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선의의 나비효과 (5)
사고 이후.
오종혁은 아버지를 모시고 고향 대산으로 내려갔다.
아무래도 몸이 편찮으신 만큼, 타지 생활보다는 고향에서의 요양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의사는 영구적인 장애를 고칠 방법이 없다고 말했지만, 인터넷 매체를 보면 기적적으로 회복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그런 실낱같은 희망이 포함된 귀향이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현실은 말라붙은 쌀통이었고, 생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버지를 대신해 일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렇게 오종혁은 공사판에 나갔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아버지를 따라 나갔던 공사판만이 유일한 해결책처럼 보였다.
아버지 몰래 휴학계를 내고 땀을 흘리길 며칠, 오종혁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사건을 목격했다.
콰르르르릉.
“이런!”
“건물이 무너졌대!”
아버지 때문이었을까.
사고가 발생했다는 그 말에, 오종혁은 자신도 모르게 사고 현장으로 뛰어갔다.
타설 사고였다.
콘크리트를 붓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았고, 문득 며칠 전에 양생 문제를 걱정하던 관리자의 말이 떠올렸다. 일단 건물 아래에서는 인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한 사실은 저 안에 인부들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대로 시간을 끌었다가는 아버지와 같은 피해자가 발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19를 불러야 해.’
보고도 하지 않았다.
황급히 전화를 꺼내 버튼을 누르려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그의 핸드폰을 확 낚아챘다.
“미쳤어? 신고부터 하면 어쩌려고!”
“저 안에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일단 119에 신고부터 해야 합니다.”
관리자였다.
그는 표정을 와락 일그러트리며, 잔뜩 분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말단이면 말단답게 네게 주어진 역할이나 잘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119에 신고부터 하면 어쩌라는 거야? 일단 상황을 파악할 테니까, 넌 저기 물러나 있어.”
“안 됩니다. 신고부터 해야 합니다.”
“이 새끼가 진짜.”
“씨발. 그쪽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난 그냥 넘어갈 생각 없어. 지금 사고를 당한 피해자들은, 저 안에서 어떤 사투를 벌이고 있을지 알 수 없다고. 이렇게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1분 1초로 피해자들이 죽으면 네가 책임질 거야? 그러지 못할 거면 핸드폰 내놓으라고!”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눈을 부릅뜨며 바락바락 대드는 오종혁의 모습에, 관리자는 황당하다는 눈빛을 보였다.
지금의 상황.
오종혁은 역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수는 반복되었다.
공사 현장의 사고로 아버지는 영구적인 장애를 얻었건만, 빌어먹을 공사판은 변한 것이 없었다.
‘진짜 지긋지긋해.’
이를 악물었다.
의견을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면.
힘을 써서라도 핸드폰을 빼앗아 119에 신고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때.
“……와 씨.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현장에 한 사내가 도착했다.
오종혁과 실랑이를 벌이던 관리자는, 그 사내를 발견하자마자 헐레벌떡 그에게 뛰어갔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가, 이 건설사의 장남이라는 사실을.
* * *
MC가 물었다.
“어떤 부당한 일을 겪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전에 얘기된 부분이었다.
오종혁은 차분하게 숨을 고르더니, 머릿속으로 정리해 두었던 말을 내뱉었다.
“당시 아버지는 인천 현장에서 일반 인부로 일하고 계셨습니다. 사고는 갑작스러웠고, 머리 위로 건축 자재가 떨어지면서 큰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애초에 이와 같은 안전사고가 발생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지만, 제가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건설사의 대응이었습니다.”
카메라가 화면을 확대했다.
오종혁의 표정을 세심하게 담으며, 이 순간의 감정을 최대한 부각했다.
“사고가 일어났고, 인부가 다쳤습니다. 상식적인 대응은 곧바로 구급차를 불러 환자를 이송하는 것이지만, 해당 건설 관리자는 상부에 보고하느라고 신고를 늦추었습니다.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 때문이었겠죠. 하루가 급한 건설 현장에서, 안전사고로 공사가 늦춰진다면 손해가 발생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사고 발생 이후 무려 2시간이나 지나서야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 말을 뒷받침할 증거가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아버지 동료분께서 사건 현장을 촬영한 사진이 있습니다. 그리고 건설사의 무책임한 대응을 가장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는 부분은 사고 현장에서 10분이 걸리는 병원이 아니라 무려 1시간이나 떨어진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왜 그랬을 것 같습니까? 건설사는 본인들과 연계된 병원으로 이송해야 보험 혜택과 같은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지만, 제 아버지는 그들이 말한 그 어떠한 혜택도 받지 못했습니다.”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말을 할수록, 지난날의 분노가 치밀었다.
“그들은 사건을 축소하기 위해 1시간이나 걸리는 병원을 택했습니다. 분명히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했다면 치료의 여지가 존재했을 텐데, 그 빌어먹을 새끼들에게 중요한 것은 인부의 사고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참 재밌지 않습니까? 강남과 인천, 혹은 다른 공사 현장들. 각기 다른 건설사가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었는데, 그 사건의 맥락은 모두 비슷합니다. 최근 부동산 호황기라고, 완공일이 늦춰지면 그 시간만큼 엄청난 손실이 발생한다고. 건설사들은 하나같이 책임을 떠넘기며 본인들의 잘못이 아니라 말합니다.”
카메라를 보았다.
그 너머.
사람들에게 진실을 폭로했다.
“그런데 진실은 무엇입니까? 완공일이 촉박한 것도 그들이 기일을 그렇게 잡았기 때문이고, 그들이 말하는 손실 또한 건설사의 책임일 뿐입니다. 결국에 그들의 이득을 위해서, 건설사들은 인부를 소모품처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건설사들의 이런 악랄한 행태를 더는 지켜볼 수 없습니다. 저희 아버지와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길 바라는 바람에, 용기를 내서 이렇게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정말 듣는 것만으로도 화가 나는 이야기네요. 그렇다면…….”
얘기는 계속되었다.
사건을 확인하고, 사건을 폭로하고.
건설사를 신랄하게 비난하는 내용이 모두 마무리되자, 어느새 촬영 시간인 1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MC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대본에는 간략한 소감 정도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오종혁의 생각은 달랐다.
최근 경험한 일로 인해, 그는 한 사건에 대해서는 꼭 언급하고 싶었다.
“예. 마지막으로 한 건설사의 일을 말하고 싶습니다. 모두가 쓰레기 같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모범이 되는 한 사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험악한 외모와는 다르게.
인부들의 안전을 부르짖던 한 사내의 모습이.
* * *
그날 이후.
고창범의 생활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똑같은 현장으로 출근했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현장소장’이라는 직책이 부여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장님 오셨습니까!”
“오늘따라 외모에서 더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소장님. 제 마누라가 챙겨 준 건데, 소장님도 드십시오. 맛이 아주 기가 막힙니다.”
고창범이 지나갈 때면.
인부들이 살갑게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말단으로 일할 때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생소한 상황에, 기존 관리자였던 사람이 말을 덧붙였다.
“이번 일이 인부들에게 소문이 나서 그렇습니다. 명진건설이 재공사라는 파격적인 결단을 내린 것도 그렇고, 사고를 당한 인부들을 세심하게 신경 써 준 사람이 모두 소장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인부들의 시선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원래 현장 일이 텃세가 심한 편이지만, 이렇게 받아들이기만 하면 정말 정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고창범은 낙하산이었다.
말단으로 일하긴 했어도, 명진건설의 장남임을 알기에 인부들은 그 누구도 말을 걸지 않았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현장소장의 직책.
그리고 인부들의 안전과 복지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사람.
반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부들은 까무잡잡한 얼굴로 고창범을 마주할 때면, 하얀 이빨을 환히 드러내며 진심 어린 웃음을 보였다.
문제는.
‘……너무 부담스러운데.’
고창범으로서는 생소한 경험이었다.
돈과 권력으로 사람들을 찍어 누르면서 대우를 받은 경우는 많지만, 이렇게 진심 어린 호의를 받아 본 적은 많지 않았다. 사실 현장소장 직책을 맡으면서 조금 제멋대로 일할 생각이었다. 설렁설렁 일하는 인부들에게 소리도 지르고, 눈을 부라리면서 땅바닥에 침도 찍찍 뱉으면서. 자신이 명진건설의 장남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이 건설 현장에서만큼은 왕처럼 지내고자 했다.
그런데 너무 순수한 호의를 마주하니.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가 없었다.
기대치가 어린 사람들의 시선에, 고창범은 대충 조회를 끝내고 슬그머니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창범아. 너 참 나약하다, 나약해.”
컵라면을 챙겼다.
아침 일찍 나온다고 끼니를 걸렀기 때문에, 쪼그려 앉아 컵라면을 흡입했다.
“후룩, 후루룩.”
역시.
농땡이 피울 때 먹는 라면이 제맛이었다.
말단 때야 나름대로 눈치를 보았지만, 현장소장 직책까지 맡았으니 자기를 뭐라고 할 사람이 없을 터.
그렇게 한참 컵라면을 흡입하는데, 고창범이 있는 구석으로 관리자가 불쑥 나타났다.
“소장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후루룩, 무슨 손님?”
“방송사라는데, 소장님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답니다.”
“그래, 알았어. 네가 현장에 대해 잘 설명해 주고…… 엥? 나를 인터뷰하겠다고?”
순간.
고창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대체 왜.
방송사에서 명진건설도 아니고, 현장에 대해서도 아니고, 굳이 왜 자신의 인터뷰를 딴단 말인가.
라면을 먹다 말고 굳어 버린 그 모습에, 관리자는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 * *
역시나 생소한 경험이었다.
리포터와 카메라를 앞에 둔 고창범은, 다소 굳은 얼굴로 리포터의 질문을 받았다.
“오종혁 씨의 말에 의하면, 사고가 발생한 직후 인상적인 대응을 보여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타설 사고로 인한 건설사의 책임을 묻는 물음에, 건설사의 장남이면서도 그것이 뭐가 중요하냐! 일단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게 우선이 아니냐면서 일갈했다고 하시던데. 정말 사실인가요?”
인상적인 대응이라느니, 일갈이라느니.
당혹스러운 말들이었지만, 고창범으로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전부 사실이긴 했으니까.
“……예, 맞습니다.”
“어머나. 정말 대단하시네요. 건설사의 책임자로서 책임감 있는 결단을 해 주신 덕분에, 이번 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강남 사건과는 참 대비되는 상황인데, 명진건설은 책임을 통감하고 전면 재공사라는 파격적인 결단을 내린 것도 사실인가요? 관계자에 따르면, 그것도 고창범 씨가 주도적으로 추진한 일이라던데요. 아시다시피 타설 사고가 발생했다고 해서 처음부터 다시 짓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잖아요? 그리고…….”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고창범의 행적이 낱낱이 파헤쳐지면서, 리포터는 항상 마지막에는 웃는 얼굴로 똑같이 물었다.
“전부 사실인가요?”
사실 여부.
그것을 확인했다.
반짝이는 리포터의 눈빛을 바라보며, 고창범은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처음 내뱉었던 대답처럼.
다소 미화된 감이 없잖아 있지만, 리포터가 말한 사건에는 어느 것 하나 사실이 아닌 일이 없었다.
그렇다면 대답은 뻔했다.
고창범이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예, 전부 사실이긴 합니다만.”
“역시 세상은 아직 살 만하네요. 이렇게 고창범 씨와 같은 분이, 저희가 살아갈 집을 만들어 주시는 거잖아요!”
왜일까.
고창범은 문득.
상황이 뭔가 굉장히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