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51화 (51/130)

11. 철옹성(鐵甕城) (3)

학교 밖.

배성호가 교문 앞을 서성거렸다.

학교가 끝나고 삼삼오오 모여서 나오는 학생들은, 배성호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시선을 피했다. 아무리 김현성에게 패배했다고 한들 괴물 고릴라의 명성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괜히 시비가 붙었다간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에, 배성호는 여전히 학생들에게 기피 대상이었다.

그런 분위기와는 별개로.

배성호는 아직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김현성이 자신을 받아 줄지를 떠나서, 김현성이라는 인간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애들은 신영민 선배의 사건과 김현성이 무관하다고 말하지만, 그건 분명히 김현성과 관련이 있어.’

사건 전.

김현성은 3학년 교실을 찾아갔다.

신영민을 괴롭혀도 책임져 주겠다고 말했고, 그 이후에 신영민은 느닷없이 박민철 패거리를 공격하다가 칼을 맞았다. 배성호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신영민이 묵묵히 괴롭힘을 당한 것도, 박민철 패거리를 궁지로 밀어 넣을 만큼 괴롭혔던 것도.

김현성이라는 전제가 깔려야 이해가 되었다.

진심으로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영민을 쓰러트리면서 천일의 왕좌에 올랐는데도, 악착같이 한 사람의 인생을 끝내 버리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난 이 기회를 포기할 수 없어. 속물로 유명한 오대환과 김영철이 김현성에게 헌신하는 이유는 그만큼 받아먹었기 때문이야. 김현성은 마냥 깨끗한 사람이 아니라, 본인을 위해서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충분한 보상을 주는 사람이 분명해.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는다고, 촉새가 말한 소문이 그냥 나오진 않았겠지.’

18살.

평범한 학생들은 학업에 집중하고 정상적인 미래를 꿈꿀 나이지만, 배성호는 신영민에게 충성했을 만큼 정상 범위에 존재하지 않았다. 인터넷 매체를 보면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어둠의 세계. 항상 그 세계를 동경했기에, 골든 서클의 브로커로 살겠다는 무모한 꿈을 꾸었다.

지금은 무산된 꿈이다.

새로운 미래를 그려나가야 하는 이 상황에, 내세울 건 몸밖에 없는 그로서는 뭐라도 해야만 했다.

때마침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한 배성호는, 이를 악물더니 다시 고개를 돌렸다.

마음을 굳게 먹었다.

걸음을 옮겨 김현성의 앞을 막았다.

“……현성아. 할 말이 있는데 혹시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조심스러운 말투.

잔뜩 움츠러든 얼굴.

김현성이 배성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배성호에게는 마치 억겁과도 같은 시간이었고, 김현성은 배성호를 지나쳐 걸으며 말을 툭 내뱉었다.

“따라와.”

그 말에.

배성호는 황급히 김현성의 뒤를 쫓아갔다.

* * *

골목길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그곳에서, 배성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단 먼저 지난 일부터 사과할게. 사실 네게 큰 악감정은 없었는데, 신영민 선배가. 아니, 그 개새끼가 널 공격하라고 해서 어쩔 수 없었어. 너도 잘 알잖아. 신영민이 천일에서 악마 선배라고 불렸던 거. 괜히 반항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그런 일을 벌였던 거야.”

“알겠으니까, 본론부터 말해.”

“알겠어.”

김현성의 반응은 담담했다.

도저히 감정을 예측할 수 없는 반응에, 배성호는 숨을 고르더니 본인의 생각을 내질렀다.

“내가 소문을 하나 들었는데, 네가 정말 천일을 기점으로 주변 학교를 정리할 생각이라면 날 받아 줄 수 있을까? 너로서는 이 상황이 정말 황당할 거야.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죽일 듯이 싸우던 사이였는데,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게 이상하겠지. 그냥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돈이 필요해. 딱히 어디에 쓸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신영민을 따라서 싸움판을 전전했던 것도 돈을 벌고 싶어서였어. 그러니까 네 목적이 ‘말 잘 들으면서 싸움도 곧잘 하는 애’가 필요한 거라면 난 어때?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자신 있어.”

시선을 빤히 마주쳤다.

배성호는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아까 말을 걸었을 때도 그렇고, 김현성은 말을 최대한 아끼면서 자신의 반응을 떠보는 것 같았다.

잠깐의 침묵.

배성호가 안절부절못하며 처분을 기다리자, 이윽고 김현성이 입을 열었다.

“내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애들 말로는 신영민의 계획을 네가 구상했다던데. 그게 사실이야?”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김현성의 말.

사실이었다.

신영민이 후배들을 굴다리로 불러들였을 때, 배성호는 신영민을 향한 충성심으로 김현성을 무너트릴 계획을 말했다.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다. 상황이 상식적으로 흘러갔다면, 아무리 천일 고등학교가 김현성의 뒤를 봐준다고 할지라도 모든 문제를 막아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배성호는 괴물 고릴라라는 외형과는 다르게 머리가 제법 돌아갔다.

계획을 구상해 낸 것도 그렇고, 지금도 진실을 말하는 게 정말 옳은 일인지 머릿속으로 저울질을 했다.

‘거짓말은 안 돼.’

김현성의 물음은.

어디서 진실을 들었다는 의미다.

먼저 말을 잘 듣는 수족이 되겠다고 했는데, 시작부터 거짓을 말할 수는 없었다.

“……맞아. 내가 계획했어.”

“재밌네. 만약 그 계획대로라면 선봉장이었던 너는 반드시 징계를 받았을 텐데, 그런 상황을 감당할 자신도 있다는 의미인가? 알잖아. 박민철 패거리 때처럼 그냥 끝나지는 않았으리라는 걸.”

“그때는 그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했어. 결과로써 증명하면, 나는 신영민의 신임을 얻을 테니까.”

예상대로였다.

배성호는 생각보다 매력적인 존재였다.

근본이 쓰레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행동하는 능력이 있었다. 만약 징계위원회의 처벌을 받았다고 한들. 그의 계획대로 자신을 무너트릴 수만 있었다면, 배성호는 분명히 골든 서클의 영입 제안을 받아 원하는 바를 이루었을 것이다.

김현성은 새로운 삶을 살며.

세 가지의 조건을 갖추고자 했다.

첫 번째는 본인의 무력, 두 번째는 골든 서클을 상대할 세력, 세 번째는 문제를 무마시킬 배경.

본인의 무력은 정두철 체육관에서 매일같이 피땀을 흘렸고, 문제를 무마시킬 배경은 고창범을 통해 어느 정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골든 서클을 상대할 세력을 갖추어야 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 세력에는 김시우같이 호의로 다가오는 사람들로만 구성할 수는 없다.

생각해 보라.

학교 폭력.

일진들을 쓸어버리겠다는 그 계획에,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학생들이 대체 왜 가담하겠는가.

자신이든, 김시우든.

아니면 애초에 쓰레기처럼 살았던 배성호든.

나사가 하나 빠져야 가능한 일이었다.

세력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가 얼마나 쓰레기인지가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계획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느냐. 그만큼 활용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가 먼저였다.

초조해 보이는 배성호.

괴물 고릴라라는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거대한 피지컬은 야수를 연상시켰지만, 그는 신영민을 따랐던 것처럼 통제가 가능한 인물이었다.

김현성이 말했다.

“널 받아 줄 의향은 있어. 단, 내가 내는 시험에 통과한다면 말이야.”

* * *

장소를 옮겼다.

정두철 체육관이었다.

정두철이 자리를 잠시 비운 상황에, 김현성은 링에 올라온 배성호에게 글러브를 하나 던져 주었다.

툭.

“껴.”

“이건 왜……. 아, 알겠어.”

황급히 글러브를 착용했다.

김현성도 익숙하게 글러브를 착용하더니, 배성호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나는 너 같은 쓰레기들이 정말 싫어. 그런데도 널 받아 준다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하나야.”

“그게 뭔…….”

빠악!

얼굴을 날려 버렸다.

배성호는 대답하다 말고 고개가 홱 돌아갔고, 당황한 얼굴로 일단 가드를 올렸다.

빠악!

퍽, 퍽, 퍽!

주먹이 계속해서 작렬했다.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배성호의 귀로, 김현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 잘 듣는 개. 내가 뭘 시키든, 이렇게 일방적으로 구타하든. 조금도 의문을 보이지 않고 무조건 따르는 개. 내가 내주는 보상에 혀를 헥헥 내밀고, 몽둥이를 들었을 때도 꼬리를 흔드는 개.”

빠악-!

“우욱.”

복부에 주먹이 파고들었다.

배성호는 눈을 부릅뜨며 이를 악물었지만, 그렇다고 김현성에게 대항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김현성의 말.

노골적이었다.

버티라는 의미였다.

이유 없는 폭력일지라도.

주인인 자신에게 꼬리를 흔들며 받아들이라고 말했다.

“네가 날 찾아온 이유는 장학금과 관련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겠지. 그거 알아? 그거 내가 낸 소문이야.”

빠악-!

“그리고 사실이기도 하지. 난 신영민이랑 다르게 너희에게 지금이라도 당장 충분한 돈을 줄 수 있어. 내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김시우가 장학금을 받은 것처럼, 너희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확.

빠악-!

얼굴에 니킥이 작렬했다.

얼굴이 뒤로 젖혀지며 피를 흩뿌렸지만, 여전히 배성호는 반항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 앞에서 양아치 기질을 드러내는 씨발 새끼들은.”

콱.

머리를 붙잡았다.

얼굴을 고정한 채로, 주먹을 계속해서 날렸다.

퍽, 퍽, 퍽!

“도저히 용납되지 않거든. 그러니까 너는 학교에서 순한 개처럼 굴어야 해. 내가 지정하는 상대만 물어뜯는 맹견처럼. 집에서는 얌전한데, 밖에서는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는 맹견처럼. 난 그런 개새끼를 위해서는 충분히 보상할 의향이 있어. 내게 꼬리를 흔들 수밖에 없을 정도의 보상을.”

빠악!

배성호가 비틀거렸다.

의지는 충분히 증명했다.

이제는 가드까지 내려놓고 맞는 그 모습에서, 배성호는 개가 될 자질을 보였다.

털썩.

배성호가 무너져 내렸다.

바닥에 널브러져 숨만 헐떡였고, 얼굴은 엉망이 되어 이전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위로.

뚝, 뚝.

피가 흘러내렸다.

글러브에 맺힌 피에, 김현성은 글러브를 벗어 던지며 배성호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고는.

쩌억-

그의 머리칼을 잡아끌어 올렸다.

바닥에 눌어붙은 핏물이 그의 얼굴과 같이 딸려 올라왔지만, 김현성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씰룩, 웃었다.

앞으로 시간이 흘러도.

배성호로서는 절대 잊지 못할 웃음이었다.

“어때, 할 수 있겠어?”

* * *

그날 저녁.

박진우는 느닷없는 호출을 받았다.

배성호의 명령이라는 것만 알았는데, 막상 굴다리에 도착한 그는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왜 3학년 선배들도 있지?’

이번 집합.

배성호가 주도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학년 위의 선배들은 포함되지 말아야 하는데, 3학년 선배들조차도 삼삼오오 모여 불만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로서는 당연히 짜증이 치밀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신영민이 소년원에 들어갔다지만, 새파랗게 어린 후배가 자신들을 일방적으로 부른 것이니 말이다.

“왜 씨발 우리를 오라 가라야.”

“영민이 없다고 기어오르네.”

“차라리 잘됐어. 김현성은 논외로 치고, 오늘 배성호나 애들 기강 좀 확립하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1학년과 2학년들은 차마 입을 열지 못했고, 초조한 기색으로 배성호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러길 10분.

멀리서 걸음 소리가 들렸다.

“왔다.”

“배성……. 어?”

“쟤 얼굴이 왜 저래?”

배성호를 필두로.

2학년 실세들이 굴다리로 걸어왔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예상했던 상황인데, 배성호의 얼굴이 알아보지 못할 만큼 처참하게 변해 있었다. 분명히 하교할 때까지만 해도 정상이었던 얼굴이다. 그렇다면 하교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인데, 3학년 선배들조차도 당황해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늠하질 못했다.

우뚝.

배성호가 걸음을 멈추었다.

늘 신영민이 얘기하던 자리에 서더니,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을 향해 말했다.

“딱 한 번만 얘기할게. 너희 3학년들도 잘 들어.”

“너희 3학년? 이 씹…….”

3학년의 반응은 무시했다.

뭐라고 말하든, 배성호는 말을 이어 갔다.

“나는 오늘부로 김현성을 따르기로 했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제 천일 고등학교에 중간이란 존재하지 않을 거야. 김현성을 따르든, 따르지 않든. 좀 논다는 애들은 두 부류만 존재하게 될 거야. 그러니 따르지 않을 사람들은 지금 당장 거수해.”

충격적인 전개였다.

아직 상황을 채 받아들이기도 전에.

“지금 이 자리에서 모조리 죽여 버릴 테니까.”

배성호가 살의 어린 표정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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