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50화 (50/130)

11. 철옹성(鐵甕城) (2)

수업이 모두 끝났다.

1학년 1반의 담임인 김영철은 보통 종례를 간략하게 끝냈는데, 오늘은 특별히 할 말이 있었다.

“너희에게 아주 좋은 소식이 있다. 이번에 명진건설에서 천일 고등학교를 위한 장학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어. 그게 무슨 말이냐면, 그 조건에 부합하는 학생들은 장학금을 받는다는 의미지.”

학생들의 눈이 빛났다.

아무리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이들이라지만, 장학금을 받는 일을 싫어하는 학생은 존재하지 않았다.

문제는 장학금의 조건이었다.

시선이 집중되는 상황에, 김영철은 묘한 웃음을 보였다.

“장학금의 기준은 당연히 학교를 성실하게 다니는 학생, 그리고 장래가 촉망받는 학생들 위주로 지급될 예정이야. 장학 인원은 한정되지 않았지만 아무나 지급하지는 않겠지. 자자, 다들 박수! 우리 학교에서 첫 번째 장학 대상으로 현성이가 선정되었어.”

순간.

김이 팍 식어 버렸다.

1반 학생들은 마지못해 박수를 쳤지만, 김현성이 받는다는 의미는 너무 노골적이었다.

명진건설의 장남.

고창범이 그의 후견인이지 않은가.

그냥 대놓고 지원하면 될 것을, 굳이 장학금이라는 명목으로 준다는 사실에 짜증이 치밀었다. 괜히 장학금을 언급하는 바람에 기대만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명진건설의 결정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배경을 배제해도.

김현성은 장학금을 받아 마땅하다.

이번에 당당히 전교 1등을 차지했는데, 김현성이 아니면 대체 누구에게 장학금을 주겠는가.

짜증이 날 뿐.

현실을 납득했다.

명진건설의 퍼포먼스라고 생각하자, 학생들은 더는 장학금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참고로 이번에 장학금을 받을 사람은 현성이뿐만이 아니야. 우리 반에서는 현성이가 선정되었지만, 다른 반에서는 시우가 선정되었어. 그러니 모두 분발하도록. 학업에 열심히 전념한다면, 명진건설은 특별히 기한을 두지 않고 장학생을 선발한다고 했으니까.”

김영철의 발언.

학생들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김시우라니.

성적이 그리 특출하지 않은 그가 장학금을 받았다면, 그 이유는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김현성의 친구.

바로 그것밖에 없었다.

* * *

장학금 이슈.

핫한 문제였다.

방과 후에 삼삼오오 귀가하는 남학생 중, 촉새라는 별명을 지닌 조재진이 투덜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이거 너무 속 보이는 거 아니야? 김현성은 그렇다고 쳐. 반장에다가 2학기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을 했으니, 명진건설이 돈을 퍼 주더라도 충분한 명분이 있겠지. 그런데 김시우? 하, 참 내-.”

“확실히 이상하긴 해.”

“이상한 정도가 아니야. 김시우가 장학금을 받을 명분이 뭐가 있냐? 성적이 김현성처럼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무언가를 특출하게 잘하지도 않잖아? 출석? 천일에 출석이 안 좋은 애가 있어? 그냥 아무것도 없는데, 느닷없이 김시우가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면 그게 무슨 의미겠어? 그냥 명진건설이 이 세상의 부당함을 증명했을 뿐인 거지.”

장학금을 기대했기 때문일까.

분노가 좀처럼 가라앉질 않았다.

몰래 뒤에서 해 처먹었으면 되는데, 괜히 농락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명진건설이랑 김현성은 대체 무슨 관계인 거야? 그쪽 장남이 김현성 후견인이랍시고 나타난 이후부터 오대환이랑 김영철이 간과 쓸개를 전부 내줄 것처럼 굴고, 이번에는 장학금 명목으로 절친까지 챙겨 주고 있잖아. 혹시 명진건설의 사생아라도 되는 거 아냐?”

“미친 새끼. 그럴 리가 있겠냐.”

“아니, 모르는 일이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막장 스토리가 아니면 이해가 안 된다고. 박민철 패거리 사건이 있던 후로 김현성이랑 친하게 지내는 사람 있어? 단 한 명도 없어. 원래 두루두루 잘 지내던 애인데, 그때 이후로 흑화하더니 우리에게 말 한마디 걸지 않잖아. 징계위원회 끝나고서 이정민이 그나마 말을 걸었는데, 개쌍욕 먹고 완전히 매장당하기도 했고. 그런데 유일하게 의리를 지켰던 김시우만이 장학 대상으로 선정. 캬- 이건 너무 노골적이잖아.”

촐싹대게 말하기는 해도, 조재진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천일 전체가.

장학금의 의도를 간파했다.

김시우는 과거에 태권도 천재라고 불릴 만큼의 인재였지만, 적어도 지금의 그는 장학금을 받을 만한 학생이 아니었다.

“왠지. 김현성이 선배들 들이받을 때 김시우가 느닷없이 박진우랑 한바탕 붙더니만. 다 이유가 있었던 거야. 김현성이랑 이미 얘기가 된 부분이었던 거겠지. 하- 씨발, 세상 말세다 말세야. 아무리 세상이 썩었다지만 이렇게 대놓고…….”

흠칫.

조재진이 걸음을 멈추었다.

살짝 굳은 얼굴에, 친구가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왜?”

“아, 아니 그게…….”

“무슨 일 있어?”

뭔가 이상했다.

조재진의 시선이 자신의 너머를 바라보자, 친구도 같이 시선을 돌려 그곳에 있는 무언가를 확인했다.

친구의 표정도 빠르게 굳었다.

햇볕이 허락되지 않는 골목길 안에, 익숙한 얼굴이 벽에 기대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이리 와 봐.”

서늘할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

방금까지 흉을 보았던.

김현성이 조재진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 * *

불행일까.

다행일까.

친구는 그냥 보내 주었다.

조재진만을 불러들였고, 조재진은 김현성을 마주하는 상황에 심장이 당장에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X 됐네.’

불과 몇 달 전.

김현성의 이미지는 좋았다.

1반의 반장으로서 모든 일에 적극적이었고, 친구들과 두루두루 친하다 보니 김현성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 그러한 평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박민철 패거리를 시작으로 신영민을 차례로 무너트리며, 천일에 김현성을 부르는 새로운 별명이 생겨났다.

‘천일의 악마.’

단순하지만.

김현성이라는 사람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별명이었다.

생각해 보라.

박민철 패거리와 싸울 때.

김현성은 무려 3 대 1의 싸움인데도, 자물쇠로 강창석의 관자놀이를 후려치면서까지 상대를 죽여 버리겠다는 악의를 보였다. 그날 세 명의 친구가 피를 철철 흘리며 응급실에 실려 갔다. 아무리 혈기왕성한 나이에 싸움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지만, 이 정도로 잔인한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이후에 신영민.

그때의 일은 전설로 남았다.

2학년 전체를 불러들인 다음 배성호를 쓰러트렸고, 신영민은 단 일격에 무릎을 꿇게 했다.

만약 거기에서 끝이었다면.

악마라는 별명은 붙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건물 위에서 모두가 내려다보는 그 상황에, 김현성은 잔인하게 신영민의 팔을 천천히 비틀어 버렸다.

“크아아아악-!”

그때의 비명.

선명하게 들리는 것만 같았다.

조재진은 고개를 푹 숙인 상태로, 흔들리는 눈동자를 진정시키지 못했다.

‘진짜 미친 새끼야. 대체 무슨 생각으로 김현성을 씹은 거야. 아마도 날 죽여 버리겠지? 복도에서 시비가 붙자마자 죽빵을 날렸던 것을 보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 난 이대로 죽어 버리는 걸까. 난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고개 들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김현성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를 마주 보았다.

흠칫.

다시 고개를 숙였다.

차가운 눈빛을 바라보자,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네가 조재진 맞지? 별명이 촉새고.”

“……어, 맞아.”

“그렇게 쫄 필요 없어. 네가 내 뒷말을 하고 다니든 말든, 그건 그리 신경 쓰이지 않거든. 다만, 네가 촉새라고 불릴 만큼 말이 많고, 천일 전체와 두루두루 친하다는 게 사실이면 따로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뭐, 뭐든 말만 해. 무조건 들어줄게.”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무사히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조재진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김현성이 말했다.

“아까 네가 떠든 것처럼 이번에 명진건설의 장학금은 부당한 이유로 장학생들이 선발된 게 맞아. 나는 물론이고, 시우도 내 친구라서 장학금을 받게 된 거고. 그런데 담임이 말했다시피 장학생의 인원에는 제한이 없어. 네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너도 그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지.”

분위기가 이상했다.

장학금이라니.

김현성은 마치, 장학 제도를 손아귀에 쥐고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것처럼 말했다.

입을 다물었다.

다음 말을 기다렸다.

시선을 피하지 않은 것으로, 방금 그 말에 엄청난 관심이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

김현성이 웃었다.

“조금 전까지 떠들었던 것처럼 천일 전체에 소문을 내줘. 모두가 내막을 알 수 있도록, 명진건설의 장학금이 얼마나 부당한지를 알 수 있도록. 단…….”

머릿속으로 계획을 그려 나갔다.

천일이라는 이름의 철옹성.

그것을 만들어 갈 계획을.

“그 소문에 살만 조금 붙여 주면 돼.”

* * *

다음 날.

학교에 이상한 소문이 퍼졌다.

조재진이 각 반, 각 학년을 돌아다니며 이상한 이야기를 떠들어 댔다.

“그거 알아? 이번에 명진건설에서 천일의 장학 제도를 만든 건, 김현성에게 잘하는 애들을 공식적으로 챙겨 주기 위한 거야. 그러니까 박민철 패거리 사건 때 유일하게 김현성의 편을 들었던 김시우가 장학생으로 선발된 거고.”

“진짜라니까. 그게 아니면 김시우가 왜 장학금을 받아? 그리고 김영철이 말한 것처럼, 이 장학 제도에는 인원 제한이 없어. 김현성에게 잘하면 그게 누구든, 인원이 몇 명이든 전부 챙겨 주겠다는 의미라고.”

“선배님. 부모님 걸까요? 담임이 고창범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니까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모두가 예상하는 이야기에, 새로운 살을 덧붙였다.

“최근에 김현성이 달라졌지? 그게 왜 그런 줄 알아? 박민철 패거리 사건 이후로 심경에 큰 변화가 생겨서, 앞으로 천일을 기점으로 양아치 새끼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생각이래. 내가 살짝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만약 본인 계획에 가담할 애들이 있다면 받아 줄 생각이 있는 것 같더라고.”

“뭔 일진 만화 같은 일이냐고? 김시우를 봐. 걔도 어찌 됐든 박진우 바르고 장학금을 받았잖아?”

정말 이상한 소문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영민이 천일의 왕으로 군림했지만, 그래도 대산이라는 지역은 학교 간의 파벌이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각 학교의 짱은 존재해도 서로 싸우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마치 거대한 세력을 형성할 것이라는 듯한 말에, 학생들 대부분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게 상식적이었다.

성적으로 전교에서 1등인 김현성이, 명진건설이라는 든든한 뒷배를 둔 김현성이.

학교 폭력이라는 같잖은 일에 인생을 허비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두가 소문을 흘려듣는 것은 아니었다.

괴물 고릴라 배성호.

김현성에게 패배하고 암흑기를 보내고 있던 그가, 느닷없는 소문에 관심을 보였다.

‘김현성이 사람을 모은다고?’

솔깃했다.

최근.

그는 완전히 갈피를 잃어버렸다.

딱히 운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그동안 타고난 피지컬을 바탕으로 알량한 권력을 누리며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모두 사라져 버릴 허상 같은 권력이었지만, 신영민을 열심히 보좌해서 브로커의 자격만 따낼 수 있다면 자신에게도 분명히 장밋빛의 미래가 기다릴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신영민의 패배로.

완전히 망해 버렸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고, 김현성으로 인해 예전처럼 목에 힘을 주고 다닐 수도 없었다.

‘만약 김현성에게 잘 보인다면 나도 김시우처럼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인가? 정말 대신 싸워 줄 애가 필요한 거면, 진심으로 잘할 자신 있는데. 김현성이니까 패배했지, 내가 어디 가서 약하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은 없잖아.’

고민에 빠졌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자존심의 문제로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학교가 끝나기 전.

배성호는 촉새를 불러들였다.

소문의 시작점을 통해 진실을 확인할 생각이었는데, 조재진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이니까 특별히 말씀드리는 건데, 김현성은 천일을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 생각이에요. 이 천일의 전력을 바탕으로 주변 학교를 완전히 쓸어버리려는 거죠. 만약 그 과정에 자신을 보좌할 만큼의 힘과 충성도를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현성이는 그만한 대우를 해 줄 게 분명해요. 시우 봐요. 걔는 선배님처럼 대단하지도 않은데 장학생으로 선발되었잖아요. 장학금이 얼마인지 아세요? 단발성이기는 해도 무려 천만 원이에요, 천만 원!”

배성호의 표정이 변했다.

천만 원이라니.

골든 서클의 의뢰와 비교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챙길 자존심도 없는 지금, 막막한 미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과거 전적이었다.

김현성과 한번 싸웠기 때문에, 자신을 받아 줄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부딪쳐 봐야지.’

배성호는 벼랑 끝에 있었다.

아무래도, 김현성을 직접 만나 봐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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