로 끝날 문제가 아니잖아.’

숨을 골랐다.

신선한 공기도 맡을 겸 창밖을 바라보자, 때마침 신영민의 모습이 보였다.

퍽!

빠악, 빠악!

일방적인 구타였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3학년 선배 몇 명이 신영민을 둘러싸고 일방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신영민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발길질을 허용했다. 얼굴이 터지고 머리가 엉망이 되었지만, 발끈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끝까지 반격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먼발치에 선생님들이 보였다.

아무리 거리가 있다지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거리였는데, 선생님들은 순간 방향을 틀어 버렸다.

“쓰레기 새끼들.”

천일 모두.

한통속이었다.

신영민이 김현성에게 제대로 찍혔다는 소문이 돌면서부터, 선생님들조차도 최대한 연관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원래 방관은 한 번이 어려운 법이다. 이미 소각장 사건에서 김현성과 관련된 일을 방관하기로 마음먹자, 그 이후에 연속해서 딸려 오는 일들에는 그리 망설임이 없었다.

막말로 신영민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배경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신영민이 싸움을 잘한다는 사실이 선생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고.

돌봐 줄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쓰레기였으니,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는다고 위안으로 삼았다.

‘슬슬 무르익은 것 같은데.’

구타가 끝났다.

친구들이 물러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신영민의 모습에, 김현성이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보냈다.

[내가 지금부터 새로운 제안을 하나 할까 하는데. 어떻게 할래? 네가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까지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거야. 더는 널 괴롭히지도 않을 거고.]

슥.

핸드폰을 내렸다.

창밖에서 가만히 신영민을 바라보고 있는데, 핸드폰을 확인한 그가 걸음을 멈추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할게. 무조건 할게. 뭐든 시켜만 주면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게.]

곧바로 답장이 도착했다.

김현성이 웃었다.

재밌었다.

자신의 이 행동이, 이러한 의도들이.

누군가에게는 유치하고 비열해 보일지라도, 충만하게 차오르는 감정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증명했다.

느긋하게 문자를 작성했다.

걸음 하나 떼지 못하고 가만히 핸드폰을 바라보던 신영민은, 이윽고 하나의 문자를 받았다.

[그럼 딱 하루 줄게. 지금부터 박민철, 정민호, 조용택, 강창석. 그 네 명의 행방을 찾아.]

10월.

수확의 계절이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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