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선의의 나비효과 (1)
저금리 시대.
은행에 돈을 맡기면 멍청하다는 소리를 듣는 요즘, 대한민국은 부동산 호황기를 맞이했다.
서울의 집값이 상승하면서 주변 시세를 끌어 올렸고, 괜찮은 자리에 청약이 나오면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은 우습게 넘어 버렸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전국 곳곳에 펜스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완판 보장에 건설비는 은행에서 지원해 주다 보니, 건물을 올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인천의 한 건설사.
그들도 시대의 흐름을 따랐다.
상업 지역 땅을 매입, 주거용 오피스텔을 올리겠다고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하루에도 수많은 트럭이 공사장을 찾았고, 완공일을 조금이라도 앞당겨 보기 위해 인부들을 다그쳤다. 공사장에서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외줄 타기 하듯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었지만, 그 자리에 존재하는 누구도 그것이 위험하다면서 공사를 늦춰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고로.
예견된 사고였다.
정신없이 물건을 나르던 인부 하나가, 실수로 공사 자재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악! 조심해!”
콰르르릉.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와르르 무너져 버린 공사 자재가 그대로 추락했고, 때마침 그 밑을 지나가던 인부를 덮쳐 버렸다.
콰앙!
“으악!”
“이런 씨발!”
공사장이 발칵 뒤집혔다.
사람들이 황급히 달려 나왔을 때는, 이미 인부는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 상태였다. 안전모를 착용했다고 해서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바닥을 흥건히 적시는 붉은 핏물에, 인부 한 명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119! 119를 불러!”
“내가 부를게!”
당장 응급실에 보내야 했다.
머리를 맞았기 때문에, 인부를 살리기 위해서는 시간이 생명이었다.
그때였다.
“멈춰!”
뒤늦게 도착한 사내가 빽 소리를 질렀다.
행색이 일반 인부들과는 달랐다.
팔뚝에 매고 있는 안전띠에 멀끔한 복장은, 그가 이곳의 관리자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기다려. 상부에 보고부터 할 테니까.”
“그랬다간 위험…….”
“이런 미친 새끼야! 너 제정신이야?!”
관리자의 표정이 홱 변했다.
인부를 당장에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그가 사나운 이빨을 드러냈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져서 공사가 지연되기라도 한다면. 그걸 네가 책임질 거야? 지연된 만큼의 손실을 네가 메울 수 있냐고. 그러니까, 씨발 앞으로 계속 일하고 싶으면 그 주둥이 닥치고 있으라고. 우리가 어련히 알아서 잘할 테니까, 이제 여기는 신경 끄고 각자 가서 일 봐.”
“…….”
“씨발, 구경났어? 일하라고!”
더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관리자는 갑이었다.
인부들로서는 차마 대항할 수 없는 존재였기에, 바닥에 널브러진 동료를 두고 인부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동료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두어서는 안 될 것 같았지만, 망설임은 잠시일 뿐 사람들은 애써 시선을 피했다.
그날.
인부는 무려 2시간이 지나서야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것도 10분 거리에 있는 병원이 아닌, 건설사와 연계되어 있는 1시간 거리의 병원으로.
* * *
인부는 뒤늦게 병원에 호송되었다.
골든 타임(golden time)을 한참이나 지난 시간이었지만, 다행히도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뿐.
그게 무사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아버지.”
병상 옆.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 오종혁은, 슬픔으로 물든 눈을 감추지 못했다.
의사로부터 들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극심한 충격을 받는 과정에서 영구적인 장애를 얻은 것 같다고. 평생 한쪽 팔을 제대로 쓸 수 없다는 말에, 아버지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지금 정신을 잃고 쓰러지셨다.
가슴이 아팠다.
자식의 학비를 위해 고된 공사판 일을 감당하셨던 분인데, 이런 현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불행은 꼬리를 물었다.
다음 날 오후.
오종혁은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뭐라고요?”
“죄송합니다만, 아버님께서는 보험에 가입되지 않으셨습니다. 제대로 된 산재를 적용받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아버지의 일.
명백한 산재였다.
치료비부터 영구적인 장애에 관한 확실한 보상을 받아야 하는데, 건설사에서 보낸 사람은 적당한 합의안을 제시했다.
“빙빙 돌리지 말고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산재라는 게 말입니다. 받고 싶은 대로 전부 받을 수 있는 그런 구조가 아닙니다. 특히 얼마 되지도 않는 보험비도 아까워서 단돈 만 원도 떼지 말라던 아버님 같은 분들은 더더욱 보호받을 수 없고요. 오히려 저희로서도 참 난감한 게, 아버님이 작업 도중에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증언이 많습니다. 저희는 인부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데, 스스로 자초한 이런 사고들을 전부 보상해 주다 보면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됩니다. 그러니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보시죠.”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건설사를 상대로 분명히 받을 수 있는 부분들이 있는데, 건설사의 이런 말장난은 상대가 공사판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떠보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불행히도 오종혁은 무지했다. 아버지와 같이 공사판에서 자주 일을 해 보았지만, 그렇다고 20대 초반의 그가 현실의 냉혹함마저 완전히 꿰뚫어 볼 수는 없었다.
결국.
보상은 미미한 수준에서 마무리되었다.
건설사는 충분한 힘이 있었고, 악에 받친 오종혁의 목소리는 세상의 흐름에 그대로 쓸려 나갔다.
퇴원 날.
아버지를 챙기고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한 오종혁은, 때마침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최근 들어 부동산 호황기로 건설사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습니다. 대형 건설사들의 영업 이익률이 대폭 상승했으며…….]
시선을 돌렸다.
귀를 막고 싶었다.
나약해진 아버지의 뒷모습에, 오종혁은 이를 악물었다.
“개쓰레기 같은 새끼들.”
다른 사람들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하루.
그날을, 오종혁은 절대 잊을 수 없었다.
* * *
어느덧 10월 중순이 지나갔다.
대한민국 건설사 전체가 호황기를 맞이한 것처럼, 그 무렵의 명진건설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빨리빨리 움직여.”
“서둘러야 해.”
대산의 한 공사장.
인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 그들과 같이 땀을 흘리던 고창범은, 어느 순간 슬그머니 자리를 옮겨 담배를 물었다.
“하아.”
담배가 달았다.
자신은 명진건설의 장남이고, 일반 인부들과 같이 몸을 부대낄 만한 신분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건설 현장에 출근한 지도 시간이 제법 흘렀다. 나름대로 초반에는 의욕을 가지고 일했던 것 같은데, 아무런 소득 없는 하루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의욕이 팍팍 깎여 나가고 말았다.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히 뭔가 계획이 있는 것 같은 김현성이, 자신을 왜 건설 현장 말단으로 보냈을까.
“퍼질러 자고 싶다. 술 마시고 싶다. 여자랑 놀고 싶다. 에라이, 썅. 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문득.
과거가 그리웠다.
단순히 명진건설의 망나니로 살았던 시절에는, 해가 저물어 갈 즈음에 일어나서 늘 찾던 가라오케에 방문했다. 그곳에서 시간도 잊고 여자의 육체를 주물럭거리다 보면 어느새 중천에 떠오른 해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참 낭비적인 삶이면서도, 이보다 재밌는 하루는 존재하지 않았다.
목이 탔다.
당장에라도 양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님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만약 내가 회장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다면. 고창석, 그 여우 같은 새끼가 날 빈털터리로 쫓아낼지도 몰라. 아버지가 건재하실 때는 눈치를 보겠지만, 돌아가신다면 내 미래를 장담할 수 없겠지. 내가 지금과 같은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장 자리에 올라야 해.’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
그리고 다시 내뱉을 때면, 그 연기에 나쁜 생각들이 흩어지는 것만 같았다.
‘김현성을 믿자. 그 꼬맹이가 나이는 어려도 계획이 없는 애는 아니잖아.’
만약 다른 사람들이 고창범의 상황을 안다면, 17살 고등학생에게 명진건설 회장의 자리가 걸려 있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우스울 것이다. 사실 고창범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 시절이 있었다. 제안을 받아들이고도 후회한 날이 잦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김현성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영악했다.
아니, 악랄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에, 김현성이 단순한 고등학생으로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 보라.
보통 일진들을 무너트리겠다는 계획을 세운다면, 단순하게 힘을 동원해서 그들을 쓸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김현성은 선생들을 포섭하고, 일진들의 현실을 하나둘씩 무너트리면서 그들에게 엄청난 무력감을 선사했다. 결국에 포기하고 소년원행을 받아들이는 박민철 패거리와 신영민의 모습에, 고창범은 그것이 고창석의 먼 미래일 것이라는 확신이 생겨났다.
그래서 맹목적으로 따랐다.
1억을 달라는 부탁에도, 허드렛일 같은 귀찮은 부탁에도.
굳이 토를 달지 않았다.
김현성이 명확한 결과를 보여 주지 못한다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지금은 적어도 신뢰할 때였다.
툭.
담배를 던졌다.
이만 현장으로 복귀해, 역할에 충실한 장남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그때.
콰앙!
콰르르르르르르릉.
공사장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 * *
황급히 달려갔다.
그리고 확인한 광경은, 건물 일부가 우르르 무너진 모습이었다.
“……와 씨.”
숨이 턱 막혔다.
공사판에 무지한 고창범으로서는 이게 어떤 사고인지 알 길이 없었고, 옆에 있던 관리자를 붙잡아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이야?!”
“타, 타설(打設) 사고인 것 같습니다.”
“타설? 타설이 뭐야? 염병. 일단 그건 나중에 설명하고, 저 안에 인부들 있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상부에 보고하고, 언론사를 통제해서 최대한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왜일까.
사건을 은폐하려는 관리자의 모습에, 고창범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걸 느꼈다.
‘……꼬맹이, 넌 대체.’
며칠 전.
김현성은 고창범에게 이런 말을 했다.
“고창범 씨가 말단으로 일하면서 명심해야 할 부분은 한 가지예요. 본인의 역할에 집중하든 말든 그건 본인의 자유지만, 만약 건설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때는 말단이 아니라 명진건설 장남의 직함을 최대한 활용해서 사고를 수습해 주세요. 건설사의 손익을 따지는 게 아니라 무조건 인부들의 편에서, 인부들을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그에 따라 행동하세요.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계획의 시작점이에요.”
그때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고창범은 공사판에서 사고가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도 몰랐고, 살면서 단 한 번도 인부들의 입장 따위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만약 평소의 자신이었다면. 타설이 뭔지, 매뉴얼이 뭔지도 모르는 그로서는, 관리자가 하는 말이 전부 옳다면서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김현성의 말을 따라야 했다.
자신의 회장직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라는 그 사실 하나만이, 고창범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살아났다.
고창범이 말했다.
“지금 당장 119에 신고해. 대산에 있는 모든 구급대원을 깡그리 긁어모아서 빨리 인부들을 구하라고!”
“아, 안 됩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119를 부르면서 사고 현장을 고스란히 노출하면, 저희의 안전 책임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배상뿐만 아니라, 사고 경위를 파악하고 수습하는 과정으로 공사가 지연됩니다. 회장님께서 분명히 경을 치실 겁니다. 일단 사건을 최대한 수습하고, 언론사를 통제한 후에 119를 불러도 문제가 없을 겁니다!”
관리자의 말.
매뉴얼이었다.
창백하게 떠들어 대는 대응 방법이, 건설 현장에서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방식이었다.
고창범으로서는 너무나 복잡한 상황이었다.
단순하게 살아왔던 그에게, 김현성의 계획과 회장의 이름이 언급되는 이 상황은 너무나 답답했다.
뭘 믿어야 하는지.
뭘 따라야 하는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이를 악무는 그의 귓속으로, 다시 한번 굉음이 들렸다.
콰르르르릉.
시간이 없었다.
보고 들은 것을 믿었다.
본능적으로 살아왔던 자신에게는 그게 더 맞는 방식이었다.
“그냥 신고해.”
“하지만…….”
고개를 홱 돌렸다.
고창범이 관리자를 내려다보며, 사납고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명진건설 장남이야. 내 말에 그만한 힘도 없어?”
김현성.
이 상황을 예견한.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애송이를 믿는 것이, 고창범의 본능이 내린 결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