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48화 (48/130)

10. 선의의 나비효과 (6)

고창범의 예상대로였다.

시사 프로 방영 직후, 해당 방송사는 오종혁이 좋은 예시로 언급했던 고창범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명진건설에서 결단한 ‘재공사’가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건설 업계를 잘 모르는 분들은 그냥 건물을 새로 짓는다는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건 정말 쉬운 결단이 아닙니다. 보통 건설사는 건축 계획을 기반으로 은행에 대출을 받습니다. 본인의 돈을 100프로 들여서 공사를 진행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 은행의 힘을 빌립니다. 당연히 그 과정에는 원금을 갚는 시기, 예상 이자액 같은 것들이 존재하는데, 재공사라는 결단은 그 모든 것들을 마이너스로 만들어 버립니다. 추가적인 공사비뿐만 아니라, 애초에 투입한 금액 전부가 건설사의 마이너스로 잡히는 것이죠.]

[보통 이런 사례가 있나요?]

[제가 알기로는 거의 없습니다. 명진건설에서 큰마음을 먹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단순히 말로만 책임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정말 완벽한 결과물을 입주자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손실을 감당한 것이죠. 그리고 그 결단에는 명진건설 장남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들었습니다.]

건설 업계 관계자의 인터뷰였다.

그는 명진건설의 결단에 혀를 내두르며, 강남 사건과는 확연히 다른 대응인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추가로.

TV 화면에 한 아주머니가 등장했다.

[김은숙 씨, 상황을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처음 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정말 정신이 없었어요. 우리 그이가 두 다리를 잃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는데, 오빠 말로는 건설사들의 보상이 턱도 없다더라고요. 그래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명진건설에서 먼저 저희가 겪을 현실적인 문제들을 같이 해결해 주겠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구체적인 조건은 밝힐 수 없지만, 그분들은 단순히 말로만 사과하고 끝내는 분들이 아니었어요. 물론 사고의 책임에서 건설사가 자유로울 수는 없겠죠. 하지만 이번 강남 사건 같은 일들을 들으면서, 그래도 우리 그이가 ‘명진건설’의 소속이라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현장에서의 대응.

재공사와 피해자들의 보상.

오종혁의 인터뷰와 같이 부각되었다.

방송 마지막.

고창범의 어색한 얼굴이 화면에 잡혔다.

마지막으로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행동했냐는 물음에, 고창범은 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했을 뿐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히 돈벌이가 아니라 평생 안고 가야 할 가업이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실수해 놓고 손실만 따질 수는 없잖아요?]

막 내뱉은 발언이었다.

김현성의 조언, 아버지의 말.

그것들이 머릿속에 뒤얽혀 아무렇게나 나왔다.

그렇게 방영 직후.

[건설 업계의 희망을 보다!]

[건설 업계의 미래? 그것은 명진건설에 있다!]

[고창범, 그는 누구인가.]

고창범의 이름이 빵- 떠 버렸다.

* * *

사실 강남 사건으로 사회적인 이슈가 부각되지 않았다면, 명진건설의 사고는 그냥 잊혀졌을 것이다.

사람들의 불만.

그것을 자극할 만한 사건.

그리고 언론의 푸시.

삼박자가 제대로 어우러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그 가운데 명진건설의 고창범이라는 인물은 너무나도 흥미로운 요소였다. 건설사의 장남으로 태어나 사고에 이상적인 대응을 보여 주었고, 사고 피해자들을 위해 진심 어린 사과와 보상으로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랬다.

빵 뜰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에서는 연신 고창범에 대해 떠들었다.

[진짜 대단하네. 피해자 보상은 그렇다 치더라도, 절반 이상 올린 건물을 다시 재공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어찌 됐든 명진건설 실수 아님? 이렇게 치켜세우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건 맞지. 명진건설의 실수로 타설 사고가 생긴 건 분명하지만, 우리가 그동안 분노했던 부분은 사고 이후의 대처잖아. 아무도 명진건설에 손해를 감수하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명진건설은 스스로 재공사를 결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했어. 그리고 업계 소문에 의하면, 안전 제도를 대폭 강화하고 다시는 이런 실수가 벌어지지 않도록 방지하라는 회장의 명령도 떨어졌다던데.]

[와, 그 정도면 제대로네.]

[그렇게까지 한다고?]

몇몇 사람들의 지적처럼, 이번 사건은 명진건설의 책임이 분명했다.

애초에 공사 일정을 촉박하게 진행하지 않았다면 타설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거고, 한 가정의 가장이 두 다리를 잃는 참사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고창범의 대처가 부각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반면교사(反面敎師)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절대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강남 현장 같은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사후 처리라도 정상적인 명진건설이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한 네티즌이 말했다.

[이번 사건은 무조건 비난하기만 하는 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겠지만, 명진건설처럼 본인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려고 한다면 그것을 받아 주는 태도도 필요해. 해당 아파트의 입주자도, 해당 사건의 피해자도 모두 명진건설에 아무런 불만이 없는데, 먼발치에서 키보드만 두드리는 우리만 분노하는 건 이상하잖아? 확실한 건 나는 앞으로 명진건설은 믿을 것 같다는 거야. 매번 잘하려는 사람은 존재해도,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것에 대해 확실하게 대처하려는 사람은 흔하지 않거든.]

[그나저나 명진건설이 새로 짓는 아파트가 어디인가요? 혹시 미분양이 났으면 들어가고 싶은데.]

[저도요. 오히려 사고가 났으니까 더 안전하게 지을 거 아니에요.]

[입주자들에게 가격 혜택도 준다던데. 분양권 파실 분 있으면 쪽지 부탁드립니다.]

흐름을 탔다.

명진건설에 우호적인 분위기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명진건설 네 글자가 선명하게 남았다.

그리고 당연히.

명진건설은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를 확실히 체감하고 있었다.

* * *

그 무렵.

고명진 회장은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아, 고 회장. 이번에 소식을 들었는데, 장남을 아주 제대로 키웠던데?]

“크하하하, 그러게 말이야. 애가 어렸을 때부터 말썽을 피워서 뉘 집 자식인가 싶었는데, 이번에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니 영락없이 날 닮았더라고. 최근에 우리 창범이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하루에도 수십 통씩 연락이 온다니까?”

[고 회장님. 혹시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판검사 집안과의 선 자리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제 그쪽 집안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아드님 정도 되는 훌륭한 인물이라면 관심이 있다고 하네요.]

“이 사람들이 이거, 내가 연락했을 때는 매몰차게 거절하더니. 지금 와서 괜찮다고?”

[잘 아시잖아요. 그때의 아드님과 지금의 아드님은 다르다는 걸요. 요새 들어 대산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문의가 들어오고 있어요. 명진건설의 장남이 어떤 사람인지 묻는 전화들이요. 그러니 충분히 생각해 보시고, 말씀드린 집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분들도 추천해 드릴게요.]

연락이 빗발쳤다.

주변 인맥의 안부 전화나 중매쟁이들의 연락.

모두 고창범에 대해 떠들어 대는 내용이다 보니, 고명진으로서는 입이 귀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애써 차가운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도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장남이다.

처음 장남이 태어났을 때, 고명진은 수술실 밖에서 두 손 모으고 기도하다가 아들이라는 소식에 방방 뛰었던 기억이 있다. 아들이 원한다면 하늘에 별도 따다 주고, 달도 따다 주겠다고 다짐했던 고명진이기에, 자신의 성공보다 아들의 성공이 진심으로 그를 들뜨게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명진건설의 평판이 상승함에 따라, 공사 수주도 밀려들었다.

비서가 말했다.

“이번에 모 대기업에서 사옥을 올리려는데, 혹시 명진건설에서 맡아 줄 수 있는지 의향을 묻는 연락을 보내왔습니다.”

“강남의 모 아파트 재건축 위원회에서, 3000세대 아파트의 재건축 건설사로 명진건설을 원한다고 합니다. 최근 안전 문제로 분위기가 흉흉하다 보니 안전한 건설을 위해 명진건설을 택한 것도 있지만, 현재 ‘명진건설’이 브랜드 가치로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회장님. 대산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 공사 건에 대한 계약을 빠르게 체결해서, 적어도 내년 안으로는 공사 일정을 발표하면 좋겠다는 입장입니다.”

잭팟이었다.

명진건설의 가치가 급격하게 상승했다.

물론 그것이 결과물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냄비처럼 들끓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만들어 내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고명진은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면 충분했다. 명진건설은 기술력으로는 충분한 회사다 보니, 지금과 같은 기회만 있다면 단번에 급부상할 자신이 있었다.

건설 업계를 통틀어 모든 업계가.

사실 그 한 번의 기회를 거머쥐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하는 것이지 않은가.

때마침.

TV에서는 고창범의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했을 뿐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히 돈벌이가 아니라 평생 안고 가야 할 가업이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실수해 놓고 손실만 따질 수는 없잖아요?]

아들의 모습.

가슴이 녹아내렸다.

이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고명진은 사업으로 성공했을 때보다도 더, 진심으로 행복한 미소를 보였다.

* * *

하루아침에 세상이 변한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갑작스럽게 회사로 불려 간 그는, 아버지와 회사 주요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지금부터 내 아들 창범이가 상무 직책을 맡을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 열과 성을 다해 도와주도록.”

“축하드립니다.”

“고창범 상무님,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짝짝작-

눈이 팽팽 돌았다.

흐뭇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버지, 그리고 양옆에 서서 자신에게 세찬 박수를 보내는 주요 인사들. 그들 대부분은 모두 자신에게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던 사람들이었다. 특히 주요 인사들의 경우에는 고창석의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마지못한 기색을 애써 삼키며 축하 인사를 건네왔다.

아버지가 말했다.

“그리고 이번 대산시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창범이 너도 합류해라. 아직 네가 감당할 만한 수준의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큰 프로젝트를 경험하다 보면 너도 배우는 게 있겠지.”

상무의 직책.

새로운 프로젝트.

보상이 빵빵 터졌다.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으로 한참을 있던 고창범은, 악수를 수십 번이나 하고서야 차로 돌아올 수 있었다.

탁.

문을 닫았다.

의자 시트에 몸을 눕히며, 고창범은 멍한 눈빛을 보였다.

“……이게 현실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도 분명히 장남으로서 잘해 보려고 노력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는 아무리 발악해도 이런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세상이 자신을 밀어주는 것처럼 일이 착착 진행되었다. 어느 것 하나 막힘이 없었고, 의도를 지니지 않은 일도 자신에게 득이 되는 결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 모든 건.

김현성의 계획이었다.

자신을 회장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고, 회장의 자리가 더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예사 인물이 아닌 건 알고 있었지만, 확실히 김현성은 난놈이야. 고창석의 일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일은 진짜 장난이 아니었잖아. 걔만 있다면, 난 분명히 회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어.’

이번 일을 경험하며 확신하게 된 사실이 있다.

자신은 회장감이 아니다.

과하게 단순하고 멍청한 감이 없잖아 있기에, 절대 스스로의 능력으로 성공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뭐.

괜찮았다.

자신은 명진건설의 장남이다.

고명진의 아들로 태어난 이상, 아버지의 조언처럼 충분한 대가로 능력 있는 인물들을 옆에 두면 그만이다.

‘현성아, 내가 간다.’

부웅-

차에 시동을 걸었다.

고창범의 인생에는 철칙이 있다.

은혜와 원수는 반드시 과할 정도로 갚는다.

너무 많은 것을 선물 받은 지금, 고창범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부아아아아앙-!

빠르게 치고 나가는 스포츠카.

목적지는 바로 천일 고등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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