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서울에서 온 전학생 (1)
최태준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교장실 이곳저곳을 훑어보는 그 모습에, 오대환이 표정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태준이라고 했지? 원래 이 시기에 전학 오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인데, 서울 교육감님 부탁으로 천일에서 특별히 받아 주었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어. 그런데…… 혹시 교육감님이랑 무슨 사이인지 알 수 있을까?”
“아버지 친구예요.”
“친구?”
“예.”
퉁명스러운 대답이었다.
오대환은 본능적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서울 교육감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데, 동창을 통해서 한 학생을 받아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는 명백하게 부당한 행위다. 만약 자신이 걸고넘어진다면 서울 교육감에게도 문제가 생길 텐데, 자연스럽게 부탁하는 모습을 보니 서울 교육감도 자신과 비슷한 부류인 것 같았다.
문득.
김영철의 말이 떠올랐다.
“형님. 현성이가 말하길, 서울에서 내려오는 사람은 학생이든 선생이든 조심하랍니다. 골든 서클이라는 집단이 서울을 중점으로 활동하는데, 이례적인 행보를 보이는 애들은 웬만해서는 그쪽 소속일 확률이 높다고요. 정말 조심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김현성과 한배를 탔잖아요.”
마른침을 삼켰다.
슬쩍, 최태준의 얼굴을 살폈다.
골든 서클의 존재는 오대환에게도 충격적이었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해 줄 생각은 없었다. 지역의 텃세였다. 골든 서클이 대단한 집단이든 말든, 서울 녀석들이 대산에 내려와서 본인들 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처음부터 자신에게 양해를 구하고 의뢰를 진행했다면, 김현성은 조금 더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것이다.
끼익.
몸을 기댔다.
살짝 올라간 눈썹이 불만을 드러냈다.
“최태준 학생.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해 두지.”
“뭘 말입니까?”
“천일은 대산 제일의 명문이야. 만약 이 학교에서 규율에 어긋나는 잘못을 저지른다면, 아무리 서울 교육감이 아버지 친구라고 해도 용서하는 법은 없을 거야. 최근에 이미 퇴학당한 학생만 여럿일 정도로, 우리는 학생의 선도에 진심이거든. 뭐, 몇몇 선생들이야 강력한 처벌만이 선도의 정답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원래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오냐오냐해서는 안 돼.”
“알겠습니다.”
최태준도 알았다.
천일이 얼마나 썩었는지를.
오대환의 경고를 담담하게 넘긴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서 전 몇 반으로 가면 되는 거죠?”
* * *
최태준은 5반으로 배정되었다.
1교시가 시작되기 전에, 5반 친구들에게 본인을 소개했다.
“반갑다. 난 최태준이야. 서울에서 왔고 앞으로 잘 지냈으면 좋겠어.”
날카롭게 생긴 얼굴.
건장한 체격.
자기소개가 다소 퉁명스러울지라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느낌이었다.
짧지만 임팩트 있는 소개를 끝마치고 자리로 가려는데, 최태준은 문득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박진우?”
“……최태준?”
과거의 인연이었다.
1교시를 설렁설렁 보내고 쉬는 시간을 맞이하자, 최태준은 곧바로 박진우와 같이 학교의 으슥한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선배들은 물론이고 동급생들도 잘 다니지 않는 장소. 그곳에서 익숙하게 담배를 물더니, 박진우가 반갑다는 얼굴로 말을 걸었다.
“아니, 그런데 진짜 얼마 만이냐? 한 6개월 전에 모임에서 봤던 거 같은데.”
“그러게. 그때 진짜 재밌었는데.”
최태준이 피식 웃었다.
6개월 전.
최태준은 서울에서 한 모임을 가졌는데, 그때 지방에서 좀 싸운다는 애들 몇몇도 불러들였다. 일종의 친목 도모였다. 당시 성동구에서 큰 파란을 일으키고 ‘골든 서클’에 들어갔던 최태준은, 나중에 의뢰를 위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인맥을 급격하게 늘려 갔다.
대산의 박진우.
사실 눈여겨볼 인물은 아니었다.
웬만해서는 대산까지 내려갈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도 박진우를 만나게 되었다.
‘그때는 쓸데없는 인맥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인생은 재밌었다.
최태준은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쪼그려 앉은 박진우를 내려보았다.
“여기 분위기는 어때? 네가 여기 짱이라고 하지 않았나?”
“어, 어……?”
박진우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때는 짱이 맞았다.
천일 1학년 중에서는 자신에게 대항할 사람이 없었지만, 그 6개월 사이에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일까. 박진우는 선뜻 진실을 내뱉을 수 없었다. 잠시 입술을 달싹이며 고민하더니, 시선을 슬그머니 내리깐 채로 질문에 답했다.
“……당연히 내가 짱이지. 여기 분위기 뭣도 없어. 그냥 일반적인 지방 학교고, 교장이 명문 욕심이 있어서 나름대로 교육열이 조금 세. 그런 것치고는 개나 소나 들어오는 학교라서 나 같은 학생도 존재하고. 아, 그런데 조심해야 할 건 있어.”
자연스럽게.
마치 아무것도 아닌 일인 것처럼.
“여기 김현성이라고 있거든? 웬만하면 걔는 건드리지 마. 싸움을 잘하기도 하는데, 걔 배경이 진짜 장난 아니야. 대산에 명진건설이라고 엄청 큰 기업이 있는데 그쪽 장남이 김현성의 후견인이고, 교장과 담임이 뭘 받아먹었는지 김현성을 일방적으로 챙기거든. 만약에 걔랑 어깨라도 부딪힌 날에는, 감히 김현성의 어깨를 상하게 했다는 이유로 네가 징계를 받을지도 몰라.”
“뭐야, 천일의 왕이라도 돼?”
“……그 정도는 아니고.”
최태준은 순간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삼켰다.
그는 진실을 알았다.
이미 정찬수를 통해 천일의 정보를 받았고, 박진우가 아닌 김현성이 천일의 짱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다고 굳이 박진우의 자존심을 헤집을 필요는 없었다. 이곳에 자신을 기억하는 인맥이 존재하는 것은, 앞으로의 계획에 제법 유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태준이 손가락으로 다 타들어 간 담배를 튕겨 냈다.
“어찌 됐든 반갑네. 잘 지내 보자, 진우야.”
* * *
수업은 정말 지루했다.
앞에서 선생님이 뭐라고 떠들든, 최태준은 전학 첫날부터 본인만의 상상에 빠져들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까?’
이번 의뢰.
이례적이었다.
지방에서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성동구에서 떠오르기 시작한 자신에게까지 의뢰 제의가 들어왔다. 내용은 천일에 딱 반년만 내려가서 김현성이라는 존재를 완전히 짓밟아 버리라는 것. 학교에서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할 정도로 만들라는 것이 의뢰의 목적이었다.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박진우, 배성호, 신영민.
이런 애들은 껌이었다.
성동구에도 피지컬이 좋고 운동을 전공한 애들이 많았지만, 그들 전부 최태준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박살이 났다. 특히 운동부와의 집단 패싸움. 홀로 레슬링부를 한바탕 뒤엎어 버리면서, 성동구 1학년에 최태준이라는 애가 예사롭지 않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골든 서클 자체적으로 진행한 테스트에서도 무려 ‘B등급’을 책정받는 쾌거를 이룩했다.
B는 전국적인 수준.
A는 상위 0.1%
S등급은 언터처블(Untouchable).
골든 서클의 등급 체계다.
B등급도 몇 존재하지 않기에, 최태준의 자신감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이번 의뢰는 단순히 싸움을 한 번 이겼다고 끝나는 게 아니야. 적당히 시비를 걸어서 밟아 주고, 주변 분위기를 주도해서 김현성을 밑바닥으로 끌어내려야 해. 이곳에서는 학업에 집중할 수 없도록, 학교라는 공간이 끔찍하게 싫어지도록. 그렇게 만들어야 의뢰에 성공할 수 있겠지.’
승리를 자신했다.
물론.
걱정되는 게 없는 것은 아니다.
정보에 의하면, 오대환 교장과 김영철을 필두로 천일 전체가 김현성의 뒤를 봐준다고 했다. 한바탕 제대로 붙어서 승리한다고 해도, 아침에 오대환이 경고했던 것처럼 곧바로 징계위원회가 열린다면 자신의 학업은 끝. 의뢰를 성공시키기는커녕 퇴학의 꼬리표가 붙을 것이다.
그에 관해서는 정찬수가 답을 주었다.
서울 교육감과 연계하여, 징계위원회가 열리면 어떻게든 중간에서 무마시켜 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너무 교육감만 믿고 과감하게 일을 벌였다간 문제가 커지겠지. 자연스럽게, 학교 내부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학생들의 싸움처럼. 김현성을 짓밟아 1학년 짱을 확실하게 먹고, 박진우 같은 애들을 내세워서 김현성을 외톨이로 만들어 버린다면 선생들도 어찌할 방법이 없겠지.’
생각할수록 박진우의 존재가 유용했다.
그가 기억하는 박진우는 자신과 비슷한 부류였고, 잘만 이용한다면 상황이 쉽게 풀릴 것 같았다.
계획을 길게 끌 생각은 없었다.
정찬수는 반년이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자신은 반년이나 이 대산이라는 촌 동네에서 썩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서울로 돌아가서 등급을 향상. A를 넘어 언터처블로 등극한 뒤에, 골든 서클이 부여하는 부와 명예를 누리고 싶었다. 사실 이번 의뢰를 받아들인 이유도, 정찬수의 부탁을 한번 해결해 줌으로써 서울에서 자신의 입지를 공고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골든 서클의 브로커들.
그들에게도 파벌이 존재했다.
아무런 끈이 없는 최태준은, 정찬수라는 끈을 붙잡아 도약할 발판을 마련하고자 했다.
수업이 끝났다.
최태준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참 자고 있던 박진우를 깨워 말했다.
“혹시 다른 반들 구경시켜 줄 수 있어?”
* * *
8반부터 1반까지.
차례로 방문했다.
마지막 1반에 도착한 상황에, 박진우는 살짝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가 1반이야. 담임은 김영철이고, 내가 말했던 ‘김현성’이 이 반이기도 해.”
박진우로서는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김현성과의 싸움 이후로 그에게 다가오는 친구들이 거의 없었는데, 이렇게 최태준이라는 새롭고 강한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평소에 하지도 않는 일을 받아들였다. 성심성의껏 친구를 안내하며, 천일이 어떤 세상인지를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그래?”
최태준이 1반으로 들어섰다.
다른 반과는 다른 모습이었고, 박진우가 살짝 누군가의 눈치를 보더니 최태준을 따라 들어갔다.
최태준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특별할 건 없었다.
그러다, 한곳에서 시선이 고정되었다.
‘김현성.’
익숙한 얼굴이었다.
사전에 전달받은 자료로 확인했던 그 얼굴.
최태준이 씰룩, 웃었다.
갑작스럽게 김현성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박진우가 다급하게 최태준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김현성 앞에 도달한 상태였다.
“야.”
“…….”
“나한테 불만 있냐? 개새끼가 기분 더럽게 사람을 꼬라보네?”
순간.
1반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박진우는 물론이고 모두가 이곳을 바라보았고, 김현성은 자리에 앉은 상태로 담담하게 최태준을 올려다보았다.
김현성이 말했다.
“의도적이네?”
“뭐?”
“난 네 눈을 쳐다본 적이 없는데. 애초에 마음에 들지 않고서야 이럴 이유가 없잖아.”
“하-.”
최태준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김현성의 말대로였다.
김현성은 자신을 쳐다본 적이 없었지만, 최태준은 어떻게든 김현성과 싸워야만 하는 명분이 필요했다.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다. 혈기 왕성한 나이의 싸움이라는 것은 적당한 수준의 명분만 존재한다면,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이 모든 것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명분과 결과.
학교에서의 입지 모두.
최태준이 말하려는데, 김현성이 먼저 말을 끊었다.
“그런데 너, 지금 한 짓 감당할 수 있겠어?”
“그게 무슨…….”
이번에도 말을 채 끝낼 수 없었다.
확-
몸이 돌아갔다.
강력한 힘에 몸이 딸려갔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강력한 충격이 얼굴을 강타했다.
빠악!
콰당!
바닥을 나뒹굴었다.
의자와 책상과 한데 뒤엉키며 볼품없이 나가떨어졌고, 최태준은 표정을 사납게 일그러트리며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을 때린 ‘누군가’에게 복수하려는데, 그는 정말 황당한 광경을 목격했다.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는 김현성.
그리고 그 앞에서 창백한 얼굴로 사정하는 박진우.
“현성아. 진짜 내가 미안해. 의도해서 데려온 게 아니라, 저 새끼가 자기 멋대로 이런 일을 벌였어.”
그건 정말.
상식적이지 못한, 너무나도 이상한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