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42화 (42/130)

9. 수확의 계절 (4)

깜빡.

가로등의 불이 나갔다.

겨우 몇 초의 시간이 지나 세상이 다시 밝아졌을 때, 박민철은 코앞에 다가온 신영민을 발견했다.

빠악-!

“크악.”

얼굴이 찌그러졌다.

강력한 주먹에 박민철이 그대로 나가떨어졌고, 조용택과 강창석은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멍한 눈빛을 보였다. 김현성의 명령이라니. 악귀 같은 그 녀석에게서 이제는 해방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신영민을 보내면서까지 자신들을 괴롭힐 줄은 몰랐다.

콱.

우악스러운 손길이 조용택의 머리칼을 낚아챘다.

반항할 수 없었다.

조용택의 왜소한 체격이 무력하게 딸려 왔고, 신영민은 무릎으로 상대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빠각!

섬뜩한 소리였다.

조용택의 머리가 젖혀지며 피를 흩뿌렸다.

강창석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아직도 머릿속으로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더는 당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 이익!”

파앗.

그대로 몸을 날렸다.

신영민을 들이받으며 넘어트릴 속셈이었는데, 강창석의 의도와는 다르게 거대한 전봇대에 부딪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뭐 해?”

콰직!

팔꿈치로 등을 내리찍었다.

강창석이 신음을 흘리며 몸을 웅크리자, 신영민은 그의 얼굴을 들더니 주먹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싸움이었다. 강창석은 그래도 박민철 패거리 중 제일이며, 1학년을 대표하는 싸움꾼이라고 평가받는데도 신영민을 상대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 불과했다.

천일의 왕.

신영민의 존재감이 부풀었다.

김현성에게 패배했다지만, 그가 왕좌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정말로 강했기 때문이었다.

빠악-!

얼굴을 날려 버렸다.

강창석이 스르르 무너져 내리는 모습에, 신영민은 이대로 끝내지 않겠다는 듯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조용택의 머리를 발로 까 버렸다. 그로서는 확실한 결과물이 필요했다. 오늘의 일이 김현성의 귀에 들어갔을 때, 박민철 패거리에게 정말 지옥을 보여 주었다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1학년 개새끼들이 문제야. 어떤 새끼가 의뢰인인지는 모르겠지만, 김현성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의뢰하는 바람에 나만 피를 봤잖아. 너희만 아니었다면 난 문제가 없었다고!’

빠악!

빠악, 빠악!

분노가 치밀었다.

골든 서클의 의뢰.

만약 그들이 처음부터 김현성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부여했다면, 자신은 절대 그 의뢰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정민호를 아껴 주었던 것처럼, 김현성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이게 다.

의뢰인 때문이었다.

멍청하고 주제도 모르는 미꾸라지 한 명 때문에, 잘 살던 자신의 인생이 막판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폭력이 폭력을 부른다고 했던가.

신영민의 손속이 더욱 잔인해졌다.

의뢰인에 대한 분노가 박민철 패거리에게까지 번졌고, 더는 저항하지 못하는 데도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강창석은 나름대로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종합 격투기를 수련한 신영민의 탄탄한 몸은 그의 유도 기술에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분노만 자극해 더한 고통을 받았다.

콰득.

“끄르륵.”

얼굴을 짓밟았다.

본래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얻어맞은 강창석이, 결국에 거품을 물고 정신을 잃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도.

신영민은 강창석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뺨을 재차 날리려는 그때.

푹.

신영민이 눈을 부릅떴다.

옆구리에서 화끈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너 이게 무슨……?”

천천히 돌아가는 고개.

신영민의 시야에, 칼을 쥐고 있는 박민철의 모습이 보였다.

* * *

툭.

쨍그랑.

박민철이 칼을 놓쳤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그는, 피로 물든 손을 덜덜 떨며 소리쳤다.

“그, 그러게 씨발 적당히 했어야지. 애초에 네가 시킨 일이잖아. 우리가 원해서 김현성을 괴롭혔던 게 아니라, 네가 시킨 일을 하다가 우리도 X 된 거잖아. 그런데 왜 우리한테 지랄이야!”

칼의 존재.

만일을 위해서였다.

엉망으로 얻어맞은 뒤에, 박민철은 뭐에 홀린 사람처럼 집에 있는 칼 한 자루를 챙기고 다녔다. 신영민이 적당히 만만한 존재였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뼛속까지 각인된 공포를 이겨 내기 위해서는, 최악의 상황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였다.

신영민의 살기 어린 눈빛을 확인하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옆구리에 칼을 쑤셔 버렸다.

“……미친 새끼.”

신영민이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숨이 가빠지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종합 격투기를 수련하며 고통에 익숙하다지만, 쇠붙이가 살갗을 파고드는 감각은 전혀 달랐다.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상처 부위를 손으로 감싸자, 흥건하게 젖어 드는 느낌이 들었다.

“이, 이제야 알겠네. 김현성이 뭐를 의도했는지.”

신영민의 얼굴도 창백하게 질려 갔다.

정말 황당하게도.

박민철을 올려다보는 이 상황에, 신영민의 머릿속에는 전혀 다른 생각이 들었다.

“김현성은 우리를 공멸시키려는 의도였던 거야.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게 해서, 스스로의 인생을 망칠 수 있도록. 끄으……. 큭, 크크큭. 우리는 어차피 X 될 인생인데, 우리 중에 누가 더 X 될 건지를 결정하는 문제였다고.”

“그게 무슨 개소리야!”

“병신.”

피식, 웃었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영화를 보면 칼을 맞고도 이리저리 잘만 움직였던 것 같은데, 겨우 조그마한 구멍 하나로 영혼이 모조리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흐릿해지는 시야에 박민철의 얼굴이 보였다. 박민철은 공포와 충격으로 얼룩진 표정을 보였고, 조용택과 강창석은 정신을 잃은 상태로 일어나질 못했다.

그 너머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애초에 서로 치고받을 때부터, 이쪽 상황을 확인한 사람들이 먼발치에서 경찰에 신고한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목격자가 있어서.

신영민은 쥐어짜듯, 마지막으로 진심을 내뱉었다.

“민철아, 고맙다. 날 찔러 줘서.”

그것으로 끝이었다.

신영민이 그대로 쓰러졌다.

차가운 바닥에 거칠게 쓰러진 그는, 멀리서 알록달록한 빛깔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정신을 잃어 갔다.

* * *

다음 날.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신영민이 박민철 패거리와 싸우다가 칼을 맞았다는 소식에,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에 대해 떠들었다.

“와, 실화야?”

“진짜라니까. 아는 삼촌이 대산 경찰서에서 근무하는데, 밤중에 신고받고 나갔다가 난리가 났었다니까. 처음에는 그냥 애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줄 알았는데,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까 신영민이 칼 맞고 쓰러져 있었다고! 그리고 목격자 증언에 의하면, 범인은 바로 박민철이었고.”

“아니, 박민철이 양아치인 줄은 알았는데 칼을 쓸 정도였다고? 개무서운 새끼였네.”

박민철 패거리.

신영민.

둘 다 악명(惡名) 높은 인물들이었다.

그래도 그들의 악행에는 선이라는 게 존재했는데, 정말 범죄를 저질렀다는 소식에 학생들은 놀란 반응을 감추지 못했다. 만약 그 분쟁의 자리에 본인들이 있었다면. 학생의 신분으로 칼을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그런 양아치들과 보냈던 시간이 떠올라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로부터 며칠.

천일은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오대환은 신영민이 지난 폭력 사건으로 애초에 퇴학이 결정된, 천일과는 완전히 무관한 학생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박민철 패거리야 이미 퇴학시켜 버린 학생. 천일은 진심으로 학생들을 선도하길 바란다며, 이번 사건이 천일의 방향성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리고 당연히.

박민철 패거리와 신영민은 형사 처벌이 이루어졌다.

신영민은 CCTV를 통해 먼저 폭력을 사용한 증거가 발견되었고, 고의적으로 박민철 패거리를 폭행한 사실이 문제 되었다. 그렇다 한들 그것이 칼을 사용한 박민철의 죄에 면죄부를 부여한 것은 아니었다. 박민철뿐만 아니라 강창석, 조용택 또한 같이 묶여서 심판대에 올랐고, 그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소년원행이 확정되었다.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단순히 퇴학으로 끝나는 게 아닌, 소년원에 갔다는 명확한 기록은 회생 불가의 상처를 남겼다.

사실 깔끔한 마무리는 아니었다.

형사들도 그렇고 천일의 학생들 또한, 신영민이 왜 박민철 패거리를 공격했느냐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신영민이 박민철 패거리를 그렇게까지 괴롭힐 이유가 있나? 어차피 불러서 때려도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을 애들이잖아.”

하지만 아무리 추궁해도.

새로운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박민철 패거리와 신영민은 목구멍 끝까지 ‘김현성’이라는 이름이 치밀었지만, 그들은 본인들이 겪은 일련의 상황에 두려움이 들었다. 혹시라도 괜히 건드렸다가 또 다른 재앙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차라리 죗값을 치르는 게, 본인들이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잠시 천일을 들썩였던 사건이었고, 언제나처럼 흘러가는 세월에 그 이름들은 기억 속에 잊혀 갔다.

전생의 한순간처럼.

식물인간이 되어 버린 김현성을 잊어버렸던, 그때 그 모습처럼.

* * *

한참 신영민 사건으로 떠들썩할 무렵.

김현성은 고창범의 전화를 받았다.

[꼬맹이가 말한 대로야. 정민호는 대산을 떠나 경기도로 이사 갔고, 내년에 일반 고등학교에 재입학하려고 준비하는 모양이야. 어떻게 해 줄까? 사실 그때 네가 부탁한 이후로 박민철 패거리 부모들 위주로 괴롭히고 있었는데, 네가 원한다면 당장 정민호도 같이 소년원에 보내 줄 수 있어.]

정민호.

확실히 있는 집 아들은 달랐다.

명진건설에서 대놓고 정민호의 집안을 공격하자, 정민호의 부모님은 재산을 빠르게 정리한 뒤에 이사를 택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지역 유지가 고향을 떠나는 것은 어려운 문제였지만, 정민호의 부모님은 명진건설의 눈 밖에 난 상태로는 대산에서 살 수 없다고 판단했다.

덕분에 정민호의 숨통이 트였다.

박민철 패거리처럼 살아가야 할 신세였는데, 빠르게 새로운 미래를 그려 나가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곧바로 복수하고 싶었다.

새로운 삶을 누릴 시간도 주지 않고, 정민호에게 앞으로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어쩌게?]

“그냥 시간을 좀 두고 싶어요. 정민호가 저라는 존재를 잊어버리도록,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삶이 허락된다고 믿을 수 있도록. 시간을 줄 생각이에요. 그래야, 절망도 더 커질 테니까요. 그것 말고 박민철 패거리와 신영민 일만 좀 부탁드릴게요. 둘 다 소년원의 형량을 모두 채우고 나면, 그때는 나이가 찼을 테니 곧바로 교도소로 보내 주세요. 그 녀석들은 사회에서의 단 하루도 허락해 주고 싶지 않거든요.”

[……넌 진짜. 가만 보면 나보다 무서운 새끼라니까? 절대 너랑은 척지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창범의 목소리가 부르르 떨렸다.

진심으로 김현성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처음에는 일반 고등학생인 줄 알았는데, 그가 분출하는 악의는 절대 일반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나는 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야? 네 말을 듣고 말단으로 생활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회장 자리는커녕 조금도 긍정적인 소식이 없잖아. 현성아. 내가 회장 자리에 앉고 싶은 건 맞는데, 그렇다고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갈 만큼 능력이 있고 인내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야. 정공법을 택할 거면, 애초에 망나니처럼 살지도 않았겠지.]

“조금만 참으세요.”

[하지만…….]

“고창범 씨.”

말을 툭 끊었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김현성은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우리의 관계는 거래로 이루어졌어요. 저는 고창범 씨에게 대가를 받아 내는 대신, 반드시 고창범 씨를 회장의 자리에 올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저를 믿으세요. 지금 하는 것들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에요.”

[……알겠어. 믿어, 믿는다고.]

고창범은 자존심이 강하다.

평소라면 김현성의 태도에 화를 냈겠지만, 그는 어느 순간 김현성이라는 인간을 진심으로 인정했다.

고창석의 사건뿐만 아니라.

김현성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파격적이면서도 확실하게 결과를 얻어 내는 일련의 상황에, 진심으로 자신을 도와줄 조력자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렇기에 그가 하는 말들이 그렇게 나쁘게만 들리지는 않았다.

망나니라고 불리는 자신이 회장의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달콤한 말만 속삭이는 아첨꾼들이 아닌 김현성과 같은 독설가가 필요했다.

[몸조심하고, 연락 기다릴게.]

툭.

통화가 끊겼다.

김현성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달력을 바라보았다.

아직 의뢰인의 정체는 알아내지 못했고, 골든 서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권력이 필요했다.

고로, 반드시 고창범은 회장의 자리에 올라야만 했다.

“곧 시작되겠네.”

미래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고창범에게는 예정된 미래가 닥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로부터 며칠 뒤.

전국적으로 특정 사건들이 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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