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55화 (55/130)

12. 서울에서 온 전학생 (3)

최태준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건 또 뭔 상황이란 말인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빤히 바라보고 있자, 배성호의 시선이 최태준을 향했다.

“너구나, 전학생. 미친 새끼처럼 현성이한테 시비를 걸었다는.”

“아 씨.”

머리를 벅벅 긁었다.

짜증이 치밀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박진우와 마찬가지로 김현성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이렇게 몰려든 것 같았다. 대체 김현성이 얼마나 대단한 놈이기에 이런단 말인가. 아무리 싸움을 잘한다고 해도, 상식적으로 이렇게까지 감싸고 도는 것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최태준이 말했다.

“진짜 너희 전부 약이라도 빨았냐? 김현성 하나 건드렸다고 박진우도, 저 안경잡이도, 그리고 우르르 몰려든 너희도. 김현성 하나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지랄하는 게 말이 돼?”

“어, 말 돼.”

“씨발.”

쾅!

우당탕!

신경질적으로 책상을 걷어찼다.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살벌하게 변했다.

홀로 궁지에 몰린 상황인데도, 최태준은 전혀 움츠러드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말이 된다고 치자. 그런데 이유나 좀 말해 주라. 이 X 같은 상황에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야, 전학생.”

배성호가 목을 풀었다.

드득, 드득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굉장히 의도적으로 천일에 들어온 것 같은데, 이유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아. 이곳은 천일(天日)이고, 천일에서 김현성을 건드려서는 안 돼. 그뿐이야.”

교실로 들어섰다.

성큼성큼 걸어오는 그 모습에, 더는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계획은 실패였다.

박진우를 포섭해 김현성을 궁지로 몰아넣고, 천천히 김현성의 세상을 무너트리겠다는 최태준의 계획은 전학 첫날부터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최태준은 본인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골든 서클 B등급.

정찬수가 굳이 그를 전학시킨 데는 이유가 있었다.

시야에 보이는 모두가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는데도, 최태준이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래, 씨발. 갈 데까지 가 보자고.”

지금부터는.

모 아니면 도였다.

* * *

파팟.

선공은 최태준이었다.

상대의 거대한 체격을 보고도 먼저 달려들더니, 그대로 날아올라 상대에게 발차기를 작렬시켰다.

빠악-

배성호가 그대로 튕겨 나갔다.

타이밍도 파괴력도 상당한 공격이었고, 배성호는 뒤로 밀려나다가 곧바로 치고 들어오는 최태준을 발견하고는 주먹을 휘둘렀다. 순간 부웅- 하는 섬뜩한 소리가 공간을 갈랐다. 최태준은 이따위 공격에는 당하지 않겠다는 듯이 슥 피하더니, 비어 있는 복부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퍼억!

움푹 파고들었다.

웬만한 맷집으로는 곧바로 무너질 만한 공격인데도, 배성호는 이를 악물며 최태준을 연달아 공격했다.

퍽.

빠악, 빠악!

가드 위로 주먹이 작렬했다.

괴물 고릴라라는 명성답게, 거대한 체격에 어울리게.

배성호의 파괴력은 대단했다.

기세 좋게 달려들던 최태준이 뒤로 밀려났고, 배성호는 기회라는 생각에 빠르게 공간을 파고들었다.

파앗-

몸을 붙잡으려 했다.

박진우와 같은 패턴이었다.

거대한 체격을 활용해, 최태준을 제압하려 했다.

“뻔하네.”

빠악!

“컥.”

턱에 주먹이 작렬했다.

빗나가서 다행이지, 제대로 얻어맞았다면 그대로 주저앉을 만한 공격이었다.

배성호?

대산이라는 우물 안에서는 강자로 평가받았다.

실제로 신영민을 제외하고는 적수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게 최태준이 살았던 대해(大海)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배성호 정도의 파괴력도, 배성호 정도의 거대한 체격도. 서울에서는 흔했다. 그 정도의 조건을 갖추어야 골든 서클에 비벼 볼 수라도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최태준은 B등급을 거머쥐었다.

발아래 수많은 괴물을 두었기에, 그는 비로소 강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크읍.”

배성호가 황급히 신음을 삼켰다.

후속 공격을 막아 보려고 했는데, 최태준의 주먹이 어느새 그의 얼굴을 강타했다.

빠악.

고개가 돌아갔다.

빠악, 빠악!

연달아 주먹이 작렬하더니, 순간적으로 배성호의 머리칼을 붙잡고는 바로 옆에 있던 책상에 찍어 버렸다.

콰직!

“악!”

비명이 들렸다.

배성호가 스프링처럼 한 번 튕겨 나가더니, 그대로 바닥에 무너지고 말았다.

사실상 끝났다.

배성호의 패배는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최태준을 감당할 수 없음을 의미했지만, 최태준의 예상과는 다른 상황이 전개되었다. 손을 털며 고개를 도는 순간, 다른 2학년들이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공격해!”

훙!

훙, 훙.

주먹을 흘려보냈다.

시야에 잡히는 것만 다섯 명.

진짜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네 씨발 비열하기까지 하네? 일대일은 국룰 아니냐?”

빠악-!

선두에서 달려들던 2학년이 그대로 날아갔다.

구석에 처박히는 모습에 섬뜩한 기분이 들었지만, 2학년들은 마치 결사(決死)의 항전이라도 하듯이 동시다발적으로 달려들었다. 수적 우위 덕분에 공격이 적중되었다. 최태준으로서는 사방에서 치고 들어오는 모든 공격을 막아 낼 수는 없었지만, 그에게는 그것을 버틸 만한 맷집이 있었다.

퍽.

얼굴을 맞고.

빠악-!

그대로 돌려주었다.

2학년의 공격은 조금도 타격을 입히지 못했는데, 최태준의 공격은 어김없이 상대를 기절시켰다.

한 명, 한 명.

차례로 제압해 나갔다.

처음에는 수적 우위를 내세워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던 2학년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주춤하는 반응을 보였다. 머리로는 최태준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를 상대하면 상대할수록,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게 각인되었던 ‘한 존재’의 모습이 떠올랐다.

‘신영민.’

똑같았다.

아니, 더 파괴적이었다.

배성호와 같은 강자들을 짓밟고 천일을 군림했던 그 괴물도, 단 한 번의 싸움에서 이와 같은 파괴력을 보여 준 적이 있었다. 최태준은 신영민과 같은 맥락의 존재였다. 압도적인 실력을 보유했기에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고, 오히려 달려드는 모두를 때려눕히며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미친.”

“이, 이거 안 되겠는데?”

주춤거렸다.

다들 망설이는 반응을 보였다.

2학년들이 속속들이 도착했지만, 널브러지는 숫자가 늘어날수록 수적 우위는 전혀 살리지 못했다.

콱.

최태준이 멱살을 틀어쥐었다.

그러고는.

빠악, 빠악, 빠악!

연속해서 얼굴을 가격했다.

피가 터지고 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모두에게 보란 듯이 잔인한 손속을 증명했다.

툭.

털썩.

축 늘어진 2학년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이미 교복은 피로 흠뻑 물들었지만, 특별한 상처 하나 없이 최태준이 손에 묻은 피를 털었다.

“계속해 봐. 모조리 죽여 줄 테니까.”

분위기를 압도했다.

단 한 명이.

천일을 완전히 집어삼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때.

“……아직 안 끝났어.”

익숙한 목소리였다.

뒤를 돌아보자, 배성호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최태준을 노려보고 있었다.

* * *

배성호에게 충성심이란 없었다.

다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골든 서클의 자객으로 보이는 전학생을 제압하면 고창범이 내게 어떤 보상을 해 줄까?’

일주일 전.

배성호는 3학년 교실을 뒤엎었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기에 저질렀던 건데, 그날 저녁에 고창범으로부터 한 통의 문자가 왔다.

[그렇게만 해.]

[입금 1,000,000원]

특별한 의미는 아니었다.

김현성을 보좌하는 사람 중에 제일 열성적이기에, 김현성과 상의해서가 아니라 고창범이 자발적으로 용돈을 챙겨 주었다. 배성호는 그때 깨달음을 얻었다. 김현성과 고창범이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창범의 마음은 진심이고, 그는 김현성을 위해 무엇이든 해 줄 사람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최태준을 때려눕혔을 때의 보상은 어떨까?

대단할 것이다.

고창범은 일이백으로 입을 닦을 사람이 아니다.

사실 그런 이유로 2학년들이 악착같이 최태준에게 달려들었다.

배성호가 장학금에 이어 계속 용돈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들도 김현성 눈에 들려고 발악했다. 어차피 신영민이 군림했던 시절처럼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 한다면, 차라리 제대로 된 보상이라고 받고 싶었다. 최근 들어서 남들을 괴롭히지 못하는 상황에 답답함이 있었지만, 예전처럼 신영민에게 불려 가지도 않고 본인들의 희생에 보상이 돌아온다는 사실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아직 안 끝났어.”

배성호가 힘겹게 일어났다.

머리에서 피가 뚝뚝 흐르고 현기증이 일었지만, 최태준을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건 충성심의 발로가 아니야.’

대가성의 거래다.

설령 최태준을 쓰러트리지 못한다 한들.

본인의 의지라도 보여야 했다.

자신의 개가 주인을 위해 충성을 다한다면, 주인은 개를 예쁘게 여겨 간식이라도 챙겨 주지 않겠는가.

배성호가 말했다.

“모두 똑똑히 들어. 전학생은 신영민보다 괴물이야. 우리가 전부 달려들어도, 저 새끼 한 명을 쓰러트리지 못할지도 몰라. 그런데 그렇다고 꼬리를 말면 현성이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의지도 없는 쓰레기로 볼 거야. 그렇게 학교생활은 물론이고, 그 이후의 미래도 보장받지 못하겠지.”

빠득.

이를 악물었다.

스파링하고 오백.

장학금으로 천.

용돈으로 백.

짧은 사이에 천육백을 벌었다.

고등학생의 나이에 상상도 할 수 없는 돈이다.

희열을 느꼈다.

이런 관계를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배성호가 탐욕으로 얼룩진 눈빛을 보이며, 최태준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니 개같이 발리더라도 끝까지 저항해. 여기는 천일이고,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야. 크아아아-!”

팟.

타타타탁.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것이 시발점이었다.

배성호를 시작으로, 2학년들이 미친개처럼 동시다발적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같잖은 새끼들이네, 진짜.”

최태준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

* * *

빠악-!

“크악.”

콰당!

싸움의 결말은 뻔했다.

결국엔 배성호마저도 쓰러졌다.

천일의 이인자인 배성호와 2학년이 열 명 넘게 달려들었는데도, 최태준은 그들 모두를 쓰러트렸다.

“후우-.”

숨을 크게 내쉬었다.

최태준으로서도 버거운 싸움이었다.

얼굴에 상처가 제법 남았지만, 그래도 그는 단 한 번도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 상황이 정말 질렸다.

고등학교 싸움에서 패배를 알고도 달려드는 건 쉽지 않은데, 배성호와 2학년 패거리는 마치 광신도와도 같았다. 하나같이 미친 새끼들이었다. 어떤 약을 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녀석들의 숫자가 지금보다 많았다면 최태준으로서도 매우 위태로웠을 것이다. B등급은 개인의 강함을 증명하는 수치지만, 개인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다수’를 상대로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슥.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닥에 널브러져 신음을 삼키는 선배들과 두려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천일의 학생들.

‘계획이 심각하게 틀어졌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정보에 의하면 김현성과 한바탕 붙었던 박민철 패거리, 신영민 모두.

명백한 폭력의 현장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오대환이 김현성을 대놓고 감싸 주다 보니, 자신도 그와 같은 상황을 경험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 쓰레기들이 이 상황을 그냥 넘어갈 리가 없어. 일단 뒷수습은 브로커에게 맡긴다고 해도, 이대로라면 천일의 분위기를 주도하기는커녕 나는 이곳에서 외톨이로 배척받을 것이 분명해.’

계획 실패.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일단 김현성. 지금 당장 그 새끼의 팔이라도 하나 부러트리면, 브로커도 윗선에 할 말이 있겠지.’

과감한 선택이었다.

정면으로 돌파해, 성과로 상황을 수습하고자 했다.

“퉷.”

배성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겼다.

5반의 학생들은 겁을 먹고 길을 열어 주었다.

끝까지 조를 거절했던 안경잡이가 눈에 밟혔지만, 일단 그보다는 김현성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었다.

‘넌 두고 보자.’

그렇게 교실을 나섰는데.

툭.

누군가와 몸이 부딪혔다.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상대를 확인한 최태준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얼굴을 발견했다.

“이 새끼 눈빛 봐라. 살벌하네, 살벌해.”

정보로 받은 사진 중 하나.

천일의 요주 인물로 분류되었던 김영철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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