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수확의 계절 (3)
대산은 그래도 광역시다.
넓은 땅덩어리에서 4명의 행방을 특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신영민의 인맥을 총동원하자 하루도 지나지 않아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박민철 패거리가 고등학생이라는 점, 그리고 신영민이 대산 바닥에서 알아주는 존재라는 점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민철, 조용택, 강창석.
세 명에 대한 정보는 확실하게 얻었다.
문제는 박민철 패거리에서 실질적인 배경을 맡았던, 정민호의 행방은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천일에서 퇴학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민호는 대산 바닥을 떠나 버렸어. 들리는 말로는 대산에서의 재입학이 불가능하니, 신분을 세탁하고 다른 지역으로 갔다는 것 같은데. 씨발, 그러면 내가 찾을 방법이 없잖아. 대산이라면 어떻게든 비벼 볼 만한데, 다른 지역은 답이 없어.’
막막했다.
사실상 미션 실패였다.
그래서 세 명의 정보를 첨부하며 구구절절한 문자를 보냈고, 의외로 김현성은 정민호의 문제를 트집 잡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온 답장에도 신영민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단순히 세 명의 정보를 알아 왔다고 끝내는 게 아니라, 정말 업보를 청산할 수 있는 새로운 임무가 부여되었기 때문이었다.
으슥한 골목길.
어둠이 내려앉은 공간에, 신영민은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
“후우.”
그의 발밑에는 꽁초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가 이곳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얼마나 깊은 고민을 했는지를 꽁초의 개수가 증명했다.
‘김현성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맞을까? 그 녀석 말대로 했다간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는 또 다른 문제를 경험하게 될 거야. 결국, 답은 없어. 최악이든, 차악(次惡)이든. 어느 것 하나 내게 좋지 않지만, 나는 내가 감당할 만한 미래를 선택해야만 해.’
툭.
꽁초를 바닥에 던졌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 모습에, 또다시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머리를 니코틴에 절여 버리고 싶었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하나둘씩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그의 간은 예전과 같지 않게 잔뜩 쪼그라들었다.
확실한 건.
김현성에게 대항할 자신은 없다는 것이었다.
배경으로는 이미 압살을 당한 상태고, 폭력으로도 어떻게 해 볼 상대가 아니었다. 다시 붙는다면 지난번처럼 무력하게 패배하지는 않겠지만, 김현성은 어찌 되었든 연속된 싸움 끝에 자신을 쓰러트린 저력을 보여 주었다. 그런 괴물과 싸우는 일은 자신의 무덤을 파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외통수.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담배 연기가 다 타들어 가지도 않았는데, 신영민은 신경질적으로 꽁초를 버리며 후드를 눌러썼다.
“그래, 씨발. 이판사판이야.”
골목길 맞은편.
그곳에 있는 편의점을 향해,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 * *
박민철.
그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처음에는 최대한 재입학할 수 있는 학교를 찾았지만, 아무래도 이번 사건이 심각한 폭력 사건이다 보니 대산에서 박민철을 받아 주는 학교는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의 부당함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퇴학을 당했다고 해도 받아 주는 학교만 존재한다면 다음 해에는 재입학이 가능하다. 문제는 신분을 세탁할 돈이 있는 정민호와는 다르게, 나머지 세 명은 그만한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집에는 검정고시라도 통과해 보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솔직히 말해서 전혀 자신이 없었다.
‘갑자기 무슨 공부야. 그냥 고등학교 졸업장은 포기하고, 돈이라도 벌어서 새로운 삶을 살자.’
집을 나왔다.
부모의 동의 없이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불행 중 다행히도 대산은 노동법을 그렇게 신경 쓰는 지역이 아니었다. 서울과는 달랐다. 최저 시급과 명확한 기준이 존재한다지만, 팍팍한 지역 경제에 서울처럼 임금을 지불하면 답이 없다는 게 대산의 입장이었다.
덕분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물론 최저 시급도 받지 못하는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였지만, 박민철에게는 충분히 감사한 일자리였다.
“……지루하네.”
한숨이 나왔다.
야간 일도 하루 이틀이다.
처음에야 친구들을 불러들이면서 웃고 떠들었지만, 각자 등교할 학교가 존재하는 친구들이 매일같이 박민철과 놀아 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친구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대산의 밤은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조용했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각도 많아졌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머리가 아팠다.
중졸.
정확히는 고등학교 퇴학.
이따위 이력을 들고, 배운 것 하나 없는 자신이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학교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자신에게 일반적인 미래가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냥 이렇게 살다가 학교를 졸업하고, 돈만 내면 다 입학할 수 있는 전문대에 들어가서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고. 그러다 자연스럽게 직장에 취직하지 않을까. 그렇게 대책 없이 살아가던 17살의 인생이, 퇴학이라는 변곡점을 맞이한 순간부터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딸랑-!
편의점 문이 열렸다.
박민철은 들어오는 손님을 퉁명스럽게 바라보았다.
손님이 오갈 때마다 인사를 할 만큼 살갑지 않기에, 빤한 눈빛으로 손님의 행색을 살폈다.
‘뭐야? 범죄자야?’
특이한 손님이었다.
얼굴을 가리려는 듯이 후드를 푹 눌러썼고, 슬쩍 확인해 본 얼굴은 후드와 똑같은 검은색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였다. 특이한 점은 한쪽 팔이 부자연스럽다는 것 정도? 소매 안으로 팔을 감싸는 무언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깁스를 착용한 것 같았다.
저벅저벅.
손님이 카운터로 다가왔다.
보통 이러면 대부분 담배 손님이었다.
얼른 보내고 다시 미래를 고민해 볼 생각이었는데, 손님의 손이 갑자기 카운터 안쪽으로 훅 들어왔다.
콰악.
“……?!”
멱살이 잡혔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박민철의 몸이 카운터 바깥으로 딸려 오더니, 계산대에 걸친 상태로 손님의 주먹이 얼굴을 강타했다.
빠악!
빠악, 빠악!
엄청난 고통이 작렬했다.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손님의 주먹이 생각 이상으로 강해서 반항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진짜 미친 새끼였다. 밤중에는 이런 미친 손님들이 존재한다고는 들었는데, 그래도 건장한 남성인 자신을 상대로 이렇게 묻지마 폭력을 행사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빠악-!
피가 튀었다.
얼굴이 뭉개지고, 코가 완전히 주저앉았다.
뭐라도 해야 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박민철이 이를 악물며 카운터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어?’
눈을 부릅떴다.
눈동자에 선명하게 박힌 이미지.
후드 아래.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 자신을 사납게 바라보고 있었다.
* * *
묻지마 폭력.
그건 박민철만 경험한 일이 아니었다.
박민철, 조용택, 강창석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는데, 셋의 몰골이 하나같이 정상이 아니었다.
레퍼토리는 비슷했다.
조용택은 똑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손님에게 얻어맞았고, 강창석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뒤통수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반항할 새도 없었다. 박민철처럼 상대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정말 정신없이 맞다 보니 범인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원래라면 곧바로 신고할 생각이었다.
반드시 처벌하겠다고 이를 바득바득 갈았는데, 박민철의 전화를 받고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조용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이야? 우리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 신영민 선배인 거.”
신영민.
범인의 정체였다.
강창석도 겁을 먹은 눈빛으로 바라보자, 박민철이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해. 내가 신영민 선배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잖아. 후드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착용하면서까지 정체를 숨기려고 노력했지만, 그건 분명히 신영민 선배였어. 그리고 듣기로는 이번에 김현성과 한바탕 싸우면서 팔이 부러졌다고 했는데, 그 범인도 똑같은 팔에 깁스를 착용했고.”
“씨발.”
“아니, 왜? 왜 우리를 공격한 건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들은 신영민에게 잘못한 게 없다.
그가 내린 임무를 성공시키지는 못했지만, 그건 김현성에게 패배한 신영민도 똑같지 않은가.
분노가 자신들에게 미칠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박민철이 말했다.
“이유가 뭐든 간에 괜히 경찰에 신고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너희도 잘 알잖아. 신영민 선배는 뒤가 없는 사람인 거. 그런 사람을 자극했다간, 팔다리 하나 부러지는 건 일도 아니야.”
“그렇긴 하지.”
“……그런데 대체 김현성은 그 괴물을 어떻게 이긴 거지? 분명히 그 정도로 강하진 않았는데.”
신영민의 패배.
아직도 충격적이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박민철 패거리는 정색하면서 장난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리고 진실로 드러나는 순간.
엄청난 후회가 밀려들었다.
김현성이 이 정도로 강한 존재인 줄 알았다면, 천일을 움직일 만큼의 배경을 갖추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절대 건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걸 만큼 그들은 무모하지 않았다.
신영민과 김현성.
둘의 연관 관계는 생각할 수 없었다.
김현성이 신영민을 협박했고, 그로 인해 꼭두각시처럼 움직인다는 사실은 진실을 모른다면 예상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신영민이라는 사람이 각인한 공포였다. 일방적으로 폭력을 당하면서 얼굴이 엉망이었지만, 뼛속까지 각인된 공포는 반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박민철이 재차 강조했다.
“혹시 또 찾아와도 그냥 모른 척해. 때리면 맞고, 절대 신영민 선배를 알아보았다는 사실을 티 내지 마.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신영민 선배의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상황이 무사히 지나갈 때까지. 우리로서는 참는 수밖에 없어.”
그때까지는 믿었다.
지금 벌어진 일이.
언젠가는 지나갈, 한순간의 바람 같은 것이라고.
* * *
셋의 다짐은 오래갈 수 없었다.
한참을 대화하고 같이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불이 깜빡거리는 가로등 아래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우뚝.
“……씨발.”
“X 된 거 같은데.”
걸음을 멈추었다.
아니, 골목길을 지날 수가 없었다.
푹 눌러쓴 후드와 건장한 체격.
불이 깜빡거리면서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건 악마 선배라 불리던 신영민이 분명했다.
분위기가 이상했기 때문일까.
신영민이 후드를 벗으며 얼굴을 드러냈다.
“오랜만이네.”
씰룩, 웃었다.
순간 박민철 패거리는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대놓고 드러냈다는 사실이, 도저히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박민철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이, 이제 끝난 거 아니었어요? 한번 때렸으면 됐지,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나인 거 알았나 보네.”
“모를 수가 없잖아요.”
신영민이 손목을 어루만졌다.
한쪽 팔은 멀쩡했지만, 깁스를 착용한 팔은 아직 정상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했다.
크게 고통이 밀려드는 정도만 아니라면,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충분히 이행할 자신이 있었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은데, 김현성에게 약점을 제대로 잡혔거든. 지금부터 딱 한 달. 너희에게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지옥을 보여 준다면 나만큼은 여기서 끝내 주겠다고 했어.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걸음을 옮겼다.
다가가는 만큼 뒷걸음질을 치는 후배들의 모습에, 신영민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미안한데, 너희가 나 대신 지옥에 떨어져 줘.”
피해자일 바에 가해자로.
신영민은 익숙한 생존 방식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